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온한
잘로남매 썰
트위터에 올린 것 가필과 윤문만. 3000자 남짓.
북부 사미 근방의 임무. 정신을 파괴하는 붕괴체들의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 비르투오사가 임무에 배치되고, 이그제큐터는 당연히 그를 감시하기 위해 같은 임무를 맡는다.
자유분방한 아르투리아는 혹한 환경에도 제대로 된 방한복을 챙겨입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기온을 민감하게 느껴야 주변의 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느니, 역시 북방은 추워야 북방답지 않냐느니, 물을 때마다 이유는 달라지지만. 아르투리아는 종종 짧은 피치카토로 아츠를 자아내 몸을 덥히다가도, 얼어붙은 두 손을 뺨에 대며 허공에 흩어지는 흰 입김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 어깨에 툭 페데리코의 흰 망토가 덮인다.
"당신은 우수한 캐스터지만 체온유지를 아츠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더 철저한 방한 대책을 취해야 합니다." ㅍㅍ
"방한 대책이라면 여기 챙겼잖아. 너."
"......" ㅍㅍ
페데리코는 아르투리아가 스스로 복장을 갖출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보급품에서 직접 두터운 장갑을 꺼내와 아르투리아의 얇은 실크 장갑 위에 겹쳐 끼운다.
볼멘소리. “이러면 연주를 할 수가 없는데.”
“그것은 동상에 걸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ㅍㅍ
그날 저녁 즈음 아르투리아는 입맛이 없다며 저녁을 거진 거르더니, 밤부터는 아예 앓기 시작한다. 팀에 동행하는 메딕이 있다지만 감기는 결국 앓을 만큼 앓아서 이겨낼 수밖에 없다.
아르투리아는 감기를 옮기지 않도록 세이프하우스의 작은 방에서 혼자 쉬고 있다. 페데리코가 따뜻한 음료를 들고 들어온다.
허브 우린 차를 받아 홀짝거리며. "이런 일은 잘 없는데 말야. 농담이었지만 정말 약간 방심했었나 봐. 누구랑 함께 여행한 적은 드물었으니까……."
"당신이 스스로의 언행에 대해 자각하지 못했다고요? 이례적이군요."
"넌 그런 적 없어?"
"곤란한 질문에 대해 질문으로 화제를 흐리는 것은 바람직한 대화 방식이 아닙니다, 아르투리아. 저는 당신의 열이 사고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닌지 확인했을 뿐입니다."
"열이 38도인 누나를 붙들고 강의를 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화 방식은 아니죠, 동생님."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괜찮아.”
그 말을 듣자마자 페데리코는 바로 나가려 한다. 아르투리아는 변덕이 동했는지 으쓱하며 덧붙인다. “흠, 글쎄, 감미로운 자장가?"
페데리코는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으로 정지했다가 돌아본다.
"……사람들은 거절당하는 일을 꺼리지 않나요? 당신은 제게 거절당할 것을 확신하면서도 불가능한 행위를 요청하는 빈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군요. 이전에는 일종의 도발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현재 당신과 저는 도발이 필요할 만한 직접적인 대립 상태가 아니지 않습니까?"
"너는 도발이 유효한 대상도 아닌데 의미가 없는 행동을 반복하다니 이상하다, 게다가 지금은 도발이 필요하지도 않으니 더더욱 이상하다, 그러니 슬슬 다른 의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많이 전진했는걸."
"평가를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회복하신 뒤에 다시 질문드리죠."
아르투리아는 컵을 한쪽에 내려놓고 쿠션에 기대어 앉아 담요를 목까지 당겨 덮으며 웃는다.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의 내용은 그 나른한 모습과는 딴판이다.
"페데리코, 알아? 너는 꽤 많은 것을 싫어해.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하고, 소모적인 대화를 싫어하고, 시간 낭비를 싫어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역겹다거나 치가 떨린다거나 지긋지긋해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런데 너는 '싫습니다' 대신 '그것은 비효율적입니다'나 ‘불필요합니다’라고 말해. 하지만 비효율은 그 자체로 오답은 아냐. 효율과 비효율이 호불호보다 보편적이고 심급이 높은 개념도 아니고."
페데리코는 그를 덤덤히 내려다볼 뿐이다. "화제와 무관해 보입니다."
"법칙이 아니라 주관으로 말해. 날 싫어한다고 말해 보라는 거야. 그쪽이 더 정확한 표현이니까."
"그것으로 당신이 만족한다면 그렇게 대치해서 표현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말씀하셨듯 감정적 거부감을 표상하는 생리적 작용을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진실성을 중요시하는 당신이 '거짓말'을 하라고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좋은 대답이네……” 목소리가 느려진다. “하지만 페디, 사실 감정은 네가 믿는 것처럼 체온이나 맥박에만 있지 않아……"
"……쉬시죠."
-
신새벽. 눈 내리는 북방에서 첫 햇살은 선이나 열보다 안개의 질감으로 느리고 흐리멍텅하게 번진다. 아직 채 밝아지지 않은 방의 문이 열린다.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컵을 두드리는 소리로 연주를 하시더군요."
아르투리아는 천연덕스럽게 아침 인사를 한다. "괜찮아. 너 말고는 다들 아직 자는 걸. 기껏해야 꿈이 조금 재미있어지는 정도겠지. 너는 시간낭비를 '싫어'하니, 빨리 나으려고 아츠를 약간 썼을 뿐이야."
"본 작전의 대장인 저의 허가 없이 아츠를 사용한 점에 대해서는 기록하겠습니다. 말씀하신 사유도 병기하도록 하죠."
"싫어한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네."
페데리코는 아르투리아 앞으로 몸을 낮추어 컵을 집어든다. "그것은 당신의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정정한다 해도……"
"시간 낭비다?" 잔웃음.
그는 다가오는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는다. 아르투리아의 휘어진 시선을 페데리코는 무표정하게 받아낸다.
"……당신이 저를 보는 관점을 제가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당신이 원한다면 제가 당신의 무계획한 행동이나, 이행될 수 없는 요구를 반복하는 습관이나, 당신을 '싫어한다'고 서술해도 무관합니다.” 다시 몸을 일으키며. “다만 당신의 잘못된 추측 한 가지는 정정하겠습니다."
세이프하우스의 창문은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작기에 건물 안에 아침볕은 거의 들지 않는다. 페데리코가 등진 문 너머의 희미한 새벽, 어두운 광륜은 그의 얼굴을 뚜렷이 비추지 못한다. 어쩌면 아직 열 때문에 시야가 흐려서인지도. 어쩌면 키가 너무 높아져서인지도.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르투리아는 그 형상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흥미롭네. 내가 어느 부분에서 틀렸는데?"
"건강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정이 지연되는 것은 상정 내의 변수이며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일정은 13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메딕 오퍼레이터가 곧 기상할 테니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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