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귀찌

박사x팬텀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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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얇은 금속이 억지로 살덩이를 뚫고 파고든다. 부드러운 살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물질의 침입을 받아들었다. 그대로 천천히 은빛에 꿰어 눌러 들어간다. 뚜득 거리는 감각이 든다. 소리였을까? 망설임과 여러번의 시도를 거듭한 거 치고는 사람의 살점은 싱거울 정도로 상처는 손쉽게 났다. 어디를 잘못 찌른건지 아니면 이 시도가 한 번에 뚫지 못한 탓인지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가 천천히 검은 장갑을 타고 흘러내려 흰 옷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꾹 눌러 감은 눈은 뜰 기색이 없었다. 아파서 미간을 좁히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가만히 뚫린 귀를 보다가 천천히 소독약과 면봉을 챙겨왔다. 연고도 바르고 싶지만 기껏 뚫었는데 약으로 치료가 되면 곤란해져서 조금 망설이더가 두고 왔다. 면봉에 소독약을 바르고 은침이 파고든 곳과 귀 주변이 천천히 문지른다. 따갑고 아플 것 같은데... 소독약은 붉은 색이라 피와 서로 섞이더라도 구분가지 않는다. 완전히 검붉게 변해버린 면봉을 내려놓고 새 면봉을 들어 소독약을 구석구석 발라간다. 뚫기 직전의 알콜솜으로 문질렀을 때가 더 반응이 생생했던 것 같은데. 고통을 받아들이는 그는 무감각해서 오히려 죽은 것만 같다.

“따갑지 않아?”

대답은 없었다. 그대로 흐르는 피를 내버려 두고 나머지의 한 짝을 들었다. 역시 이렇게 손으로 뚫는 것 보다는 다른 방식이 더 깔끔하고 예쁠텐데. 하지만 상대방은 미용이나 예쁘기 위해서 귀를 뚫는게 아니다. 지금 억지로 살을 밀어내고 헤집어 파고든 귀걸이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아름다운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보석이나 흔한 가짜 큐빅 혹은 그저 반짝이는 광택의 모습 조차 갖추지 못하고 그저 둔탁한 이질감만을 주변에 흩뿌리고 있었다.

아름답지 않다.

아마도 이 귀찌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 게 분명했다. 손끝으로 나머지 한 짝의 귀찌를 만지작 거린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것 말고 반짝이는 형태를 주고 싶은데. 상대방은 그런 것을 극구 거부할 게 분명했다. 시선을 내리자 손목에 적적하게 감긴 붕대가 눈에 들어온다. 흉터는 생기지 않을거야. 하지만. 차라리 흉터를 주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알콜솜으로 귀를 가볍게 다시금 닦고, 남은 귀찌를 다른 쪽 귀에 대고 살포시 눌러보았다. 적어도 아까와는 다르게 한 번에 뚫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이 귀찌 끝의 날카로움을 생각한다면 한 번에 뚫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지 그래. 그런데.

“자.. 잠시만.”

결국 살짝 피부를 긁어 붉은 자국만 남기고 손을 다시금 내리고 만다. 흰 귓볼에 남은 붉은 점. 살짝 스며나오는 피는 마치 보석처럼 매달렸다. 아름답다. 흰 피부 옆으로 거미줄 처럼 퍼져나가려는 피를 보다가 다시금 바닥을 더듬어 알콜 솜을 들어 귀를 꽉 눌렀다. 이런 손쉬운 작업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서툴기 때문이고, 또 마음가짐이 혼란해서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다.

살짝 옆으로 돌린 눈에 그제아 제대로 뜬 금안이 자신을 마주한다. 그 눈동자 속에 비치는 나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만 있다. 상처 입는 것도 상처를 원하는 것도 그인데 왜 내가 이렇게 힘들까.

“피 멎고 다시 하자.”

대답없는 얼굴은 다시 눈을 감는다. 꾹 누르는 손가락의 끝이 파르르 떨렸다.

팬텀은 수시로 손목을 긋는다. 그 손목을 긋지 않도록 선택한 게 지금 이 귀찌다. 피부에 상처를 입히고 팬텀을 아름답지 못하게 손상을 준다. 그 손상은 스스로 가하는 행위에서 벗어날 뿐더러, 직접적으로 타인의 평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 팬텀이 마음 놓고 스스로를 망가트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왜 내가 뚫어주고 있지?

