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방안2

박사팬텀단장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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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다급하게 빛 무리로 달려나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더듬어 팬텀을 자신의 쪽으로 끌었다. 극단장? 극단장이라고? 팬텀이 극단장이라고 부를 다른 사람이 있던가?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휩쓸지만 박사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가짜여도 문제였고 진짜면 더 문제였기 때문에. 극단장이 팬텀에게 어떤 일을 해왔는지 박사는 어렴풋하게만 알았다. 극단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두는 알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상상보다도 끔찍했을 거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박사는 등 뒤에서 바짝 굳어서 상황을 파악하는 팬텀의 손을 꽉 쥐었다.

이게 함정이라면?

그래도 상관없어. 박사는 팬텀의 손을 다잡고는 눈이 어서 이 빛에 익숙해지기를 그리고 저 멀리 즐거워하는 극단장이 조금이라도 기다려 주기를 바랬다.

“네 왕자님이 정말로 너를 아끼는구나. 루시안.”

팬텀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등 뒤의 흉곽에 바람이 들어가 살짝 뜬다 박사는 팬텀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자력으로 성에서 탈출한 공주님이라서 말이야.”

대답은 박사가 했는데 긴장은 팬텀이 한다. 박사는 팬텀을 점점 더 뒤로 밀어냈다. 한 걸음 또 한걸음. 내가 상대해. 내가 말하고, 내가 협상할거야. 하지만 팬텀은 어느정도까지 밀리다가 멈추고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그대로 박사의 어깨를 잡고는 오히려 몸을 앞으로 더 밀려고 든다. 박사와 팬텀은 극단장의 앞에서 본의 아니게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박사가 팬텀의 힘에 이길리가 없지만, 팬텀이 더 이상의 힘을 주지 못하고 있어서 이 웃지못할 촌극은 극단장이 움직일 때 까지 지속되었다.

어깨를 잡고 극단장에게 나가려는 팬텀. 그보다 작은 키로 어떻게든 막아서려는 박사. 분명 극단장을 적대하고 있음에도 둘 모두 시선은 서로를 향하고 극단장을 바라보지 않는다. 극단장은 두 명의 관계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서로가 소중하지만 신뢰하고 있지다. 한쪽은 스스로를 믿지 못해 상대방을 해칠까 두려워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사라질까 전전긍긍 한다. 소중하다고 해서 중요한 것은 아니지. 극단장은 이 즉흥극을 아주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래서”

극단장이 우아하게 입을 연다. 서로를 신경쓰던 둘의 신경이 순식간에 몰렸다. 언제나 무대의 뒤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극단장은 유쾌하게 웃었다. 이렇게 무대의 위로 올라오는 것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 방안에 대해서는 알아볼 생각이 없는건가?”

정말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몸이 움찔거린다. 이 방안 보다도 극단장의 위험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만 같다. 극단장은 일부러 작게 하품을 흘렸다. 자신이야 이런 곳에서 자고 먹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죽지 않겠지만, 적어도. 극단장의 시선이 루시안에서 박사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점점 긴장하는 루시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박사는 이곳에서 일주일도 버티기 어려울 거다. 여기는 물 한모금도 찾을 수 없는 곳이니까.

