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존검존/당보청명|당보귀환 if] 무제.





   * 본래 목적은 말싸움 할 때 언성 높히며 흥분하는 암존이랑 암존이 소리를 높힐수록 낮게 가라앉는 검존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 당보가 귀환하고, 멀지 않은 곳에 마교 무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의 어쩌고.

   * 날조 진짜 많음. 캐붕 다수. 캐해석 부족함 주의.









   "지금, 뭐라고 하셨소?"

   악귀처럼 서서히 일그러져가는 당보의 표정을 보며 청명은 가만히 한숨을 삼켰다. 그래,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청명은 기이한 익숙함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제 주변에서 쩔쩔매는 이들을 가만히 물린 후에야, 청명의 입이 다시금 천천히 벌어졌다.





   "이 일에서 넌 빠지라고."

   제 단호한 음성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벌어지던 입이 몇 번이나 달싹거렸다. 왜? 그의 입에서 소리 없는 물음이 새자, 청명은 가만히, 그의 옷 너머의 붕대들에 시선을 두었다. 당보 역시도 그것을 눈치챈 듯 입술을 자근, 씹으며 옷깃으로 제 몸을 급히 가린다.

   "이 정도로 쓰러질 인물이 아니오. 아시지 않소."

   "내가 네게 그리 말했을 때, 넌 내게 무어라 대답했냐."

   다시금 입이 다물린 것은 당보였다. 서늘한 매화빛 눈동자에 꿰뚫리는 것 같아서, 시선을 내리깔던 당보가 청명에게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 그럼에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이.

   "형님, 다시 생각해보시오. 그곳으로 가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소!"

   청명은 언성을 높히는 당보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덕분에 속이 타들어가는 건 당보 쪽이였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교와의 전투가 일어났다. 그저 마교의 교도들이라면 이리 언성을 높힐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매화검존이, 제 도사형님이 괜히 그들에게 악귀라 불리겠는가. 하지만, 자그만치 주교급 셋이였다. 셋. 결과야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주교급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당보 앞의 단 한 사람 뿐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수가 늘어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럼, 그곳으로 누굴 밀어넣어야 한다는 말이야."

   마치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설득하려는 투에 당보는 더욱 열이 끓어올랐다.

   "적어도 형님 혼자 가게 두실 순 없소!"

   "내가 언제 혼자 가겠다고 했더냐, 다른 이들도..."

   "다른 이들? 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주교새끼들한테 보일까 형님 뒤로 숨어댈 게 뻔한 그 새끼들?"

   "당보야."

   "그게 혼자랑 다를 게 무어요!"

   당보가 화염처럼 타오를수록 청명은 차게 가라앉았다. 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는 주판을 튕길 시간 따윈 없었다. 자신은, 그는, 다른 이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지금 이리 말다툼을 하는 사이에도 몇 십의 목숨이 꺼졌을 것이다. 더 이상의 말다툼은 의미없다 판단한 청명은 검을 집어들고 몸을 일으켰다. 당보가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거친 움직임 탓에 상처가 쓰릴텐데도, 당보는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되래 속을 깊게 상처입은 짐승마냥 으르렁대며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놔라, 당보야."

   "놓으면?"

   되려 그리 물어오는 당보에 청명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이미 그것으로 답을 들었다는 듯이, 당보가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흥분한 탓인지, 붕대 사이로 얼핏 혈흔이 비쳤다. 드물게 청명의 얼굴에 균열이 번졌다.

   "대체, 형님은, 왜 매번 제 몸 따윈 상관 없다는 듯이 구는거요!"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지금 몸 생각 안 하는 건 내가 아니라..."

   "형님은 언제 한 번이라도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나 있었소?! 매번 제 멋대로 굴면서, 나한텐...!"

   "그럼 거길, 지금 죽다 살아난 널 끌고 가랴? 그 꼴은 못 봐."

   단호한 음성에 청명의 팔을 쥐고 있던 당보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당보의 얼굴에서 차츰 표정이 사라졌다. 아니, 표정이 사라졌다기보단, 모든 감정이 타버리고 남은, 새카만 잿더미 같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큰 소리를 내던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가느다란 음성이 새었다.

   "그럼 나는? 제 다친 상처 하나 돌보지 못하는 형님을 기다리며 전전긍긍할, 내 생각은 할 생각이 없는거요?"

   청명은 다시 침묵했다. 고개를 푹 떨군 당보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들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어차피 그럴거면서. 버석버석 갈라지는 음성으로 그리 뱉은 당보는 그 길로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 날, 무려 4일 간의 격전 끝에 승리를 거두어왔으나, 쓰러진 청명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래, 꼭 그 날과 같았다. 당보의 반응 역시 그 날과 다름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를 휩쓸었다.

   "형님은, 예나 지금이나... 내 생각 따윈 조금도 존중할 생각이 없는거요?"

   당보의 갈라진 음성에도 청명의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그런 청명의 표정에 더욱 속이 뒤틀렸다. 저가 무어라 하든,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듯한 저 표정에, 속이 거멓게 타들어갔다. 쥐어패서라도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진즉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해서 생각을 바꿀 그가 아니였다.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대체 왜!"

   날카로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나무에 숨어있던 새들이 놀라 푸드덕 날아가버릴 정도였다.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멎을 즈음에야, 청명의 입이 다시 열렸다. 마치 물에 잠긴 듯 느린 움직임이였다.

   "널 두 번이나 잃고 싶지 않다."

   당보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이 아는 그 답지 않게 나약한 음성이였다. 제 꺼져가는 목숨을 붙잡아보겠다며 흐느끼던 음성을 기억한다. 차가운 손을 간절히도 붙들던 그의 체온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당보의 손끝이 손바닥을 꾹, 파고들었다.

   "아직 옛 무위를 찾지도 못한 형님이, 그 미친 작자들이랑 다시 칼을 맞대겠다는데! ... 지금 상대를 잃을까 두려워 해야하는 쪽이 대체 누구요?"

   청명은 당보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성큼 다가선 당보가, 저보다 작은 체구의 청명의 양팔을 콱 잡아채 당겼다. 마치 저를 보라는 듯이. 하지만 청명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닿지 않아 말라 죽어가는 사람마냥, 당보는 퍽 간절한 음성을 내뱉었다.

   "형님, 왜, 한 번도, 중요한 순간에 저를 믿어주지 않으십니까. 왜!"

   그의 곁에 서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옆에 당연한 듯이 서고, 또 당연한 듯이 그의 등을 지키기까지. 전우로서, 친우로서, 또, 정인으로서. 그것이 청명에게, 당보에게, 당연한 것이 될 때까지 그렇게나...

   "나는, 너를 두 번이나... 못 잃어."

   꺼져가는 듯한 청명의 음성에, 당보는 말없이 그의 팔을 더 단단히 붙들었다. 왜 이 미련한 작자는 잃을 걱정밖에 하지 않는단 말인가. 왜, 내가 그를 잃을까 겁을 낼거라 생각하지 않는가. 입술을 고집스레 다문 당보가 천천히 그의 팔을 놓았다. 그제야 청명이 시선을 조금 들어올렸다. 그때와 같은 행동, 허나 떠오른 표정은 달랐다.

   "이번엔 형님 뜻대로는 되지 않을거요."

   "당보야."

   "이 정도면 나도 많이 봐주었소. 나 역시 천우맹의 한 일원으로서, 암존으로서, 이 싸움, 피하지 않을 겁니다."

   "... ..."

   그가 뒤돌아 가버리는데도, 청명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야, 곧 무너지듯 흙바닥에 주저앉은 청명이 제 머리를 끌어안으며 작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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