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톨레나

어깨 위에 얹힌 무게가 낯설었다. 꼼짝 않고 기다리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모양새가 나빴다. 불편한 숨소리도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심장 소리가 아니라 빗소리일지도 모른다. 창밖으로는 흉흉할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낡은 오두막은 삐걱거렸다. 톨런드가 따라오지 말라는 무에나의 말을 듣지 않고 꿋꿋하게 따라왔듯이, 제발 침대 가서 누워 쉬라는 말은 듣지도 않고 톨런드의 옆에서 졸았다. 흰 뺨은 벌겋게 익었고 젖은 금발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비 좀 맞는다고 앓을 사람은 아니지만 꽤 힘들어 보인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톨런드의 예상 대로였다.

톨런드.

그러게 짐 하나 없이 누가 황야까지 들어오래.

내가 그때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때마침 천둥이 쳤다. 번쩍임과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으니 아마 이 근처에 번개가 떨어진 듯 했다. 톨런드는 무에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도 안 뜨고 미간은 팍 찌푸린 게 누가 보면 잠든 줄 알겠더라.

진짜 지지리 궁상이네.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해. 그럴 때 안 돌아가면 그게 너냐? 어차피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할 거면서 묻길 뭘 물어. 물이나 더 마시고 푹 자둬.

무에나는 가끔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엉뚱한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러면 멀뚱멀뚱 들어주던 헌터들이 질색하고 뭘 그런 걸 묻느냐 하는 게 일상이었다. 헌터들이라고 인생의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온통 그런 생각뿐인 저 머리통을 보고 있자면 고민이란 고민은 말끔히 씻겨나가 버렸다. 마치 그들의 고민을 무에나가 흡수해 버린 것처럼.

너란 놈은 정말이지…….

왜. 뭐. 아니, 진짜 말 좀 해 보자. 진짜 그때로 돌아가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키릴 영감님이 쓰러졌고 아이들은 어린데? 스니츠도 욜란타도 없는데? 봐줄 사람이 너밖에 없는 어린애들과 노인을 두고 안 돌아간다고? 그 어린애들과 노인이 가족인데도? 헛소리하지 말고 잠이나 자. 얼른. 코 먹지 마시고요, 기사 나으리.

츠시보르의 생각을 하는게 분명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순 없었지만 무에나가 그의 생각을 떨쳐낼 수 없으리란 사실만큼은 알았다. 그때도 츠시보르는 가장 강력하게 무에나의 귀환을 반대했었다. 헌터들도 반대는 했지만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다. 언젠가 무에나가 그들의 곁을 떠나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언제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식이었으니까. 헌터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가진 사람의 말로는 둘 중 하나였다. 죽거나, 침묵하거나. 후자도 이미 이전의 사람이 아니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너도 생각하고 있잖아.

안 해.

거짓말하지 마.

진짜 안 해. 해서 뭐해? 뭐, 시간을 돌리는 법이라도 알아보게?

아니. 그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지.

그럼?

앞으로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잖아.

또 한 번 천둥이 쳤다. 비구름이 멀어졌는지 이번에는 번쩍임과 소리의 간극이 넓었다. 무에나는 어깨 위에 덮인 망토를 더 끌어다 여몄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나은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불 너머의 어딘가를 보는 듯하다 눈을 감았다. 톨런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무에나의 어깨를 좀 더 끌어당겼다. 자세가 불편한지 망토 안에서 꿈지럭거렸다.

너한테 이러고 있는 건 역시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

그걸 이제 알았어?

어깨 위치가 너무 낮아.

아, 진짜. 그럼 저리 가던가.

무에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톨런드에게 기댄 채로 앉아 있었다. 빗물이 창을 때리는 소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눅눅하게 젖은 황야가 다시 말라붙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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