극단장은 루시안이 누워있던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리를 꼬고 팔을 교차하여 팔짱은 낀 모습이 무대의 뒤에서 무대를 관찰하던 모습 그 자체다. 루시안, 팬텀은 숨이 막히고 목이 졸리는 듯한 기분이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더듬는다. 결코 목소리를 내어서는 안된다. 극단장님의 앞에서 팬텀은 감정을 다스릴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는… 분명 박사에게 영향을 줄거다. 팬텀은 박사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쥐었다. 바짝 긴장한 박사가 결국 팬텀에게 고개를 돌린다. 팬텀이 극단장을 경계하고 박사가 팬텀을 바라본다. 팬텀은 박사의 손바닥에 한 자 한 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방에서 탈출해야 한다.’ 박사는 팬텀을 보다가 팬텀이 낀 제어구를 바라보고 다시 팬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방안은 문은 커녕 창문 하나도 없고 오로지 방 위에 있는 샹들리에만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극단장과 대치하여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극단장과 박사가 걸어왔던 복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여긴 고성일까? 박사의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하지만 너무나도 작은 단서 그리고 전혀 탈출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극단장의 모습에 박사는 이 모든 것이 극단장이 준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어떤 이상한 일에 극단장 또한 휩쓸린 것인지 제대로 판단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극단장에 대해서 만큼은 팬텀이 박사보다도 더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사는 결국 팬텀의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이전에 실종된 사건도 그렇고 팬텀은 극단장의 앞에서는 제대로 이성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런 대치 상황이 나오는 것 만으로도 기적이다. 이전처럼 이성을 잃고 박사를 공격하더라도 박사는 방어할 수단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생각은 충분한 것 같네만.”

침묵만이 도사리고, 말 없는 생각이 가득 찬 방안에서 오로지 극단장만이 목소리를 낸다.

“이 일은 내가 벌인게 아니네. 우리 루시안이 자네의 편을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겠지.”

극단장은 방긋방긋 웃는다.

“믿던말던 자네의 자유야. 난 두 사람이 펼치는 이 즉흥극을 아직까지는 감상하고 싶으니…”

이 뒤로 이어질 말은 듣지 않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박사는 바로 몸을 돌려 등을 극단장에게 보이고 팬텀과 마주했다. 둘이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지 않으면 뭐든 하겠다는 거다. 함정이든 아니든 이 말 만큼은 진실이다. 박사는 바로 팬텀의 손을 잡고 구석의 벽으로 달려간다. 극단장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 팬텀은 박사의 손을 잡으면서 질질 끌려가는 듯 거꾸로 걸음하면서 끝까지 극단장을 지켜봤다.

“우리 지금부터 한 사람은 극단장을 보고 한 사람은 이 방을 조사해야해. 알겠어?”

팬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박사의 손을 꽉 다잡았다.

“흥미가 식기 전에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둘 다 방을 조사하는게 맞다고 봐.”

팬텀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절대로 극단장에게서 시선을 땔 수 없는 듯 했다. 박사는 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같은 감정에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하하. 저멀리 웃는 극단장의 소리가 들린다.

“그럼 내가 방안을 둘러볼게. 네가 극단장의 주변을 살펴봐.”

박사는 팬텀의 손을 놓았다. 팬텀이 다시금 박사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박사는 곧바로 방의 석벽을 양손으로 짚으며 이 방의 구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팬텀은 순식간에 극단장에게서 시선을 돌려 박사를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을 반쯤 돌렸다가 시선의 끄트머리에서 머무는 극단장을 보고 다시금 몸을 돌려 극단장과 마주 본다. 시선을 때서는 안된다. 팬텀의 목 뒤로 서늘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극단장님은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박사를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사는 자신의 등 뒤에서 방을 조사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박사가 나의 도움을 청하고 있더라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가 극단장님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박사를 바라볼 수 없다.

팬텀의 목 뒤에서 시작된 날카로운 감정은 점차 점차 아래로 심장으로 치닫는다. 팬텀은 극단장을 바라보고 숨을 쉬다가 한 걸음. 더 한 걸음 뒷걸음 치면서 다급하게 박사를 찾았다.

박사. 박사. 어디에 있는거지? 박사! 내가 제정신인지 확인시켜줘. 내가 무대의 아래로 내려와 있음을. 내가 노래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줘!! 박사!!!

팬텀은 순식간에 방 안 모서리로 튀어올라 모든 방안을 내려다 보았다. 극단장과 박사 모두를 시야에 담을 수 있는 시선으로. 그리고 그 끝에는…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박사가 있다. 팬텀은 작게 안도하면서 동시에 양손으로 방 안의 모서리 벽을 짚고 그대로 버텼다.

“…”

짝짝짝.

극단장이 박수를 친다.

“그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구나. 루시안.”

팬텀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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