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즈미 일반 오타쿠의 덕질 회고

마유즈미 일반 오타쿠의 회고록.

주절주절.

과격발언 있습니다.

졸업 라이버 언급이 많습니다.

아이돌리ㅅi세븐 5부의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작성자의 주관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시작

2년.

지났다.

내가 마유즈미를 알게 된 것이 대충 20년도의 7월 즈음이었으니, 그를 보던 시간과 그가 없이 지낸 시간이 같아졌다 할 수 있다.

니지산지를 알게 된 건 20년 4월 즈음. 오토기바라 에라의 트위스테 가챠 영상이었다. 트위터에서 광기어린 목소리를 담은 클립을 보고 포복절도한 후, 채널을 뒤져 보니 버튜버여서 놀랐던 게 아직 생생하다.

"에엥 버튜버? 뭐 요즘 유행하던 거 같은데... 난 평생 접할 일 없을 듯." 이랬었기 때문이다.

아! 버튜버에는 이렇게 재밌는 사람도 있구나? 잼얘 하이에나답게 즉시 유튜브로 향해 오토기바라 에라가 올린 최신 영상을 다 봤고, 뭐 더 없나 쩝쩝...하다가 추천 영상에 푸치산지가 있어 올 귀엽네 이게 요즘 식 오타쿠 컨텐츠인가?하고 90여개 있던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다 보고, 추천영상 개미지옥(a.k.a. 버 오타쿠 될 때까지 못 나가는 방)에서 허우적대다가, 그러다가. 그러다가.

0명 토츠마치를 봤다.

처음부터 레이더가 빠릿하게 반응한 건 아니었다. 니지에는 재밌는 라이버가 수없이 있었고, 마유즈미는 그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엿됨을 짐작한 건 니지산지의 유명한 클립을 웬만큼 다 봐서 이미 봤던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다른 건 수십번 봐서 외울 정도가 되면 아무리 그래도 질렸지만, 마유즈미의 0명 토츠만큼은 안 질렸다. 몇 번 봐도 웃겼다. 진짜로. 사실 지금도 웃김.

마유즈미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방송은 아니었다. 마유즈미의 자학에 이어 집단으로 모두가 분위기를 읽고 한 마디씩 보태서 만들어지는 예술적인 개그. 어쩜 이리 쓸데없는(웃긴) 짓에 다들 협조적인지.

니지산지란 이런 그룹이구나. 이렇게 웃기고, 바보 같고, 이상한 짓을 온힘을 다해주는 집단이구나. 나는 리플레이 수만큼 점점 점차 점진적으로 니지산지가 좋아졌다. 그리고 그 중심점엔 마유즈미가 있었다. 이리저리 바삐도 다닌 마유즈미는 어디서나 출몰해서 재밌는 걸 해줬다. 니지산지가 좋아. 니지산지에서 재밌는 일을 만드는 마유즈미가 좋아. 어느새 마유즈미의 생방송을 챙겨보고 있었다. 니지산지의 대규모 기획 방송도 챙겨봤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최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청춘을 니코동과 함께 지낸 내게 게임 실황자는 웃기는 아저씨, 웃기는 언니였고, 본인 모에화는 뭇매 맞아 마땅한 일이었으므로. 사랑한다고 하면 강퇴당해도 싼 녀석이었으므로.

그 다음해 3월에 오토기바라 에라는 졸업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전해들었다. 나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졸업 방송을 보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마지막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인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말이든 나는 상처 입을 게 분명했으니까. 상처 입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고만 싶었다.


● 살려주세요! 사람이 갇혔어요! .........제 마음 속에 성인 남성이요.

재밌어서 본 마유즈미는 재밌을 뿐만 아니라 유능했다. 연기를 잘하고 머리가 돌아가고 블랙조크에 능했다. 굉장해. 게다가 보다보니 녀석의 섬세한 부분이 보였다. 지금에 비하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니지산지의 해외사업도 홍보하고, 이치카라가 하던 유메노그래피아 프로젝트도 홍보하고, 니지산지 어플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 써보고 피드백하고, 이치카라가 뭔가 해보자고 하면 일단 힘 실어주고, 신인이 들어오면 상담 들어주고 시청자에게 알려주고.

보통 스타트업 회사에 이런 사원이 있으면 안 된다. 사측의 눈이 높아져서 다른 사원들에겐 왜 이정도도 못 하냐고 갈구기 때문이다. 마유즈미는 만약 같은 회사에 있었으면 님 받는 것도 없음서 왜케 열심히 일함?  사측이세요?했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이치카라에 다니지 않았으므로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볼 뿐이었다. 아, 녀석 열정이 넘치는군. 합격. 서울대도쿄대하버드 어디든 수석 합격. 당연히 내 마음에도 합격.

