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방주

완성되는 사람과 과거완료의 사람

페넌스+인사이더 날조

32000자.

‘라비니아와 리켈레가 어릴 때 시라쿠사 한구석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면’

그런 IF 망상 날조 환각 … 설정의 글입니다.

약간의 부상 묘사가 있습니다.

제목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별 수확이 없었다. 식재료도 아니고 책은 다른 도시에서 물량이 매일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드나든다고 없던 책이 솟아나겠어요? 이참에 문 앞에 공지 입간판이라도 세워야겠네. 그렇잖음 학생 덕분에 문고리 닳겠어.

면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주인에게 면구한 인사를 남긴 뒤 라비니아는 서점을 나섰다. 학도는 한숨을 내쉬며 오후의 빛이 내리는 소박한 상가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 소도시에 그럭저럭 건실하게 기능하는 학교가 몇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일지도 모른다. 내후년쯤에는 대학을 찾아 더 큰 이동도시로 이사를 해야겠지.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혼자라도 나서서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 이사 거리도 따져 봐야겠지만, 무엇보다 고등법원이 자리한 도시가 좋다. 두 정원에 걸친 올리브나무의 수확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같은 소소한 다툼이 가장 큰 송사인 이곳과는 모든 것이 다르겠지 ― 물론 그것도 누군가의 식사가 달린 가치있는 화제지만.

이 소도시에도 위험하거나 끔찍하거나 부조리한 사건은 있다. 어쩌면 더 많이. 다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논해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어련히 있을 수 있는 일, 그럴 만한 일, 보아도 못 본 체해야 하기에 결국 일어나지 않은 것과 다름없어지는 일들은 시라쿠사의 어떤 도시에서든 비슷하게 일어난다. 예를 들면 지금 청과상의 가판대를 지나쳐가며 사과 하나를 슬쩍 집어드는 산크타 소년 같은......

라비니아는 멈칫했다. 이 근방에 산크타는 드물뿐더러 소년의 태도가 놀랍도록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일 초만 늦게 시선을 향했더라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던 라비니아는 사과가 그대로 제 품으로 날아오자 얼결에 그것을 받아냈다. 발을 헛디딜 뻔한 탓에 흐트러진 가방끈을 허둥거리며 수습하자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입막음."

고개를 드니 소년은 이쪽으로 다가오며 뻔뻔스럽게도 주머니에서 다른 사과를 꺼내고 있었다. 올해로 몇 살일까? 열둘? 열셋?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휘가 가느다란 바늘처럼 명치를 찌르는 기분을 느끼며 라비니아는 물었다.

"……한 개가 아니었네요?"

'심지어'가 생략된 질문에 산크타 소년은 심드렁하게 까닥했다.

"하루 두 개까진 괜찮거든요."

"하지만……."

절도인데. 뒷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가당찮은 소리였기에 라비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소년은 들먹 가판대 쪽을 턱짓했다. 뽀얗게 과육이 오른 과일과 상처 난 과일이 나란히 펼쳐져 있다.

"대놓고 나눠주면 온 동네 애들이 몰려와서 난리 나고, 동네 물 흐린다고 주변에서도 뭐라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적당적당히."

"……그건 가게 주인분에게 확인한 사항인가요?"

소년은 와삭 베어문 사과를 우물거리며 대꾸했다. "아ㄴ. 그냥, 뻔하ㅈㅇ요. 돌ㅇㄱ는 게."

라비니아는 궤변이라 생각하면서도 받아든 사과를 살폈다. 아예 썩지는 않았지만 보관을 잘못 한 재고인지 껍질이 퍽퍽했다. 절임이나 잼으로 만들기에도 늦은 사과를 신선한 사과와 똑같은 가격까지 붙이고 호객용으로 내놓을 리는 없어 보였다. 일리가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있다는 이 소년은 변명을 하지도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거리의 아이들의 생활방식에 대해서 얼핏 들은 적은 있었지만 이런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다시 보니 옷가지도 남루할지언정 그럭저럭 모양이 있다. 수완으로 얻어냈는지,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지.

"저기."

라비니아는 소년의 멀뚱한 시선을 보고서야 자신이 그를 얼결에 불러세웠다는 것을 알았다. 곧이어 그 이유도. 경계심 많은 부랑아들은 으레 관심을 받으면 빛을 쏘인 벌레떼처럼 잽싸게 골목 곳곳으로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한다. 한 번 말을 섞을 수 있는 상대와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친해지면 근방의 부랑아들에 대해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접근할 수 없는 그늘의 이야기를 듣고 아는 것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라비니아는 대답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보다는 언제나 낫다. 라비니아의 세계는 그런 가지런한 얼개로 이루어져 있다 ― 아직은.

"……일단 사과 고마워요." 눈앞에서 훔친 신선한 장물을 선물받는 경험은 처음이지만. "라비니아 팔코네예요."

“왜요.”

소개 대신 경계심어린 반문이 돌아오자 라비니아는 잠깐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도둑질 현장을 들킨 사람이 이름을 질문받는다면 당연히 긴장할 만하다. 그는 가방끈을 고치며 미안함이 섞인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대한 무해하게 보이기를 빌며.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혹시 괜찮다면 시간 날 때 제 공부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잠깐만요, 가지 말아요. 큰 사례는 어렵겠지만, 도와주실 때마다 식사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도록 할게요.”

산크타는 더욱 미심쩍다는 표정을 했다. “전 공부 모르는데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종종 이야기만 듣고 싶어요. 며칠에 한 번 식사 시간 말동무, 그거면 돼요.”

“…….”

소년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손톱 끝이 깨진 검지손가락으로 불쑥 라비니아를 가리켰다. 잠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던 라비니아는 곧 건네받은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노을빛 아래에서 더욱 쭈글쭈글해 보이는 껍질을 손수건으로 한 번 닦은 뒤 크게 깨물었다. 식감은 퍼석했고 식초가 되기 직전의 신맛이 났다.

라비니아는 한쪽 볼이 부푼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채점을 기다리듯 고개를 들어 소년을 마주보았다. 소년은 까닥했다.

“이제 공범이네.” 또 한 번 나이에 맞지 않는 단어. “리켈레예요.”



라비니아가 연상은 맞지만 알고 보니 둘의 나이차는 그렇게까지는 크지 않았다. 리켈레가 미덥잖은 영양상태 때문에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을 뿐이다. 사실을 알자마자 소년은 '시뇨라'를 내다 버렸다.

첫 공부는 거리 안쪽 한적한 식당의 두 개뿐인 야외 테이블 중 하나에 앉아, 치즈 한 조각만 허랑하게 들어간 기본 파니니를 가운데 두고. 리켈레가 택한 메뉴였다. 라비니아는 뭐든 원하는 만큼 주문해도 된다며 주장하고 설득하고 거의 애원할 뻔했지만, 학생인 라비니아의 애매한 호주머니 사정은 리켈레에게도 뻔히 보였다. "한 번에 털어먹으면 질려서 다신 안 만날 거 아냐." 이 논리에는 라비니아도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앞으로 함께 지킬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목록을 쓸 공책과 필기구를 꺼내놓는 라비니아를 보고 리켈레가 픽 웃었다.

"어렵게 사네."

라비니아는 단호했다. "실수로라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 억지를 받아 주셨으니까요."

"빵 사 줬으면 됐지 뭘 복잡하게……."

번거로운 투로 말했지만 리켈레는 흥미로워하는 기색이었다.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줄줄 떠들기 시작했다.

리켈레가 제안한 규칙은: 정해진 날이 아닌 날에 서로를 찾거나 아는 체하지 말 것. 다른 사람에게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 것, 아니 절대 말하지 말란 얘긴 아니고, 위험하다 싶을 때는 알아서 해, 뭐 결국 소문은 나겠지만 적어도 내놓고 떠들지는 말 것. 서로 누굴 소개해 달라거나 어디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지 말 것. 무엇보다, 패밀리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말 것.

"괜히 꼬투리 잡혀 죽기 싫으니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빨리 화제에 오를 줄은 몰랐다. 라비니아는 침착을 가장하며 끄덕했다. "……네, 당신이 위험해질 만한 화제는 사양할게요."

그가 제시한 조항은 하나하나가 납득할 만했다. 그는 왜 이 만남에 규칙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제안 일부는 리켈레 본인뿐만 아니라 라비니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혹시 예전에 다른 사람이랑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아니?” 놀라워하며 라비니아는 모든 제안을 받아들였다.

리켈레가 파니니를 우물거리는 동안 라비니아가 떠올린 규칙은: 한 번 말하지 않겠다고 한 화제는 다시 꺼내지 않겠습니다. 대화 이상의 일을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리켈레는 목을 빼 공책 쪽을 보더니 어이없어했다.

"뭐야, 다 네가 하는 거잖아. 조건을 붙이려면 나한테 붙여야지."

라비니아는 멋쩍게 웃으려다가 반 박자 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는 고민하며 공책에 메모하던 내용을 아직 리켈레에게 읽어 주지 않았다. 라비니아는 종이를 내려다보았고, 다시 리켈레를 보았다.

"글 읽을 수 있어요?"

리켈레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놀랄 만한 일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까. 그는 그저 으쓱했다. 투박한 날개가 그 동작을 따라 까닥 움직였다. "뭐어 필요한 만큼. 그래서 진짜 난 아무것도 안 해?"

"……떠오르는 게 제 쪽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뿐이네요."

"뭐든간에 걸어 봐,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음…… 주는 대로 먹어라?"

"그건 조금."

리켈레는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투로 낄낄거렸다.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웃을 때에는 먼지 묻은 낯에 드리운 희미한 피로가 얼핏 걷혀서, 그저 하루종일 축구라도 하다가 운동장에 굴러 옷을 망친 평범한 학생 같았다.

"그럼 이런 건 어때. 사람 지나다니는 트인 곳에서만 만나기. 아 또, 돈 주고받지 않기."

"둘 다 괜찮네요. 리켈레가 좋다면요."

