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

클로버 맹약

우구사니(女), 제3회 사니챈배포전 무료배포

도토리 서가 by 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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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맹약

우구이스마루 X 사니와(女)

 

5월 말이었습니다. 달력을 넘겨보던 사니와 씨는 6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6월이라고 하면 여름, 여름이라고 하면 연대전입니다. 분명 올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죠…. 아니, 이게 아닙니다. 떠오른 것은 조금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6월이라고 하면, 6월의 신부입니다. 준 브라이드입니다. 유래는 잘 모르겠으나 결혼하기 좋은 달이라고 하더군요.

결혼…. 결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야 당연히 지금은 역행군과의 전쟁 한가운데에 있는 처지이고, 미래는 불투명하며, 사니와 씨의 작고 소중한 봉급으로는 자기 한 몸의 노후 대책도 불투명한 처지니까요.

하지만 사니와 씨에게는 연인이 있습니다. 우구이스마루 씨입니다. 사랑의 고백이라던가 연인관계가 되자는 약속이라던가 입 밖으로 꺼낸 적은 한번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관계인 것은 틀림없으니 아마 연인 관계에 준하는 관계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아마도요?

아무튼 사니와 씨는 우구이스마루 씨를, 우구이스마루 씨는 사니와 씨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이 여름의 작은 에피소드의 대전제인 셈입니다.

자, 일단은 다시 돌아갑시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맞아요. 달력입니다. 사니와 씨는 달력을 넘기더니, 유심히 들여다보고, 다음 달이 6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6월의 신부를 연상해내고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프러포즈라는 거…. 해야 하는 걸까?

프러포즈는 결혼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당신과 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고백이며 일종의 퍼포먼스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연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죠. 촛불 이벤트를 하거나, 멋진 여행지에서 고백하거나, ‘평생 내 된장국을 끓여줘’ 라던가…. 마지막 건 너무 올드했나요? 아무튼 프러포즈에는 로맨틱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로맨틱한 프러포즈의 정석은 뭘까요? 사니와씨는 달력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반지는 있어야겠지….

…꽤나 현실과 타협한 절충안이었습니다. 그래요. 멋진 고백 대사를 생각해 내기엔 사니와 씨의 센스가 부족하고, 멋진 장소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죠. 현세 외출 사유에 「프러포즈」 라고 적는다면 정부로부터 ‘뭔 소리야? 혼마루에서 해!’라는 답변을 받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반지는 있어야겠죠. 그런데 어떤 반지가 좋을까요? 사니와 씨는 쥬얼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보석의 가치도, 반지의 의미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 사니와 씨의 마음속에 확실하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구 쨩은… 황실 보물이잖아. 그럼 어중간한 가격의 반지로는 안 되는 거 아냐?

…생의 반려로 삼고 싶은 존재가 황실 보물이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쥬얼리에 문외한인 사니와 씨라도 금방 생각해낼 수 있는 티○니의 민트박스에 담긴 프러포즈 링이라던가 하는 명품 브랜드의 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걸로 괜찮은 걸까요? 황실 보물은 당연히 ○파니 민트박스보다는 값나가는 존재가 아닐까요? 어떡하죠, 티파○보다 비싼 프러포즈 링은 모릅니다. 지금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것보다 더 비싼 반지를 구매하고 싶은 것이니 뼈 빠지게 벌어야 할 것입니다. 사니와 씨의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집니다. 이것이 장차 짊어지게 될 가장의 무게…? 하지만 이미 결심했습니다. 멋지고 비싼 반지를 사서, 우구 쨩에게 프러포즈를 하자. 5월 말의 어느날 집무실의 달력 앞에 서서 사니와 씨는 그렇게 다짐한 것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사니와 씨의 뼈를 깎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좋아하던 간식도 줄이고,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특별 업무는 가능하면 전부 해냈습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똑 떼어 하는 저축으로 어느 세월에 티○니를 사냐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사니와 씨는 차근차근 최선을 다했습니다. 반지 적금에 돈이 쌓여가는 것을 볼 때마다 의지가 샘솟았습니다. 주먹을 꼭 쥐고 왼팔을 살짝 올려 혼자서 은밀하게 파이팅 포즈를 취합니다. 멋진 반지로 청혼…! 반드시 해내고 말겠어. 사니와 씨는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사니와 씨의 이런 변화는 혼마루 안에 새로운 소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미츠타다와 카센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방 안에서 오고간 대화를 들은 지나가는 검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같은 도파의 형제들이나 친한 도검남사에게 이야기를 해, 소문은 곧 혼마루 전체로 퍼졌습니다.

