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스터디

9. 버킷리스트

공미포 2,336자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D시의 가장 중심 지역. 무더운 여름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도로에는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늘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공원에는 분수가, 그 분수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고 공원의 길을 따라 산책하는 직장인들까지.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평온한 도시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것은 오버드 -레니게이드라는 명칭의 바이러스로 인해 특수한 능력을 갖추게 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의 몫이었다. 오버드들이 체계를 갖추고 모여있는 UGN -오버드를 교육하고 범죄 조직을 막는 국가적 기관-에서는 바깥의 평온한 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바삐 움직이며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 임무도 고생했어요!”

“별말씀을요. 지부장님 도움이 컸는걸요.”

에이전트의 말에 밝게 웃으며 아카리는 그 이후로도 사소한 대화를 하며 남은 시간은 각자 할 일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지부장 사무실로 향한 아카리는 책상에 놓인 각종 서류를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임무를 나갔던 사이에 많은 결재 서류가 쌓여있었고 할 일을 재어보니 오늘도 야근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특성상 평온한 일상도 있었지만, 외곽에서는 펄스하츠 -레니게이드의 힘을 이용해 테러활동을 벌이는 조직- 의 테러를 알아채고 막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통은 에이전트의 선에서 끝날 법한 일들이지만 최근 들어 범죄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탓에 지부장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저 밖의 사람들은 테러와 범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지만.

‘우리 선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사실 오버들의 테러와 범죄에 비오버드가 휩쓸리는 것보다는 조용히 UGN의 선에서 끝내는 편이 더 나은 것도 사실이었다. 갈수록 늘어가는 범죄 사건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최근에는 도시 전체가 날아갈 뻔한 일들도 있었던 터라 서류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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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마무리하면….”

아카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서류 결재까지 다 끝내고 나서야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칠흑이 내려앉은 바깥에는 자동차 소리도 어느덧 줄어들고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그컵에는 이미 다 마시지 못한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커피를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흐트러진 서류를 파일에 잘 끼워 정리를 마쳤다.

UGN 본부의 건물은 이미 불이 다 꺼진 지 오래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신경 쓸 것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두통이 밀려오던 참이었다. 매사에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일단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급증하는 범죄 사건들 때문에 할 일이 늘어난 것이 가장 컸다. 언제나 사람은 부족했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도 불만을 토로하곤 하지만 딱히 마땅한 대처가 없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아카리는 불이 꺼진 집안에 불을 켜며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이미 쓰러지듯 누운 몸은 좀처럼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아카리는 잊고 있던 예전의 생활을 떠올렸다. 에이전트 시절부터 그보다 더 이전, UGN의 협력자인 일리걸로 지내던 생활이 그려졌다. 일리걸 당시엔 우연한 계기로 UGN의 접선이 들어왔고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 정보를 캐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바쁘게 살아온 것은 둘째였고 분명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래, 가만히 있으면 뭐 해.”

아무도 없는 집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천성이 마냥 축 처진 채로 있는 것은 성미가 아닌지라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 다음날 출근을 준비하려던 찰나 책상 벽에 붙여놓은 메모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적힌 메모지들 사이에 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서 적어둔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가장 아름다운 일상을 기록하기]

굵은 펜으로 써둔 메모지를 유심히 바라보던 아카리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메모지에 글을 쓰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주 바쁜 시기였고 잠깐의 여유가 찾아온다면 카메라를 들고 가장 아름다운 일상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개인적인 사진을 찍을 만큼의 여유는 없었지만 언젠가는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지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게 책상 앞에 앉아 닫아둔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을 열어 자신에게 온 연락들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대부분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진작가와 관련한 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온 연락들도 그중에 섞여 있었다. 그중에서 익숙한 이름의 메일을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저희 한 달 뒤면 방학인데 조만간 놀러 갈게요!]

얼마 전 자신과 함께 임무를 나갔던 미노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말고사 등 다양한 일정 때문에 그간 바빴는지 연락이 없어서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연락을 읽고 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안부를 묻는 글 아래에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몇 개 올렸는데 카즈마와 같이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즈마의 표정도 밝은 것을 보아하니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이 분명했다.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네.’

아카리는 빠르게 메일에 답장을 해주고 달력을 바라보았다. 미노리와 카즈마가 다니는 학교의 방학이 시작되는 날짜를 확인하고는 조만간 쇼타로에게도 따로 시간을 내어달라고 연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쇼타로는 카즈마와 미노리를 포함해 함께 임무를 했던 에이전트이자 자신이 사고로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웠을 때 제 일까지 도와줬던 은인이기도 했다.

“그래, 언젠가 다 같이 모여야겠지!”

메일을 마저 다 확인하고는 노트북을 덮어두었다. 가장 아름답고 평온한 일상을 찍을 순간도, 다 같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리는 그때까지 잘 버텨보자는 다짐을 하며 다음날 출근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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