크든 작든 돈이 얽힌 관계는 불편해지거나 위험해지기 쉽다. 라비니아는 납득하면서도 심사가 복잡했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도, 리켈레는 라비니아가 그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이 오가지 않는 정도, 상하기 직전의 사과를 버리는 대신 가판대에 널어 놓는 정도, 자신을 내주지 않는 정도의 초라한 친절이 열여섯 살 학도 라비니아의 손이 간신히 닿는 범위였다. 그리고 리켈레는 그 이상을 요구하거나 기대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혹은 꾸준히 '털어먹을' 밑준비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신뢰를 쌓고 있거나. 설령 그렇다 해도 이만큼 협조적인 피조사자라면 감수할 만했다.)

"그리고 또…… 나도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는 거야?"

라비니아는 반색했다. "물론이죠. 아 그래요, 글을 읽을 줄 아시면, 집에 다 읽은 책이 있는데 조금씩 가져다 드릴까요? 읽고 나서 되파셔도 돼요. 헌책방에서 받아줄 거예요."

"좋네. 근데 한 권씩만. 둘 데가 없어."



리켈레는 흔한 부랑아들과 달랐다. 하긴 평범한 아이였다면 애초에 멀끔한 옷과 책가방을 낀 학도 라비니아의 '공부'에 어울려 주지도 않았을 테다. 

그는 글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수학을 알았고 심지어 라테라노어도 약간 할 줄 알았다. 동네 교회의 수도사가 종종 가르쳤다고 했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는 잡일 몇 가지를 맡을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티내기를 꺼려했다. "난 그렇잖아도 눈에 띄니까." 머리 위 고리를 가리키며.

공부는 라비니아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유익했다. 리켈레는 한 차례 다른 '일'이 겹쳤던 날을 제하면 매주 정해진 시간에 성실히 약속 장소에 나왔다. 이 바닥에서도 약속은 중요하다나. 라비니아는 언제나 정중했고 일주일에 한 번 제대로 된 식사까지 보장받을 수 있으니, 리켈레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라비니아의 공책은 귀중한 증언들로 금세 빽빽해졌다.

Q. 흩어져 있으면 생활에 어려움은 없나요? 집단 생활 쪽이 서로에게 안전을 보장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거든요. 그렇지 않다니 놀랍네요.

A. 혼자 다녀도 욕심 안 내고 눈치 챙기면 내리 굶기만 할 일은 의외로 많이 없어. 어, 난 진짜 아니다 싶으면 교회에 들를 수 있어서 그나마 비빌 언덕이 있는 경우니까, 방금 그건 살짝 걸러서 들어. 안전은 으음, 예를 들어 다쳐서 잠깐 일을 못 하게 됐다, 그러면 나중에 갚는 조건으로 잠깐 남한테 신세지는 경우는 있네. 어차피 다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럴 땐 대충 목숨 붙어있을 정도는 도와주거든, 미리 빚 걸어놓는 셈치고. 근데 그것도 오래 그러진 않고 좀 나으면 금방 흩어져.

Q. 영향력있는 모임이 특별히 없다면, 새로 합류한 사람은 어떻게 적응하나요?

A. 많이 어린 애는 좀 큰 녀석들이 신경써서 돌보긴 해. 이것저것 가르쳐서 자기 입 하나는 풀칠할 때까지 봐 주고 그러지. 애들 관리는 누가 한다고 딱 정해 놓는 식은 아니고, 아, 보통 그렇게 누가 대장 같은 게 되면 금방 어떤 패밀리 눈에든 띄거든, 그래서 그쪽에 잘 보이고 싶은 녀석들이 알아서 나서는 느낌? 한번은 그냥 딱해서 도와주다가 어물어물 그쪽으로 얽혀 버린 경우도 봤긴 한데. 

Q. 집단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영입 대상이 되는 걸까요?

A. 아마도? 겸사겸사, 더 커서 패거리 같은 게 되기 전에 제일 중심이 되는 애를 이렇게…… 뭐더라 그…… 혼자만 빼내는 거……

Q. 고립시켜서? 배제시켜서?

A. 아 그거 둘 다. 그렇게 싹을 자르는 거겠지. 그래서 몰려다니는 애들이 얼마 없는 면도 있을 거야, 무슨 모임으로 자리잡기 전에 그런 식으로 누가 낚여가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니까…… 이 얘긴 여기까지만 하자. 

Q. ……아, 네. 좋아요. 이번엔 카시미어 기사 소설을 가져와 봤어요. 작년에 번역되어서 나름대로 인기 있었던 작품인데,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A→Q. 기사 소설……? 가만 보면 되게 이것저것 읽는 거 같다, 너.

Q→A. 화제가 되는 작품은 훑어보고 기억해 두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사람들이 그 작품을 좋아한 이유를 확인하고 싶어서요…… 소설이든, 뮤지컬이든.

Q. 매번 남한테 참 관심 많아. 근데 이 동네 극장에서 뭐 하는 게 있긴 해?

A. 확실히 여기에는 새로운 공연이 얼마 없어요. 하지만 큰 도시에서 상연한 작품을 녹화해서 상영하거나 디스크를 파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주로 오후부터 노을의 박명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저녁나절에 만났다. 라비니아는 학교 일과가 끝난 뒤에만 시간이 났고, 리켈레는 밤에는 거의 ‘일’을 하지 않기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일정이 널럴하다고 했다. 모범적인 주행성 생활패턴이 아닌 불가피한 이유 때문이었다. 광륜과 날개를 지닌 그는 밤거리에서 지나치게 이목을 끄니까.

“정말 야채만 넣어도 충분해요?”

“그거면 된다니까. 한번 입 비싸지면 나중에 힘들어. 저번에 내가 말 안 했나? 저기 마가목로에 죽치는 마르코 아저씨, 아주 자기가 한창 날리던 때는 뭐랑 뭐를 세 끼 대신 먹었는데 지금은 이런 신세라고 아주 풀 코스를 읊으면서 한탄에 한탄을…….”

리켈레에게는 심각한 화제를 곧잘 너스레로 덮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농담을 하고 싶어할 때는 어울려주는 것이 라비니아가 나름대로 발휘할 수 있는 예의였다. “여기 서브마린 샌드위치 둘 부탁드려요, 야채만 넣어서.” “넌 왜 또?”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는 항상 바뀌었지만 언제나 바깥이었다. 큰길에서 딱 반 블록 들어간 식당, 공원 한켠의 방치된 운동기구 위(페인트가 벗겨진 탓에 무심코 손잡이를 쥐면 손에서 쇠냄새가 가시지 않는), 작은 광장 가의 둥글게 닳은 돌계단.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으며, 가을이 바스라져 가는 나날이 허벅지에 닿아오는 돌의 온도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라비니아는 곱씹어 보았다.

리켈레는 ‘공부’ 시간 동안은 자신이 실제로 목격한 것과 정황과 추측을 민감하게 구분해 전하는 예리한 피조사자였고, 그날의 질답이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는 재치있는 친구로 돌아갔다. 그의 눈썰미와 기억력을 살릴 일을 찾는다면 그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없었더라면 라비니아는 그를 위해 적당한 일자리와 거처를 수소문했을 것이다. 상가에서 일손을 구하는 가게가 있는지 묻는 정도는 라비니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작은 일이라도…….

한 번은 리켈레에게 직접 허락을 구하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 리켈레는 끄덕이지도, 추임새를 넣지도, 되묻지도 않고 라비니아의 이야기를 가만 끝까지 들었다. 그 덤덤한 표정을 보고서야 라비니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제풀에 말을 주워담으려 할 때, 리켈레는 이제는 라비니아에게 익숙해진, 흰 날개가 살짝 들렸다 떨어지는 그 어깻짓을 했다. - 고마워. 근데 그건 규칙 위반이잖아.

그 이후로 라비니아는 그에게 일자리에 대한 화제를 더 꺼내지 않았다.


어느 날 리켈레는 돌계단에 걸터앉아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식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봐봐, 물론 이 동네 사람들이야 다 아는 얼굴이지만, 만약 처음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위험한지 아닌지만이라도 짐작해야 된다고 해 보자, 그럼 나는 제일 먼저 손, 특히 손톱이 어떤지 보거든, 왜냐면…….

그는 '이 바닥'에 대해서 흔쾌히 이야기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드물게 언급할 뿐이었다. 좀도둑질, 계절마다 레퍼토리가 다른 허드렛일, 아마도 패밀리의 돈줄일 수상한 공장제 모조품들을 거리에서 팔기, 게임과 도박, 안전하거나 위험한 배달 심부름…… 삼인칭 시점의 증언들 어딘가에 그의 여러 밥벌이들도 익명으로 섞여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하물며 그가 무언가 실용적인 지식을 직접 가르쳐 주는 일은 처음이다. 라비니아는 중간부터 필기도 그만두고 한껏 집중해 경청했다. 내처 행인 세 명쯤을 짚으며 실습까지 시킨 뒤에야 리켈레는 물었다.

"근데 넌 이런 걸 왜 이렇게 열심히 배워? 뭐 집에서 쫓겨날 예정 있어?"

라비니아는 무심코 대답하려다, 이채로워하는 눈웃음으로 리켈레를 고쳐 보았다.

“……이제야 물으시네요?”

리켈레가 뚱하니 대꾸했다. “원래 돈 쓰는 쪽한테 이유 묻는 거 아냐.”

라비니아는 미소지었다가 곧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릎 위에 놓인 공책은 어느새 제법 길이 들어 있다. 신뢰를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거기에 답할 신뢰를 마주 내놓을 수 있어 기뻤다.

"안전한 거리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을 들을 기회를 놓치기 싫었어요. 저는…… 사실 나중에 법관이 되고 싶거든요."

"왜? 월급보다 세차비가 많이 나갈 텐데."

"세차비요?"

비웃음을 들을 각오까지도 했던 라비니아는 뜬금없는 방향으로 날아온 반문에 어리벙벙했다.

"응. 종종 그런 일이 들어오거든. 누구 차에 페인트나 뭐 그런 걸 칠하고 도망가면 푼돈 쳐주겠다는 녀석들. 한번은 누구 찬가 궁금해져서 주인 올 때까지 지켜본 적이 있는데, 법원 쪽에서 나와서……" 소년은 이름모를 법관의 피로와 망연자실이 뒤섞인 표정을 잠깐 재현해 보였다. "이러고…… 멍하니 서 있다가 타고 가더라."

