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D+1
이그제큐터 생일 기념
4000자 단문. 커플링 없음.
당일에 치고 싶어서 짧게 썼어요.
공상정원 이후 츠빌링슈튀르메 이전입니다. 박사와 페데리코만 나옵니다. 오리지널 박사 설정은 딱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페데리코!!!! 생일 축하해!!!!!!!!!!!!!!!!!!!!!!!!!!!
English translation >>
1100년 7월 6일 PM 03:16 / 맑음
"페데리코, 저녁에 하선해서 한동안 라테라노에 있을 예정이지?"
"그렇습니다."
"내가 모레 오후에 파베르 구역의 공증소에 방문할 생각인데, 혹시 동선이 겹친다면 만날까?"
어시스턴트 업무를 인계할 준비를 하며 서류를 정돈하던 페데리코가 끄덕했다.
"동선은 맞출 수 있습니다. 일정을 바꾸셨습니까? 원래 방문은 내일로 예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라테라노 주변에 정박한 동안 의논할 일이 많은데 뒤늦게 연락이 왔지 뭐야. 내일은 임시공휴일이라 방문하더라도 공무 처리가 어렵다고."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박사는 처리가 끝난 자료들을 백업용 스캐너에 집어넣다가 기웃하며 돌아보았다.
"죄송할 것까지야. 갑자기 다른 일정이라도 기억났어? 네가 별일이네."
"아뇨, 내일이 라테라노의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저 때문입니다."
"……어쩐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역대 교황의 생일은 축일로 지정되어 여러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현 교황의 탄신일에는 교황이 발코니로 나와 일반 시민들과 함께하는 야외 미사를 집전하거나, 첨탑들 꼭대기에서 디저트 쿠폰이 뿌려진다거나, 여러 위인들이 사용했던 귀한 수호총이 공개 전시되기도 한다. 적당량의 경건함을 추가한 축제에 가까운 느슨하고 산뜻한 행사지만, 천년간 정련된 교리해석의 성과로 가장 중요한 식순은 거진 정해져 있다. 그런데 교황이 아닌 성도가 서임 후 맞는 첫 생일은 어떻게 기념해야 할까?
라테라노의 고매한 성직자들은 페데리코의 서임 직후부터 반 년이나 이어진 뜨거운 갑론을박 끝에 페데리코 본인에게 최종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성도 페데리코는 붉은 박과 쪽빛 리본과 여러 권위 있는 인장으로 덮인 아름다운 제안서의 효용을 25초만에 끝장냈다. 그는 위에서 아래로 문서를 쭉 훑은 뒤 종이를 원탁에 내려놓는 몸짓과 동시에 답했다.
"준비 기간, 필요 인력의 규모, 경제적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제시된 목록 중에서는 임시공휴일 지정이 가장 합리적인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의에 거의 즉시 회부된 다음 의제는 '성도 페데리코에게 보내는 서류에 굳이 의전에 맞는 양식을 갖추어야 할까?'가 되었다. 페데리코는 추기경들과 함께 표를 행사했다. 아니오.
스캔이 끝난 서류 중 파쇄할 것과 보존할 것을 골라내며 박사는 헛웃음을 흘렸다. 농담을 다루지 않는 이 산크타는 이상하게도 매번 주변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랬구나. 대단한 이야기인데 네가 전혀 대단하지 않게 말해서 재밌네."
페데리코는 다음으로 스캔할 서류들을 박사에게 건넸다.
"'대단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만 영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휴일 지정이 공표된 후 공증소의 동료들에게 많은 감사 인사를 들었습니다. 내년에도 같은 방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많았기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박사는 잠깐 모호한 방향으로 아련한 웃음을 보냈다. 아아, 공무원들의 성도님이로군. 직장 동료가 휴일을 벌어 왔다면 당연히 영웅이 되겠지, 이유가 좀 심하게 화려하긴 하지만…….
"그럼 이따가 하선한다던 것도 관련 행사 때문이야?"
"예. 정확히는 행사보다는 성하와 추기경들, 몇몇 주교가 참석하는 회의의 비중이 높을 예정입니다. 이번 휴일을 일회성으로 끝낼지 공식적인 연례 축일로 지정할지에 대해서도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참고할 전례가 없는 상황이니까요."
라테라노인들의 회의이니 케이크와 디저트라면 잔뜩 있겠지. 그래도 축하 파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온 국가가 자신이 태어난 날에 매길 가치를 논하는 상황이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부담스러워 몸둘 바를 모를 테지만 페데리코는 성도 서임 때도 그러했듯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오히려 평소보다 공연히 바쁘고 번잡한 날로만 느껴지지 않을는지. 박사는 페데리코의 그런 담백한 태도에 온도를 맞추기로 했다.
"아쉽네. 사실 첸도 내일이 생일이거든. 만약 내일 두 사람 다 본함에 있다면 생일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조촐히 파티를 할까 했었어. 아, 첸한테는 아직 비밀이야."