내가 정말 묻고 싶다. 하지만 팬텀은 그저 고집스럽게 내가 해주길 바란다고 쫓아왔다. 사무실, 식당, 숙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물론 화장실의 문을 연건 아닌데 옆에서 똑똑 두드리고 갑자기 말을 걸어오면 솔직히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까. 물론 팬텀은 설명을 하기 싫은게 아니라 못하는 게 가까웠다는 거 이미 알고 있다. 팬텀이 자신을 찾도록 허락하는 것도 나 뿐이고 치료나 다른 행위를 가하도록 허락하는 것도 나 뿐이다. 평상시에는 이런 특별함이 기쁘고 좋은데 이런 상처주는 일이 되어버리면 고역이 되고 만다. 도대체 사무실에서 앉아서 명령만 내리는 만년 운동부족 섬세함 부족인 인간에게 뭘 바라는 거야. 울고 싶다.

팬텀의 목적은 단장의 작품에 흠결을 남기는 거고, 나의 목표는 팬텀에게 상처가 나지 않는 거다. 그런데 이거 내가 상처 내고 있잖아. 나만 손해잖아. 그렇다고 방치하면 또 손목을 그을지도 모르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알콜솜을 때내고 피가 멎은 귀를 살펴보았다. 살짝 부운 것 같지만 뚫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시금 귀찌를 들고 귀에 살풋 올린다.

그리고 속으로 진정하기 위해 한창 이것저것을 읊었다. 광석병 진정제 성분. 제조 방법. 유통과 판매… 아니 이거 있잖아 엔지니어 오퍼레이터들에게 이야기하면 간단하게 뚫는 도구 정도는 뚝딱 만들어 주지 않을까? 그전에 미용에 관심 있는 오퍼라면 꽤나 괜찮은 전용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걸 굳이 이렇게 맨손으로 뚫어야 하나?

“박사.”

한참을 가만히 표면에 두고 머뭇거리자 결국 팬텀이 말을 걸어온다. 고개를 슬쩍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다시 숙인다.

“왜.”

“내가 직접 하겠다.”

아니 그게 더 싫거든요. 손목 긋는 것처럼 대충 위치도 안 맞추고 푹 찍 할거잖아.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잘게 조각내고 필요한 모음만 모아서 차곡차곡 다시 단어를 쌓는다.

“내가 할게.”

응. 그런데 사실 못하겠어. 내가 한다고 대칭이 맞을 것 같진 않아. 그런데 이건 아름다움을 떠나서 내가 용납을 못할 거 같아…. 설마 이걸 알고 노려서 나에게 부탁을 한건가? 살짝 눈을 부라리고 팬텀을 바라보지만 순한 눈동자에는 어떤 음흉한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오히려 지금 팬텀이 나의 눈동자를 보고 오해를 쌓고 있을지도 모르지. 허…. 이쪽에서 도리어 눈을 감아버린다.

“박사?”

그리고 예고도 없이 손을 꾹 눌렀다. 위치는 대충 맞았으니 잘 될거다. 뚜득 다시금 가죽이 뜯기는 소리가 나고 귀찌는 손 쉽게 살점을 가르고 파고 들었다. 그리고 뚜드득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난다. 뭐지 설마 뒤에 있는 내 손을 찌른건가. 헐레벌떡 눈을 뜨고 손끝을 내려보지만 팬텀의 피 말고는 장갑에 뭔가가 걸리거나 뚫린 건 없다. 그렇다면?

“…”

“…”

“미안!”

팬텀이 나를 부르는 찰나의 귀찌를 박은 모양인지 팬텀은 혀를 거하게 씹은 모양이었다. 입가로 핏물이 뚝뚝 흐르고 다소 당황한 듯한 팬텀이 핏기 없는 안색으로 눈만 깜박인다.

“입 열어!”

도리도리

“아니. 지금 혀 씹은 거잖아!!”

… 도리도리

분명 방금 머뭇거렸다. 귀는 내버려두고 지금 입안을 확인해야한다. 피묻은 장갑은 바닥에 두고 한 손으로 팬텀의 턱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엄지로 대충 슥슥 피를 닦는다. 마치 연지라도 바른 것처럼 흰 피부 위로 번지는게 웃기고 약간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팬텀은 뭘 해도 예쁘다.

