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도미오버] 진료비는 기억입니다.

71억 말고, 개새끼야.

엘소드 by 효자
10
1
0

도미네이터는 성큼, 오버마인드의 영역에 들어선다. 익숙하다고 할 수는 없는 공간이지만, 낯설지만도 않은 공간이다. 오버마인드가 이 공간을 만들 때의 의도가, 도미네이터에게는 고스란히 줄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하고도, 그리운.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던 공간을 만들자. 그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건, 그와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미네이터는 불쾌감에 미감을 찌푸린다. 억지로 맡은 향수는 머리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

긴장을 푸는 데 좋다던 캐모마일 역시도 이 상황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미네이터는 얼굴 가득, 불쾌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낯으로 문을 응시한다. 약속 시간은 정각. 현 시각은 58분 47초 58. 손님을 기다리게 할 의도가 아니라면, 진즉 나타나 있어야 할 의사는 자리에 보이질 않는다. 다이너모는 일정한 기계음을 내며, 주인의 뒤에 가지런히 자리한다. 약간의 불쾌감만 더해지더라도, 다이너모는 파괴를 목적으로 작동할 테다.

59분, 00초.

"구경은 충분히 하셨나?"

"의사가 오지 않은 덕분에."

"늦진 않았잖아."

"약속 시간 10분 전에 나와 있는 게 예의라는 상식은?"

"마스터마인드에겐 없던 상식이군."

"기억 안 나."

"편리하신 망각이야."

바퀴가 달린 의자는 주인의 무게에 약간 밀려나며, 빙글 돈다. 정확히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멈춰 선 의자는 환자를 마주보기에 딱 알맞 각도다. 손에 쥔 차트를 책상 위에 올리고, 오버마인드는 능숙하게 스크린을 띄워낸다. 환자 정보. 이름, 도미네이터. 나이, 21세. 질병 코드, -- 특이 사항, 일정한 주기마다 하나의 개념에 대해 망각함. 주기는 점점 짧아고 있음. 

"이번 망각은?"

"늘 말하지만, 그걸 알 수 있었으면 내가 너한테까지 왔을까."

"다이너모의 보조로 파악된 건 없고?"

"감정 중 하나야. 뭔진 모르겠지만."

"뭐, 일단 보조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긴 하는 모양이군. 너도 어지간히 대책 없어. 대체 누가 뇌를 기계와 연결할 생각을 해?"

탁탁. 차트와 볼펜 끄트머리가 맞부딪히는 소음이 발생한다. 거슬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디셈블러일 적엔 없던 습관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도미네이터는 미간을 찌푸린다. 왜 이런 쓸데없는 정보만 기억에 남아있는 건지.

"그게 합리적이니까. 다이너모의 메모리까지 함께 삭제되는 건 예상 못 했지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뇌를 복제해서 백업하자니까?"

"널 어떻게 믿고."

"의사를 안 믿으면 나한테 왜 치료를 받냐?"

"대안이 없으니까. 효율의 문제야. 이미 의사가 있는데 뭐하러, ... 아니, 내가 널 그렇게 믿었던가?"

아, 또 저 얼굴이다. 오버마인드는 기이하게도 도미네이터가 잊은 것을 직면할 때마다, 일그러진 얼굴을 한다. 분노도, 서운함도, 답답함도 아닌... 그래, 참담한 얼굴을. 하지만 그럴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자신과 오버마인드는, ... ... ... 단순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일 텐데. 언제부터였지? 아마도 망각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으니, 의사를 찾았을 테다. 그렇다면 이 현상이 시작된 건 언제였지? 아, 그래. 분명히, 자신이 도미네이터로 불리기 시작할 때...

"도미네이터."

"왜 부르지?"

"왜긴 뭘 왜야. 뇌파 검사해야 하니까 기계 장치 다 빼고 누우라고. 늘 먹던 약은 저기에 있어."

"아아. 그래."

도미네이터는 다시금 흘러가던 사고의 흐름을 뒤쫓는다.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그래, 오버마인드와 자신은... 드밀어진 컵에 다시 생각이 끊긴다. 물과, 알약 하나다. 검사를 위해 늘 먹던 것과 똑같았기에, 망설임 없이 도미네이터는 그 약을 삼킨다. 새삼 의심할 것도 없지 않은가. 상대는, 자신이 --하는, 어?

"이제 누워. 아마 졸려서 생각이 드문드문 끊길 수 있지만, 정상적인 증세니 걱정할 것 없다."