그래 이제 인정할 때도 되었다. 마유즈미는 이미 깊게깊게 스며들었다. 최애였다. 틀림없이.

이쯤 되니 니지 전체에서 특히나 마유즈미 주변의 라이버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블루즈, 메샤, 보건실조, PP조, 갓카이, 무카시나지미, SF조.

아카이브 포함한 모든 방송을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방송은 시간이 비면 그럭저럭 챙겨보게 되었다.

이즈모 카스미의 프로젝트가 종료된 20년 10월은 내가 그렇게 마유즈미 주변에 점점 흥미를 넓혀가던 중이었다. 나는 아직 존재조차 알지 못 했던 인공지능의 마지막 방송에 도달하지 못 했다. 이즈모 카스미는 니지산지를 떠났다. 끝까지 마유즈미 카이를 다해주세요. 마유즈미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 심각한 버추얼 중독입니다 흥 웃기는 소리, 다음 방송 대기소 언제 줌?

20년도 말부터 21년도 초까지는 단언하건데 메샤 덕질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하루 건너 하루 뭔가 있었다. 셋이서 모이는 일은 적어도, 셋 중 둘이 뭔가 하거나, 아니면 셋 모두가 대규모 콜라보에 섞여 놀거나, 그것도 아니면 솔로 잡담에서나 게임방송에서 언급을 하거나, 트위터에서 멘션 보내거나.

이때는 메샤가 어색서먹했던 시기를 지나 서로를 알아가는 시기도 지나, 자기들끼리 술 마시며 얘기하다가 즐겁다고 새벽에 냅다 게릴라 방송을 때려버리는 사이가 된, 그런 때였다.

한편 니지산지는 미친듯이 인기가 올랐다. 버튜버 업계는 코로나의 유행과 비례하듯 성장했다. 쿠즈하의 구독자가 90만명을 돌파하고 100만명을 바라봤다. 매일같이 누군가가 nn만명 기념 방송을 했다. 2차창작 태그는 언제나 북적였다.

유입이 많았다. 여성 시청자가 많아졌다. V는 남성향이라는 인식이 소멸했다. 원래부터 있었던 남성 버튜버의 수요가 천장을 모르고 올랐다.

"그룹"이나 "유닛"에 대한 수요도 그랬다. 그때 존재하던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남성 유닛은 토가비토, 쿠로노와, 리아이즈, 발츠. 청소년대보다 위까지 포함하면 마이리키, 더블슬리브. 아라란. 등등.

그래도 수요에 비해선 인원수가 적었다.

자칭 3군 집단인 메샤도 수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도 수요를 늘린 한 사람이었다. 아키나와 마유즈미, 마유즈미와 후와, 후와와 아키나, 셋 중 둘만 있어도 멧셔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빠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곤 했다. 메샤는 해피아워에 불렸다. 화데 보이스의 표지를 맡았다. 핸드로션이 나왔다.

5월, 토코로야마 교수가 삭제되었다. 마유즈미가 사라졌다.

5월 말, 신유야가 졸업을 발표했다. 마유즈미가 KR과 교류했기 때문에 난 KR도 퍼먹고 있었다. 게다가 유야는 신의상 방송 직후였으며 10만 구독자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절대, 졸업하지 않는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나는 오시 둘을 잃는다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토기바라 에라의 졸업 이후 애써 모른 척 했던 버튜버의 찰나성이 뇌를 태웠다. 그땐 졸업하면 아카이브를 삭제하는 게 디폴트였다.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좋은 시간들이 사실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단, 무능력함에 대한 두려움이라 해야 적당하다. V들이 방송을 켜는 한 나는 신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무엇이든 알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넘겨버리면 되고, 좋은 것만 골라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가.

실제로 주도권은 V에게 있다. 방송을 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나는 그저 보고 있던, 아무 권한도 없는 그저 사람에 불과하다.

차라리 완전히 허구라면 그렇지 않다. 만화, 소설, 게임, 창작물이라면 언제까지고 나만의 상상에 들여놓을 수 있다. 그러나 V는 살아있었다. 인권이 있었다. 나는 최애의 한 조각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버렸다.

착각 속에 빠져있다 깨어난 기분은 어떤가. 더는 좋아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아, 역시 그만두자. 이렇게 힘들 줄 알았나. 살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내 마음대로 날조할 수 있는 창작물이나 봐야지.

그러나 그만두는 게 마음대로 됐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다.

