슽&글&슽글

해류

바닷속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물결을 따라 부드럽게 일렁이는 해초를 손끝으로 쓸었다. 손가락 사이로 헤엄쳐 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간지러워 무심코 웃음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제게 허락되지 않은 세계 속으로 걸음을 딛고, 그들과 어울릴 기회를 받았다. 까슬한 모래가 물과 섞여 부드럽게 발을 감쌌다. 해안가를 거닐던 어린 소년이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치며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웃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물 속은 부드러웠고, 편안했으며, 자유로웠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그곳에서 두 번은 없을 여정을 떠났다. 지나치는 모든 풍경을 눈에 새기고 기억했다. 그곳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폭풍우가 일었다. 어린 소년이 어찌할 수 없는 재해가 온 바다를 휩쓸었다. 평화로웠던 해역에 이변이 일었다. 눈 뜬 해변가에서 그는 처음으로 바다 밖의 세상을 보았다. 수압이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손발이 자유로웠고, 처음으로 호흡해본 폐가 기뻐하며 생기를 띠었다. 허나 이곳은 지독하게 쓸쓸했다. 뒤를 돌아보자 파도가 천천히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 묻은 모래가 간절하게 바다를 따라 달렸다. 알고 있던 세계가 멀어지고 마는, 해방감이었다.

소년은 다시 바다를 따라 걸었다. 미끄러지는 모래알들과 함께 비틀거리며 물을 헤집었다. 거센 파도가 몸을 휩쓸었다. 이대로 돌아가고자 했다. 다시 바다에 몸을 담고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친다면 모든 것이 돌아가리라 믿었다. 우리들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렸던 그날부터 지금까지도, 바다 위의 수면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을 냈다. 그것만큼은 같았다. 소년은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무거운 물이 움직임을 방해했다. 다정하다고 생각했던 해초가 발목을 휘감고, 공기로 가벼웠던 폐에 바닷물이 들어차 코가 아렸다. 급히 머리를 치켜세워 수면 위로 몸을 내밀었다. 그 순간, 몰려온 파도가 작은 머리를 덮쳐 안쪽으로 끌고 갔다. 따스했던 심해가 싸늘하기 짝이 없는 공포감으로 호흡기를 죄어 왔다. 


살려줘! 살려주세요! 


비명을 지르려던 입에 바닷물이 억지로 넘쳐 들어왔다. 소년은 따가운 눈을 질끈 감고 팔을 뻗었다. 해초에 휘감긴 손은 표류하는 나무 판자 하나도 잡지 못하고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반복되지 않았어야 할 바다의 풍경이 흐린 시야에 억지로 쑤셔 들어왔다. 그렇게 소년은 수도 없이 많은 해역을 여행했다.

소년은 그제야 물고기들을 이해했다. 그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헤엄치고 있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모험과 유대 따위는 일렁이는 해류가 만들어낸 신기루에 불과했다. 너무나도 쌀쌀맞은 그것에 손을 뻗고, 흩어져 가는 환상을 멍하니 바라본다. 버림 받았나? 아니,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소년의 손에 닿지 않았을 뿐이다.

외로웠다. 쓸쓸했다. 해변가를 경험하고 만 소년은 더 이상 바닷속의 생물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웃기지도 않은 흐름에 억지로 휩쓸려 다니며 자신이 자유의지를 품고 있다고 착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저주였다. 공기의 저주. 바깥을 이해해버린 육지의 생명은 더 이상 바다에 존재해서는 안 됐다.

서글프다. 소년은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렸다. 자그마한 눈물은 방울질 틈도 없이 바다에 흘러갔다. 해류에 빼앗기는 기억이 서글펐다. 그는 더 이상 바다에 속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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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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