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디셈] 향수는 체온에 녹는다
습작 방생
"악!"
머리채가 잡혔다. 익숙한 일이다. 디셈블러의 머리가 유독 긴 것도 있지만, 그 머리를 잡아당길 만한 인간군상이 흔한 환경에 있는 것도 익숙해짐에 한 몫했을 테다. 아픈 놈들의 성질이 평소보다 더러워짐은 당연한 일이요, 전투의 열기로 예민해진 것들은 만만해보이는 의료인들에게 막대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잡히는 일에 익숙하다 해서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디셈블러가 그들에게 성질을 내지 않을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두피가 당겨지는 통증과 기껏 정돈한 머리가 흐트러졌다는 사실이 해결되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순서로 디셈블러는 인상을 한껏 구기며 뒤를 노려본다. 어떤 새끼야?
"너 머리 엉켰다."
"네가 잡아당겨서 그렇잖아! 당장 안 놔?"
"얌전히 좀 있어. 머리는 그렇게 잘만 정돈하면서."
으르렁, 컹컹. 아주 개가 짖는다는 낯으로 마스터마인드는 디셈블러의 같잖은 반항, 가령, 째려보는 시선과 높아진 언성, 관리되지 않는 언사 같은 것들을 무시하며 엉킨 머리 사이의 꽃잎을 떼어낸다. 가닥가닥 떼어내어 풀어진 머리를 손끝으로 빗어내며 가볍게 정돈한다. 꽃잎이 희지 않았더라면 색이 물들뻔했다.
"뭐야?"
"꽃잎."
"근데."
"가지라고. 네 머리에 다시 꽂고 다니던가."
"뭔 개소리야, 진짜."
모양이 온전한 꽃잎을 디셈블러의 손 위에 얹어주곤, 마스터마인드는 능숙하게 디셈블러의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다. 툴툴거리는 것과 달리 꽃잎을 바로 내던지거나 버리지는 않고, 가만히 내려다 보는 디셈블러를 보면 아마 저것은 말리거나 압축하여 책갈피가 될 것 같았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향이 묘하게 익숙하다. 이 향을 어디에서 맡았더라? 향수의 향과는 달라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은데. 머리의 손질이 끝나고, 드물게 마스터마인드는 뻣뻣한 허리를 숙여 디셈블러의 목덜미에 얼굴을 가까이한다. 디셈블러가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질 칠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마스터마인드의 손은 디셈블러의 어깨를 단단히 붙든 채다.
"뭐, 뭐야? 뭔데? 야, 잠시만, 하지, 마!!"
"귀 아파. 조용히 좀 해봐. 아, 생각 날 것 같은데."
"징그러, 새끼야!!"
"아, 바람꽃."
말을 뱉은 쪽도, 들은 쪽도 멈칫한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정돈된다. 바람이 불어온다. 아마 오늘 밤은, 나쁜 꿈을 꿀 것만 같았다.
"... 온실, 구경할래?"
"그런 것도 차릴 여유가 있었나?"
"버려진 걸 고쳐서 더 낫게 만드는 건 내 특기지."
"구경이나 하자."
타박이는 발걸음에는 힘이 크게 들어가지 않은 채다. 그럴싸한 병원과, 개인 연구실, 그리고 다시 폐허를 지나 도시의 구석진 외곽에는 명백히 구분되는 구역이 있다. 디셈블러는 능숙하게 보안을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한 걸음의 차이로 세상이 변모하는 것은 마법과 닮은 구석이 있다. 물론, 단순한 기계의 보안일 뿐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야가 가득하게 녹음으로 물드는 건 드문 경험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마스터마인드는 내부를 가볍게 둘러본다. 시선에 닿아오는 풍경은, 향수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구조부터가 과거의 것과 똑 닮았으니까.
"의도했어?"
"그리웠으니까."
"우리끼린 거짓말 안 하기로 했잖아."
"... 애드가 더 있다면, 포섭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덜 큰 새끼."
"... 그렇게 말하지 마."
"외로워?"
"..."
"내가 네 것이 아니라서, 불안해?"
"알면 그만해. 확답이 듣고 싶은 거야?"
"아니, 확인일 뿐이지. 알면서."
"그럼 하지 말라고, 개새끼야!"
쾅. 거친 소음이 대화에 섞인다. 쇠붙이가 맞부딪히는 소음이다. 양손에 라디오 나이프를 움켜쥐고 휘두른 궤적을 마스터마인드의 다이너모가 막아서며 나는 소음이다. 디셈블러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상대를 노려본다. 하지만 우는 것만큼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이다. 저 자식에게 전부 파악당하더라도, 그대로 놀아나주지는 않겠다는 같잖은 자존심. 디셈블러는 자조한다.
"최악이야."
"어떤 게?"
"너도, 나도."
"최악을 알아보는 건, 더한 끔찍한 것이라고 하지."
"... 널 원망하면, 내가 너무 한심해지잖아."
"허락해주지. 마음껏 원망해. 대가는 여전히 같은 걸로 하자."
"... 개새끼. 진짜 미워. 널 만나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나 버리지 마. 내 옆에 있어. 날 이해해줘..."
"그럴 수 있는 건 애드 뿐이니까. 그렇지?"
온실 안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람이 옅게 불어왔다. 바람꽃이 흩날렸고, 디셈블러는 마스터마인드의 품에 웅크린 채 파고 들었다. 온기가 필요했다. 향수는 필요치 않을 정도의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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