리터럴리, 작심삼일이었다. 후와 미나토가 퍼즐겜을 하길래 3일만에 다시 니지산지를 봤다. 재밌었다.

결국 못 끊은 채 6월 말이 되어버렸고, 나는 마유즈미가 공지한 6월 마지막날 생방에 들어가며, 이걸로 끝내자고 생각했다. 진짜로 마유즈미가 사라진다면 그만두자. 모두 그만두자. 내 인생에 버튜버란 없었던 거로 치자.

덧없는 결심을 했다.

마유즈미 카이는 마유즈미 카이를 리스너에게 맡겼다. 의지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운명의 투표는 50대 50. 2명 차이. 마유즈미는 영혼의 소재를 알았다.

나는 무력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면 닿았다. 설령 그게 탭 한 번이라도, 버추얼인 그들에게 닿고,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다.

설령 마유즈미가 사라지더라도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분명 존재했던 내 한 표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걸로 됐지 않은가. 유튜브의 서버에 그들의 흔적이 한 픽셀도, 1바이트도, 남지 않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되지 않은가. 더이상 재생할 수 없어도, 곱씹을 수는 있다. 추억으로서.

마음 졸였던 만큼, 울었던 만큼, 카타르시스는 컸다. 아, 다행이다. 포지티브한 마음이 돌아오고, 나는 여러 번 모든 경과를 되돌아보았다.

6월 중순, 신유야는 예정대로 졸업했다. 나는 마지막 방송을 보지 않았다. 그날엔 트위터도 하루종일 보지 않았다. 이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집요하게 피했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놓고 마유즈미가 돌아온 이후로는 모든 것을 떨쳐내었다고만 생각했다.

21년도 여름은 단언하건데 메샤 덕질하기 가장 좋은 때였다. 메샤 보이스가 나왔다. 최협에서 장난치고 놀았다. 고백하자면 사실 메샤한테 덕질하기 좋지 않은 때는 없다. 모든 순간이 최고였기 때문에.

마유즈미가 돌아오고 나서 메샤는 한층 사이가 끈끈해진 듯 했다. 이젠 사이 좋은 것을 숨기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전엔 친하다 그러면 좀 부끄러워하지 않았니 얘들아? 특히 후와 미나토. 옛날엔 친해보이긴 해도 정석적(?) 테에테에는 안 해주는 인상이었는데 왠지 여기저기서 메샤를 언급하고 다니는데다 아키나랑 마유즈미만 하던 질척거리기를 보여주었다... 

커버곡의 MV에 우정출연 넣어주기까지. 테에테에 금수저 그룹을 판다면 에이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싶을 수 있지만 정말 자칭 비즈니스, 자칭 3군, 자칭 인공 테에테에 집단 밥집을 먹다보니 그만 노도의 공급에 실신하고 만 것입니다.

아키나와 마유즈미도 후와의 라디오체조에 첫빠로 나타나준다거나 자주 가주거나 동료들에게 가달라고 하는 등 데레를 보여주었다... 옛날이었으면 뒤에서 응원만 하고 안 갔다...

즐거운 나머지 계정을 팠다. 니지산지 한국 팬덤은 아직 손도 발도 작았다. 이때까지 한국에서 인지도 있는 버튜버라고 하면 키즈나아이, 홀로라이브의 몇몇이었다. 아직 어디 가서 버튜버 판다고 하면 희한한 눈으로 봤다. 인방의 진화판 아냐? 아ㅍ리카처럼 불건전한 거 아냐? 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으나 이해하고 용서한다. 왜냐면 그때 왜 파냐고 했던 사람들 어차피 지금은 버 하나씩은 파니까.

세 달은 열심히 놀았다. 마유즈미는 의욕적이었다. 전에 안 하던 요일 잡담 방송도 잡고, 기획도 이것저것 하겠다고 하고, 공식 방송에도 나오고, 대회도 나오고......

10월. 마유즈미의 목소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지친 기색이 보였다. 안 하던 지각을 했다. 늦잠을 잤다. 잡담을 켜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방송을 취소했다.

나는 걱정스러웠다. 무슨 일 있나. 독립한다더니 힘든가. 누가 괴롭히나. 혹시 주위 사람 중에 안 좋은 일 당한 사람 있나. 아니면...... 여러 생각이 다 들었다.

아 내가 너무 걱정하는 건가. 과보호하는 리스너는 민폐라던데. 억측은 하면 안 되는데.

마유즈미가 방송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지 걱정되고, 마유즈미가 방송을 켜주면 잠깐 안심하다가도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또 걱정스러운 나날이었다.

