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 드림] 매화연(梅花燕)
유료

[화산귀환/검존드림] 매화연(梅花燕)

10. 연인

* 적폐 / 날조 / 캐해석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암향화연 5화 유료 분과 이어집니다. 삼각관계 주의.

* 둘의 꽁냥을 추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료입장)

*평균 유료 분보다 양이 많아 이번 편은 가격이 다릅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부른 지가 꽤 되었는데, 이제 왔구나.”

“송구합니다, 가주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연홍 련은 옷자락을 잡아 격식을 갖춰 고개를 숙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궁장을 입은 연홍 화는 수려한 자태를 뽐냈다. 주인공인 연홍 련에 비해 힘을 덜 주었을 뿐이지 비단옷에 흐르는 윤기와 선명한 이목구비를 돋보이기만 해도 그녀의 고아함은 충분히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던 연홍 화의 시선이 연홍 련에게 닿는다.

“당가의 애송이와 있었나?”

당가에서 들었다면 건방진 계집이라고 할 법한 언행이지만 연홍 화는 개의치 않았다. 연홍 련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말에 웃으며 답한다.

“귀애하는 친우니까요.”

풍성한 속눈썹이 팔랑이며 연홍 련을 보는 시선이 가늘어진다. 냄새에 민감한 제 동생에게 이리 연초 향을 묻히고 할 수 있는 놈이라면 암존밖에 없을 테니까. 그 도련님은 예전부터 그랬다. 뺀질뺀질한 애송이 주제에 제게 찾아와 동생에 관해 물을 때부터 보기와 달리 일편단심이었다. 연홍 화는 손을 뻗어 연홍 련의 머리 위로 한번 휘젓는다. 일순 바람이 흩날려 연홍 련의 잔머리가 흩날리자 연홍 련은 동그랗게 연홍 화를 본다.

“담소도 좋지만 아직 손님들이 계신다. 몸가짐을 바로 하도록.”

기운을 갈무리한 연홍 화는 부채를 팔랑이며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눈웃음을 짓는다. 연홍 련은 잠시 머쓱한 미소를 짓는다. 제 옷에 나던 옅은 연초 냄새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부른다는 얘기에 바로 왔더니 신경 쓰이게 만들어버렸다. 연홍 화의 옆을 따라가는 연홍 련은 그녀와 함께 배웅하기 시작한다. 연회가 마무리가 돼가자 인산인해이던 연홍도 곧 한적해진다. 식솔들은 만찬 장소를 정리하고, 시비들은 연홍에 들어온 선물들을 분류해간다. 마지막 손님까지 웃으며 배웅한 연홍 화는 살랑이던 부채를 탁 접는다.

“…냄새나니까 청소 좀 해야겠구나. 오물 덩어리들이 욕심은 많아선.”

“고생하셨습니다, 가주님.”

부채로 코를 누르며 인상을 구기는 연홍 화는 연홍 련의 인사에 시선을 굴려서 본다. 필요에 의한 연회였지만 피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수많은 눈들이 수를 숨기고 웃으며 견제하는 기 싸움이 만연한 곳이 이런 연회니까. 이 정도면 이목은 충분히 끌었으니 초기목적은 달성이다. 준비는 자신과 가솔들이 했지만 주인공인 이 아이만큼 부담스러웠을까. 연홍 화는 작게 웃으며 연홍 련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준다.

“너는 이만 들어가 보렴. 새벽부터 공들인 화초처럼 있느라 수고했으니 잠시 쉬거라. 저녁엔 양민들에게 구휼을 해야 하니까.”

연회는 여기까지지만 연홍에서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양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얼굴을 보이고 해야 하니까. 구휼작업까지 끝내야 진정한 휴식이다. 그때는 지금 같은 차림보단 간소하게 입을 수 있으니 머리에 꽂은 비녀와 장신구만 줄어들어도 훨씬 가뿐할 거다. 연홍 련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네, 소인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연홍 화의 허락하에 발걸음을 돌리자니 연홍 련의 뒤로 연홍 화가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밀회를 즐길 거면 연지에 분을 살짝 묻혀주는 게 좋을 거다. 그래야 잘 지워지지 않으니까.”

연홍 화의 말에 멈칫한 연홍 련이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받은 연홍 화는 몸을 돌려 태연하게 연홍 련을 보고 웃는다. 짓궂음이 가득한 미소였다.

“친우랑 꽤 오붓한가 보구나. 내 동생이 질 나쁜 구석도 다 있고.”

