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톨레나

톨런드도 무에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광석병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그랜드 나이트 영지가 카시미어 북부에 정착한 땅이 된 지 일백 년은 지났다. 카시미어는 여전히 기사의 나라였지만 기사 귀족 제도는 폐지되었고, 상업연합회 또한 이전과는 다른 단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랜드 나이트 영지의 서쪽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과거 아직 영지가 없는 기사 귀족이나 영지를 두고도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 머무르는 기사 귀족들이 몰려 사는 동네로, 넓은 정원과 연무장이 딸린 고급스러운 저택들이 많았다. 지금은 부촌이 옮겨가고 기사가 귀족이 아니게 되면서 사람이 점차 줄다가 빈집만 가득한 동네가 되었다. 주로 담력 시험이랍시고 오는 아이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이 있다. 덩굴 식물이 그득하게 덮여 있는 건물들 사이로 하얀 벽돌이 햇볕을 받아 아름답게 물드는 집이었다.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집이었다. 그 집 또한 빈민들이 자리 잡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가끔, 한 5년에 한두 번씩 바운티 헌터 무리가 묵고 간다고 했다. 빈민 한 명이 우물쭈물하더니 이야기했다. 그 우두머리가 상당히 유명한 바운티 헌터라면서.

길드 마스터는 카시미어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바운티 헌터였다. 아직 광석병이 치료 불가능한 질병일 때부터 활동해 왔고, 빛의 기사 마가렛 니어가 활동하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제 와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여전히 기사들은 그를 경계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비어버린 동네로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드나든다는 사실이 기사단에 알려지자 기사들 가운데서 큰 소란이 있었다. 젊은 기사들이 그 흉악한 현상범을 잡으러 가자고 했는데 오래 있었던 살카즈 기사들이 반대한 까닭이다. 동족을 감싸느냐는 말부터 꽤 많은 설전이 있었고 몇몇 기사들이 뛰쳐나와 그 집으로 향했다.

기사들은 대문에서부터 오래된 기사 문장을 보았다. 바랜 금빛에 말 두 마리의 머리, 방패 모양이 새겨진 문장이었다. 정원에는 늦봄에 들어서며 꽃잎과 진한 향기로 가득 찼다. 내부는 깔끔했다. 대리석 바닥과 빈 갑옷장, 조금 바랬고 솜이 내려앉은 소파, 빈 화병, 하얀 나뭇가지, 대문에서부터 보였던 기사 문장이 벽 한가운데에 걸려 있었다. 

기사들은 긴장한 채 그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바운티 헌터들이 주기적으로 드나들었다더니 질 좋은 양탄자나 값비싼 골동품 따위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기사들이 사는 집처럼 말이다. 기사들은 그곳에서 무기 또한 발견했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냉병기들이다. 이런 냉병기들이나 갑옷 따위는 오리지늄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쓰임새가 사라져 기사 스포츠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집의 주인은 본디 스포츠 기사였을까. 기사들은 금빛 문장을 보며 어렴풋하게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졸업한 지 10년도 넘은 학교 교과서에서라던가.

그거잖아. 그, 빛의 기사. 로도스 아일랜드에 대해서 배울 때 나오는.

모든 방을 둘러보았지만 바운티 헌터가 드나든 흔적은 없었다. 단 하나의 방만 빼고. 2층 구석진 자리에 있는 방이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그들은 건물 밖에서 창문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다. 책장 하나와 책상 하나, 협탁 하나,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오래된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 안에서는 먼지 먹은 냄새가 났지만 방치되어 있었을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심하진 않았다. 책장에는 낡은 책들이 있었다. 조금 바래기는 했지만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한켠에는 신문지 뭉치가 쌓여 있었다. 날짜를 보면 1100년대의 물건이다. 기사들은 잘 보관된 신문에 감탄했다. 

책상 위에는 액자가 세 개 있었다. 두 개는 가족사진인 듯했다. 금발의 쿠란타 남성과 키 큰 소년, 그리고 의젓한 체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는 그 소년과 아이가 자란 듯 건장한 쿠란타 남성 셋과 두 아이,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세 번째는 쿠란타 남성 둘과 살카즈 한 명이 같이 찍혀 있었다. 정말 엉망인 사진이었다. 아마 이 방의 주인이었던 듯한 금발의 쿠란타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살카즈의 목에 팔을 감아 힘을 주고 있었다. 갈색 머리의 쿠란타는 말릴 생각이 없는 듯이 카메라를 보고 생긋 웃고 있었고, 그 살카즈는 그러고도 사람 놀리는 듯이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카즈는 분명히 길드 마스터였다.

한 기사가 편지 더미를 뒤적거렸다. 낡은 편지들을 뒤적거리다 옆의 펜꽂이에서 편지칼을 꺼냈다. 금장은 낡아 벗겨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예리했다. 편지 뜯는 데만 쓰기에는 너무 날카로왔다. 편지는 대부분 그랜드 나이트 영지 바깥에서 온 안부 편지였다. 여러 이름이 오갔지만 그중에 그들이 아는 이름은 없었다. 편지 더미를 헤집는 사이 누군가는 침대 위에 앉아보았다. 낡은 매트리스가 내려앉았고 나무 프레임은 곧 부러지기라도 할 마냥 삐걱거렸다.  그들은 그 편지 더미 사이에서 뜯지 않은 편지를 찾아냈다. 똑같은 흰 봉투에 서툴게 봉인해 둔 게 봉투가 깨끗해질수록 능숙해졌다.

■■■에게.

그들은 편지를 뜯어보지 않고 내려두었다. 아주 낯선 이름은 역사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길드 마스터나 바운티 헌터들의 흔적은 없었다. 그들은 길드 마스터를 보았다는 빈민에게 찾아가 허위 신고는 안 된다 말하고는 그 집을 떠났다.

그리고 이틀 뒤에 빛의 기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왔을 때는, 헤집어진 모든 곳이 다시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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