마유즈미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트윗이 올라왔을 때, 그제서야 안절부절 못 하던 마음이 멈췄던 기억이 났다. 슬프고, 안쓰러웠으나, 불안은 사라졌었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끔직한 것까지 모두 상상했었기 때문에. 병원에 다닌다는 건 뒤집어 말하자면 케어를 받는다는 것이었고, 적어도 의사 선생님은 마유즈미를 지켜봐준다는 것이었다. 마유즈미가 정했다면 괜찮아질 때까지 변치 않고 쭉 응원하면 되는 일이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얼마든지. 10년이든, 20년이든.

마유즈미는 곧 돌아왔다. 찰나에 불과했다. 눈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바쁜 버추얼 세상에선.

돌아오고 난 후엔 목소리에 힘이 있어서 굉장히 안심했었다.


● 갓 지은 테에테에: 식기 전에 드세요

21년 말부터 22년 초는 바야흐로 메샤 덕질하기 좋은...어쩌구.

사실 22년도는 꽤나 어수선했다. 년도 시작부터 유메노그래피아가 서비스를 종료했다. 4월에 ID와 KR이 통합되고, 더이상 멤버를 모집하지 않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오디션도 취소한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KR멤버 여럿이 졸업했다. 와라베다가 졸업했다. 메리사가 졸업을 발표했다.

그런 가운데 에니카라는 상장 기업이 된다고 했다. 그 소동 안에 있었지만 나는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에니카라 욕을 하긴 했지만)

마유즈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행복한 오타쿠가 그렇듯이 최애로 이너피스를 얻었다. 하 어쩜 이렇게 생긴 애가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좋은 발음으로 이렇게 똑똑하게 미칠 거 같은 블랙조크를 칠 수 있지.

게다가 메샤를 해줬다. 밥집이 아니라 메샤를 해줬단 말이다. 뭔 차이냐면 밥집은 막 살아도 밥집이지만 메샤는 자격이 필요한 기분이랄까. 두 번 다시 나가주지 않을 거 같았던 최협에 메로 나갔다. 라이브에도 불렀다.

아니 왜 테에테에해요? 그 노선으로 나가기로 한 거야? 난 메샤 공급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의심의 눈초리로 봤던 것도 잠시, 감사의 정권 지르기 100회를 하며 클립을 땄다.

그도 그럴게 둘은 바빴다. 의식적으로 일감을 줄인 듯한(아마 아직 무리하면 안 되는 시기겠지~라고 생각했다) 마유즈미와 달리.

후와는 무슨 이벤트 있다 하면 불려갔다. 계절 보이스? 어 후와. 이번 오프 이벤트? 어 후와. 남성 라이버만 나오는 굿즈? 어 후와. 무슨 약방의 감초, 한식에서의 마늘, 유희왕의 우라라, 그 수준으로 어디에나 후와가 있었다.

아키나는 최협 기간에 바빴다. 레인드롭스의 라이브가 있었다. 녹음도 있었다. 후와구사 3D라이브 준비도 있었다. 아니 인간인가. 생각해보니 와라베다를 보내고 마유즈미도 보낼 준비를 하면서 최협 연습에 라이브×2개의 일정을 소화한 사에구사 아키나란 대학생 뭐지?

엄청 힘냈구나.....................

어쨌든 그렇게 바쁜 둘을 알았기에,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메샤 공급을 해주는데 오타쿠가 의심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동기도 뭣도 아닌 메샤니, 사실 언급조차 안 해도, 같이 방송하지 않아도, 어디에 부르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굳이 확실한 형태로 보여주는 점이 고마웠다. 거기에 더해서 리스너에게 보여주는 것이, 팬서비스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진짜.

한편으로는 이래도 되나 싶었다. 어느 그룹이든 안티는 있기 마련이다. 본인들이 사이가 좋고 나쁘고에 상관없이. 유명하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메샤는 동기가 아니다. 그룹으로 데뷔한 것도 아니다. 대의명분이 없었다.

누가 아니꼬와해도, 걔네 동기/그룹입니다만 꼬우면 보지 말든지. 가 없다는 뜻이다. 걔네 친한데요, 는 근거로는 약하다. 친한 건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다. 어떤 사람은 다정하게 대하는 게 친근함의 표시인 반면, 어떤 사람은 놀려먹는 게 친근함의 표시다. 방송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본다. 둘이 누가 봐도 찐친이네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얘가 얘 괴롭히는 거 아냐?하는 사람도 있다. 앞에서만 친한 척 하는 거고 뒤에선 험악하다는 음모론이 횡행하는 이유가 있다. 근데 이유 있어도 하지 좀 마.