연홍 련은 눈을 끔뻑이다 오해를 받았다는 것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연지가 지워졌던가. 시비에게 가면서 물어볼 땐 그런 얘기는 안 했는데. 곰방대를 물었던 걸로 옅게 지워져도 제 입술을 문질러서 감췄다. 그걸 알아차리고 조언하는 그녀의 관찰력이 이쯤이면 무서울 정도다.

“그으...! 하아, 오해에요. 언니.”

“놀려본 거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단다. 구설수에 오르는 게 싫은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니까. 얼른 가서 쉬렴.”

키득이는 연홍 화가 손을 휘저어 축객령을 내리니 입을 흐리던 연홍 련은 결국 그녀에게 묵례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

‘얼굴은 보고 가실 줄 알았는데, 바쁘셨나.’

언니와 배웅하던 중 화산파 분들이 보이지 않아 시비에게 물으니 먼저 돌아가 보았다고 전해 들었다. 따로 전해달란 얘기도 없다 하니 섭섭함이 들었다. 아쉽긴 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연홍 련은 방에 들자마자 침상에 그대로 기대 앉는다. 시비에겐 목욕물을 부탁했으니 지금은 편히 쉬어도 되겠지. 물먹은 솜처럼 피로가 몰려오니 잠이라도 원 없이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홍 련의 손이 제 머리에 고정하는 비녀 몇 개를 빼내어 눈을 감고 몸을 늘어뜨린다. 사람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던 바깥이 지금은 꽃향기와 함께 바람이 창문을 통해 솔솔 불어온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제 머리를 어루만진다. 가만히 엎드려있는 연홍 련의 귀에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감겨있던 눈이 느릿하게 떠진다.

‘아까까진 날이 맑았던 거 같은데, 소나기인가.’

창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연홍 련이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린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음에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다. 소나기야 흔했지만 맑은 날이 드문 귀주에 여우비는 특히 더 드물었다. 비가 자주 오는 곳이라 습기와 환기에 대비해 연홍의 창문들은 문짝만 하다. 비 냄새와 함께 꽃내음이 섞여든다. 연홍 련은 드문 날씨보다도 제 눈앞에 나타난 사람에게 시선이 꽂혀있었다. 하나로 대충 묶은 머리가 평소보다 복슬복슬한 채 창문을 잡고 있다. 턱에 맺힌 물방울과 자신만큼이나 놀란 매화 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연홍 련은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있었다.

‘어?’

지금 자신이 청명을 보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분명 화산파는 먼저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근데 왜 이 사람이 여기 있지? 연홍 련은 청명이 뒷걸음치려 하자 다급히 그에게 다가가 옷자락을 쥐어 잡는다.

“언제부터 계신 거예요? 여긴 어떻게 알고... 아니 그전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

청명은 제 멱살을 붙잡아낸 연홍 련의 질문공세에 창문을 잡던 손을 움찔한다. 앞에는 거리감 없는 녀석과 뒤에는 비가 쏟아지니 진퇴양난이었다. 청명은 고개를 내빼다가 연홍 련의 양손을 쥐어 잡는다.

“…기껏 보러왔더니 무슨 반응이 그래. 옷 구겨지니까 이거 놔라.”

아. 청명의 말에 연홍 련이 스르르 손을 푼다. 사술인가 확인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조심성 없이 붙잡았다. 얼마나 급하게 잡았는지 풀려진 손 아래로 청명의 옷자락이 구겨져 있다. 청명 역시 손을 놓고 뒤돌아 창문을 닫아낸다. 연홍 련은 쥐어 잡혔던 손을 한번 쓸어보다 청명을 올려본다.

현실감이 없었다. 여우비가 내리는 풍경도. 그 풍경 앞에 청명이 제 방에 있는 것도. 제 그리움이 그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손에 묻은 물기와 청명의 어깨가 조금 젖어 든 것이 그가 환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 방을 어찌 알고 온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단순히 비를 피하려고 들어왔던 건가? 청명이 몸을 돌리자 한참 보고 있던 연홍 련의 시선을 발견한 청명은 뺨을 긁적이다가 시선을 피한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도 말고.”

“보고 싶었어요.”

뺨을 긁던 청명이 멈춰서 고개를 돌린다. 팔을 뻗어낸 연홍 련은 그대로 청명의 허리를 감싸 안아 고개를 묻는다. 품에 닿는 체온을 놓치기 싫은지 제 손목을 감싸는 손이 꾹 힘이 들어가 있다.

