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걷는 길

◆A 드림

이해불능 by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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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꿈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뭐였더라, 가슴이 마구 뛰는 꿈을 스스로 찾아야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다나…. 진짜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다. 왜 가슴이 마구 뛰는 대상이 ‘다른 사람’일 수는 없는 것일까.

요네하나 히루, 장장 6년을 어느 인물의 뒤만 좇은, 말하자면 줏대없음 1인자. 또 1년은 그의 후배를, 또 1년은 그의 동생을. 분명 오른손잡이는 오른손 글러브를 끼는 줄 알았던 적도 있긴 있었다. 그것도 이젠 8년 전. 스스로 마운드 위에 오른 것은 5년 전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 사람은 나에게 이런 말이나 하는 것인가.

“미안하다고는 안 해도 괜찮지?”

“아니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얼척 없다는 얼굴로 료스케를 쳐다보고 있으니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진짜, 설마, 뒤늦게 죄책감 따위를 가진 건 아니겠지?

히루는 물리치료학과에 합격했다. 졸업 후 예상 진로는 구단 전담 치료사. 돌고 돌아 또 4년 추가. 희망 1순위 구단은 료스케가 있는 곳. 그렇게 최소 3년 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을 따라다닌 결과였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란 것이냐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답하리라. 누가 뭐래도 나의 꿈, 나의 행복은 이 길 뿐이다. 설령 그 당사자라고 해도 양보하지 못한다.

‘당사자’는 창 바깥을 바라보며 손을 가만히 움직였다. 야구공이 없는 손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료스케는 그렇게 한참을 말 없이 보냈다. 슬슬 짜증나는데.

“료—스케, 다시 말하지만 이건 중학교 때 끝난 문제라고. 우리 집에 찾아온 게 누군데!”

“히루.”

불쑥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제서야 방금 내가 어린 아이처럼 툴툴대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료스케가 화났다는 뜻이 아니다. 료스케는 항상 저렇게 나를 안심시켰으니까. 별 일 아니라고, 걱정이 지나치다고. 너는 세상의 흐름을 바꿀 만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 모든 것은 나의 탓이라고….

“내가 찾아갔으니까 이러는 거야.”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물론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알고 있어도 나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테고, 료스케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테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갈 테고.

“네가 만족하니까 세이도 건은 상관없어. 다른 문제야. 그립을 알려준 것도 고시엔의 꿈을 꾸게 한 것도 나지만…….”

미유키한테 들었어. 료스케가 무심하게 중얼거린다. 제보자 익명 보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군. 어차피 지금부터 나올 말은 그 선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얘기라 함은, 내가 불펜에 들어갔다든가, 캐치볼을 했다든가, 미유키 선배에게만 말한… ‘야구’를 그만 둔 이유라든가.

“네가 마운드에 서있는 모습을 좀 더 보고싶긴 했거든.”

씁쓸한 웃음이 서로에게 번지고 어색한 침묵만이 자리를 채운다. 그 자리에서 직감했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료스케가 이런 이야기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고시엔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며,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입학한 직후였기 때문에. 그가 없는 세이도를 봐버렸기 때문에 눌러둔 생각을 꺼낸 것이다.

“료.”

정신 차려보니 손목까지 움직이며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심하네. 아마 미유키 선배나 부원들 앞에서는 이러지 않았겠지만. 나는 료스케 앞에서 과연 몇번이나 이런 행동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료스케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테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갈 테고…….

“절대로 일찍 은퇴하지 마.”

툭, 하고 머리 위에 얹어진 손바닥이 차가웠다. 눈을 감고 머리가 헝클어져도 계속 뜨지 않았다. 내가 포기한 길을 멋대로 벗어나지 마. 이 말을 끝으로 나는 미련을 가지지 않을 테고, 료스케는 신경쓰지 않을 테고, 우리는 어디로,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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