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무엇을 망각하고

메신저 드림

이해불능 by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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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가끔 내가 민트 아이 남아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툭, 데구르르. 세란이 들고 있던 청포도가 테이블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이거 회장님이 완전 좋은 걸로 골라서 준 건데. 아까워하며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오묘한 표정을 지은 세란이 보였다. 그는 떨어진 포도는 신경도 안 쓰고 입을 열었다.

“……다시 가고 싶어?”

“그 말이 아니잖아!”

우왁 소리를 지르니 그제서야 원래 표정이 돌아온다. 얘는 내가 진짜로 거길 그리워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어이가 없었다. 사이비 가정에서 겨우 탈출했는데, 다시 기어 들어가는 짓은 한 번으로 족하지. 이번에는 민트 아이를 작정하고 파헤친 새로운 담당자랑 세영이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하마터면….

……그러고 보니 얘 방금 표정이 되게….

“너 나 걱정해?!”

순식간에 최세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간다. 아무리 그래도 변화가 너무 빨라서 살짝 서운해질 뻔했다. 하지만 그와 알고 지낸 것이 벌써 몇 년인가. 세란에게 강한 부정이란 강한 긍정!

“걱정하네.”

“안 해.”

“방금 ‘돌아가면 힘들텐데’하는 표정이었잖아.”

“사람이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냐?”

“다른 RFA 사람들한테는 안 했으면서?”

“그거야 그 사람들이랑 너는 다르니까…!”

덜컥 말이 멈춘다. 순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점차 일렁여서, 결국 나에게서 홱 고개를 돌려버린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세란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변명도, 질타도, 회피도, 직시도, 무엇도 하지 않고.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바보야. 거기서 말을 멈추면 안 되지. 뻔뻔하게 전부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밀어붙이면 됐는데. 방금 전까지의 나처럼.

“아, 빌어먹을.”

세란이 그 때처럼 욕지거리를 뱉었다. 병원에서 나온 신도들이 다시 하나의 믿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날. 그것을 인간은 계약이라고 명명했다. 사람 사이 약속. 그리고 숙명.

“네가 특별해졌잖아.”

분명 그 때의 계약은 그런 문장이었다. 특별취급하지 않을 것. 그러므로 믿음을 주지 않을 것. 우리는 만물을 사랑하게 되어 있는 인간이라는 종속이지만, 그래도 너 하나만큼은 예외로 둘 수 있음을 보여주자는 계약.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애정, 약속, 신뢰….

잊혀진 망각.

우리는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했다. 내놓는 방법을 까먹었다. 예를 들면 어제, 네가 나눠준 온기라거나. 또 겨울에 부러 따뜻한 물을 받아서 주는 손길이라거나. 잠결의 무심한 속삭임이나. 무의식 속에 섞여 나오는 웃음기같은 것들. 그것을 내놓는 방법을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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