“잠깐 얼굴 보긴 했지만 아까 일도 있었고 해서 가신 줄 알았다고요. 와줘서 고마워요.”

술 냄새와 은은히 느껴지는 매화향. 따끈하고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박동이 기분 좋다. 아, 정말 청명 오라버니다. 청명의 품에 파고 안긴 연홍 련은 옅게 미소지은채 쏟아지는 피로에 눈이 감긴다. 갑자기 안겨든 연홍 련의 반응에 청명은 주춤거리다 조심스럽게 연홍 련의 머리를 감싸 안는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고 닿은 건 오랜만이었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이지. 얼굴은 안 보여줄 건가. 머리 올린 모습 더 보고싶은데.’

연홍 련을 내려보던 청명의 눈에 드러나진 하얀 목덜미가 보인다. 내려보고 있자니 연홍에 오기 전, 장문사형과 얘기하던 게 생각나졌다.

-받은 선물도 있으니 보답할 기회구나. 축하하는 자리이고 하니까. 넌 어찌할 것이냐?

-뭘 말입니까? 들어오는 선물 중에 적당히 쥐여주지 그러십니까?

-..정인 사이인 거 아니더냐. 소가주에게 선물은 안 드리는 거냐.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을 지적받자 장문사형이 안되겠다고 자신을 끌고 화음에 데려가 그녀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갔다. 청명에겐 생일은 곧 좋아하는 음식 먹고 축하하면 끝이었지만 선물을 챙기는 건 그에겐 퍽 어색한 일이었다.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여인에게 줄 선물은 더더욱 경험이라곤 있을 리 만무했다. 그 녀석이라면 장신구는 많을 거 같았고 제 눈엔 그게 그거처럼 생겼다. 무엇보다 녀석의 취향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럼 어떻게?

-‘직접 물어봐야지. 이참에 얼굴도 보고 오고.’

연홍 련과 이동할 땐 그녀의 체력도 고려해 중간중간 객잔에 머물렀지만 혼자서 출발하니 귀주까진 금방이었다. 이제 이 마을 하나 크기인 집에서 어떻게 찾나. 높은 곳을 올라갈까 싶었지만 금방 발견했다. 연홍색 옷을 입은 시비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여인을 찾으면 되니까. 혼자 있을 때 물어보고 싶은데 좀처럼 혼자 있지 않아 지켜보다 그녀의 처소까지 알게 되었다. 청명은 조금 떨어진 나무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씻고 나온 연홍 련이 얇게 입은 나삼을 입고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있으니 청명은 말을 걸려다 입을 다문다. 그녀의 뒤로 시비가 따라와 뭔가 얘기하더니 작게 웃은 그녀가 순순히 제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그 자리를 도망치듯이 귀주를 벗어난 청명은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슨 옷이 저리 살이 다 비치는 걸 입는 건가. 습한 곳이니 그럴 수 있겠지만 눈 돌 곳이 없었다. 차라리 서신에다 묻는 게 나았을까. 물어봤다가 언제 답장 올 줄 알고? 끙끙 앓던 청명은 다시 돌아가서 물어볼까 하다 결국 화산으로 돌아간다.

-다음에... 좀 더 일찍 와서 묻는 게 낫겠지.

그 뒤로 물어보려 하면 장문사형이 시키는 일이며, 마교새끼가 눈치 없이 튀어나와 끝내고 귀주에 도착했을 땐 늘 밤이었다. 그 녀석은 부지런히 씻어내고 나면 시비의 손에 제 머리를 맡긴다. 옷은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졌지만 어떨 땐 나삼보다도 그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목에 더 시선이 갔다. 평소엔 피풍의로 얼굴을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제 손목만큼이나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나니 처음엔 멍하게 보다가 나중엔 입을 달싹이는 자신에 흠칫해서 벗어나기를 몇 번, 청명은 결국 물어보지 못하고 고민 끝에 선물을 골랐다.

‘선물은 언제 주지. 지금 줘야 하나.’

그리고 지금, 청명은 갈등하고 있다. 자신을 그리 흔들고 한 목덜미가 눈앞에 있다. 가만히 내려보던 청명은 고개를 기울여 살 내음을 맡는다. 나른히 기대있던 연홍 련은 목에 닿는 숨에 작게 움츠린다. 청명은 연홍 련의 반응에도 제 입술을 목에 문댄다. 며칠 떨어져 있었다고 같이 있을 때와는 체향이 달라졌다. 한 입 맛보듯이 얇게 베어 무니 제 품에 있던 작은 몸이 펄쩍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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