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방안3

박사팬텀단장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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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추락하는 팬텀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떨어기지도 했고 박사가 그만큼 민첩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팬텀은 머리조차 보호하는 것도 잊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에 걸려 있던 액자와 세워져 있던 잡동사니들이 팬텀의 온몸을 긁고 두들긴다.

“팬텀?!”

팬텀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충격에 쓰러지거나 기절할 리가 없는데. 박사는 제바르게 팬텀의 망토를 벗기고 그의 맥박과 숨을 확인했다. 숨은 쉬고 있어. 하지만 맥이 불규칙해. 흥분하거나 긴장한 것처럼 엄청나게 빠른 것 같으면서도 순식간에 다시 잠든 사람처럼 맥이 느려진다. 제대로된 반응이 아니다. 박사는 순식간에 자신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렸다. 팬텀이 일어났을 때, 그게 제정신인지 그리고 신체가 정상적인지 확인 했어야 했다. 박사는 저 멀리 극단장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팬텀만을 살폈다. 여기서 팬텀을 제대로 진찰할 수는 없다. 박사는 손바닥에 땀이 배여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정 안된다면 극단장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으음?”

마치 무대를 관람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 거리는 꼴이 열뻗친다. 박사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서 바닥에 누운 팬텀의 몸을 잡고 그나마 잡동사니가 없고 평평한 곳에 그를 끌어다가 눕혔다. 바닥이 아직 차가울테지만 절대로 극단장의 근처에 두고 싶지는 않았다. 저 자는 팬텀을 가지고 놀면 더 놀았지 절대로 박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테니까.

“박사.”

그런 그를 극단장이 부른다. 박사는 무시하고 싶은 욕구가 온 몸을 지배했지만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극단장을 바라보았다.

“관객에게 등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일세.”

그리고 구두로 발바닥을 톡톡 두드린다. 그러자 팬텀의 몸이 작게 움찔했다. 기절하고 있더라고 반응할 정도로 신경에 어쩌면 영혼에 새겨진 반응이다. 박사는 제빠르게 몸을 돌려 극단장이 볼 수 있는 각도로 팬텀의 근처에 자리잡았다.

“좋아. 박사. 자네는 무대에 익숙치 않다는 걸 아니 그 정도는 고려해주지.”

정답인 모양이다. 박사는 순식간에 극단장의 손에 자신이 갈가리 찢기는 상상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극단장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대 위의 장면이다. 박사는 자신 나름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극단장을 자극하지 않고 흥미롭게 만들어야 했다. 목구멍으로 욕설이 치밀어 올랐지만 박사는 그 감정을 꾹 참고 팬텀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체크했다.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최대한 미뤄야 한다. 자극적일 수록 집중도는 높지만 흥미는 금방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박사는 팬텀을 자신의 무릎 위에 머리를 뉘이고 그대로 극단장을 바라보았다. 팬텀이 없다면, 팬텀이 없을 때의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한다. 박사는 제법 입을 잘 놀렸고 계획과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나름 무대의 대본과도 결이 비슷하다. 관객이 참여하는 연극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박사는 극단장이 계속 관객으로 남아있기를, 그와 동시에 어서 무대위의 배역으로 올라와 이 이상하고 미칠 것 같은 상황을 끝내주길 바랬다.

“내가 이 무대에서 다른 걸 할 건 없고?”

극단장이 웃는다. 박사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그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감각만을 받았다. 데몬과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데몬과는 다르게 좀 더 안정적이고 좀 더 현실에 닿아있는 것 같다. 훨씬 더 끔찍하다. 그의 신체중에서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은 얼굴이나, 손, 몸의 라인 등의 신체 구조가 아니라 검은색 옷과 반지 같은 그가 걸치고 있는 것들 뿐이었다. 박사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관객에서 물어보는 배우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숨겨 그대로 하품을 작게 내뱉었다.

“뭐라는지 잘 안들리네.”

유일한 관객인 극단장은 그저 웃기만 했다. 하지만 박사는 마치 대본을 따라하는 것처럼 관객의 누군가가 대답을 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머리속에 인물을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눈 앞에 사람이 있는 마냥, 머리속에 남아있는 오퍼레이터를 빈 공간에 불러내어 관객으로 삼고 그 오퍼레이터에게 질문 이라도 하듯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 이건 일종에 의식에 가깝다. 무대의 위와 무대의 아래를 구분하는 의식.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어? 범인을 안다든지.”

박사는 일종의 도박과도 같은 생각으로 시작한 행동이었지만 이 행동이 의미하는 다른 바를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이 무대의 구분 선은 극단장과 철저하게 팬텀을 분리한다. 팬텀은 겁에 질리고 횡설수설 하여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박사는 극단장이 아직 무대의 위로 올라올 생각이 없음을, 관객으로 자리잡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을, 그리고 무대에서 그 어떤 일이 벌여지더라도 예술을 중요시 하는 극단장의 성격상 관객이 난입하는걸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거기 신사분?”

박사는 연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극단장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고 최악의 제스쳐라고 평가하겠지만 박사는 배우가 아니다. 그리고 이미 극단장은 그런 행위를 용인해주겠다고 했다.

“무슨일인가.”

긴긴 박사의 독백에 극단장이 대답한다.

“네가 혹시 우리를 여기 가둔 범인 아니야?!”

최악의 연기다. 박사는 속으로 스스로를 자조하고 욕하면서도 떳떳하게 삿대질을 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하지만 극단장은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라니. 나는 그저 즉흥극에 초대 되었을 뿐이라네.”

즉흥극. 제 4의 벽을 뚫는 발언에 박사는 고개를 옆으로 눕히고 한숨을 내뱉었다.

“저것봐 우리는 지금 실제 상황인데 너희들은 자꾸 극이라고 하잖아. 됐어. 우리끼리 알아서 할게.”

박사는 없는 허공에 대고 삿대질 하면서 도움이 안된다느니, 우리의 상황을 도와줄 생각을 해달라느니, 이런저런 말들을 마구 뱉은 후에 팬텀의 옆에 주저 앉았다. 스스로가 생각하도 너무 뻔하고 재미없고 말도 안되는 즉흥극이다. 하지만 극단장은 그런 엉망진창인 박사의 연기도 재미있어하는 듯 했다. 그래 언제나 딱딱 훈련받은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예술만 보다가 예술의 감상이면 몰라 표현은 지식만 아는 놈팽이의 연기는 엄청 웃기겠지. 그러나 박사는 이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으로 알게된 사실을 하나 쥐고 작게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이 방안은 극단장이 준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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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덕질하는 해파리

    재미따아 재미따아아 대화하기만해도 너모 재밋서요 으히히히히 재밌어어어 단장도 극에 올리려는 박사 멋져어어어 근데 우리 아기냥이 ... ㅠㅠ 프레셔에 눌려 암것도 못해요 넘넘 불상해요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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