“입 열어.”

도리도리

그리고 꿀꺽 목울대가 울렁하고 움직였다. 피삼킨거지 이거? 아니면 잘린 혀 살점이라던가? 전자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후자라면 큰일이다. 살점이 남아있어야 치료가 쉽게 가능하다. 팬텀이 아무리 회복 속도가 빠르더라도 있는 살점 연결하는 거랑 없는 살점 차오르는 건 전혀 다르다.

“다시 말하는데, 좋게 말할 때 입 열어.”

도리도리

정말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이 쌔다.

“내가 뭔짓 하기 전에 열어.”

도리도리

그래서 입 안여는 나보다 힘도 키도 육체 능력도 좋은 오퍼레이터가 거부하는데 뭘 어떡할건데? 내가 할 수 있는게 있나?

“경고했다.”

당연히 할 수 있는게 있다.

"사과도 할게.“

그대로 손날을 들어서 아무 예측도 못하는 팬텀을 보고 목젖을 그대로 후려친다.

이정도로는 상처 안난다. 팬텀에게 상처만 안주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착각이다. 나는 정말로 팬텀이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애완동물이 삼키면 안되는 걸 막는 조치를 했을 뿐이다. 갑자기 목젖이 눌리자 팬텀은 거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커헉 케헉

그리고 입안에 담긴 피는 그대로 내 얼굴이 쏟아졌다. 아. 페이스 가드 쓰고 있을 걸.

“실례!”

그냥 통보 하듯이 말하고 그대로 입안에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혀를 더듬고 볼살을 살살 문질러 본다. 의외로 혀는 다치지 않았어. 왼쪽도.. 볼살이 씹힌 것 같지는 않군. 오른쪽은… 살짝 씹히긴 했는데 잇자국 뿐이야. 그렇다면. 손가락으로 혀 아래를 들쑤시고 팬텀이 움찔 할때마다 피 묻은 얼굴로 그를 노려본다. 그러면 팬텀은 기가죽어 순하게 다시 촉진하는 걸 입을 벌리고 피와 타액을 흘리면서 수용해줬다.

“아랫 입술 뒤를 잘라먹었네?”

말을 하고 싶지만 입안에 있는 손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대로 상처나서 피를 흘리고 있는 곳은 꾸욱 눌렀다. 입안은 안그래도 더 회복속도가 빠르니 굳이 치료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거다. 하지만 비어서 한 뭉텅이가 비어있는 부분이 손끝에서 느껴지자 골이 땡긴다. 삼키지 않았으면 더 회복이 빨랐을텐데. 당분간 자극적이지 않고 앞니로 씹지 않아도 되는 음식만 먹여야겠다. 머리속에 순식간에 팬텀을 위한 식단을 짜다가 겨우 피가 맺은 것 같아 손을 때었다. 손톱 아래도 손가락도 얼굴도 피범벅이다. 그냥 귀 하나 뚫으려고 했는데 피를 너무 많이 본다.

“…미안..하다…”

“말하지마 상처 터져.”

그리고 손수건에 피를 슥슥 닦고 귀를 뚫은 귀찌를 그제야 다시 보았다. 피는 멎었고 들러붙었다. 그리고 바닥에 쏟아진 소독약을 본다. 엉망진창이구만. 간신히 소독약을 들어 면봉에 묻히고 귀에 샥샥 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콜을 묻히지 않는 솜을 팬텀의 입안으로 잔뜩 쑤셔넣어 주었다.

“꽉 물고 있어. 너 지금 엄청 얼굴 이상해. 알아?”

팬텀은 약간 기분이 좋아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에 솜을 꽉 머금는다. 지금 본인 못생겨 보인다고 만족하는건가 저거. 뒷골에서 목까지 당기는 느낌에 짧게 심호흡 하고 다시 귀찌를 소독한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입안을 치료하는 약품을 하나 떠올렸다. 팬텀이 아무리 고통을 인내하는 데에 능숙하더라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약을. 그리고 1초만에 생각을 그만두었다. 역시 나는 팬텀이 상처받거나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간의 느린 회복을 하게 되더라도 고통이 좀 누그러졌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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