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방주 커미션 작업물

[명일방주 드림] 대지를 거친 선물

커미션 작업물

함선은 황야를 향하고 있었고, 갑판은 그 황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전부 끌어안고 있었다.

갑판에 선 리베리 하나는 그 황야를 전부 감당하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리베리의 탓은 아니었다. 세상을 떠안을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켈시는 카르멘과 대지에 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개 오퍼레이터인 리베리는 그들이 우물가에서 나눈 대화를 알지 못했지만, 스스로 이미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그의 눈에는 황야가 낯설지 않았다. 엘리시움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면과 수평선을 이미 등진 적이 있었다. 한 인간이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일로부터 밀려나고 회피하기를 택한 이상, 다시금 비슷한 광경에 압도되기란 어려울 터였다. 감당할 수도 없는 세상의 무게보다 온 몸의 혈관을 타고 도는 체념의 무게가 더 현실적인 건 당연했다.

 

바라보던 광경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발소리를 향해 미소 짓는 일은 그래서 쉬웠다.

 

“이야, 박사! 여기까지 온 건 역시 실력 있고 유쾌한 미남은 손수 찾을 가치가 있다는 결과라고 보면 될까?”

“내 행동은 인사부를 향한 당신의 평가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단 걸 피차 확신할 텐데.”

“아이, 그런 거 말고. 박사 안에서의 내 평가 말이야! 그때 대화 이후로 역시 좀 더 나아진 게 아닌가 해서.”

“......답변의 여지가 의미 없는 듯하니,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해.”

 

기대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박사의 대답에 상쾌한 휘파람을 한 번 분 엘리시움이 기꺼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말로써 한 번 그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박사는 그 제스쳐에까지 응하진 않았지만, 엘리시움은 섭섭함을 익숙하게 포장했다. 박사와 같은 눈높이에서 표정을 바라본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는 사랑에 빠져 철없이 구는 소년이 아니었고, 그와 일정 거리를 두고 비스듬히 서 있는 이도 인생 최대의 고민이라곤 오늘 방앗간 풍차가 잘 돌아갈지가 전부인 시골 소녀가 아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파란 홍채를 잠시간 올려다보던 엘리시움이 곧 황야로 시선을 향했다.

 

“뭘 하고 있었느냐곤 묻지 않는 거야?”

“이베리아에 다녀온 뒤로 종종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이런, ‘그런 분위기’라 하면?”

“함선 내부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이상을 보고 싶어하는 분위기.”

“박사가 나를 그렇게까지 봐 주고 생각해 주고 있었다니, 조금 설레기 시작했는걸?”

“……고향에 다녀 온 일부 오퍼레이터들의 분위기와 유사했으니까.”

“아~ 그런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한가. 이어지는 말은 혼잣말 같기도 했고, 한탄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나딜은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읊조리는 말에 적절하게 대답하는 방안을 알지 못했다. 상대가 엘리시움이라면 더더욱.

 

침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나딜이 이질감을 감각하기에 충분했다. 함선에서의 일상과 다른 오퍼레이터들의 소식에 끊임없는 화제를 제공할 수 있는 리베리는 자신의 고향에 관해서만큼은 유독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려하냐면 그건 아니었고, 오퍼레이터 나딜과 박사, 두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던 어떤 공백에 관한 부분을 끌어낼 때 고향에 관한 단어를 금기시하지도 않았으니 나딜은 그저 이베리아가 엘리시움에게 더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이제보니 오히려 반대였던 모양이지. 백발과 빨간 깃이 수평선을 지나온 바람에 흔들리는 걸 내려다본 나딜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손끝에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사이즈의 영상 기록물 모서리가 달각거리며 부딪혔다. 켈시, 어비설 헌터스, 신입 오퍼레이터들과 함께 돌아온 뒤로 엘리시움은 드물게 어떤 표정을 짓게 되었는데, 나딜은 그것이 향수(鄕愁)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를 향한 엘리시움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인지, 켈시를 비롯한 로도스가 그에게 미친 영향의 결과인지까진 분간할 수 없었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는 엘리시움의 그 표정을 풀어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는 건 다행히 어렵지 않았다. 쏜즈로부터 받은 영상 기록물은 동향인의 확신대로 엘리시움에게 분명 좋은 선물이 될 터였다. 그러나 나딜은 이 자리에 와서야 자신이 가장 중요한 걸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떤 말이 엘리시움에게 적절할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인과응보 같기도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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