뭐 어쨌든 당장은 괜찮았다. 메샤 콜라보에 앞에 나서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잘하게 긁는 트윗이 늘어나긴 했지만, 인터넷이 원래 그런 곳 아니겠는가. 익명성 아래에 모두 빤스를 벗어던지고 선의든 악의든 위선이든 위악이든 멋대로 휘두르는 곳.

홀홀홀, 악마며 천사며 신이 있는 이세계와 현실이 연결될 만큼 기술이 발전해도 인터넷은 변치 않는구만. 어이구 영감, 오늘 저녁은 분모자 든든히 넣은 마라탕에 가마솥에서 찐 마카롱이 좋겠어. 이하략.

위태로운 마유즈미, 이유 없이 연말에 쉰 아키나, 에니카라의 운영 잡음, 연이은 졸업 소식, 눈에 띄기 시작한 메샤의 안티, 일상에 스며드는 불안요소는 있었으나 도파민으로 덮었다. 하지만 지금 안 즐기면 언제 즐기나요.

어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이것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았나 보다.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은 모든 것을 한 톨도 남김없이 즐기고 싶었다.

7월 2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되도록 이 날은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유즈미는 부정적인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모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긍정적인 방향의 이야기일 거라고 믿었다.

분명 이유를 말해주겠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리스너드에겐 말하지 못 한, 작년 10월부터 마유즈미를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주겠지. 그랬던 게 모두 해결되었으니까 보고해주는 거겠지. 마유즈미는 그런 애니까. 지금까지 리스너를 속이는 것 같아서 죄책감을 가지진 않았을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해결되었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라고 하겠지. 그럴 거다.

생각은 반만 맞았다. 마유즈미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괜찮지는 않았다.

활동중지 발표 후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다만 당장 다음날은 디페스타(동인행사)였고, 부스참가자인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로 가야했다. 심지어 그 날 내려고 한 건 마유즈미가 유령이 된 이야기를 담은 회지였다. 하필이면.

행사장에서 합류하고, 박스를 뜯고, 디스플레이를 하면서도 현실감이 별로 없었다. 그냥 정신 차리고보니 웃고 울며 단체로 노래방에서 마유즈미의 이미지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때 함께한 모님, 모님, 모님, 감사합니다.

눈물 쏙 빼고 나면 오히려 괜찮아지는 법이라 하루 떠들썩하게 울고 나니 죽을 거 같진 않았다. 그래, 각오하자. 당장 내일 아닌 게 어디야. 게다가 얘가 7월 동안 매일 방송도 한다잖아. 후회 없도록. 그럼 나도 후회 없도록 매일 클립 따고 사랑한다고 하고 열렬한 덕질을 하자. 그럼 되는 게 아닐까? 쉬바 가보자고!

지금 생각하면 헤까닥했던 거 같다. 그래도 울지 않으려면 정신을 날려버릴 수 밖에 없었다. 울고 있을 틈은 없었다. 곧 내 사랑하는, 사랑하게 된, 소중해져버린 녀석은 떠난다.

니코동에 키워져서 실존인물에게 최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냉소적이었던, 귀엽다 사랑한다는 말에 거부감을 가졌던 오타쿠의 완전한 패배였다. 그래 나 마유즈미 사랑한다. 그때 인정했다. 늦은 건 아니었다. 아직 마유즈미는 있었으니까.


● Q. 무슨 축제를 하고 있는 건가요? A.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22년 7월은 메샤 덕질하기... 내겐 좋았는데 남에게도 주긴 매우니까 나만 먹겠다. 어쨌든 좋았다.

아! 마유즈미는 정말 불태웠다. 언젠가 게임에서 흩날리는 수많은 종이를 보며 농담조로, 이거 회사한테 반려당한 내 기획서.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건 농담조긴 했어도, 그만큼 하고 싶은 거 많았는데 진짜 많이 참았구나.

녀석은 "찐"이었다.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할 셈인 듯 했다. 나 또한 각오하긴 했으나 이럴 줄은 몰랐다. 어째 방송하는 녀석보다 보는 내가 먼저 지쳐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선생님 진도 너무 빨라요. 근데 계속하셔도 됩니다.

쉴새없이 달리는 그에겐 광기가 서려있었다. 하긴 활동중지 발표 이후 가장 처음으로 자기의 생전 장례식 방송 대기소를 만든 것부터가 광기긴 했다. 

생방으로, 때론 녹화본으로, 마유즈미의 방송을 따라가며 나는 점점 마유즈미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방향성의 차이. 회사와 방향성의 차이 때문에 그만두겠다 했던 것.

처음 들었을 땐 아니 무슨 음악성의 차이로 해산하는 밴드도 아니고... 싶었는데, 알게 되었다.