주인이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 같던데….

…….

원래 소문이란게 다 그렇잖아요? 떠도는 말이란 으레 사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죠. 그렇고말고요.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사니와 씨는 오늘도 만방 앞을 지나가며 좋아하는 푸딩을 꾹 참았습니다. 사니쨩, 정말 괜찮아? 라며 함께 장을 보고 돌아가던 미츠타다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사니와 씨는 그 정도로는 굴하지 않습니다. 완전 괜찮지…. (세금 포함 192엔짜리 푸딩 참아서 반지 살거니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카센이 당류 섭취를 줄이기 위한 사니와 씨의 노력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뜬금없는 다이어트를 걱정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느라 식칼을 쥐고 생선 대가리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고 그걸 본 이즈미노카미가 노사다의 간식을 몰래 먹은 사실을 들킨 줄 알고 두려움에 자진신고를 해버려 갈 곳 없던 카센의 불안과 고민이 전부 이즈미노카미에게 쏟아져 버렸다는 사실은, 사니와 씨는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이러고 있는 동안 우구이스마루는 뭘 하고 있었냐 하면,

“…….”

“어이, 우구이스마루. 오늘 밭 당번 너잖아.”

“아아, 그랬던가. 고마워, 오오카네히라.”

“…….”

“…….”

“뭘 태평하게 앉아서 차 마시고 있는 거야! 일어나서 일해!”

“뭐,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마.”

“사소하지 않단 말이다!!”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사니와 씨의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구이스마루는 태평해 보입니다. 그가 사니와 씨와 가장 친밀한 검이라는 사실은 아는 검이면 다 아는 사실이라 몇몇 이들이 이 상황에 대한 해설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구이스마루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냥 늘 그랬듯이 툇마루에서 평온하게 차를 마시고 있을 뿐입니다. 그 태평한 태도가 계속되자 한순간 몰렸던 관심도 금방 사그라들었습니다. 다들 우구이스마루 쪽은 포기하고 사니와 씨에게 집중하는 기색입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이라거나,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거나, 주인은 지금 그대로가 딱 좋다거나 하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사니와 씨는 맹한 표정으로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고 우구이스마루는 웃었지만 딱히 주변을 말릴 생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5월도 완전히 지나 6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봄에 덮고 자던 얇은 솜이불을 여름의 얇은 이불로 바꿨습니다. 냉장고에는 얼음을 얼렸습니다. 겨울 동안 창고에 넣어두었던 선풍기를 모조리 꺼내 닦았습니다. 밭에는 여름작물의 씨를 뿌렸습니다. 보존기한이 아슬아슬했던 마지막 봄나물이 식탁에 올라왔던 날 비로소 봄이 끝났습니다.

그런 6월의 어느 날, 점심으로 나온 소면 한 뭉치를 육수에 넣다 말고 사니와 씨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6월이… 6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물처럼. 예금통장에 모인 돈이 얼마였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민트색 박스에 담긴 반짝이는 청혼반지를 구매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어쩌면 올해는 반지를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정도는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입니다. 한 달 만에 티○니를 어떻게 사요. 월급은 쥐꼬리만 하고, 그 쥐꼬리만 한 것을 더 아껴서 모으는 돈은 그야말로 작고 귀여운 수준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속도라면 내년도, 어쩌면 내후년도 힘들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너무 허들이 높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사니와 씨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맞은 편에서 볼이 터져라 소면을 입에 집어넣던 이즈미노카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사니와 씨를 쳐다봅니다.

“주인, 안 먹어?”

“올해는 망했어….”

“뭐가?”

그 뜬금없는 대화에, 찬물에 식힌 소면을 얼음과 함께 담은 소쿠리를 들고 오던 카센도 걱정스러운 듯 사니와 씨를 쳐다봅니다. 카센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혹시 아직 다이어트 중인 거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직 안 망했어. 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 봐. 반이나 지났다고 하려는 거야? 아직 반밖에 안 지났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두 카네사다의 협공에 사니와 씨는 조금 정신이 아찔해질 것 같았습니다.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다이어트? 누가요? 잠깐, 설마 지금까지 혼마루의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건가? 어쩐지 요즘 묘하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자주 나오더라니…! 염려하는 카센과 응원하는 이즈미노카미의 목소리는 이미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 소문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죠? 아침 회의 시간에 모아놓고 발표라도 해야 하나? 아니 그건 또 너무 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 사니와 씨의 생각이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 우주에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주인. 점심 먹어야지.”