라비니아는 동정심을 느꼈다. 이 소도시의 지방법원이래봐야 도시 관리사무소에 바싹 붙은 의자 많은 건물일 뿐이다. 평결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항상 있을 테고, 일개 지방에 파견된 순회 판사가 법정의 신성함을 비웃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턱이 없다. 오히려 차만 더럽힌 것으로 일이 끝나 다행이라 해야겠지.

"……알려줘서 고마워요. 참고할게요." 정말 참고만 하겠지만.

"그건 한 귀로 흘리는 표정인데."

바로 의표를 찔린 라비니아는 핫 웃고 말았다. 이내 눈길을 가라앉힌 그는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쥐고 광장 한켠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제 경험 얘기를 좀 해도 될까요?”

“해.”

“누구한테 얘기해 보는 건 처음이라 좀 횡설수설할 수도 있어요……. 2년쯤 됐네요. 학교에서 애들이 크게 다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라비니아와 나란히 계단의 맨 윗단에 앉아 있던 리켈레는 이쪽으로 몸을 돌리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투였다. 식탁보 깔린 멀끔한 세계와는 형태가 다를 뿐, 그에게도 존중과 경의의 몸짓이 있다. 거기에 마주 끄덕여 감사한 뒤 라비니아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학교 건물 이층에서 청소를 하던 학생이 걸레 세탁한 물을 창밖으로 쏟았는데, 하필 그 길을 지나던 다른 학생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계단을 한달음에 달려올라가서 양동이를 정리하는 중이던 애를 때려눕혔어요."

"그야 그렇게 되겠지."

"그럴까요?"

라비니아는 광장 가운데를 바라보던 고개를 잠시 돌려 리켈레를 향했다. 반문하는 얼굴은 평온해 보일 만큼 차분했다. 루포 소녀의 가지런히 빗은 회갈색 머리칼과 귀 위로 노을이 따스한 채도를 더했다. 곧 밤이 되고 돌길은 차가워질 것을 영영 모르는 듯이. 온기가 말했다.

"청소하던 애는 아래에 사람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는걸요. 조심하지 않은 건 잘못이 맞지만, 그게 폭력을 당해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이었을까요?"

리켈레의 세계에는 '당해야 할 정도'라는 기준은 없다. 폭력은 명분에 의해 허가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우기에 충분히 말리지 않은 모든 것에 이끼와 곰팡이가 슬듯이, 폭력을 쓰지 않을 이유가 사라진 자리마다 스스로 돋아난다. 그는 라비니아에게 그렇게 증언할 수도 있었다, 성실한 피조사자로서. 하지만 그는 라비니아가 자신의 세계를 나누어주도록 놔두었다. 해가 지기 전에.

"물을 맞은 애는 잔뜩 흥분하고, 청소하던 애는 대뜸 얻어맞았으니 억울해하고, 결국 둘은 다른 애들이 뜯어말릴 때까지 엉망진창으로 싸웠어요. 나중가선 둘 다 악을 쓰느라 말도 통하지 않았죠."

학교라는 것도 썩 대단하진 않네. "그래서?"

"저는……일이 그렇게 끝나게 두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같은 청소 당번이었던 애들한테 물어보니, 그날 오후부터 갑자기 이층 화장실 전체가 고장나서 물을 받거나 버리려면 무거운 물양동이를 들고 일층까지 걸어 내려가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기로 물을 버릴 사람을 정하고 남은 애들은 교실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큰 소리가 나서 보니 그애가 맞고 있었다고. 그 정황을 전해줬더니, 물을 뒤집어쓴 애는 그 일이 잘못은 맞지만 완전히 고의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제야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뭐든 시작할 수 있게 된 거죠, 사과든 용서든. 그 다음엔 청소하던 애를 설득해서 사과하게 만들었고요."

리켈레는 라비니아의 잔잔한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작은 분수는 여름이 가자마자 수도를 꺼버려 지금은 낙엽만 버석거리며 고이고, 바람이 빠져 잘 날아가지 않는 공을 조금이라도 멀리 굴리려 애쓰는 아이들, 장식용 처마의 테라코타 기와를 갈아치우느라 사다리 아래 점원과 기왓장을 주거니받거니하는 상점 주인. 그 시시콜콜한 풍경을 라비니아는 더없는 명화라도 되는 듯 눈길로 어루만지고 있다.

"두 사람 다 벌받긴 했지만 다행히 둘 사이에 앙금은 안 남았어요. 나중엔 친해져서 그 일로 농담까지 하게 됐고. 그걸 보고 있으니까 저는……"

라비니아의 옆얼굴을 물끄럼 보던 리켈레가 문득 입을 열었다. "……세상 일이 다 이렇게 해결될 수는 없을까 싶었다고?"

라비니아는 둥글어진 눈으로 리켈레를 보았다. 크게 뜨인 눈동자에도 어김없이 노을빛이 담겼다. 놀라움이 잦아드는 자리를, 배시시, 환한 웃음이 채웠다.

“네. 그래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리켈레는 라비니아 쪽으로 시선을 둔 채 생각으로 끌려들어간 듯했다. 그가 한참 말이 없자 라비니아는 다시 바늘로 명치를 찔리는 듯한 가느다랗고 예리한 통각을 느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부채감으로 심장의 표면에 수를 놓는 기분이었다.

“……미안해요. 너무 느긋한 소리였죠.”

곧 현실로 돌아온 리켈레는 그제야 라비니아의 착잡한 표정을 보고 아차했다. 그는 라비니아를 안심시키듯 헐렁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얼굴에는 다시 친근한 웃음이 걸렸다.

“아니, 아니. 그냥 그거 좋네 싶어서. 그런 일은 너 같은 사람이 해야지.”

분명 진심어린 웃음이다. 하지만 그를 향해 마주 웃어 주는 얼굴 아래로 라비니아는 들끓는 질문들을 느꼈다. 라비니아 같은 사람이란 뭘까? 그 말과 리켈레 같은 사람이라는 말 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을까? 내가 이 말에 응원받은 기분을 느껴도 될까? 나는 알량한 식사 몇 끼와 몇 번의 대화로 이 사람에게서 나를 못마땅해할 권리를 박탈한 것은 아닐까? 이 사람의 곤궁함을 이용하고 있을 이름모를 어른들이 그렇게 하듯이?

라비니아는 피부의 안쪽 면에 무섭게 뻗어나가는 바늘땀이 혹독한 문장들을 새기며 내달리도록 내버려두었다. 이 의심을 그만두는 순간 정말 끔찍한 사람이 되고 말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마도, 그 쉼없는 의심이야말로 ‘라비니아 같은’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잠깐만 학생. 좀 있어 봐요."

서점의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안쪽에서 재고를 정리하다가 입구 쪽으로 나온 서점 주인 페로가 라비니아를 불러세웠다. 주인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농담과 푸념을 구분하는 일은 종종 피곤했다, 특히 약속을 앞두고 시간이 없을 때는 더욱. 라비니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무슨 일이실까요?"

"학생 혹시 책 안 잃어버렸어요?"

라비니아가 갸웃하자 주인은 점원을 물러나게 하고 카운터 아래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 손에 낯익은 책이 잡혀 나왔다. 리켈레에게 선물한 책 중 하나였다. 배송 중에 표지 한쪽에 크게 찍힌 자국이 났던 것을 속상해했던 기억이 선명했기에 바로 구분할 수 있었다. 다 읽고 팔아도 된다고 말했었으니 헌책방에서 그 책을 다시 마주칠 수야 있겠지만, 주인이 바로 꺼내들다니 무슨 일일까.

"아, 그건."

제가 선물을, ……이어 말하려던 라비니아는 설명이 길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멈칫했다. 주인은 그 표정을 잘못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는 넌더리가 난다는 투로 절레절레했다.

"요 주변에 산크타 남자애랑 종종 놀죠? 걔가 이걸 가져와서 팔더라고. 언제 슬쩍했나 보다 내가 딱 감을 잡아갖고 빼뒀지…… 그놈이 잔머리는 잘 굴려, 학생이 갖고 다니는 것 중에 값나갈 물건이 책밖에 더 있나."

간신히 삼키듯 숨을 들이쉬자 혈관으로 참담한 냉기가 흘러들어왔다. 라비니아의 까마득한 표정을 보고 더욱 확신이 붙은 듯 주인이 의기양양하게 주절거렸다.

"게다가 이게 내가 많이 입고했던 책도 아니야, 딱 네 권, 누구누구한테 팔았는지도 다 기억하거든요."

"네……."

설명할까? 설명하고 싶었다. 간절히. 입술을 떼기도 전에 모든 말이 목구멍 아래에 다 준비되어 있었다. 라비니아는 자신이 그토록 짧은 순간에 이렇게 긴 문장을 떠올릴 수 있는 줄을 처음 알았다. 제가 선물한 게 맞아요. 평소 독서가 익숙하지도 않았을 텐데도 리켈레는 그걸 일주일만에 다 읽고는, 모르는 역사 쪽 단어를 몇 개 알려 달라고 적어 오기까지 했죠. 그래서 그날은 인터뷰 대신 사국 전쟁의 전개 이야기만 하다가 해가 져 버렸어요. 리켈레는 광륜이 평생 걸리적거렸는데, 덕분에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고, 그것 하나는 좋다고 말했어요. 지나가듯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지만 그애는 원래 제일 진심일 때 그런 식으로 말한다고요.

"……사실 동네에서 다들 걱정해, 성실한 아가씨가 뭐 약점 잡혀서 어울리는 거 아니냐구……. 혹시 집에 말하기 어려운 일이면 상가 사람들 아무나한테라도 얘기해요. 얼씬 못하게 해 줄 테니까는."

라비니아는 크로스백 아래에 숨긴 손으로 코트의 자락을 꽉 그러쥐었다. 드러나지 않게 노력하며 숨을 깊이 당겼다가 다시 놓았다. 그 후에야 빙긋이 웃어 보일 수 있었다.

"괜찮아요. 책은 제 게 아닌데 아마 헷갈리신 것 같아요. 그래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억지 표정을 더 걸어 놓기가 어려웠다. 라비니아는 황급히 고개숙여 인사한 뒤 몸을 돌렸다. 뒤에서 무어라 자신을 부르는 듯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곧 약속 시간이다.