마유즈미가 미쳐버린 페이스로 소화해나가는 기획들은, 지금의 니지산지에선 어려운 기획들이었다. 마유즈미가 특기로 하는 것들은 비꼬고 뒤집고, 비스듬히 보고, 원래 있던 것과 메인스트림를 비틀고,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그럼으로써 어그로를 끄는, 말하자면 언더그라운드.

회사가 미는 방향성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회사가 나쁜 건 아니었다. 최소한 이 점에선.

시대의 흐름이었다. 이미 버튜버는 일부 오타쿠들만 향유하는 컨텐츠가 아니었다. 새롭고 혁신적이지도 않았다. 버튜버 자체가 메이저였고, 신인이었던 V들은 대선배가 되어 있었다. 니지산지는 유명해졌다. 새로움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했다. 기획가는 필요없어졌다. 슈퍼파워를 가진 한 사람보단 안정적인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여럿.

규모가 작았을 땐 상관없었다. 무엇을 하든. 라이버가 지각을 해도, 방송에 걸릴 법한 아슬아슬한 욕을 해도, 젠더나 인종, 역사 문제에 말을 얹어도, 보는 사람이 적으니 문제 삼을 사람도 적고,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잃을 것이 없었다. 몇몇만 실망하고 그만이다.

이제 천문학적 돈이, 사람들의 생활이 걸려있다. 잃을 것이 생겼다. 라이버들은 실수나 잘못을 하면 책임감이 없다는 말을 들었고, 질타를 받았다. 기획이며 주최를 하는 라이버들은 표적이 되기 좋았다. 동인행사와 마찬가지다. 엮인 사람이 많은데 개인이 책임을 떠맡기엔 어려웠다.

셀프 프로듀스가 가능한 천재, 체제를 깨부술 반항아, 소란으로 이목을 끄는 어그로꾼은, 필요없게 되었다. 역할이 다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시대는 더이상 마유즈미 카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개척자가 아닌 정착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마유즈미의 정체성은 안주하지 않음에 있으니. 언더그라운드, 반항아, 건방진 후배에 있으니.

시대에 맞춰 변함은, 마유즈미가 마유즈미이길 포기한다는 것이다. 마유즈미는 그럴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러길 원했다. 누구든 변한다. 대중의 요구 또한 변한다. 그건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다. 마유즈미가 변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기획을 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어그로를 끌지 않아도, 스스로 납득 가지 않아 그만뒀다던 노래를 불러도, 그냥 이유 없이 유행하는 게임만 해도, 귀엽다는 말을 받아들여도, 슈퍼챗을 켜도, 리스너에게 독설을 내뱉지 않아도, 나는 그저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마유즈미의 의미심장한 트윗 하나에 가슴 콩닥거리며 기대했던 나날을, 온갖 라이버를 끌여들인 기획에 웃었던 시간을, 특이한 방송 소재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대단하다고 감탄했던 감정을, 배신하는 것이다. 마유즈미 본인이 제시한 마유즈미 카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즈모 카스미의 말대로 마유즈미는 끝까지 마유즈미를 다하기로 했다. 변한 시대에 얽매여 끝까지 해낼 수 없다면 끝을 앞당기면 된다. 앞당긴 날짜가 7월이었을 뿐이다.

또 이렇게도 생각한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마유즈미는 마유즈미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모두 무시하면 할 수 있었다. 알게뭐야!하면 된다. 자기가 주최해서 욕을 푸짐하게 처먹더라도 아이고 나 보고 오래 살라는 친절인가?하면 되고, 어그로란 어그로 다 끌고서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눌러주세요. 하면 된다.

실제로 초기의 마유즈미는 어느 정도 그랬다. 무적의 멘탈이었다. 욕을 해도 하는구나, 했고 안티가 나타나도 그렇구나, 왜 그렇게 생각해?했다. 분명 그랬었다.

7월에 예정된 메샤의 오프 방송. 방송이 끝난 몇 시간 후에 댓글창이 불탔다.

다음날 아침, 마유즈미의 공지로 이후의 메샤 오프가 사라졌다.

이유가 타당했는가는 두고서라도, 나는 마유즈미가 왜 자기에게 욕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줬나 싶었다. 그야 아키나나 후와군에게도 피해가 가는 거 싫었겠지. 하지만 마지막인데 무시해도 되잖아... 가 그때의 심정이었다.

다른 리스너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마유즈미에게 나쁜 말은 듣지 말라는 말을 했다.

마유즈미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랬다.

너네를 위해서잖아. 너네를 위해서 그런 말이 안 나오도록 하고 있는 거잖아.

