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스터디

2. 귀신

공미포 3,632

“최 형사님, 정말로 떠나시는 겁니까?”

“네. 오늘이 마지막이죠.”

새봄은 씁쓸하게 웃었다. 마지막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문을 닫았다. 길고 긴 형사 생활을 청산하며 정든 직장을 떠나는 길이 마냥 홀가분하진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경찰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과 후배들이 배웅을 해주며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간단한 안부를 전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다들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요.”

“우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네, 알겠어요.”

걱정스러운 동료들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시동을 켜며 시트에 기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의 일이었다. 발목이 덮일 정도로 지독한 폭설이 내리던 어느 날, 새봄은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범인을 잡으면 모든 게 끝날 간단한 일이었지만 새봄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을 잃고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고 그곳에서 친구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오열했다. 자신도 피해자였음에도 범인의 존재는 물론 어디서 피해를 보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사고 후유증과 단기기억 상실증이라는 병명을 내렸고 병원 생활을 하며 기억을 찾으려고 해도 잃어버린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컸다. 재활치료를 거듭하는 도중에도 상실감으로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끝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형사직을 내려놓고 떠나는 날이었다. 일을 관두고 그다음의 일을 정하는 것이 보통의 순서였지만 새봄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한동안은 쉬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럼 전 갈게요.”

“네! 안전 운전하시고 밖에서 만나요.”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 위로 먹구름이 가득해지는 것을 보았다. 자동차 유리 위로 빗줄기가 조금씩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새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한 음악이 깔린 차 안에 휴대폰 진동이 짧게 울렸다. 마침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라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절친이자 형사 생활을 함께해온 친구인 태현이였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

짧은 문자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새봄에게 있어서 태현은 정직하고 다정한 모습의 바보 같은 친구였다. 시간을 보아하니 태현 역시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가고 있는 길인 듯했다. 통화버튼을 눌러 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게 수신음이 몇 번 울리더니 수화기 너머로 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새봄아! 집에 가는 길이야?”

“그래. 문자 보냈었네.”

“시간 괜찮으면 저녁 먹자고. 할 이야기도 있고.”

“시간은 있어. 그럼 공원 앞쪽 식당에서 만날까?”

“좋아. 이따 봐.”

전화를 끊은 새봄은 집에 도착한 후 간단하게 짐을 풀었다. 본래대로라면 짐을 모두 정리해두는 것이 맞겠지만 태현과 약속이 있었던 탓에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간단하게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문을 나섰다. 어느덧 해가 진 바깥 풍경을 마주하며 약속 장소인 공원을 향했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졌다. 평소에는 사람이 붐빌 시간대가 아님에도 오늘따라 횡단보도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근처에 축제라도 열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길 건너편 태현을 본 새봄은 후드점퍼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는 길을 건넜다.

‘저게 뭐지?’

찰나의 순간 태현이 서 있는 곳 뒤로 검은색 그림자가 지나갔다. 평소라면 어두운 풍경에 사람의 모습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나무만큼 큰 키의 검은 그림자는 위압감이 남달랐다. 다행히도 태현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스쳐 지나간 모습에 안도하고는 길을 마저 건너갔다.

새봄에게는 남들이 볼 수 없는 존재를 보고, 그 존재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귀신이라든지 영적인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친구를 잃고 난 그날의 사고로 보이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 서서히 보이게 되며 그 존재를 믿게 되었다. 생긴 것도 천차만별이었는데  대부분은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좀 전에 보았던 키 큰 그림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기어 다니거나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새봄은 길을 건너고 태현을 마주하고 나서야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야, 최 새봄. 왜 이렇게 파랗게 질려있어?”

“어? 아냐. 아무것도….”

“뭐라도 본 것 같은데. 네가 괜찮다면 다행이고.”

태현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새봄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태현에게는 이 사실을 알린 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태현의 가족 중에서 무속을 잇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것과는 다르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새봄은 침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아무렇지 않은 듯 태현을 이끌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존재들이 몇 번 보이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모른 척 지나갔다.

식당에 들어오고 나서야 새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식탁에 올려진 메뉴판을 보며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서로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새봄은 가게 밖으로 보이는 그림자라든지 기어 다니는 것들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척 시선을 태현에게로 돌렸다.

“너 그만두고 나니까 그 자리가 괜히 허전한 거 있지?”

“어쩔 수 없잖아. 이제 슬슬 적응해야지.”

“심심한 건 사실이잖아.”

“나보다 더 재밌는 사람도 많으니까 견뎌봐.”

새봄은 어색하게 농담처럼 받아치며 태현을 바라보았다. 자기 친구이지만 태현은 참으로 배울 점이 많았다. 평소에는 장난스러운 태도로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고, 진지할 때는 누구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가 나왔다. 두 사람은 식사를 이어가면서도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전에 알아보던 건 어떻게 됐어?”

태현이 식사하던 도중 뭔가를 떠올린 듯 새봄을 보며 말을 걸었다.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태현을 바라보자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본론을 말했다.

“당집 한번 찾아간다며.”

“아, 그랬었지.”

“정말 그대로 괜찮겠어? 여차하면 우리 고모한테 도움을 요청해보고.”

“아직은 괜찮아. 조금 쉬었다 그때 찾아뵈도록 할게.”

새봄에게는 귀신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심신의 회복이 더 크게 다가왔다. 당장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수면제를 받아서 먹고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하였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을 건네고는 식사를 마쳤다.

태현과 헤어지고 난 후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오늘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굳게 잠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는 불빛 하나 없이 깜깜했다. 거실 불을 켜고는 옷걸이에 겉옷을 걸어두었다. 

‘뭐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새봄은 가족의 품에서 나와 독립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집에는 혼자 사는 것이 당연했다. 가족들이 왔다면 진작에 방안에 불빛이 켜져 있어야 했고 그 이전에 먼저 연락이라도 전했을 거다.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흘렀다. 새봄은 두리번거리며 온 집안의 불을 하나씩 켜며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화장실, 서재, 심지어 부엌과 베란다를 두리번거렸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침실에서 아이들이 소곤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착각했으나 자신의 침실에서 들리는 소리임을 확신하고는 거세게 문을 열며 불을 켰다.

“어?”

익숙한 공간에 낯선 아이 두 명이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새봄은 단번에 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님을 단번에 알아챘다. 어디서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이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꽤 골치 아파질 것을 뻔히 알기에 모른 척하고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다.

“저기 언니! 잠시만요!”

그중 여자아이가 크게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불렀다. 흠칫 놀라며 새봄은 문을 열고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많아 봐야 고등학생쯤 되는 아이 둘에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는 훨씬 더 어려 보였다. 여자아이는 키가 작은 편이었고 검은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차분한 검은색 머리에 이제 막 중학생으로 되어 보이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두 아이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새봄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는 수 없이 새봄은 방문을 열고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너희 둘, 어디서 온 거야?”

“언니 경찰이죠? 맞죠?”

새봄은 멈칫하며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빛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젠 난 경찰이 아니야.”

“그러면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지?”

씁쓸한 표정으로 최대한 아이들에게 돌려 말을 했다.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곧 울음을 터트릴 것으로 보였다. 실망을 얻은 것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특별히 해가 되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큰 한이 맺혀 자신을 찾아온 건 아닐까,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정확히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새봄은 차분하게 두 아이를 달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뭐 때문에 찾아왔어?”

“우리 좀 도와주세요. 저희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할게요.”

애처롭게 바라보는 모습에 짧게 한숨을 내쉬며 새봄은 고민을 이어갔다. 경찰이라는 것을 보고 찾아올 정도라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새봄은 한숨을 내쉬며 어린 영가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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