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추락하는 팬텀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떨어기지도 했고 박사가 그만큼 민첩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팬텀은 머리조차 보호하는 것도 잊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에 걸려 있던 액자와 세워져 있던 잡동사니들이 팬텀의 온몸을 긁고 두들긴다. “팬텀?!” 팬텀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충격에 쓰러지거나 기절할 리가 없
전편 팬텀은 눈 앞에 놓인 기구들을 보고 저 멀리 등을 보이고 있는 실버애쉬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기구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긴 바늘 한 뭉치. 길이도 다양하고 끄트머리에 각기 다른 표식이 새겨져 있다. 그 음각을 손끝으로 매만지던 팬텀은 바늘의 생김새를 보고 바늘의 몸체를 조심스럽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일반 바늘과는 다르게 홈이 파여있다. 피가 흐
새벽이 와도 잠들 수 없는 밤이 오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정제되지 못한 감정이 엉킨 오선지를 그리고 찌를 듯 따가운 기억이 그 위를 거닌다.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이 나의 노래를 키운 셈이다.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타고 작은 화음이 겹친다. 작디 작은 노랫소리는 내 목에서 흐르는 목소리인지 아니면 머리속에서 들리는 울림인지 알 수가 없다. 누가
박사는 서류를 정리하던 도중 자신의 비서를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어야 할 팬텀은 자리에 없다. 박사는 가면을 쓴 존재가 자신의 옆에서 나지막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걸 느낀다. 팬텀의 능력, 거울속 환영이다. 환영이 정말 독립적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 팬텀과 구분할 수 있는지, 팬텀의 정신
박사는 다급하게 빛 무리로 달려나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더듬어 팬텀을 자신의 쪽으로 끌었다. 극단장? 극단장이라고? 팬텀이 극단장이라고 부를 다른 사람이 있던가?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휩쓸지만 박사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가짜여도 문제였고 진짜면 더 문제였기 때문에. 극단장이 팬텀에게 어떤 일을 해왔는지 박사는 어렴풋하게만
생일리퀘스트: (글쓰는 사람이 생일임)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깨의 피부와 근육이 서로 떨어진 것만 같다. 아니면 뼈가 굳어버렸거나. 박사는 눈을 뜨자마자 온몸이 지르는엄청난 근육통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신이 잠들지 않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바로 눈치차렸다. 절로 입밖으로 흐르는 신음소리. 박사는 그 소리를 일부러 죽이지 않
쓰면서 들은곡: Depapepep <風見鶏> 요즘 자꾸 농땡이 부렸더니 글이 잘 안써져! 그치만 잘 안써져서 농땡이 부렸어요. 🎶🎵 창밖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흥얼거리는 허밍, 낡은 금속현이 손에 닿아 끼릭끼릭 미끄러지며 우는 소리, 목재로 된 몸통에 손톱이 닿아 나는 박자감, 다소 낯설기도 하면서 익숙한 듯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박사의
23.12.10 나는 팬텀이 거울로서의 상징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극단장을 비추면 그는 팬텀 유령이 되고, 박사가 비추면 그는 크리스틴 노래하는 자가 되는 거지. 옷 자체에 거울이라고 쓰여져 있고 재능도 거울 속의 환영이고. 본인의 환영을 거울에 비추는게 아니라 타인의 투영을 본인에게 하고 연기함으로 거울의 의미이지 않나. 이런 배우의 의미와 유령인
쓰면서 들었던 곡: 백예린<나도 날 모르는 것처럼> 5일차도 펑크를 내버렸는데… 오늘은 2000자보다 조금 더 많아요… 딱딱, 손톱이 거슬린다. 손톱이 거슬린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증거였다. 박사는 불안하면 손톱이 길어져 다듬어지지 못한 부분이나 손톱의 밑살을 물어뜯곤 했다. 주로 혼자 있을때 이런 버릇이 드러나곤 했지만 켈시나 아미야 같은 측근에
팬텀이 모래를 토하고 난 후로부터 박사는 되도록 자신의 시야에 팬텀을 두려고 했다. 팬텀에게 자신의 옆에 머무르라고 지시하며, 종종 팬텀이 발작하지는 않는지, 다시금 모래가 쏟아지지 않는지 확인한다. 팬텀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모래는 흘러내리는 시기도 양도 굉장히 불규칙 적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로도스에 오고 난 다음부터는 박사와 팬텀 두 사
팬텀이 죽었다. 이 문장을 적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생각을 거쳐야 했는지 나 조차도 모르겠다. 팬텀이 죽었다. 사실 죽고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주변에서 그렇게 이야기 하니 아마 적잖은 시간이 흐른게 맞을 거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을 하나하나 헤아리기에는 그 감정의 밀도와 충격의 무게를 표현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생각
푸른빛이 도는 반지가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턱선을 타고 올랐다. 그리고 손가락끝 하나로 턱을 가볍게 쓸고는 아주 매끄럽게 미끄러져 내려간다. 루시안은 그 턱을 처올라간 상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선을 끌어당기는 푸른 빛의 반지를 곁눈으로 바라본 다음 눈을 감았을 뿐이다. 시야가 칠흑으로 덮히고 아무런 형태도 잡히지 않지만 곧이어 어둠에
노래보단 뮤비를 보다보니 생각이 나서 뮤비 봐주시면 좋을듯?: sajou no hana <parole> 3일차는 컨디션 난조로 패쓰해서 오늘은 그 분량까지 쓰다(다들 코로나를 조심하시길) 스테이크, 새빨간 피가 뚝뚤 떨어지는 부드러운 살점. 버섯구이, 미끌미끌거리는 하얀 덩어리. 아스파라거스 튀김, 질긴 섬유질에 노란기름과 녹색 즙이 섞여 짓이겨 진 것
팬텀은 조심스럽게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속 기름의 위에서 천천히 요동치던 달걀이 팬텀의 손끝을 따라서 흔들리다가 그대로 철벅! 바닥으로 쏟아진다. 팬텀은 석고상처럼 굳어 움직임을 멈췄고, 굼은 아아아!! 하고 소리쳤으며 떨어진 달걀은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을 매섭게 질주했다. “스크램블에그가!!” 굼의 외침에 보답하듯
2일차 약 2900자 쓰면서 들은곡: 브로콜리너마저<유자차> 노골적이진 않으나 약간 그렇고 그런 행위 후의 느낌이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으레 생각나는 마실 것이 있다. 코코아, 유자차, 에그노그 같은 것들. 각자의 기호나 취향에 따라 어느정도 선호가 달라지겠지만 이 중에 박사의 선택은 유자차였다. 이를 테면 잠이 안오는 눈이 시리게 차디찬 날에는
*유혈, 고어 당신은 바닥에 떨어진 피를 일부러 밟으면서 천천히 걷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당신의 발을 따라 뒤로 긴긴 붉은 길이 이어질 것만 같지만, 사실 이 복도는 이미 발자국 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피들이 그득하다. 맨들맨들 하게 잘 관리된 대리석 위로 피가 고이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내부에서 오직 이 혈흔만이 이질적이다. 여긴 고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