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스터디

11. 힘들지만 버티는 이유

얼마 전 안타리우스의 움직임을 조사하던 홀든 형제들은 조사하던 모든 과정을 포기하고 서둘러 오스트리아의 본가를 향해 돌아갔다. 먼 길을 돌고 돌아 홀든 형제들이 마주한 홀든가의 저택은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부서진 건물과 유리 파편들, 그리고 진하게 남아있는 피비린내와 독 비린내가 저택 곳곳에 심하게 번져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이, 이럴 수가….”

“젠장, 처음부터 함정이었을 줄은….”

홀든 형제들이 안타리우스의 흔적을 쫓으며 조사를 이어가던 도중 심판관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저는 당신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좀처럼 알지 못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홀든가에 안타리우스 습격이 있었다는 서신을 받고 급하게 홀든 형제들이 집으로 오게 되었다. 세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대참사를 목격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독에 녹아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은 물론 얼굴이 일그러지고 신원을 파악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참사에 홀든 형제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이글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었다.

“이글, 일단 침착해라. 아직 적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다이무스의 차분한 말에 이글은 눈살을 찌푸리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세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벨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택에 머물던 사람 중 누군가는 상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전투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도망을 치려고 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은 죽은 채로 발견이 되었고 생존자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안타리우스가 습격한 건가.’

벨져는 저택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 정원이 보이는 테라스, 손님들이 머무르는 방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가는 곳곳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나뒹구는 시체들만이 가득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는 그때 벨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저건…. 설마?”

벨져는 눈앞에 보인 형체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본 광경을 잘못 본 것이라 착각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작은형! 같이…. 어? 아버지?”

뒤따라오던 다이무스와 이글 역시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홀든가의 가주이자 홀든 형제의 아버지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언제나 굳건했던 제 아버지가 싸늘한 주검이 된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감히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참혹한 현장을 발견하고 나서야 이 사건이 단순한 습격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장례식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퍼할 시간이 남았음에도 다이무스는 할 일이 많았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리, 그리고 가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슬픔으로 묵념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실에 통탄할 여유조차 없었다. 밀린 일들을 끝내고 나면 늘어나는 것은 긴 한숨과 잠깐의 눈을 붙이는 시간이 전부였다.

‘아버지….’

잠깐 한숨을 돌릴 틈이 생기니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바쁘게 지낼 때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차라리 괜찮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금세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글과 벨져는 다이무스의 성격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탓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며 지나가듯 말했지만, 타고난 성격이 그러하다 보니 말처럼 쉽진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엔 자네트도 함께했었다. 자네트도 다이무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탓에 달리 별말은 하지 않고 그저 옆을 묵묵히 지켜주곤 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관이 땅에 묻히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이무스 본인도 이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야 점차 나아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는 것을 잘 알지만…. 쉽지 않겠군.’

밤이 더 깊어질수록 생각도 많아지고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 스탠드를 끄고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바쁘게 움직이면 차라리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눈을 감기로 했다.


오늘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날 이후로 홀든가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조용했고 사실상 유령 저택의 분위기나 다를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아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이나 참상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저택에 남은 사람은 없었다. 같이 검을 맞대어 훈련하는 사람도, 다과를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도 없었다.

이글은 지하연합으로 복귀했고 벨져는 인식의 문과 인식의 틈, 그리고 안타리우스의 움직임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다이무스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간단한 짐을 챙기고는 회사에 복귀할 생각이었다. 짐을 챙기던 도중 누군가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아침 일찍 무슨 일인가?”

다이무스의 서재를 두드리고 들어온 사람은 저택의 집사였다. 간단한 아침인사와 함께 집사는 편지를 주고는 조용히 자리를 물렸다. 두툼한 두께의 편지들을 천천히 확인해 보았다. 대부분은 다이무스가 아닌 그의 아버지에게 도착할 편지였기에 그는 서재 책상에 아버지 몫의 편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수많은 편지봉투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편지봉투를 발견한 그는 편지봉투를 집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크리스티네….’

자네트를 상징하는 붉은 장미 문양의 씰이 붙어있는 편지봉투에는 정갈한 글씨로 다이무스의 앞으로 보낸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다이무스는 책상 한쪽에 놓아둔 편지 칼을 꺼내 들어 천천히 편지봉투를 열어보았다. 편지에서 은은한 장미향이 새어 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편지를 꺼내 편지를 읽어나갔다. 간단한 안부가 적힌 말로 시작하는 편지 속에는 자네트의 세심하고 다정한 말들이 적혀있었다.

-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홀든 경, 당신은 지금까지의 일을 당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편지를 읽으며 다이무스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은 회사 소속으로 지내는 만큼 서로를 알고 지내오던 시간이 꽤 길었기에 어쩌면 서로의 속내를 잘 아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의 편지에 적힌 말 한마디가 이렇게 위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이무스는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나갔다.

- “어떠한 말로도 홀든 경이 겪으신 슬픔에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홀든 경은 그 누구보다 굳건하고 또다시 일어설 것임을 잘 알기에 이 또한 현명하게 극복해 내리시리라 믿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과 마음을 추스를 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긴 편지를 접어 코트 한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다이무스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시련도, 어쩌면 다가올 먼 미래의 시련도 남아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이를 악물고 버티며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회사에 에이스이자 홀든가의 가주로서,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아 안타리우스를 향해 다시 날카로운 칼을 겨눠야 하므로.

‘언제나 넌 네게 큰 위로가 되어주는구나.’

편지를 다 읽은 다이무스는 곧장 헬리오스로 복귀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지금은 다 무너져버렸다고 해도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시 돌아올 땐 더 굳건하게,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그리고 모든 것을 헤집어둔 안타리우스를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누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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