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되었든 네 탓

톨레나

농담 수준으로 썼습니다

무에나는 이 또한 톨런드 캐시의 농간이리라 짐작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함선에 방문한 적도 없는 톨런드가 대체 무슨 상관이긴 싶지만, 그 뻔뻔하고 경박한 낯짝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톨런드의 탓으로 돌려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다. 눈 앞에서 그릇이 날라갔다. 저만치서 깨지는 소리가 또 났다. 커피 맛은 나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가 무에나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어떻게든 해보라는 듯이 잡아당겼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열 받아 시뻘개진 포르테와 엘라피아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이런 일이 무에나에게 돌아왔느냐는 이야기다.

무에나가 로도스 아일랜드의 함선에 온 건 카시미어 지역에서 있었던 감염자 대상 범죄의 처리 결과 보고 겸 근래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제외한 카시미어 전역의 동향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결코 오퍼레이터 간의 사소한 잡음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실 이런 일에 무에나를 부르는 일도 드물었다. 오퍼레이터들이 하나같이 무에나를 어려워 한 까닭이다.

몇 번 임무를 같이 나갔던 오퍼레이터들은 무에나가 생각보다 협조적이라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친밀해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큰 키를 조금도 굽히지 않고 내려다보는 시선이나, 사족을 붙이지 않으며 간결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목소리, 좁아졌으면 좁아졌지 결코 풀어지는 법이 없는 미간 따위를 부담스러워 했다. 그런 장벽을 넘은 사람은 굳이 무에나에게 말을 걸 필요를 찾지 못했고. 거기다가 박사는 무슨 생각인지 매번 함선에 무에나가 방문하면 자신의 사무실에 넣어놓고 일을 잔뜩 맡겨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나온다면 기껏해야 커피를 타러 가는 정도였다.

무에나 씨, 피아노 칠 줄 아신다면서요.

마가렛과 마리아가 아직 어렸을 적의 이야기다. 가끔 아이들이 매달려 조르면 피아노를 쳐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간단한 동요 따위를 쳐 주었지 대단한 악곡을 연주해 준 적은 없다. 무에나가 어렸을 적 라이타니엔에서 귀화한 사람이 가정교사로 붙어 음악과 아츠를 가르쳤는데, 그때도 괜찮은 실력은 아니었다. 매번 선생이 그를 붙잡고 메트로놈을 보라며 타박하곤 했었다. 음악, 그것도 여러 사람이 모여 이룬 밴드 사이에서 음악을 논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무에나는 찰싹 달라붙어 제발요, 하는 오퍼레이터를 설득하려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문득 톨런드가 생각난 건 그 탓이다. 분명 카시미어에 파견된 오퍼레이터들 앞에서 술 처먹고 무에나는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느니, 어린애들 부탁은 거절을 못 한다느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였을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다른 사람을 두고 무에나한테 이런 식으로 매달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라이타니엔 출신 오퍼레이터들이 하나같이 임무를 나간 상태라고 해도 말이다. 거기다가 마침 때맞춰 박사가 처리할 서류를 넘기지 않은 채 자리를 비우다니, 수상하지 않은가.

"거기서 박자가 늘어져 버리면 어떡하자는 거야!"

그것도 락밴드라니. 무에나가 음악에 아에 조예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결코 이런 다양한 장르에 통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근래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도 길거리에 이런 음악들을 틀어놓긴 하지만 다 스쳐지나가는 가게였을 뿐이다. 음악에 문외한인데 장르는 또 알게 뭐란 말인가. 아까 무에나의 발언에 분노로 겁을 상실한 음악인들이 아니라고 버럭 소리쳤지만 그보다 더 세부적인 장르에 대해 말해줘도 알기 힘들었다. 음악적인 문제로 싸우는 것 같은데 뭐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에나 씨, 어떻게 좀 해주세요……."

"방금 보지 않았나?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어렸을 때 기초 교육을 받은 정도일 뿐이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싸움을 말리는 건 음악이랑은 상관 없잖아요."

그럼 대체 왜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붙잡았단 말인가. 인상이 험악하다고 말하기 부담스러워서?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말리려곤 했지만 두 사람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이럴 땐 목소리 큰 사람이 승기를 잡는 법인데 보컬이 싸움에서 빠져서 소심하게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리더가 누구인지 물어보려 했을 때 베이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 또한 논란의 시작이 될 염려가 있다는 소리 같았다. 무에나는 점점 벌개지다 못해 토마토가 되어버린 두 사람을 곁눈질로 보다가 책상을 내리쳤다. 왼손은 칼자루에 가져다 대었다. 그제야 모두가 조용해졌다. 소맷자락에 붙어있던 오퍼레이터도 놀랐는지 슬금슬금 손을 치웠다.

"너희가 음악을 어떻게 하든 내가 알 바는 아니다만, 귀가 아프니 조용히 합의를 봐라. 3분 주지. 그 뒤에는 일주일 전 사건에 대해서 진술한다. 이의 있나?"

무에나에게 항변하려던 밴드 멤버들이 멈칫해서는 바라보았다. 그늘진 얼굴, 고압적인 시산, 폼멜에 얹혀있는 손. 기타를 맡았다는 놈이 잠깐 "이건 음악에 대한 탄압이다"라며 항변했지만 무에나는 단호하게 잘랐다. 내 시간을 이 이상 낭비하게 만들지 마라. 싫다면 지금 당장 사건에 대해 진술하고 나서 싸우던가 해.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카시미어 촌놈들은 음악을 모르느니 뭐니……. 무에나는 팔짱을 끼고 어디 더 해보라는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뒤는 당연하게도 조용해졌다.

"계속 같이 할 거라면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라. 그렇게 조금도 굽히지 않고 싸우기만 하면 주변 사람만 피곤해진다. 서로 정말 싫어하는 게 아니더라도 그런 식이면 오래 못 가."

무에나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듣는 낌새가 조금도 없었다. 그들은 무에나의 앞에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경청하는 자세였지만 얼굴은 반항심이 가득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톨런드가 저랬는데. 무에나가 바운티 헌터들과 같이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3년 정도는 톨런드와의 마찰이 잦았다. 결국은 무에나가 뛰쳐나가면 뒤통수에 살카즈, 우르수스, 카시미어의 욕설을 섞어서 던지면서도 꾸역꾸역 따라왔다. 그렇다면 따라오지 않으면 될 것을. 톨런드는 이제 무에나의 방식이 익숙해졌는지 무에나의 면전에서 성질을 부리는 대신 자신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결정한 듯 했다.

그를 붙잡았던 오퍼레이터에게 감사 인사를 듣고 사무실에 돌아온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박사가 도착했다. 무에나는 박사를 따라 온 사람을 보고 얼굴을 팍 구겼다. 그 꼴을 보더니 톨런드가 와하학, 하고 웃어댔다. 왜, 내 생각 하고 있었어? 무에나는 들고 있던 신문 뭉치를 톨런드의 얼굴에 던졌다. 퍽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지만 톨런드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박사만 둘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채로 서 있었다.

카테고리
#기타
페어
#BL
커플링
#톨레나
  • ..+ 1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