"그렇군요. 비록 당일에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축하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박사는 그 말이 품은 함의를 감지했다. 생일 축하는 당일에 말할 때 가장 의미가 있다는 당연한 인식. 시간을 임의로 분절했을 뿐인 삼백예순 날 중 하루를 기념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페데리코는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분명 삶에서 만나온 많은 사람들이 때맞추어 그를 축복했으리라. 의아해하는 어린 페데리코의 어깨를 가만 짚고, 너는 태어나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로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그렇기에 네가 태어난 날을 너의 존재를 함께 기념할 날로 정했다고, 거듭거듭 메시지를 직조해 넣었을 것이다. 그 따스한 전언들을 인격의 일부로 단정히 새긴 그는 내일이면 스물여섯 살이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랑이 필요한지를 새삼스럽게 곱씹는다.
"……꼭 전해 줄게. 첸이 놀라겠는걸. 회의가 끝나면 개인적인 일정은 있어?"
"제때 귀가할 수 있다면 숙부님과 저녁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가족과 보내는 생일이라니 좋네…… 잠깐, 저녁까지 일할지도 모른다고?"
"18시 전에 끝날 가능성은 낮습니다."
"저런. 다른 공민들은 다들 쉬라고 베풀었으면서. 정작 생일인 주인공은 종일 고생하는 것 아냐?"
페데리코는 박사의 말에서 걸리는 단어가 있는지, 고개를 조금 기울인 채 생각한 끝에 정정했다.
"임시공휴일 지정은 추기경들의 총의로 제안된 여러 선택지 중 하나였고 저는 그저 그것을 골랐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업무로 라테라노를 비운 상태였다면 최종 결정도 그대로 그들 혹은 성하께 맡겨졌겠죠. 짧은 준비 기간과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누구든 같은 결정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특별히 무언가를 ‘베풀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통상적인 업무 처리일 뿐 누구한테 감사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다? 알았어. 그래도 회의는 생일 당일 말고 하루 정도는 미룰 수도 있었는데 말야. 교황청이 조금 융통성을 발휘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제안했습니다."
박사는 납득했다. 융통성 없음의 화신이 여기 있었지 참.
"이미 논의가 상당히 지연된 상태니까요. 이번 임시공휴일 지정이 급하게 이루어진 점도 제가 외근 임무로 자주 자리를 비워 교황청의 진척을 파악하지 못했던 탓이 큽니다."
규칙에서 안정을 느끼는 페데리코의 입장에서는 그를 둘러싼 지지부진한 사안을 제때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일이 휴식보다 기꺼울는지도 모르겠다. '제안' 한 마디로 라테라노에 주재하는 거의 모든 고위 사제를, 그것도 모처럼 생긴 공휴일에 불러모을 수 있는 이 젊은 성도는, 스스로에게 질서를 선물한 셈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성도의 위에 걸맞는 거창한 생일 선물이다.
"네 결정이 옳겠지. 일찍 끝나길 바랄게."
끄덕한 그는 평범한 비서처럼 마지막 서류 뭉치를 스캐너에 넣었다. 언제나 갖가지 서류로 어수선한 집무실이 한결 정갈해졌다.
"다음 어시스턴트에게 구두로 인계할 업무는 없는 듯합니다. 가 봐도 괜찮을까요?"
"응, 며칠간 수고 많았어. 일정이 허락한다면 모레 보자."
"예. 라테라노 영내에서는 통신에 문제가 없으니 연락 주십시오."
"그래. 생일 미리 축하해."
페데리코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변함없이 무표정하다. 하지만 그의 정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의깊게 그의 기억에 새긴 회로가 작동한다. 생물의 연속성의 관점에서는 어떤 특이점도 없는 하루를 이름붙이고 축하할 때, 그 말에 사람들이 담는 호의와 축원을 그는 이해한다.
"감사합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무엇이든."
"제가 박사님의 생일이나 그에 준하는 기념일을 축하하기에 적절한 날짜는 언제일까요?"
섬세하고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자신의 생일을 모르거나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많은 기억이 누락된 박사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테라의 달력에 표기할 수 없는 날짜들의 희박한 인상이 맴돌았지만 그 중 무엇도 뚜렷한 숫자가 되어 쥐어지지는 않았다. 박사는 고민한 끝에 푹 웃었다.
"……▒월 ▒일로 하자. 로도스에 돌아온 날이니 생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그렇군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질문해 줘서 고마워. 네 생일인데 내가 선물을 받은 것 같네."
페데리코는 그 말을 채 이해하지 못했으나 박사의 감사에서 진실함을 느꼈기에 되묻지 않았다. 그는 인사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책상에 앉은 박사는 서랍을 살짝 열었다. 준비한 선물 상자를 가만 내려다보다가 다시 닫았다. 이건 역시 모레 건네주자. 생일은 지났어도 축하는 길수록 좋다고 말하면 페데리코는 조금 혼란스러워할지도 모르지. 질문이 돌아오고,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가 배우고 익혀 당연히 여기던 것들의 회로가 삶의 기판 위를 1밀리 더 뻗어나간다. 다가올 박사의 '생일'에도 페데리코는 분명 그의 생각의 외연을 넓히는 경험을 선물할 것이다.
재앙이 뒤를 쫓고 싸움이 앞을 막아서는 나날, 미래를 다만 기대하게 되는 순간은 짧고 귀하다. 박사는 폐부로 호흡을 깊이 당겨 그 순간의 입자가 온 혈관을 돌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다시 복잡한 과업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누군가는 생일에도 기꺼이 일을 하는 걸. 하루쯤은 그에게 보내는 경의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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