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뮤뮤] Home sweet home

개인실의 침략자

안녕, 박사.

이 느닷없는 동침은 뮤엘시스가 박사의 개인실에 찾아온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을 열었더니 옆구리에 베개를 낀 뮤엘시스가 서 있었던 순간부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당황한 박사가 물었으나 뮤엘시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 대신 그를 제치고 들어가 침대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거나, 통 잠이 오질 않아 어쩔 수 없었다는 뻔한 핑계라도 있었으면 차라리 납득하기 쉬웠을 것이다. 박사의 모든 의문에 침묵으로 일관한 뮤엘시스가 마침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자, 그러지 말고 빨리 누워. 피곤하잖아?

박사는 뮤엘시스가 이런 식으로 웃는 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적당히 쫓아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는 이 상황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도. 대체 어디서 뭘 듣고 왔길래 이런 얼토당토않은 장난을 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캐묻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달은 박사가 어영부영 곁에 눕자, 뮤엘시스가 만족스럽다는 양 한껏 끌어올린 이불 위로 박사를 두어 번 다독였다.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침략이 시작됐다.


HOME SWEET HOME

안녕, 박사. 오늘도 좋은 밤이지?

뮤엘시스….

정확히 밤 10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로도스의 모두가 개인실로 돌아갈 즈음. 뮤엘시스는 매번 그 시간에 문을 두드렸다. 일주일이 넘도록 이어진 방문에 하루는 박사가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간청했는데, 뮤엘시스가 그래서 싫어? 하고 되묻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뮤엘시스가 찾아오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모조리 빼앗겼다는 걸 감안해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뮤엘시스가 오기 전에 침대 시트를 부러 정리한 일도… 그래, 있다. 세 번 정도. 하지만 좋거나 싫음 따위의 감상을 떠나서 왜 이러는 건지가 궁금한 건데.

박사, 자? 잠들지 말고… 진실 게임 하나 할래? 진실 게임이 뭔지는 알지?

오늘도 안 알려줄 거야?

박사도 참 끈질기다. 이 정도 됐으면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당사자는 알려줄 마음일랑 조금도 없다는 듯이 이런 말이나 하고. 뮤엘시스의 가는 눈초리에 박사는 결국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기사, 이유라는 건 가져다 붙이면 그만인 것을. 따지고 보면 뮤엘시스는 생태원에서 만났을 적부터 속을 가늠하기 어려웠지 않았던가. 캐묻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정에 그만 좀 물으라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충분히 특별 대우였다. 알겠다며 어깨를 으쓱인 박사가 침대 위에 널브러지자 모서리에 반듯이 앉아있던 뮤엘시스가 박사 위로 몸을 기울였다.

좋아하는 오퍼레이터 있어?

소리 내어 반문하지도 못하고 불에 데인 것처럼 튀어 오른 박사 때문에 뮤엘시스는 한참 동안 웃었다. 몇 평 되지도 않은 개인실이 타인의 소리로 가득 찬 덕택에 박사는 머리라도 세게 박았으면 어쩔 뻔 했냐고 불평하는 것도 잊었다. 박사에게는 더 이상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남아 있지 않지만, 만약 있었더라면. 우주 저편 누군가의 삶이 그렇듯 박사의 삶 역시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흘러갔다면. 그랬다면 나의 적막을 다른 이의 온기로 채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을까. 뮤엘시스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박사는 어렴풋이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있는 것 같아.

응? 아, 좋아하는 오퍼레이터. 그래… 있단 말이지.

뮤엘시스가 부연하지 않아도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이번만큼은 박사도 항변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떠올린 것이 정답일 테고, 구태여 부정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뮤엘시스는 어떤 측면에서는 박사를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쉬지도 않고 웃은 탓에 침대 프레임에 대충 기대어 있던 뮤엘시스가 옆자리를 두드렸다. 그가 이럴 때면 박사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가까워진 거리 사이로 음, 하는 침음과 함께 미지근한 적막이 돌았다.

있지, 줄곧 박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게 있어. 박사가 내게 말해줬던 이야기의 연장이야. 생명이 사라질 때까지 경험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했지? 박사와 내가 함께 있는 이 시간마저도 그래.

….

정말 별거 아닌 시간이잖아. 쓸데없는 잡담의 연속이지. 어쩌면 박사가 내일 써야만 하는 에너지까지 소모시키는, 음, 일종의 낭비라고 볼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

알아. 나도 그렇고. 정말 중요한 건…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마저도 쌓이고 쌓여서 나를 구성하게 된다는 거야. 나와 보낸 시간이 박사를 이루게 되다니, 근사하지 않아?

뮤엘시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으니까. 우리는 벌써 서로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 셈이지. 어때, 내 새로운 가설이 마음에 들어?

박사가 그렇다고 대꾸하기도 전에 뮤엘시스가 그의 손을 잡았다. 닿은 손 위로 전해지는 온기, 침대 위에 완전히 자리 잡은 뮤엘시스의 베개, 책상 위에 놓인 그의 필기구. 그렇다면 지금의 박사는 과연 얼마 만큼의 뮤엘시스로 구성되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으나 박사는 묻지 않기로 한다. 수치로 정의할 수 있는 퍼센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질문을 해봤자 이런 분위기에서 정말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거냐고 꾸중을 들을 게 뻔했다. 황당하다는 얼굴을 할 뮤엘시스를 떠올리니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응, 아주 마음에 들어.

그래? 다행이네.

뮤엘시스가 그랬듯 박사 역시 살아가며 견딜 수 없이 외로울 때가 올 것이다. 삶이라는 건 으레 고통을 동반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박사를 이루는 것에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미온한 다정도 있을 테고, 아마 내일 10시 정각에도, 다음주 10시 정각에도 뮤엘시스는 어김없이 문을 두드려 줄 테니까.

잘 자, 뮤뮤.

박사도 잘 자.

그리하여 박사는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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