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방안

박사팬텀단장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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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리퀘스트: (글쓰는 사람이 생일임)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깨의 피부와 근육이 서로 떨어진 것만 같다. 아니면 뼈가 굳어버렸거나. 박사는 눈을 뜨자마자 온몸이 지르는엄청난 근육통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신이 잠들지 않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바로 눈치차렸다. 절로 입밖으로 흐르는 신음소리. 박사는 그 소리를 일부러 죽이지 않고 그대로 끙끙앓았다.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지만 박사를 건들이지는 않는다. 박사는 계속해서 고의적으로 눈을 뜨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더 심한 고통을 줄거라는 침묵어린 협박? 아니면 더 이상의 고통을 주지 않을 거라는 회유? 아니면 클로저의 몹쓸 장난일까? 박사는 30분이 넘도록 바닥에 들러 붙어있었지만 인기척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이고… 도와주지도 않는거야?”

결국 박사가 먼저 운을 땐다. 그제야 박사의 얼굴 앞으로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내려왔다. 박사는 눈을 뜨고 그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 순간 손은 쑥 빠져나갔다. 푸른 보석의 빛이 잔상처럼 남아 박사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직접 일어나게.”

그게 더 흥미로우니.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이 독특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였다. 노인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여성의 목소리 같기도 했으나 그런거 치고는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박사는 그대로 바닥을 밀어 겨우 허리를 들고 그 혼란스럽고 복잡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긴 정장에 푸른 빛의 반지 그 외에는 그 어떠한 개성이나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그림자를 뭉쳐서 빚어놓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박사는 불현듯 스미는 긴장감에 반사적으로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우면서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눈 앞에 있는 건 조심해야한다.

“뭐야…. 되게 세련된 사람이네.”

박사는 상대방에게 눈을 때지 않으면서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오래된 어느 고성같은 방이다. 인테리어는 대체로 시간이 많이 흐른 듯 낡아있었지만 고풍스럽고 또 근사한 멋이 있었다. 동시에 약간의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그 어떤 촛농의 흔적 마저도 철저하게 계산하여 꾸며낸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방을 소유한 사람은 분명히 굉장한 안목을 가짐과 동시에 모든 것을 다 통제하려고 드는 사람일게 틀림없었다. 원치 않더라도 하나하나 살펴보게되는 통찰력에 박사는 스스로를 칭찬하다가도 이 방과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눈 이 사람이 굉장히 어울림을 오히려 한 장의 작품 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알고 다시금 긴장감을 붙잡았다.

“충분히 둘러보았나?”

이미 박사의 시선을 눈치 챈 듯한 말투다.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거리를 두기위해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누구를 납치할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그쪽도 갇힌건가?”

이 방에는 창문도, 방문도 없다. 옆으로 이어지는 작은 통로만이 있을 뿐. 박사는 곁눈질로 통로의 어둑한 어둠 너머를 살펴보다가 다시금 상대방의 미소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누구를 굉장히 납치할 것 같은 직감이 드는 사람이다. 그것도 단순 납치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나 또한 눈 뜨니 이런 곳에 있었을 뿐이야.”

손으로 턱을 쓸며 하는 행동이 정말 쓸데없이 우아하다. 그리고 묘하게 익숙하다. 박사는 기시감을 흘리지 않고 단단히 붙잡으면서 그저 말을 긍정했다. 되도록이면 이 자와는 연관되지 않는게 안전하다고 자꾸만 이성과 본능 그리고 직감이 외치고 있다.

“되도록이면 빨리 정신 차리길 바라지. 우리 아마도 저 통로 너머에 같이 가야 하는 것 같으니까.”

탓하는 말이지만 표정은 흥미로움과 재미가 겉돌아 미소가 끊기지 않는다. 박사는 여기서 계속 대치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은 차린지 오래다. 박사는 그저 관칠할 시간과 물리적 심적인 거리감을 늘리고 싶어서 쭈뼛거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쪽 벽변에서 그림처럼 서있던 자가 천천히 통로 속 어둠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사는 두 사람이 통성명 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구태여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자가 발걸음을 옮기면 박사가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박사가 보는 이 사람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긴 다리임에도 보폭이 박사와 비슷하고 그림자에 익숙해진 눈으로도 발 아래의 흔적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박사는 속으로 이게 무슨 괴담이야!! 하고 몇 번이고 소리쳤다. 그리고 박사가 속으로 소리칠 때마다 눈 앞의 인영은 그 소리를 듣는 마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혹시 마음을 읽는 걸까? 박사는 그 의심이 들고 나자 고의적으로 앞서 걷는 사람을 욕했고 별 다른 반응을 구하지 못했다. 박사는 몇 번에 간단한 실험 끝에 저 사람이 박사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복도가 생각보다 길다. 하지만 박사는 앞서서 걷는 사람 때문에 자신이 발로 걸어가는지 아니면 손으로 짚어가는지 몰랐다. 당장 이 이상한 곳의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저 사람에 대해서 파악해야한다. 박사는 자신의 생존에 관련될 수도 있겠다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눈 앞에 걸어가는 자가 정말로 사람인지 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론이 내려지기 전에.

“도착했군.”

그가 이끄는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환한 빛이 위에서 쏟아져 내린다. 눈이 부셔서 방 밖에서는 방 안을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들다. 꺼리낌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도 박사는 한사코 들어가지 않고 눈이 빛에 익숙해 지기를, 그리고 저 자와 한 방에 갇히지 않기를 빌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빛 속에서도 어둑한 인영이 침대인지 아니면 소파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커다란 가구 속에서 무언가를 흔들었다. 그리고 박사는 곧장 그 빛속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극단장님?”

팬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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