리켈레 앞에서 상심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 그가 가장 상심했을 테니까. 라비니아는 식어버린 손으로 뺨을 꾹꾹 눌러 굳어버린 입꼬리를 풀고, 입속으로 해야 하는 말들을 몇 번이고 되뇌며 잰걸음했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입안에서 체온과 물기로 눅눅해졌다. 내가 경솔했다고 사과해야지, 오해받아서 속상하겠다고 위로도 해야 하고, 혹시 오해를 풀고 싶다면 얼마든지 내가 대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도 해야 해. 이런 모욕을 당하는 일이 싫다면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거듭거듭 얘기해야지.

그 중 어느 것도 불가능했다. 리켈레는 약속 장소에 없었다. 이번에 만나기로 한 공원에도. 저번에 올라갔던 옥상에도. 그 전에 행인들을 지켜보았던 광장에도. 겨울이 다가오는 거리의 무정한 냉기에 체온을 다 빼앗길 때까지, 루포 소녀는 저물어가는 침침한 세계 한가운데 망연히 서 있었다.




한밤중 라비니아는 설핏 깨어났다. 목까지 당겨 덮은 이불 속에서 그는 무엇이 자신을 깨웠는지 더듬어 보았다. 악몽을 꿨던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고 꿈을 꿀 겨를도 없었다. 어쩌다 늦게 돌아왔더라, 아직 비몽사몽이라 신경이 닿지 않는다. 목이 말라서 깬 것 같기도……. 반쯤 잠에 취한 채 이불을 걷어내려 하는 때 그 이유가 스스로 다시 찾아왔다.

똑똑.

누군가 덧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모든 잠기운이 단번에 불타 없어졌다. 시라쿠사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본능에 새겨진 공포가 사고보다 먼저 작동했다. 라비니아는 들어올리려던 어깨를 도로 침대에 딱 붙였다. 덧창을 뜯어내지 않고서는 창 안쪽을 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온몸을 굳히고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라비니아."

리켈레였다.

"갑자기 미안. 나야. 병원에 좀 데려다 줘."

동공이 한껏 열린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며, 이어진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처리하는 데에 두 호흡이 걸렸다. 각오한 적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병원이라고 했어. 그리고 라비니아는 온몸을 침대 밖으로 내던지며 일어나 황급히 창문과 덧창을 열어젖혔다.

가로등 불빛 아래, 습한 공기가 드리운 빛무리로 더욱 희게 보이는 광륜. 한쪽 윗팔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은 소년이 머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 팔을 힘껏 그러쥔 손에는 빛을 반사하는 이상한 물기가, 

세상에, 피, 온통 피야.

"어쩌다가―― 아니, 안 물을게요. 잠깐만요. 잠깐만 있어요."

라비니아는 제 말을 주워담고는 지체없이 몸을 돌렸다. 소란에 가족이 다 깰지도 모르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옷 위에 코트를 함부로 끼우고, 그 옆에 걸려 있던 다른 겉옷을 뜯어내다시피 함께 챙겼다. 어두운 거실에서 손끝으로 찬장의 구급상자를 뒤지다가 아예 상자를 통째로 들고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리켈레는 그새에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라비니아는 그가 쓰러진 줄만 알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파래진 라비니아의 얼굴을 본 그는 픽 웃으며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아직 괜찮아."

"……."

그러고보니 리켈레에게 우리 집이 어딘지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

다시 한 번 수백 가지 질문이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대신 리켈레의 어깨에 겉옷을 둘러주었다. 싸늘한 날씨에 피까지 흘려서인지 리켈레의 온몸은 무시무시하게 찼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만도 꽤 오래 버틴 듯했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미, 미안해요. 약 같은 게 없어요. 조금만 참아요. 병원 갈 때까지만……."

얼결에 구급상자를 가져오긴 했지만 침침한 가로등 아래 응급처치를 하려다가 자칫 무엇에 다쳤는지도 모를 상처를 들쑤실까 두려웠다. 상처의 모양도 이상했다, 베인 상처와 화상이 뒤섞인 것 같았다. 라비니아가 할 수 있는 일은 피가 더 넘치지 않도록 지혈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수업시간에는 꼼꼼히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고통 앞에서 알량한 배움은 다 헛소리였다. 친구의 피로 미끈거리는 손으로 붕대를 감고 고정핀을 찾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고는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신음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채 붕대를 닫는 라비니아를 보고 리켈레는 맥없이 웃었다.

"생각보다 강단 있네."

열네 살 소년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세상은 얼마나 잘못된 걸까? 라비니아는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이제 가요. 걸을 수 있어요?"

"어."

"부축할 테니까 기대요. 방향만 잡아요.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아요?"

리켈레는 라비니아가 처음 발들여 보는 음습한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심야에 열려 있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허탕을 치는 내내 리켈레는 묵묵했다. 라비니아는 소년이 선 채로 기절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느라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야 했다. 리켈레는 유난스러워하며 반 건성으로 대답했다 ― 라비니아의 공포에 신경쓰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이 민감한 아이가. 끔찍하다.

세 번째 시도에야 그들은 새벽까지 영업하는 작은 의원을 찾을 수 있었다. 졸음과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문을 열어준 중년의 필라인 의사는 문앞의 광경을 보고는 어이쿠, 하는 투로 날래게 리켈레를 받아들었다. 어깨에 걸린 무게가 사라지자마자 라비니아는 현관에 허청 주저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기대서 있던 리켈레는 이내 의사의 부축을 사양하고 제 발로 섰다. 그리고 쓴웃음지으며 라비니아의 어깨를 한 번 짚어주었다. "좀 쉬어."

라비니아는 너무 많은 생각에 휩쓸린 나머지 표정이 사라져 버린 얼굴로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어깨의 손길이 거두어지지자 그는 더디게 바닥을 디디며 일어섰다. 몸을 일으킬 때의 얼굴은 산발한 머리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현관의 발깔개에 손자국이 남았다.

리켈레는 피에 절은 셔츠를 내버리고 라비니아가 준 겉옷을 한쪽 팔에만 끼운 모습으로 처치를 받았다. 의사는 과연 이 아이들이 진료비를 낼 수 있을지 의심하느라 애매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성실히 상처를 봐주었다.

“그냥 봉합하면 안 되겠는데. 아츠에 긁혔냐?”

“네에 뭐.”

리켈레가 더 말하기 껄끄럽다는 기색을 하자 의사는 캐묻지 않았다.

"스태프 가져와야겠구만. 잠깐 있어 봐. 아직 소독밖에 안 했으니까 그새 튀진 말고."

의사는 무겁게 책상을 짚고 일어서더니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의원 건물이 집과 이어진 듯했다. 사위가 잠시 조용해졌다. 창백한 조명이 닿지 못하는 자리마다 겨울 우기를 앞둔 축축한 냉기만이 맴돌았다.

리켈레는 발을 굴러 스툴을 반 바퀴 돌렸다. 작은 의원은 진료실과 다른 방의 구분도 없었다. 침대 두어 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침침한 공간 한쪽에 넋나간 채 걸터앉은 라비니아가 보였다. 전쟁터라도 통과해온 몰골이었다. 묶지 않은 머리는 등뒤와 가슴 앞으로 어지럽게 흘러넘쳐 표정을 가렸고 무릎 위에 놓은 두 손은 말라붙은 피로 얼룩졌다. 손톱 밑에 고인 피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항상 반듯하던 자세도 온데간데없이 어깨가 둥글게 떨어져 있었다.

연필 굳은살이 배긴 그 손을 빤히 보다가 리켈레는 툭 말했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당연히 그래야……."

고개를 울컥 들며 간절하게 말하던 라비니아는 숨을 멈추었다. 다시 다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는 마주쳐서는 안 되었다는 말이었다. 산 채로 얼어붙어가는 듯한 라비니아의 표정을 보면서도 리켈레는 담담하게 못박았다.

"아까 길에서 생각했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아."

"저, 전 괜찮아요."

말끝이 애원에 가깝게 솟았다. 리켈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라비니아를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흰 광륜이 고갯짓에 따라 살짝 기울어졌다. '정말로?' ……라비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소년은 호흡으로 웃으며 어깨를 들먹했다가, 상처를 움직여 버려 잠깐 헛숨을 들이켰다.

"흐……잠깐만……됐다. ……이제 더 해 줄 얘기도 얼마 없는데 뭐. 이 바닥 지내는 거야 비슷비슷하니까. 그냥 그 뭐더라…… 졸업이라고 치면 되겠네."

하지만 라비니아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열네 살 소년이 새벽 세 시에 피투성이가 되어 친구에게 의지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리켈레는 한 번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아니, 그저 이런 식으로는 끝내기 싫어, 이런 식으로는……

"혹시 제가 리켈레한테,"

지금까지 모욕감이나 박탈감을 주었다거나……. 분명 사과할 말을 수백 번 준비했었는데도, 막상 소리내 발음하려니 그 모든 단어가 파렴치해 차마 목소리를 실을 수 없었다. 리켈레는 자기혐오에 휩싸인 라비니아의 표정을 보고 뒷말을 읽어 버렸다. 라비니아가 말하려던 어려운 단어는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그 심정이라면 어련히 알 수 있었다. 법관이 되려면 표정 숨기는 법은 배워야 할 텐데. 그는 키들거리며 성한 손을 저었다. 

"또 또 혼자 심각하지, 아냐, 그런 거 진짜 아냐. 난 그냥 쭉 다 재밌었어. 너같이 잘해주는 애가 또 어딨다고. 근데 이번엔 내가――" 리켈레는 잠깐 말을 골랐다. "――선을 넘었잖아."

매양 유들유들해 보이던 리켈레가, 멋쩍게 시선을 비끼는 모습으로나마, 죄책감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처음이었다. 라비니아는 내용보다 그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결국 라비니아의 고개가 떨어졌다. 부스스한 머리칼 사이로 파묻힐 듯 처진 귀가 안쓰러웠다. 리켈레는 라비니아가 감정을 충분히 가다듬을 때까지 딴청을 피우는 체하며 기다려 주었다.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사실 지금 좀 어지럽고, 또 이제 마지막이니까, 뭐라도 얘기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더 말 걸면 쟤 울어버릴 것 같지.

웬만하면 안 울면 좋겠는데. 