"기억의 이상도?"

"그건 이상하니까 알아보려고 지금 검사하는 거잖아. 갑자기 왜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그래?"

"... 몽롱한가봐."

"그렇겠지. 약 하나는 잘 듣는다니까. 눈 감아. 검사 시작한다."

답잖게 멍청한 질문을 하고, 답잖게 순순히 눈을 감고, 아마도 의도했을 일정한 기계음에 따라 잠을 청한다. 오버마인드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도미네이터를 내려다본다. 어쩌면 언젠가는 꿈꿨을 순간이다. 저 얼굴을 내려다보고, 하고픈 말을 죄 쏟아붓고, 네 표정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고... 하지만 잠든 이는 일정한 호흡을 뱉어낼 뿐이다. 뇌파는 일정한 규칙을 지닌 채 이어진다. 인코딩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뇌파의 특정한 키워드에 맞는 자극을 주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기록하는 것이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같은 파형이 반복되기만 하는 게 옳았다.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평소였으면 반박했을 마스터마인드는, 아니. 도미네이터는 고요하다. 그의 다이너모가 대꾸하듯 웅웅댈 뿐이다. 그래, 너와 이어져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인가. 오버마인드는 파형의 분석 결과를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이로 도미네이터가 잃어버린, 명사화된 감정만 스물 두 개다. 아직 잊지 않은 것이  백 하고도 여섯이 더 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치 않다. 오버마인드에게 중요한 감정들은 아니었던 탓이다. 

도미네이터가 잃어버린 기억, 일흔한 개. 그 중 디셈블러가 얽힌 것은 마흔여덟, 어펙트 트레이서가 얽힌 것이 스물셋. 다시 되돌아와서, 도미네이터가 잃어버린 첫 번째 감정, 사랑. 두 번째, 신뢰. 세 번째, 친애. ...

"개새끼."

정말 악질적이고, 지독하고, 얄은 사실은. 전부 잊어버 도미네이터가 오버마인드를 제 발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오직, 그가. 의사이기에. 과거에 주고받던 연락을 찾아냈다거나, 자신을 보고 극적으로 기억을 되찾다거나. 혹은, 그를 보았을 때 편안함이나 기시감을 느꼈다는 이유조차 아니었다. 그저, 의사이면서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의 나소드 지식이 있어, 다이너모의 활용이 가능했으니까. 지독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오버마인드는 능숙하게 검사가 끝난 시료를 폐기하고, 연결해 뒀던 장치를 떼어낸다. 이제 오버마인드의 다이너모가 띄우는 스크린에는, 등록된 환자 정보만이 점멸한다. 스크린에 비는 자신의 얼굴은, 지독히 피로해 보여서. 오버마인드는 스크린을 멀리 치운다. 곧 도미네이터가 일어날 테다. 그가 방문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우려두는 캐모마일을 환자용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고, 제 책상에 자리한 로즈마리 화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바이탈의 이변은 스크린의 요란스러운 점멸이다. 심박의 변화겠거니,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로즈마리를 살핀다. 꽃을 틔운 게 향이 좋았다.

"꿀은 늘 넣던 대로, 한 스푼 넣어뒀어. 마시고, 바로 일어나지 말고 좀 앉아있다가 혈압 올라가면 가라."

"그게, 어느 정도지?"

"십 분. 다이너모로 타이머 맞춰뒀어."

도미네이터는 입을 꾹 다문다. 잠들었다 깬 직후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디셈블러는 되려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 아침마다 마스터마인드를 깨우다가 그가 저혈압이 있다는 사실이나 알아냈지만. 그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추억이다. 

십 분. 고요한 평온. 진료가 끝난 후의 평온을, 오버마인드는 꽤 좋아하는 것 목록의 상단에 올렸다. 이 시간의 종말은 느리게 찾아올 것이다. 유일한 표본의 이름을 딴, 도미네이터 증후군은 사랑하는 것부터 망각했으니까. 도미네이터는 이 시간에 별생각이 없을 테고, 오버마인드에게도 별다른 감정이 없을 터였으니. 오버마인드는 꿀을 타지 않은 제 몫의 차를 들이켰다.

예정된 종말을 늦추는 방법은, 쓴 맛이 났다. 찻잎을 너무 오래 우려낸, 오버마인드의 탓이었다.


소장용 결제 박스입니다. 소소한 후일담이 있습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