“앗.”

사니와 씨는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우구이스마루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새우튀김이 두 개 담긴 접시가 들려 있습니다. 우구이스마루는 옆에 앉아도 되냐는 허락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아 사니와 씨의 접시에 새우튀김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어느새 새우튀김에 주의를 빼앗긴 이즈미노카미가 “뭐야, 튀김 어디서 났어!?”라며 소리쳤고 우구이스마루는 조용히 주방 쪽을 가리켰습니다. 우당탕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이즈미노카미가 뛰쳐나갑니다. 카센이 못 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아하지 않게 정말, 아이즈 저 녀석을!” 하며 급하게 일어나 그 뒤를 따랐습니다.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방 안에 둘만 남았습니다.

혹시 우구이스마루도 소문을 믿고 있었을까요?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해명해야 할까요? 그렇지만 굳이 해명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머쓱해지지 않을까요? 맞는데 일부러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요, 좀. 이 소문은 대체 언제부터 돌고 있었던 거죠? 난 그냥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고 싶은 것뿐인데…. 사니와 씨의 생각이 다시 우주를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

“넵!?”

“…무슨 일 있어?”

우구이스마루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사니와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표정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조금 따끔하게 아파오는 것 같아서, 사니와 씨는 입술을 조금 달싹였습니다. 하지만 ‘우구 쨩에게 줄 반지를 사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있어’라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사니와 씨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런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구이스마루는 더 캐묻지 않고 점심 식사에 집중했습니다. 사니와 씨도 조용히 새우튀김을 물었습니다. 따끈하고 바삭한 겉옷이 입안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부서졌습니다.

역시 이유가 어떻건 간에 거짓말을 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네요….

 

마음이 영 편하지 않습니다. 그날 이후로 계속 목구멍에 메추리알이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점점 커지고 있으니, 계란만 한 크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상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계획 중인 일인데,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요. 깜짝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고통을 삼킨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건가요?

우구이스마루는 사니와 씨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단지 그는 상냥하기 때문에 더 캐묻지 않는 것뿐이겠지요. 그 상냥함에 거짓말로 답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요즈음 사니와 씨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통장에 쌓인 금액을 봐도 의욕이 나지 않습니다. 아침에는 좋아하는 새우튀김도 남기고 나왔습니다. 부엌에서 쇼쿠다이키리의 비명이 들려왔죠. 오해는 가속되겠지만 지금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더는 안 되겠습니다. 계속 속이는 것은 마음이 버텨주지 못할 겁니다.

더는 안 돼. 우구 쨩을 속이고 싶지는 않아. 그러고 싶지 않아.

우구 쨩을 만나서….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사니와 씨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가자, 라고 작게 중얼거린 후 집무실의 문고리에 손을 올렸습니다.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훅 밀려옵니다. 6월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가렸는데도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셨습니다. 정원 쪽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시끄럽게 울지 않아도 여름인 건 다 아니까 좀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니와 씨는 조금 침울한 마음으로 서성였습니다. 우구이스마루를 만나서 사실대로 이야기하겠다는 큰 목표를 품고 집무실을 나선 것은 좋았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탓입니다. 결국 반지를 사겠다고 다짐했던 때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창하게 다짐해 놓고는 결국 이 꼴입니다. 마음이 계속 술렁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정원의 큰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사니와 씨에게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우구이스마루였습니다. 사니와 씨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정원으로 한 발짝을 내딛자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며 부서진 햇살이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연못에 걸쳐진 시시오도시의 대나무가 바닥을 때리며 통, 하고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정원 안쪽은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해 아직 관리되지 않은 풀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름 모를 들풀들이나 야생화들, 조금 늦은 꽃잔디가 제멋대로 피어나 여름의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사니와 씨는 그것들을 밟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며 우구이스마루가 있는 나무 밑으로 향했습니다. 우구이스마루는 그늘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다가, 이쪽으로 오는 사니와 씨의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미소 지었습니다.

“우구 쨩.”

“아아.”

“불렀어?”

우구이스마루는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사니와 씨는 쪼르르 그 쪽으로 다가가 그의 옆에 조심조심 앉았습니다. 곁에서 다정하고 쌉쌀한 향기가 났습니다. 왠지 조바심이 나서 사니와 씨는 급하게 말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빨리 진실을 고백해버릴 심산이었습니다.

“저기, 우구 쨩. 나―.”