좀……그렇잖아.

애틋한 침묵은 아니었다. 이따금 벽너머에서 뭔가 떨어지거나 집어던져지는 우당탕 소리가 들리곤 했으니까. 이윽고 라비니아는 얼룩덜룩한 손을 파자마 자락에 닦고 한 차례 깊이 마른세수를 했다. 수그린 등이 심호흡으로 크게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칼을 쓸어넘겨 정돈하자 차분한 학도의 얼굴이 돌아와 있었다. 다행히, 눈물 자국은 없다. 눈밑이 붉었고 날숨의 꼬리가 이따금 파르르 떨렸지만, 끝내 울지는 않았다.

곧 의사가 투박한 아츠 스태프를 가지고 돌아왔다. 라비니아는 비척비척 다가와 리켈레의 상처가 서서히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의사는 혀를 차며 스태프를 거두었다.

"뼈까지 닿았으면 그냥 잘랐어, 운도 억세게도 좋은 놈이구만. 한동안은 크게 움직이지 말고. 근데 돈은 있냐?"

라비니아가 코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제가 낼게요." 

"미안. 천천히 갚을게. 만나서 주겠단 거 아니고…… 지나가다 편지통에 넣든 어쩌든."

리켈레는 만류하는 대신 다시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 외에는 쓸만한 표정이 떠오르지 않아서. 라비니아는 마주 빙긋이 미소를 걸어 보였다. 침침한 새벽을 한 뼘이라도 밀어내려 애쓰는 듯이. 그가 지을 수 있는 최선의 웃음일 것이다.

"아뇨. ……처음에 사과 주셨잖아요. 답례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것 참 너답게도 실없는 소리라고 대꾸하려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면 적당적당히, 웃어넘기는 쪽이 좋으니까. 처음부터 다 한 철 장난이었던 마냥. 시작되든 끝나든 별 대단한 일도 아닌 마냥.

하지만 다음 기억이 없다.


……갈증과 빈혈이 어른거리는 의식을 비집고 가장 먼저 찾아왔다. 그 다음은 버석거리는 매트리스의 촉각. 당치도 않지, 매트리스라니. 낯선 환경을 감지한 몸뚱이가 정신보다 먼저 기민하게 깨어났다. 튕기듯 몸을 일으키자 주변은 훤히 밝았다. 갑자기 요란하게 움직인 탓에 눈앞이 뒤집히는 현기증이 뒤늦게 덮쳐왔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더듬더듬 주위를 둘러보니 병원이다. 웬 병원…… 아, 맞아. 

자신이 영영 망가뜨린 것에 대한 자각은 계단을 굴러떨어지듯 덜그럭거리며 다가왔다. 한 단 한 단마다 정신을 호되게 얻어맞는 통증과 함께.

문득 그는 침대를 짚은 손에 무언가 부드러운 물건이 괴이는 촉각을 느꼈다. 어지러움과 환멸이 뒤섞여 아직 오작동하는 정신으로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응시하고서야 리켈레는 그 겹겹이 접힌 포근한 천을 무어라 부르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곱게 개켜진 새 셔츠 한 장.

"아무리 궁해도 그렇지, 순진한 학생 등쳐먹기는 좀 그렇지 않냐?"

의사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의원의 벽에 걸린 시계는 정오를 넘어가는 중이었다. 진료 테이블에 지루하게 턱을 괴고 있던 페로는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몸짓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물병을 무성의하게 가리켜 보였다가, 적당히 챙겨서 나가라는 타성적인 말 몇 마디를 중얼거리고는 문뒤로 사라졌다. 혼자 남았다.

닫힌 문을 멀거니 보던 리켈레는 뒤늦게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소년은 병상에 걸터앉아 느릿느릿 셔츠를 꿰어 입었다. 도톰한 옷으로 감싸인 몸에 금세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낙낙한 셔츠는 팔소매가 약간 길어 손등을 반쯤 덮었다. 치수는 눈대중으로 짐작했을 테니까. 아니면 오래 입으라고 일부러 조금 큰 옷으로 챙겨 주었으려나. 언제나 두 걸음 세 걸음 앞을 궁리하는 녀석이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데 내가 더 자라긴 할까. 

미래라니.

그런 게 오기는 할까.






"본함에 잘 들르지도 못하는데 임무부터 맡기게 돼서 미안, 페넌스. 아, 비질도."

브리핑실에 하나 둘 합류하는 오퍼레이터들 사이에서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방금 전 도착한 비질은 끄덕임 한 번으로 박사의 사과를 사양했다. 그는 단말에 공유된 문서를 스와이프하며 페넌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페넌스는 다가온 비질에게 부드러운 눈인사를 보낸 뒤 박사와 대화를 이어갔다.

"오히려 박사님의 지휘를 체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전황 전체를 보는 눈은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겠죠."

"전술에 관심 있어? 그러고보니 볼시니에서 의용대를 지휘했었댔지?"

페넌스는 감회어린 시선을 잠깐 어딘가로 향했다.

"예. 그때는 텍사스 씨가 도와주신 덕에 요행히 저를 믿어준 사람들을 이끌 수 있었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때 제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몸서리가 쳐지더군요."

"하지만 요행도 구하는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법이지. 이번 작전 끝나면 기록 보면서 해설해 줄게."

"큰 배움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문서를 한 차례 훑은 비질이 들먹했다. "누나가 전술 기획을 배우면 실습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나인데. 응원해도 좋을지 모르겠는걸."

'혹시나 내가 부패하면 누나가 나를 끌어내려야 할 것 아냐.' 뉴 볼시니 시장 후보의 뼈 있는 농담에 주변의 오퍼레이터들은 웃어야 할지 경악해야 할지 고민하는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페넌스는 익숙하게 웃어넘겼다.

"불길한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네요. 레온."

"물론이지. 박사 덕분에 서류에서 벗어날 합당한 명분이 생겼잖아."

앞으로를 생각하면 데스크워크 시간이 길어지는 데에도 차차 적응해야 한다느니, 밉지 않은 핀잔이 오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담소들이 이어지는 브리핑실에 곧 다른 오퍼레이터가 발들였다. 머리에는 광륜, 한 손에는 커피, 다른 한 손에는 회의 중 집어먹기 편한 먼치킨 도넛이 큼직하게 한 통.

"간식 없을 것 같아서 챙겨왔……뭐야? 대충 다 모인 것 같네? 10분 남지 않았어?"

박사가 반갑게 손짓했다. "성실한 동료들이지? 앉아, 인사이더."

"네 네. 성실한 동료들 중 상대적으로 제일 덜 성실한 동료 출석했습니다. 이건 다들 먹어."

오퍼레이터 하나가 과장되게 불안해하며 고개를 뺐다.

"또 설탕 4배 사양 아니죠? 저 요즘 당 관리 해갖구……."

"아니거든? 궁극의 레시피는 중요한 순간에 꺼내야 의미가 있는 거야."

인사이더는 버킷을 테이블 가운데 턱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구면인 오퍼레이터 몇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버킷에 손을 뻗었다. “오, 평범하게 맛있다. 근데 커피 땡기는 맛. 한 모금 마셔도 돼?” “상관없는데 그거 시럽 다섯 펌프 넣었어.” “무슨 밸런스야 진짜?!”

뻔뻔스러운 잡담을 교환하며 단말을 꺼내던 인사이더는 문득 테이블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든 그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이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회갈색 머리칼의 루포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아.

아아아아아아. 젠장.

"다들 모였으니 브리핑은 바로 시작할게. 일찍 하고 일찍 끝내자."

페넌스가 무어라 입을 열기 직전, 박사의 목소리가 브리핑실을 깨웠다. 모두가 박사를 향해 주의를 돌렸다. 인사이더는 전에 없이 열정적으로 단말에 시선을 고정하고 브리핑 내용에 집중했다. 기껏 가져온 먼치킨에는 손도 뻗지 않았다. 무장강도 세력이 점령한 구역에 의료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수송로 확보 임무, 익숙한 글자들을 머리에 똑바로 집어넣느라 두 번 세 번을 읽어야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는 아무 연락도 없는 단말을 급한 일이라도 있는 마냥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거의 성공적으로 복도까지 나섰을 때 정중한 목소리가 등뒤에서 그를 불러세웠다. 공용어가 아닌 시라쿠사어, 팔할의 확신으로.

"실례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평생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인사이더는 몸을 돌려 마주보기 전의 짧은 순간 무시무시하게 갈등했다. '글쎄, 어디쯤에서?'라고 묻는다면 뒤이어 나올 화제는 뻔했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는 좀 너무 작위적이야. '저 못 해요 시라쿠사말', 관두자 그냥. 결국 그는 선수를 치는 쪽을 택했다. 단말을 주머니에 넣고, 친근한 웃음을 만면에 걸며 돌아보았다.

"역시 라비니아 맞지? 나도 계속 긴가민가 하고 있었거든."

내려다보인다.

내가 더 작았었는데.

고정된 얼굴껍질 아래에서 오만 가지 생각을 떠올리는 인사이더의 속은 알지도 못하고, 페넌스는 반색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놀람이 먼저 왔다가 뒤이어 배시시 환히 밝아지는 얼굴. 십 년도 훌쩍 넘었는데 그 웃음은 변함이 없다.

"맙소사, 제가 제대로 본 게 맞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요."

"그러게. 다들 코드네임으로만 불러서 몰랐지 뭐야." 

그래도 이 말은 진짜였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작전 인원 명단을 봤을 때 튀었을 테니까. 

날렵한 인상의 루포 청년이 페넌스에게 다가와 시라쿠사어로 물었다. "아는 사람?" 페넌스는 행복이 뚝뚝 흘러내리는 그 얼굴 그대로 끄덕했다. "예, 학생 때 친구예요."