나는 울컥해버렸다. 오만불손, 건방지고, 무서운 게 없고, 리스너는 길 가는 비둘기로 알던 천재 해커는, 정이 많은 애가 되어버렸다. 버려진 삵을 거둬서 먹이고 길렀더니, 내가 그랬기 때문에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어졌다는 선고를 들은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아, 오시라고 부르지 말걸. 이럴 줄 알았으면.

그리고 내가 오시라 부르지 않은 세계선에서, 너도, 너대로, 좋아한다, 사랑한다, 네가 최고다, 제멋대로 던지다가도 돌아서면 먹고 사는 일 밖에, 자기가 재밌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 네가 잘못이라도 하면 빈정 상했다는 치졸한 이유로 돌아보지도 않을, 변덕스러운 오타쿠 따윈 비둘기 보듯 했으면 좋았을걸. 후회해도 마유즈미는 이미 칡이 되어 있었다. 억수로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칡.

아니다. 내가 못 본 척 했을 뿐 마유즈미는 처음부터 그랬다. 약한 면도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실수를 해서 사과하기도 하고, 어쩔 줄 몰라서 이상한 짓도 하고, 매일 같이 보아온 인터넷 너머의 사람들에게, 정도 붙이는, 그냥 아직 많이 젊고 경험도 없는 애였다.

마유즈미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쭉 마유즈미로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유즈미가 마유즈미를 관철한다면 앞으론 작게든 크게든 불탈 것이었다. 옛날엔 불타도 괜찮았지만, 이젠 괜찮지 않았다. 마유즈미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신경을 쓰게 되었다. 멋진 선배들과 멋진 후배들과 함께,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또한 리스너들과 교류했기 때문에. 하늘 아래 무서울 것 없던 스무살은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흩어졌다.

마유즈미의 마지막을 볼지, 사실은, 당일까지 망설였다. 결국 보러 가고야 말았지만.

생전 안 하던 고맙다는 말로 시작한 방송은 또 보자는 말이 아닌 작별 인사로 끝났다. 오토기바라 에라의 졸업 이후 내가 피해다닐 정도로 무서워하던 마지막은 그렇게 왔다.


● 그 후

유튜브를 끊은 나는 닥치는 대로 미뤄뒀던 컨텐츠를 소화했다. 이것저것 다 해도 시간이 남았다. 애니메이션 100화? 한 화에 20분이니까 대충 환산하면 33시간이네? 어? 장시간 방송 아카이브 3개면 봐? 쌉가능. 이토록 버 시청은 시간 감각을 망가트린다.

컨텐츠를 소비하면서도 싹 잊을 수는 없었다. 이 게임 마유즈미가 하면 좋을 텐데가 수십번은 있었다. 다른 장르 연성 찾으러 가선 존잘님의 미디어 털다가 마유즈미의 갓아트를 보고 피를 토하며 북마크를 100만 하고도 1번 누른 것도 대여섯번 정도. 온갖 창작물의 소재에 거부반응 일으킨 건 수도 없다. 여름? 지뢰입니다. 해커? 그 직업을 입에 올리지 마세요. 전광판? 못 봐. 파랑? 응 죽을게. 회색? 잿빛? 안 돼. 비???? 무지개????? 하... 아뇨 그럴 게 있어요. 오타쿠는 온갖 것에 과민반응했다. 금속으로 비유하면 리튬.

수도 없이 울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울었던 건 아이나나 5부였다.

국민적 아이돌인 제로가 실종된 15년 후를 그리는 아이나나의 스토리라인에서, 그 시점에 이야기된 이상의 아이돌은, 아이러니하게도 끝나지 않는 아이돌이다. 팬들이 원하는 건 영원이다. 아이돌이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예쁘게 인사를 하는 모습 따윈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한다. 만나러 갈 수 없어도, TV에 나오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멋지게 노래하지 않아도, 그래도 계속되었으면 한다.

나는 제로를 추억하는 팬들과, 트리거를 응원하는 팬들 모두에게 매우 감정이입하며 봤기 때문에, 고개를 천만번 끄덕이고 있었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그 순간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잘 알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예능 사무소의 사장님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이돌이 영원하길 바라면 안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얼굴로 전한다. 그래선 안 된다고. 사람을 다루는 직업인 인간이, 그들에게 영원을 바라서는 안 되는 거라고. 사람은 변하는 것. 사람의 일도 변하는 것. 모두가 반짝반짝거리며 빛나는 아이돌들을 별이라 생각해도, 우리는 아이돌이 평범한 인간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수고하셨어요. 당신과 일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당신과 함께여야만 볼 수 있는 멋진 광경을 보여줘서 감사했어요. 라고 웃으며 전해야 한다고. 앞에 서지도 않는 우리가 이걸로 끝인가요? 더 힘낼 순 없나요? 라고 물어봐서는 안 되는 거라고.