그러나 꺼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도중에 막히고 말았습니다. 우구이스마루가 사니와 씨에게 손을 내민 것입니다. 그 의미를 곧장 이해하지 못하고 사니와 씨는 어리둥절해서 잠시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손 줘볼래?”

“어? 응….”

사니와 씨는 순순히 우구이스마루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의 손 위에 사니와 씨의 작은 손이 겹쳐졌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작고 얇은 고리가 사니와 씨의 손가락을 통과했습니다.

“주고 싶었어.”

시원한 바람이 나무 그늘 밑을 지나며 사니와 씨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겼습니다. 희미하게 풀 냄새가 났습니다. 세잎클로버가 바람에 작게 흔들렸습니다. 연약한 줄기들이 서로 묶여 고리 모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클로버를 엮어 만든 반지였습니다.

“만드는 법 알고 있었어?”

“아니. 오오카네히라에게 배웠어.”

“의외다….”

“그렇지?”

우구이스마루가 후후, 하고 작게 웃었습니다. 사니와 씨는 반지 낀 손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 보며 클로버 반지를 감상했습니다. 작고 연약하고 풀 냄새가 나고 바람에 흔들리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우구이스마루가 문득 입을 열었습니다.

“주인.”

“응.”

“결혼할까.”

“응?”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서, 사니와 씨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차올랐습니다. 아니, 잠깐. 역시 아니죠.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니와 씨는 조심스럽게 되물었습니다.

“결혼…?”

“응.”

“나랑…??”

“응.”

“우구 쨩이…???”

“나를 내버려 두고 다른 녀석을 고를 생각인건 아니겠지?”

“엣, 에에….”

아무리 그래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역시 말의 무게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프러포즈 받은 거죠? 우구이스마루에게? 사니와 씨의 대답이 애매해지자 확답을 채근하는 듯 우구이스마루가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 뒤늦게 얼굴에 열이 확 몰렸습니다. 귀끝이 화끈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사니와 씨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습니다.

“나, 나는…. 당연히 좋지만 준비도 안 됐고, 당황스러워서…. 앗, 아니. 거절하려는 건 아닌데, 그냥….”

말이 끝도 없이 길어집니다.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언변의 부족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네요. 우구이스마루는 허둥거리는 사니와 씨를 한참 보고 있다가 싱긋 웃었습니다.

“응, 그렇지. 역시 너무 갑작스러웠을까.”

“우, 우구 쨩.”

“그냥 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잊어버려도 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정원의 조금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사니와 씨는 그제야, 우구이스마루의 손끝에 풀색 물이 들어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연습했던 걸까요, 클로버 반지를 잘 만들 수 있게 될 때까지.

아아, 왠지 목에 걸린 계란 크기의 미안함이 넘어가질 않아서….

결심이 섰습니다.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구 쨩, 하고 이름을 부르자 그가 이쪽을 돌아봅니다.

“나 사실은, 우구 쨩에게 계속 숨기고 있던 게 있었어.”

우구이스마루는 사니와 씨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가다듬고, 천천히, 또박또박, 서두르지 않고. 사니와 씨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반지를 선물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있었어. 어중간한 건 싫었으니까, 누구나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걸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잘 안돼서…. 걱정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어. 미안.”

“…그렇구나.”

조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구이스마루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뭐, 사실은 알고 있었어.”

“으에?”

너무나도 깔끔한 대답에 어쩐지 김이 빠져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맙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우구이스마루가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아하하, 하핫.”

“우, 웃지 마. 알고 있었다니 무슨 소리야?”

“후후…. 미안. 말 그대로다.”

“그, 그럼 언제부터…?”

“글쎄, 처음부터이려나.”

“처음부터!?”

그럼 그날 식당에서도 다 알고 물어봤다는 뜻이잖아…! 거짓말 하고 있던 거 완전히 들킨 상태였잖아…! 외침은 말이 되지 못하고 사니와 씨는 입만 뻐끔거렸습니다. 흘러내린 사니와 씨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우구이스마루가 말을 이었습니다.

“주인은 거짓말을 잘 못 하니까 말이지. 뭔지는 잘 몰라도 처음부터 뭔가 있겠거니 싶었어. 확신한 건… 글쎄, 언제쯤이었을까.”

“어, 언제쯤이었어…?”

“…….”

우구이스마루는 사니와 씨를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사니와 씨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역시 처음부터였으려나.”

“처음부터잖아…!!”