친구……. 어떤 주저도 없이 청명하게 발음되는 단어가 유리구슬처럼 굴러들어와 생각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버렸다. 비질은 이채로워하는 기색을 했다. "대학교?" "아뇨, 그보다 전에." 그리고 그것으로 납득했는지 비질은 이쪽으로 까닥 묵례했다. 라비니아의 친구는 자기의 친구이기도 하다는 투로. 딱히 캐묻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신이 로도스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었지만, 볼시니 사건의 전개에 대해서는 인사이더도 대강 들은 바가 있었다. '오퍼레이터 페넌스'가 라비니아 팔코네인 줄을 몰랐을 뿐. 행적이나 로도스 내의 직군만으로는 유추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모기 한 마리도 못 죽일 것 같던 순둥이가 저거너트라니. 물론 그는 비질이 누구인지도 대략은 알았다. 굳이 얽히고 싶지는 않다는 점과는 별개로, 경의를 받아 마땅한 사람에게까지 시늉할 필요는 없다. 그는 비질과 짧고 담백한 통성명을 나누었다. "브리핑 들었으니 이미 알겠지만, 인사이더. 실명 취향이면 리켈레도 괜찮고. 공증소 집행자야." 그 소개를 듣고 더욱 경이로 물드는 페넌스의 얼굴을 보자니, 와, 진짜, 감당 안 된다.

인사이더는 잠깐 복도 한쪽으로 시선을 흘렸다. 무의식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다분히 계산된 동작이었고, 페넌스는 알아보았다.

"아, 바쁘실 테니 나중에 이야기할까요."

인사이더는 뒷목을 쓸며 멋쩍은 체를 했다. "미안 미안. 그래도 로도스에 있으면 앞으로도 종종 보겠네. 천천히 얘기하자."

페넌스는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건강해 보여서 정말 기뻐요…… 일단 이 말이라도 꼭 하고 싶었어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가장 회의적인 냉소주의자라 해도 저 목소리가 순전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인사이더는 대답 대신 흔흔히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성큼성큼 아무 방향으로나 전진했다. 충분히 멀어졌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신음하며 단말을 꺼내들었다.


로 도 스 아 일 랜 드 내 선 메 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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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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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냐? 와서공민복지좀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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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짝 부서지겠다

너 이번 주 동안 본함에 있지

내 임무 땜빵 좀 해주라

???? 교대하려면 브리핑 전에 해야지 뜬금없이 뭐야

일정 문제면 박사한테 얘기하든지

그건 아닌데 어쨌든

뭔데? 나 너랑 직군도 다르거든?? 뭐 몰래 뱃지 바꿔 끼고 가라고? 왜 그러는데

이번 임무에 좀 껄끄러운 사람이 있어서 그래

아~~~~ 그렇구나

싫어하는 사람이라 했으면 잘하면 바꿔줬을 텐데

껄끄러운 사람이라 그러니까 급 흥미진진하네

보람찬 임무 되세요 🥰 후기 부탁드립니다

아 좀




인이어 통신기로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 바람이 매서웠지만 마스크 때문인지 박사의 통신에는 잡음이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정리할게. A팀의 목표는 적의 드론 관제 장치 파괴. 전방에 페넌스를 노출시켜서 시선을 끌고 기본적으로 비질이 엄호, 증원이 필요한 경우는 우타게와 에이프릴이 치고 빠지면서 보조할 거야. 넷은 전진하는 시늉만 해. 머릿수 차이와 저항 때문에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여야 해.]

[확인했습니다.] [알았어.] [오케~이.]

[우타게, 응답해야지.]

[다 보고 있으면서. 네에, 라져-.]

[좋아. 앞의 4명은 전부 눈속임. 맨티코어가 드론 관리 장비가 설치된 건물까지 접근할 동안 인사이더는 고지대에서 맨티코어의 진입 경로를 조용히 원호해 줘. 육안으론 안 보이겠지만, 맨티코어는 정해둔 속도와 경로대로 움직일 테니 통신과 계획을 믿어.]

"준비 됐어." [열심히 할게…….]

[맨티코어가 드론 조종장치를 파괴하면, A팀은 적의 색적능력이 마비된 혼란을 노려서 전원 적진에 가까운 순으로 퇴각. 가장 먼저 맨티코어가 인사이더와 합류해서 빠지고, 다음은 우타게와 에이프릴, 마지막으로 비질과 페넌스 순. 그때쯤이면 B팀이 주의를 돌리고 있을 테니 추격은 거의 없을 거야. 여기까지, A팀의 원호 담당과 맨티코어는 5분 내에 각자 대기 위치로 가줘.]

다음은 다른 팀을 향한 지시가 이어졌다. 기동성을 위해 박사는 12명의 팀을 다시 6명씩 둘로 나누었고, 그 말은 만약의 상황에 맨티코어의 목숨을 책임질 사람은 인사이더 하나뿐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지나간 재앙으로 너덜너덜한 폐건물의 창틀 뒤편에 몸을 숨긴 채, 인사이더는 중장거리용 식각 탄환을 장전하고 소음기의 결착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3. 2. 1. A팀 작전 개시. 비질, 들어가.]

작전은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미끼 조가 충분히 주의를 끌었다고 박사가 판단했을 때 맨티코어는 기민하게 적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히는, 인사이더의 시점에서는 그렇게 짐작할 수만 있었다. 엄폐 뒤에서 잠깐 몸을 내미는 순간마다, 작전 계획에서 정했던 경로와 보이지 않는 가시에 쓰러지는 경계병들의 움직임만으로 맨티코어의 현재 위치를 가늠해야 했다. 박사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어련히 납득했다. 완전 눈치 싸움이네.

"여기는 인사이더. 멈춘 것 같은데 문제 있어?"

[……저기, 11시, 드론.] 

씁, 말하는 사람이 안 보이는데 11시가 대체 어디야? 소음기로 억눌린 총성 한 번.

"방금 그거 맞아?" 

[응……계속 갈게……]

보이지 않는 맨티코어는 후방에 몇 남은 약탈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눈먼 날붙이를 허공에 휘두르려던 놈들은 인사이더의 탄환에 팔다리를 맞고 나뒹굴었다(그리고 맨티코어가 이미 쓰러뜨린 놈들에게도 한 방씩. 한창 아프신 중에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러게 착하게 사셨어야죠). 박사는 인사이더에게 소음기 장착을 지시했고, 맨티코어에게는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식각 탄환의 빈 탄피를 몇 개씩 떨구고 다니도록 귀띔했다. 공황에 빠진 도당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투명 산크타'가 그들 사이를 유령처럼 들쑤시고 있다고 넘겨짚기 딱 좋았다. 그 기상천외한 양반은 이 작전을 위해 며칠 전부터 주변에 괴담까지 뿌려 두었다. 괴담을 퍼뜨리는 제일 좋은 방법은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고, ‘선행 공연’에 불려나갔던 엠브리엘과 에단은 몇 달을 우려먹을 농담 소재를 얻었다나.

[들어왔어…… 이제 괜찮아.]

"좋아. 나오면 바로 말해."

이제 '투명 산크타'가 아직 바깥에서 도사리고 있다고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만 적당히 한 명씩 걷어내 주면 된다. 한숨 돌려야지. 인사이더는 잠깐 벽 뒤에 등을 붙이고 목을 축인 뒤 다시 상황을 살폈다. 

박사가 잡아준 위치가 퍽 명당이었다. 사무실으로 쓰였었는지 실내가 탁 트인 빌딩이었는데, 계단통 부분이 재앙으로 파괴된 탓에 적들은 아직 쓰지 않던 건물이었다. 그도 뒤쪽에서 접근해 창문에 로프를 걸고 들어와야 했다. 수호총의 사거리가 닿을 만한 높이면서도, 맨티코어를 보조하다가 몸을 돌려 다른 창문을 보기만 해도 페넌스와 비질 일행이 있는 진입로를 모두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박사의 안배다.

그러니까, 그쪽을 내려다본 것은 그저 한번 휘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끼 조의 상황은 안정적이었다. 비질의 원호를 받고 있는 페넌스 ― 라비니아는 괜찮아 보였다. 망치에 팔 한 짝이 부러진 전투원 두엇이 그의 발아래에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괜찮아 보였다.

페넌스를 감싼 아츠 보호막이 적 석궁병의 석궁을 주인에게 매섭게 돌려보냈다. 보호구 위에 꽂히는 자신의 화살을 보고 적이 주춤하는 새에 비질이 다루는 흐릿한 짐승이 뛰쳐나가 석궁병의 가슴팍을 밀쳐 넘어뜨렸다. 나동그라진 적이 여전히 부여잡고 있던 석궁에 비질의 탄환이, 아니 저거 총이 아니랬지, 아츠가 날아가 꽂혔다. 산산조각나는 무기를 본 적은 짐승의 발아래에서 저항을 포기하고 늘어졌다. 오퍼레이터들이 그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방금 그건 충분히 죽일 수 있었는데. 패밀리의 도련님이 불살이라.

인사이더는 유령 시늉을 더할 겸 우타게에게 향하는 적 하나의 다리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엄호해야 할 사람은 우타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페넌스가 잠시 옅어진 방어막을 가다듬는 틈을 타 다른 화살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들어올린 건틀릿에 미끄러진 화살촉은 페넌스의 뺨을 긋고 머리칼 몇 올을 끊어냈다. 저격이 있나? 인사이더는 빠르게 시야를 훑으며 총을 고쳐쥐었지만 이쪽에서는 저격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먼 곳에 있는 페넌스의 목소리가 인사이더의 귓가에도 들렸다.

[2시 방향 고지대에 사수. 에이프릴, 지원 부탁합니다.]

[대기 중이야. 박사, 진입 위치 잡아줘!]

[괜찮겠어, 누나?]

[문제 없습니다. 그냥 스쳤어요.]

목소리는 침착했다. 한 줄로 시작된 선혈이 금세 뺨을 칠하고 목깃 안으로 줄줄 흘러들고 있었지만 라비니아는 통증을 느끼는 기색조차도 없었다. 익숙해 보였다.

라비니아는 끝끝내 시라쿠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가를 감내하며. 억세지고 닳고 혹독해지며. 폭력 없이는 한 걸음을 내딛을 자리도 얻어낼 수 없는 부조리한 땅에서, 미래에 흐를 피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 손에 피를 묻혀 살아남아야 한다는 역설을 견뎌내며.

내가 라테라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리켈레 콜롬보는 아주 잠시, 이상한 생명체인 듯 자신의 수호총을 내려다보았다.

[목표 파괴…… 철수할게.]

정지는 지극히 짧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한들 눈치채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 찰나의 산란함을 통신이 퍼뜩 깨웠다. 그제야 소스라치며 피가 식었다. 미쳤어? 전장에서 무슨 딴 생각이야?