이렇게 잔인한 게임이 또 있을 수가 있을까. 대사를 다 모자이크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밤이면 밤마다 마유즈미가 돌아와선 "뭔가 에니카라가 더 있어도 된대."라든지 "이야~ 나 분위기 다 잡아놨는데 돌아오는 거 좀 그렇지 않나?"라고 하는 꿈을 꾸던 어리석은 오타쿠의 마음을 잔인하게 썰어버리는데 이게 어떻게 12세 이상 이용가능 게임이냐.

그 말대로였다. 영원에 집착하면 사람은 망가져버린다. 원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10년 정도만, 아니 1년 정도만... 좀, 어떻게 안 됐으려나. 안 됐겠지.

하염없이 그저 펑펑 울었다. 어리석은 생각이 썰린 아픔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유즈미의 심정을 상상하면서도 울었다.

마유즈미에겐 프로듀서가 없었다. 셀프프로듀싱이었다. 마유즈미가 니지산지를 그만둘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마유즈미는 스스로에게 되묻진 않았을까. 이걸로 끝인가요. 더 힘낼 순 없나요. 프로듀서이며 스타였던 마유즈미는, 스스로가 인간임을 떠올리고, 고생을 치하하기까지... 베갯자리가 불편한 밤을 얼마나 보냈을까.

마유즈미는 마유즈미 카이가 영원하길 바랐을 것이다. 누구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럴 수 없음을 알았다. 그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썼을까.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봤다고 해도 알려주지 않았을 거다. 그저 심정을 헤아리니 가슴이 아팠다.

지금까지도 가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려다가, 따끔따끔하곤 한다.


● 마무리

마유즈미는 없어! 그래도 우리 가슴 속에 함께 살아가...!! 이런 식으로 긍정적으로 마무리 지으면 좋을 텐데, 뭐 그냥... 사실 아직 안 믿긴다. 마유즈미가 없는 것 자체가.

이러다가 갑자기 트텨 플텍 풀고 방송 켜선 도-모. 할 거 같기도 하고.

네? 마유즈미 카이요? 전 마유즈미 타이입니다만?하면서 경력직 신입으로 데뷔하는 모습도 상상 가고.

그냥 그렇다.

뭐 마유즈미가 이별이니 어쩌니 거창하게 해서 그때만 구질구질 감성 찼던 거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사랑한다고 징그럽게 떠들 건 아니었던 거 같기도.

실제로 "아 근데 진짜 재데뷔 해주면 폭발적 광역 어그로 끌리고 재밌을 텐데. 3초만 하고 다시 플텍 걸면 안 되냐? 6월이나 10월 같은 노잼 시기에 해주면 딱일 텐데." 싶은 마음이 드는걸 보면 솔직히 이건 애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쓰레기 같은 도파민 중독자 인터넷 구경꾼 근성이다.

그렇다. 이제 그렇게 안 사랑한다. 위에 적힌 말 중에 사랑에서 나온 말은 없다. 여러분, 저 이제 마유즈미 안 사랑합니다. 아 안 사랑한다고요. 진짜라니까. 비록 매주 월요일마다 마유즈미의 향수를 뿌리고 10분 정도 명상하다 나가긴 하지만, 마유즈미로 알람 뜨게 해놔서 새 클립 나오면 족족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고 있지만, 시간 날 때마다 보이스 정주행하지만, 마유란 단어만 나오면 화들짝 놀라지만, 내가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요. 뭐랄까, 그런 거창한 거 말고, 습관 같은 거라고요. 마유즈미는 습관이라고.

이 습관 가지면 좀 전두엽이 상하긴 하는데, 상상하면 도파민도 돌고, 노화도 느리게 되고, 그거 유행하잖아요 저속노화. 마유즈미는 저속노화에 도움이 됩니다. 그 증거로 마유즈미의 나이는 23세에서 멈춰있습니다. 거기다 저는 마유즈미를 하고 나서 MBTI에서 합격을 받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페타테라울트라바이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덕분에 은행VVVIP가 되어 환전할 때 우대율 1000%로 1원을 주면 100달러 상당의 상장을 받는 이른바 상테크를 발명했습니다.

이상. 트위터하시는 남자 여자 수수께끼의 생물 기타등등들은 마유즈미_카이를 참고해서 손해보지 마세요.

마유즈미 하세요.

밥집도 하세요.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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