완전히 망했습니다. 처음부터 망한 상태였어요. 부끄러워서 울고 싶은 기분입니다. 얼굴이 뜨겁습니다. 엄청요. 지금 계란을 깨서 올려놓으면 익지 않을까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우구이스마루는 사니와 씨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습니다. 졌습니다…. 완패예요. 이런 녀석을 상대로 서프라이즈를 기획했던 게 처음부터 잘못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주인이 너무 알기 쉬운 것 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후후.”

그 미소가 왠지 얄미워서 사니와 씨는 괜히 입술을 삐쭉 내밀었습니다. 우구이스마루는 비어 있던 왼손으로 사니와 씨의 오른손을 살짝 잡았습니다. 손끝에서 희미하게 풀 냄새가 났습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사니와 씨에게 그가 말을 건넸습니다.

“네가 내게 주고 싶다고 생각해줬던 거다. 필요 없다던가 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군.”

“…….”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만한걸 주고 싶었던 거지?”

사니와 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구이스마루가 웃었습니다.

“클로버 반지는 싫은가?”

“…받아서 기뻤어. 우구 쨩이…. 열심히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맞잡은 손의 손가락이 가볍게 얽혔습니다. 우구이스마루의 손에 겹쳐 손깍지를 낀 사니와 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커다랗고 소중한 마음을… 담고 싶었어. 그걸 담기 위해서는 상대를 생각하는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몰라.”

“응.”

“하지만 잘 안 됐어….”

우구이스마루는 가만히 앉아 사니와 씨가 말을 고르는 동안의 침묵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름드리나무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파도처럼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여름 햇살이 그 사이를 통과해 수면에 반사된 윤슬처럼 나무 밑의 존재들을 가볍게 훑고 지나갔습니다.

“지난 일이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우구이스마루가 다정하게 웃었습니다.

“달라. 지금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사니와 씨는, 그 미소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소중한 마음을 담기에는 역부족일지도 모르겠군. 금방 시들어 버릴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네게 이 반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아니, 다를지도. 어쩌면 그냥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도중에 말을 바꾸더니 우구이스마루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너의 지금에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몇 번이고 옆에서 클로버 반지를 다시 만들어서 손가락에 끼워 주면서, 시들 때마다 다시 선물하고 싶었다…. 뭐, 그런 욕심이야.”

손가락 안쪽을 더듬어 왼손의 클로버 반지를 만져 보았습니다.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이 작고 연약한 세잎클로버 반지는 당장 오늘 안에 시들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풀물이 든 우구이스마루의 손끝이라던가 작은 클로버에 담긴 마음들은 사니와 씨에게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나요.

가치 있는 물건에 반드시 커다란 마음이 담기지는 않고, 어떤 사랑은 정원의 들풀 속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영원을 기약하는 것보다도, 지금을 함께하는 게 더 소중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구 쨩, 하고 반사적으로 입술을 달싹여 이름을 부르고 맙니다. 우구이스마루가 천천히 사니와 씨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만들어 줄 거야? 계속.”

“네가 질리지 않는다면.”

눈이 마주쳤습니다. 햇볕에 데워진 공기 탓인지 조금 더운 것 같았습니다. 사니와 씨는 맞잡은 쪽의 손에 조금 힘을 주었습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클로버 맹약을 나누고 나란히 앉아 말없이 사랑을 속삭이는, 여름이었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6월이 끝나버렸습니다. 사니와 씨는 달력을 다음 장으로 넘겼습니다. 역시나 7월도 바쁠 예정입니다. 서류 마감일을 표시하는 동그라미가 벌써 몇 개나 표시되어 있고,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여름 연대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7월도 힘내서 가자, 하며 사니와 씨는 조용히 혼자 기합을 넣었습니다.

집무실 문 바깥에서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인. 아침 회의 준비가 끝났다.”

빼꼼 열린 문틈 사이로 우구이스마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응, 하고 짧게 대답하며 사니와 씨는 집무실 밖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인데도 공기가 약간 후텁지근했습니다. 산들바람이 누군가의 방문 앞에 걸어둔 풍경을 건드려 맑은 소리가 울렸습니다. 마구잡이로 들풀들이 자라 있었던 정원은 이제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계절에 맞는 여름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완전한 여름입니다. 초여름은 이제 흐르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계절은 흐릅니다. 7월이 지나고 8월이 오면 더 더워질 테고, 8월이 지나고 9월이 오면 조금씩 선선해지겠지요. 앞서가던 우구이스마루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사니와 씨도 따라 멈춰 섰습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사니와 씨는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둘은, 천천히 걸었습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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