천만다행히도 상황에는 문제가 없었다. 맨티코어의 목소리는 가냘팠지만 일처리는 확실했다. 몇 남아 있던 드론들이 휘청거리며 사방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박사의 지시가 이어졌다.

[맨티코어, 잘 했어. 인사이더, 로프 내리고 나와서 맨티코어와 합류해.]

"확인했어. 바로 갈게."

인사이더는 지체없이 몸을 돌리는 동작과 동시에 장비가 든 아타셰 케이스를 채어들었다. 뒤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투의 소음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인력을 무시했다. 폐건물의 마룻바닥에 굴러다니는 널빤지와 돌조각 사이로는 끊어낸 생각들의 조각이 버석거리며 밟혔다. 밑창에 끼인 잡상들을 빼내려면 꽤 억센 솔질이 필요할 것 같았다.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의 갑판은 공중수송기의 이착륙보다는 오퍼레이터들의 산책과 운동 코스로 훨씬 자주 쓰인다. 지상 함선의 구조 때문에 로도스에서 손바닥만한 유리창이라도 있는 선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늘을 보고 싶거나 여과기에 걸러진 무표정한 공기가 아닌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선택지는 갑판뿐이다. 그렇기에 맥주캔을 헐렁히 들고 밤중의 갑판 끝에 걸터앉은 산크타 하나의 모습은 딱히 유난스럽지 않았다.

달들이 어두운 날에 누구의 나라도 아닌 황야는 순수한 검은색으로 씻긴다. 황야의 지상에는 지면의 윤곽을 구분할 광원이 없으니까. 박명의 마지막 기척이 지평선에 드러낸 구름이나 험하게 솟은 오리지늄 결정의 실루엣마저 없다면, 본함에서 내려다보는 황야는 밤바다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리켈레는 바다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먼발치였지만. 볼리바르의 가짜 바다나 시에스타의 손바닥만한 해변 말고 그 까맣고 괴괴한 바다. 언젠가 그것을 사랑하고 터전으로 삼고 정복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개념은 오래 전 실패한 농담 같았다.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집행자 생활이 그에게 준 것 중에는 ‘바다 같다는 비유를 동원할 권리’도 있는 것이다. 이쪽이 차라리 더 흥미로운 농담이다.

벌써 몇 년이나 일했더라, 무심코 돌이켜 본다.

나는 언제부터 라테라노인이었더라.

“동석해도 될까요?”

정중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돌아보자 라비니아가 눈인사를 건넸다. 한쪽 뺨에 긴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리켈레와 마찬가지로 500밀리짜리 맥주캔이 하나. 무어라고 따지고 재는 짓을 다 부질없게 만드는 모양새다. 패배한 인사이더는 한쪽으로 고갯짓해 보였다.

“앉아. 이 넓은 데서 어떻게 찾았네.”

“우연히 날개가 눈에 띄어서요.”

가리지도 못하는 신분증명서를 등에 달고 다니는 건 참 번거로운 노릇이다. 인사이더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듣고 계신다면 밝기 조정 옵션이라도 좀 주시죠, 주님. 역시 불신자 기도는 접수 안 하시나요. 유감 있으면 타천하라고요? 고려해 보죠.

라비니아는 코트 자락을 단정히 정리한 뒤 허공에 발끝을 늘어뜨리며 나란히 걸터앉았다. 사이에 한 사람이 넉넉히 앉을 수 있을 법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캔을 따는 청량한 소리가 났다. 그는 황야의 바람이 앞머리를 흩날리도록 둔 채 이따금 목을 축이며 검은 세계를 마주보았다. 그러다 충만한 피로가 배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앉으면 함선의 조명들이 시야를 덜 방해하는군요. 별이 잘 보이네요.”

“그래?”

되물음이 나올 만한 화제가 아니었기에 페넌스는 의아해하며 돌아보았다. 인사이더가 페넌스보다 시력이 나쁠 리는 없으니까.

“하늘을 보고 계셨다고 생각했는데요.”

인사이더는 픽 웃었다가 머리 위를 가리켰다.

“광륜이 밝으면 별이 거의 안 보여. 상시 광공해잖아.”

“……아? 그렇겠군요.”

“이게 재밌는 게, 그래서 라테라노 역사에선 동시대 다른 문화권에 비해서 점성학이 거의 존재감이 없어. 뭐가 보여야 궁리하든 말든 하지. 하늘 좀 보자고 매번 멀미 하면서 모자 쓰기도 웃기고.”

페넌스의 눈이 낯익은 호기심으로 밝아졌다. “흥미롭네요. 종족적 특성이 그런 식으로 학문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군요.”

Q. 여전히 역사 좋아해? 취향은 변한 게 없나 보네.

리켈레가 첫 번째로 떠올린 문장이었다. 즐거운 환담을 이어가기에 딱 적당하리라.

리켈레는 대부분의 대화에 적절히 둥글둥글한, 어떤 비밀도 드러내거나 건드리지 않고 누구의 마음도 거스르지 않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몇 시간씩 화기애애한 바닐라맛의 잡담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기만이나 무성의와는 정반대다. 헐렁한 수다로 만판 시간을 보내는 일을 즐기고, 상대도 그러기를 바라기에 기꺼이 대화의 유화제를 자처할 뿐이다. 워낙 익숙한 일이라 의식조차 거의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자신이 떠올린 대답에서 역함을 느꼈다.

"……"

광륜의 편리한 점은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 이유없이 함부로 구제받을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별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어둠에 얼굴을 숨기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이라는 양반은 산크타가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제 신민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려 보지도 않은 게 분명하다. 

리켈레는 자신을 설명할 단어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수치심.

그 가을을 즐거운 추억으로 곱씹고 싶어하는 자신에 대한.

"……아. 그냥 그 비슷한 게 또 뭐 있나 생각 좀 했어."

인사이더는 길어진 정적을 수습했다. 페넌스는 잠시 염려하는 기색을 했지만 내처 묻지는 않았다. 무슨 짐작을 하고 있을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짐작에 근거를 더해주기 위해 인사이더는 들고 있던 맥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언제 김이 다 빠졌는지 모르겠다.

시선이 좀처럼 이쪽에서 떠나지 않았다. 별이나 보지.

"뭘 그렇게 재밌게 봐."

"……죄송합니다, 문장이 눈에 띄어서요." 인사이더의 한쪽 어깻소매에 새겨진 라테라노의 문장 이야기였다. "당신이 공무에 몸담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즐거운 의외라고 해야겠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은 생각은 가득해 보였지만, 페넌스는 인사이더가 스스로 말하고자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존중은 피와 죽음들이 라비니아 팔코네의 많은 부분을 깎아내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은 고갱이일 것이다. 그 가느다란 것을 기어이 지켜낸 사람에 대한 경의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흘러흘러 오다 보니 이렇게 됐더라고."

이거 말고. 더 제대로 좀 해 봐.

"…… 이민 와서 학교 졸업하고, 잠깐 호위대에 있다가, 추천받아서 집행자로 이직했어. 처음엔 내가 무슨 집행자야 싶었는데 하다 보니까 제법 취향에 맞아. 외울 내용이 많아서 그렇지, 사람 대하는 거 재밌고…… 법이 있으면 순순히 법대로 굴러가는 게 신기해. 판사님한테 말하면 좀 염장 지르기인가."

10년이 넘는 시간을 요약하니 별것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적어도 가시밭길을 택한 판사 앞에서 떠들기에 그럴듯한 일은 없으니 이 정도 헐렁한 요약이 적당하다. 그런데 한참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페넌스는 입을 조금 벌린 채 벙한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캔을 이마에 부댈 만큼 허리를 꺾으며 폭소했다.

"아하하하하…… 아, 아아 네. 그건 정말 부럽네요…… 하하……"

대화 상대가 이렇게 웃으면 저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기 마련이지만, 인사이더는 그저 얼떨떨하게 지켜보았다. '공부'하던 시절에도 이런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 그때의 라비니아는 리켈레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매양 위축되어 있었다. 혹여나 멋모르고 리켈레를 상처입힐까 염려하느라.

눈물이 고일 지경으로 웃은 뒤에야 페넌스는 진정했다. 한결 개운한 얼굴이 된 그는 입을 축이고 캔을 곁에 내려놓았다.

"아아, 죄송합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나 보네요."

Q. 내가 잘 지내는 게 그렇게까지 의외야? 생존력은 나름대로 검증받았다고 생각했는데. - 이 문장도 기각이다. 그러고 나니 마땅한 화제가 잡혀 나오지 않았다. 느슨한 침묵이 불어왔다.

페넌스는 두 손으로 바닥을 괴었다. 그리고 아마도 별이 총총할 하늘로 눈을 향했다. 이쪽에서 보면 뺨에 붙인 반창고가 거의 가려진다.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광륜의 단점을 배려해 주기로 마음먹었거나. 그렇다면야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인사이더도 적당히 바다인지 땅인지 모를 황야로 시선을 던졌다.

왼편에서 단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옛날 얘기를 해도 될까요? 꺼리시는 것 같아서."

들켰네. "아냐, 언제적 일인데. 그냥 새삼스러워서 그래. 하고 싶음 해."

싫다고 말한들 상심할 사람이 아닌데도. 마음에 없는 소리, 마음에 없는 소리. 이어지는 라비니아의 말을 듣자마자 인사이더는 그 대답을 바로 후회했다.

"감사합니다. 제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이거든요."

리켈레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부서뜨린 자가 누릴 호사가 아니다.

그 새벽에, 그 열네 살 애새끼의 조그만 머릿속에 염치의 새싹 같은 것이라도 박혀 있었다면, 일생에 본 적 없는 그 고결한 영혼을 기어이 피웅덩이에 발담그게 만든 대가를 치렀어야 했다. 넋나간 소녀를 비웃어 주고, 놀려 주고, 뜯어먹을 것도 없는 녀석이랑 어울려 주느라 귀찮아 죽는 줄 알았다고 모질게 쏘아붙여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었어야 했다. 너 같은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선고를 얻어냈어야 했다. 리켈레는 걱정은커녕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기물이 되어, 라비니아 팔코네라는 소녀의 삶에서 송두리째 지워졌어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나누어 받은 친절에 보낼 수 있는 경의였다.

