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양병

박사x팬텀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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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이 고성에서 돌아 온 후로 몇 주일이 지났다. 이제 로도스에는 팬텀에 대해서 실제로 존재하던 오퍼레이터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던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팬텀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또 어떤 과정으로 로도스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는지 세세하게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고성에서 겪을 일들을 서로 공유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전달하였으며, 더 나아가 고성에 발을 내밀어 극단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들을 들어 종종 팬텀에게 위로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팬텀이 보이는 행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동정, 공감, 안타까움, 배려, 도움과 상냥한 손길을 기꺼이 내밀었고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팬텀은 그들의 위로를 가만히 경청하다가 몸을 숨겨 달아나곤 했다. 어색하지 않은 음울한 미소, 그 아래의 숨겨진 감정을 들고 흔적 하나 없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사라진다. 팬텀은 고성에서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로도스 내에서 인기척도 관계도 봉하고 그림자의 아래로 숨어다녔다. 무례할 수도 있는 처사였으나 로도스에서는 아무도 팬텀의 그런 행동을 탓하지 않는다.

팬텀은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악의가 없다. 그러나 종종 그들의 위로는 상처가 된다.

상냥한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인간 관계에서 대본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텀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즉흥극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들의 말처럼 팬텀은 극단을 죽이려고 했었다. 그렇다고 극단을 미워하냐고 묻는다면 팬텀은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감정 사이에 빠진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극단을 향한 감정이 이다지도 격렬하니 필시 팬텀은 극단을 아직도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안식을 얻기 힘들어한다.

그들은 팬텀에게 안식을 주고싶어 한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도 손쉽게 극단을 비난한다. 팬텀은 극단의 행위를 옹호할 생각도, 긍정할 생각도 없었지만 로도스의 사람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의 칼날이 극단을 향할 때마다 종종 자신 또한 칼날에 베인다고 느꼈다. 로도스 내에서 나오는 비난에 같이 난도질 당하면서 팬텀은 이 또한 그들 나름의 위로라는 걸 알고 있어서 핏물을 흘리면서로 그만두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죄가 없다. 그들은 실종 되었고, 죽었으며, 몇몇은 영구한 상흔을 입었다. 팬텀은 그들이 비난의 말을 극단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리더라도 입하나 벙긋하지 못했을터다. 그중 누군가가 팬텀을 향해 이야기 했다. 극단을 잊어버리라고 로도스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이내 팬텀은 음울함 위로 우스꽝스러운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노력해보겠다.

노력. 팬텀은 노력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극단에서도 로도스에서도. 그러나 극단에서의 또래 아이들은 팬텀에게 종종 속삭이곤 했다. 노력없이 얻는 재능은 어때? 팬텀은 처음에 나도 노력했다고 반박했지만 곧이어 아이들이 말하는 노력, 실패와 고난의 과정에서 배우는 과정을 언급하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팬텀은 극단 내에서 실패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노력과 팬텀이 말하는 노력은 다르다. 팬텀의 말은 그렇게 묵살되어 사라져갔다. 팬텀이 후두로 올릴 수 있는 언어는 극의 대사와 노래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극단이 와해되고 고성에서 돌아온, 지금에서야 팬텀은 아이들이 말하는 노력이라는 것을 정말로 겪기 시작했다. 팬텀은 극단에 대해 잊어보려고, 단념 해보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그 시도가 노력에 다다르기도 전에 포기해버렸다. 실패하고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 하지만 팬텀은 실패에서 좀처럼 배울 수가 없다. 사실 팬텀은 재능이 많은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차라리 앞선 누군가의 말을 단념하는게 더 빠를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누군가는... 이 로도스의 중추이자 팬텀이 따라다니는 박사였기 때문에.

팬텀에게 있어 지금의 박사는 선의의 중추이자 나아갈 방향성, 등대이자 북극성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런 박사가 요구하는 극단에 대한 단념은 과거에 있던 추억 전부, 아니 추억을 넘어 시절 전체를 부정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극단을 단념하는 행위는 어느 시절의 팬텀까지 그 범위에 들어가버리고 만다.

팬텀은 스스로를 부정해야했다. 그 시절의 고통과 학대와 불합리함을 단념하는 동시에 생존과 칭찬 그리고 아이들과의 추억까지 단념해야만 했다.

극단에서 있었던 모든일이 괴로움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비록 작고 소소했지만 지속해서 삶을 유지할 정도의 행복도 분명 존재했었다. 극단을 죽이고자 한 행위는 문장의 마침표였지, 문장이 적힌 종이를 찢고자 하는 게 아니었을텐데. 그의 마지막 무대는 극단의 일부로 극단원으로서 그 행위를 끝내고자 하는... 그런 받아들임의 행위였다고, 팬텀은 그리 생각한다.

팬텀은 다시금 단념하고자 극단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희미한 행복을 발견하고 그 덕에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고통을 떨치면 그 고통을 치료해준 손길을 잊고 만다. 학대를 떨치면 그걸 통해서 얻은 노래가 사라지고 만다. 부당함을 떨치면 극단에 맞서고자 했던 결심을 잃어버린다. 팬텀은 극단에 대한 단념을 시도 할 때마다 자신의 일부 또한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극단을 부정하면 지금의 팬텀도 있을 수 없어. 박사는 알고있을까?

팬텀은 박사가 건내준 약과 물을 보고 혼란에 빠졌다. 로도스 아일랜드는 팬텀의 반응을 트라우마라고 규정한다. 팬텀은 손에 든 약을 보고 박사를 바라본다. 박사의 눈빛은 순수하다. 그저 사람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의 선의로 가득하다. 팬텀은 자신이 생각한 말을 밖으로 뱉을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물과 함께 삼키면서 팬텀은 약의 몽롱함에 취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박사가 팬텀의 머리를 쓰담기 시작하면 그조차도 어려워져서 곧 안개낀 머리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바보가 된거 같다. 팬텀은 극단에 대한 감정을 순간적으로 잃었다. 그러자 스스로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위험하게 혼자 고성에 갔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왜 그랬지. 그 행동 때문에 로도스에 피해를 끼쳤어. 죄책감이 밀려오지만 곧이어 그 당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짐작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자책하는 비생산적인 우울감을 가지는 대신 자신을 구하러 온 로도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자 생각을 고쳐먹는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 도움을 청하자. 미래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약물에 효과는 반나절. 반나절이 지나고나면 팬텀은 필사적으로 다시 극단을 붙잡는다. 팬텀은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해서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바보가 된거 같다고. 멍하고 깊은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노래 소리가 끊기고, 주변의 상황과 자극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생각만 할 수 있다고. 그러면 박사는 말한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보통 상태야.

팬텀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평범함과 정상에서 팬텀은 발언할 수 있는게 없다. 무조건 박사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이 치료 행위를 지속적으로 노력 할 수는 없었다. 극단의 천재, 재능과 예술 그자체이던 팬텀에게 평범함이란 거부해야하고 받아들어서는 안되는 요소다. 팬텀은 자신을 놓지 못하고, 평범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에서 뒤엉키고 부딪히면서 결국 도망치고 만다. 그럼에도 팬텀은 매번 극단의 단념을 시도한다. 박사는 군말하지 않고 약을 내어준다. 하지만 팬텀은 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금방 또 도망쳐 버린다. 박사는 채근하지 않는다.

로도스에서 나오는 극단을 향한 비난의 말에 팬텀이 다시금 몇 번이라도 사무실을 찾을 걸 알고 있으니까.

팬텀은 결국 평범해 질 것이다. 정상적으로 울고 웃고 극단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 결과가 여전히 그가 팬텀일 수 있는지는 자처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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