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방주 커미션 작업물

The Empties

명일방주 / 무에나 드림

이리나의 남편에겐 기일이 없었다. 어느날 돌연 사라졌을 뿐 사망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일로 통용되는 날은 분명 있었고, 그건 무에나 니어가 이리나의 남편을 실종 처리한 날과는 달랐다. 그가 실종된 날이란 기실 무에나 혼자 이리나의 남편을 우연히 만난 다음날이자 그가 광석병 발작으로 인해 사망한 날이었다. 이리나의 남편이 살아생전 스스로 이리나 가족과 니어 가문을 떠난 날과는 달랐다.

그 다른 날, 이리나는 어린 아가씨들과 자신의 자식을 모두 돌본 뒤 아이들이 잠든 뒤에 홀로 사용인의 식당 겸 조리실에서 술병을 하나 따 마시고는 했다. 병의 라벨은 안에 든 술이 그다지 비싸지 않음을 시사했으며,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술 한 잔을 가볍게 걸치는 일은 귀족과 시종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었으므로 무에나는 이리나에게 그런 습관이 있단 걸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의 습관 같은 걸 알아챌 여유가 없던 탓도 컸다.

 

몇 년 동안, 무에나는 이리나의 그러한 습관에 터치하지 않았다. 이리나는 니어의 철두철미하고 충실한 시종답게 술을 잘 하는가와 별개로 과음을 하는 버릇이나 애주가 습성 따위가 없었다. 기일을 대체하는 날의 술이라기엔 값비싸거나 고급스럽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딱 한 병만을 비웠으니 더더욱 그가 뭐라 나설 이유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리나가 그 습관을 건너뛰는 때도 부지기수로 있었다. 사라지고 없는 사람보다 지금 이곳에, 이리나 본인과 함께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는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에나가 이리나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자신의 몫의 잔과 병을 들고 오기까지는 습관을 알아챈 기간보다 더 많은 날들이 걸렸다.

 

한때 소란과 활기로 가득 찼던 저택은 텅 빈 지 오래였고, 그래서 각자의 술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은 저택에 진 그림자와 카시미어의 흐리고 어두운 날씨 탓에 가문을 지키는 외로운 부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작 둘은 니어에 유일하게 남은 웃어른이자 가문의 시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하물며 그들은 가문과 저택의 주인 노릇 비스무리한 걸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가져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 따위 원한 적도 없이, 기사도를 따르는 기사에게 영광이 당연하듯 그들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나날이 한없이 지속되리라고 믿었다. 사치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리고 지금, 영광이 사라진 자리에서 영광을 보는 인물인 무에나는 자신에게 어떤 것도 남지 않는 건 아무 상관 없을지라도 이 집에 있는 다른 누구에게 그런 미래가 주어지는 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조카들이 됐든, 조카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며 그저 시종일 뿐인 이리나든.

그래서 무에나는 하려던 말을 했다. 그다지 오래 입 안에서 궁글린 말은 아니었다. 이리나의 빈 잔을 바라보던 시간에 비하면 과할 정도로 짧았다. 이제사 뱉는 말이었다.

 

 

“일리야의 신변은 내가 보장하겠다. 가문은 떠나도록 해.”

 

 

이리나는, 자신의 병에서 자신의 술을 따라내고는 입안에 머금었다. 그리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넘겼다. 짙은 푸른빛 머리칼을 가진 쿠란타의 입가에 남은 미소가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었으므로, 이리나는 한 발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발 늦게 합류한 무에나의 병에는 아직 술이 남아있었다. 그는 무에나에게 왜 주무시지 않느냐, 왜 자신 옆에서 술을 기울일 마음이 드셨냐 따위의 말은 한 번도 건네지 않았다.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행동은 이 자리에서 딱 하나면 충분했다.

앉아 있는 무에나의 목께에 손을 가져다 댄 이리나는 자신보다 조금 키가 작고 조금 나이가 어린 니어 가 도련님의 입가에 가만히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을 거두고 자신이 마신 흔적을 깨끗이 정리한 뒤 부엌을 빠져나갔다.

 

영광조차 없는 것들을 영위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무에나는 짧은 입맞춤동안 그런 말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끝끝내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똑같은 내용의 물음을 반문 받았을 때, 대답하고 싶은 말은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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