리켈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책임 앞에서 웃음에 숨어 뒷걸음질쳤고 라비니아에게 끝내 불가해와 부채감으로 남기를 택했다. 수치스러워해 마땅한 일이다. 그에게는 자신이 파괴한 것을 추억할 자격이 없다.

"이후에 당신을 찾아다니다가 교회에 가 보았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라테라노로 떠났다는 이야기만 전해들었었죠."

물론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소도시를 떠나는 날까지 라비니아의 시야에 옷소매 한 자락조차 들어가지 않도록 도망쳐 다녔으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나는 왜 찾았는데?"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지만."

"뭐, 지금 들어서 의미 있는 얘기면 지금 듣고?"

인사이더는 대수롭지않게 대꾸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어이없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지. 지금 일어났어야지. 술이 떨어져서 좀 더 갖고 올게, 라거나. 보고서 쓰는 걸 잊었네, 뭐 그런 식으로. 핑계라면 얼마든지 있잖아.

“그렇네요. 오히려 지금이라서 의미가 있겠죠.”

시선이 느껴졌다. 낱낱의 단어를 오래도록 세공해 다듬었을, 맑은 확신으로 모든 면이 반짝이는 목소리와 함께.

“당신은 선을 넘어 저를 침범한 것이 아니라…… 미망 밖으로 저를 안내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누구도 이 모든 일의 제삼자로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이런 진실한 말 앞에 고개를 돌린 채 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사이더는 결국 황야에서 눈을 떼었다. 페넌스는 조금 전까지 별빛을 담던 눈으로 바르게 이편을 보고 있다. 인사이더는 입을 열었고, 다시 닫았다. 주변에 다른 산크타가 없어 다행이었다. 이…… 형용할 수 없이 끔찍한 기분이 새어나가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까. 어색해지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건 당신이 스스로 배운 거야. 난 한 게 없어."

인정해야 했다. 자신은 라비니아의 상흔이 아니다, 이 존재는 그런 경험이 금을 낼 수 있을 만큼 무르지 않다. 그는 저항할 길도 없는 열네 살의 자신에게 현재의 수치심을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라비니아의 저 곧은 응시를 버거워하는 사람은 그 시절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이다.

(내가 집행자로 일하는 건 당신이 판사를 택한 이유처럼 무슨 소명의식이나 보람 때문이 아냐. 그저 라테라노에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당신은 시라쿠사를 바꾸기 위해 일하지만 나는 라테라노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며 일해. 이게 무슨 차이인지 모르지도 않잖아. 그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 눈은 뭐야. 내가 이걸 이해해야 해? 굳이? 생각은 일하고 먹고 살 만큼이면 차고 넘치지 않아? 내가 지금까지 뭐 뇌 빼놓고 살기나 했어? 언어 예닐곱 개랑 법전 수십 권을 머리에 구겨넣는 건 보통 일인 줄 알아? 나 하나 정도는 그냥 적당적당하고 무던한 인간으로 남으면 안 돼? 내가 뭘 더 해야 해? 뭘 더? 이제야 모든 게 좀 매끄러워졌는데?)

"그렇다 해도 저는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를 지금의 저로 만든 경험 중 하나니까요."

나는 이 존재의 심장을 구성하는 태피스트리의 첫 바늘자욱이었다고.

(어쩌면 내가)

(당신을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건가? 그 모든 가시밭길로부터?)

그리고 지금, 그 빚을 치르듯, 산크타는 밤 속으로 도망칠 수 없다. 하늘이 찢겨 열려 별자리가 무의미해진 세계에서도, 굴절된 별들은 여전히도 이상이며 동경 같은 근사한 단어들의 상징으로 빛나고, 그가 볼 수 없는 별이 깜박이는 밤하늘 아래 페넌스는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인사이더는……

인사이더는……

인사이더는……

인사이더는…… 마주 으쓱하며 웃었다. 그것 외에는 쓸만한 표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는 어쩌면 그 새벽으로부터, 여전히, 한순간도, 미래를 살아 본 적이 없다.







후기잡담

평소 후기는 인쇄 회지에만 씁니다만 이번에는 웹연성에 후기를 써야겠습니다. 왜냐면 분량이 40p를 넘었거든요... 카피본 개인지 분량을 썼으면 제게는 떠들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앞서 썼던 <율법에~> 나 <음악가, ~> 도 분량이 비슷비슷했는데, 이번엔 기어이 3만자를 넘긴 기념입니다. 겸사겸사 트위터 말고 글리프에서만 저를 보시는 분들께 인사도 할 겸...

반갑습니다, 단삭입니다(고정 템플릿 인사). 저의 작품내 크로스오버물 환각버섯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둘 다 시라쿠사 출신이니 어릴 때 마주친 적 있으면 재밌겠다~ 망상하기 시작한 게 어쩌다 이렇게…

  • 트위터 썰 초고에서 크게 가필하면서 특히 나이가 수정됐습니다. 원래는 더 어렸는데 글에서는 리켈레 14세, 라비니아 16세로 설정했어요(*둘 다 공식 나이 안 나왔음, 100% 날조). 이외에도 날조 설정이 꽤 많은데요, 뭐 이 환각버섯에서 설정고증을 신경쓰실 분은 없으리라 믿으며...

  • 공식의 리켈레는 구체적인 수치심에 시달리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멘탈의 맷집 자체가 강한 타입으로, 수치심이 인격을 구성하기보다는, 종종 상황을 관조하는 도중에 ‘씁 이게 맞나...’ 가 떠오르는 정도. 물론 이 정도의 자각도 라테라노인 중에선 희귀하겠지만요. 이런 정제된(혹은 억압된?) 감정을 수면으로 올리려면 역시 정반대의 인물과 맞부딪히는 쪽이 재밌죠. 원래 제가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쓰는 일을 즐겨서 좀 폭주했기도 해요. 평소의 캐해석보다는 채도와 명암을 많이 높여서, 만약 리켈레가 라비니아라는 망치를 정면으로 맞아 여유가 덜해진다면 이런 느낌으로 변하려나~ 정도로 밀어붙여 봤습니다.

  • 라비니아는 시라쿠사인에서도 그 고결함으로(+벨로네의 빽이라는 원죄로…) 주변의 범속한 사람들에게 회의와 자괴감을 일으키는 인물이잖아요. 하지만 고결함을 놓치지 않고 제자리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그들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요(그런 한계가 있는 면이 인간적이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리켈레야말로 범속하고 소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예 둘이 성인이 돼서 처음 만났다면 리켈레에게는 노련한 AT필드가 있어서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리켈레는 시라쿠사 출신으로서 볼시니 사건에 대해 감흥이야 느끼겠지만, 라비니아 개인에 대해선 ‘그 사람 대단하네’ 정도로만 여겼겠죠. 하지만 이 if에서는 과거편의 사건 때문에 라비니아의 고결함과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없는 탓에, 꼼짝없이 머리에 의사봉이 날아와 꽂히는 느낌... ㅋㅋㅋㅋㅋ 범속함은 죄가 아니지만 대쪽같은 라비니아 앞에서는 죄가 되어버리네요.

  • 라비니아 시점에서는 그가 법조인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를 보강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리켈레에게 이야기해줬던 학교에서의 경험 이야기는 페넌스 보이스파일에서 언급된 것을 약간 어레인지. 과거파트에서 라비니아답게 단정하면서도 아직 앳된 말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긴 했지만 결과물에서 딱히 티는 안 나는 듯...

  • 라비니아의 가족 같은 배경 관련 언급은 일부러 최대한 뺐습니다. 날조의 폭이 너무 커지기도 하고(이미 이 글을 시작한 시점에서 날조의 특이점을 넘은 것 같긴 합니다만), 라비니아와 리켈레의 대조에서 가족의 유무는 초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 수치심은 개인의 기준으로 수렴되는 감정이라면 부채감은 상환이라는 행동을 요구하는, 외부의 대상과 원인이 훨씬 구체적인 감정인데, 공공과 정의에 헌신하고 싶은 의지가 확고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라비니아에게는 후자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 말투 관련으로 제일 즐거웠던 부분은 리켈레>라비니아 호칭이 ‘너’에서 ‘당신’으로 바뀌는 점. 일본어로 쓴다면 아나타 말고 안따.

  • 고생했던 부분은... 임무 씬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천재 전략가의 작전 어떻게 쓰냐. 결국 적당히 뭉갰으니 흐린눈으로 봐주세요. 아무래도 노메딕 플레이를 즐기는 독타인 듯.

  • 글을 쓰면서 들은 곡: Mot - 날개, 언니네이발관 - 가장 보통의 존재, 자우림 - 영원히 영원히, 장기하 - 마냥 걷는다 ... 어쩐 일로 다 국내 가수지?

라비니아와 리켈레 둘 다 명방 최애라인의 오퍼들이라 여러모로 정말정말 즐거운 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한동안 페데리코 연성을 쏟아내느라 다룰 일이 없었던 감정묘사를 신나게 쓸 수 있어서 상쾌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논컾으로 쓰긴 했는데, 이건 컾으로 필터링되더라도 어쩔 수 없네 싶은 내용으로 뽑히긴 했네요. 필터링하면서 읽으셔도 괜찮습니다(이 글 자체를 커플링 연성이라고 확정하는 발언만 삼가주십사).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즐겨요 이 환각.

후기란 걸 너무 오랜만에 써서 신났네요. 후기(x) 내연성으로 합법적으로 썰풀기(o)

명방 웹연성이 200p 넘게 쌓이면 웹재록본을 내겠다고 말했었는데, 이제 거의 다 채웠습니다. 1월 디페스타와 4월 오락관 부스를 잡았으니 머지않아 오프에서 뵙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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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딩하는 인면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 인게임 미니 스토리에서 본 것 같은데…… 라고, 절로 생각하게 되는 글이었어요. 어라 진짜 왜 없지…… 단삭님의 글은 캐릭터 오시가 아니여도 읽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후크마스터보다 더한 당김력(?)이 이런 것일까요? 행사 오시는 것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특별한 오리너구리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캐해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리켈레가 세상 돌아가는 게 뻔하다고 말하는 문장에 오타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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