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네이터의 연구실에는 시체가 두 구 있다. 한 구는 그의 뿌리를 만들어낸 씨앗. 영원히 벗지 못할 그의 껍데기. 더 없이 사랑하는… 그레이스. 다른 한 구는, 그와 정 반대의 것이다. 지독히 썩어버린 과실. 코를 찌르는 단내를 풍기며, 진득한 진액을 흩뿌리는 것. 그 걸음마다 시체의 향이 풍기고, 발걸음에 진득한 액체가 흔적처럼 뒤따른다. 그것은 발을
도미네이터와 매드 패러독스는, 서로를 잘 안다. 잘 안다고 확신했고, 전부 파악했다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둘은 계약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어쩌면 그 모든 사고의 근원은, 둘이 같기 때문이다. 결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매드 패러독스는, 기꺼이 도미네이터가 질색하는 어린 태를 버린다. 1조. 매드 패러독스는 도미네이터를 사랑한다
취조실의 오래된 전등이 점멸한다. 낡은 필라멘트 전구는 백색보다는 황색에 가까운 빛을 낸다. 구속복에 짓눌린 살인마는 전등을 바라본다. 눈에 붉은 곡선이 좋을 대로 새겨진다. 퀴퀴한 먼지 내음이 비강을 뒤덮는다. 낡아빠진 장소다. 새로운 거라고 해봐야, 한쪽씩 사이 좋게 의자에 채워진 수갑만 반짝인다. 쇠로 된 의자는 녹이 슬고 먼지가 뒤덮인 채다. 살인마
0월 12일, 27시 03분. 악마를 주웠다. 연구실 문 앞에서. 0월 13일, 01시 04분. 악마가 깨어났다. 그것은 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발작처럼 11분 가량을 웃다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 허공에 흔들의자라도 있다는 것처럼, 아니면 요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이의 행동을 모방했다. 둥글게 만 몸을 흔들, 흔들.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
씬은 모브디에입니다... 여러모로 오늘 많은 업보를 청산하네요. 감사합니다. 매드 패러독스의 실종 십 사일 차, 도미네이터의 연구실에 택배가 배송되었다. 보내는 이, 마스터. 받는 이, 도미네이터. 품목, 매드 패러독스. “뭐?” 택배 상자는 평범한 종이 상자였고, 생명의 고동은 없었다. 미동도, 없었는데. 도미네이터는 다급하게 상자의 테이프를
“자, 가져. 너 이거 좋아하잖아.” 며칠 보이지 않던 패러독스가 대뜸 선물이라며 내민 것은 디아볼릭 에스퍼였다. 도미네이터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이 짜증 나고 귀찮은 사념체는 어느 날부턴가 집에 멋대로 눌러살며 제 관심을 끌려고 온갖 수작질을 해댔다. 꼭, 그 애와 똑같은 눈을 하고서는 사람 속을 온통 뒤집어놓는다. 그러더
자해, 자살에 대한 직·간접적인 묘사가 존재합니다. 1. 비어있는 방. 깔끔하고 반듯하게 정리된 모든 물건들을 성의 없이 눈으로만 훑고 지나친다. 어제와 다를 것 없군. 지금 몇 시지? 오전 2시 16분 53초. 네가 방 밖에 있을 만한 시간은 아닌데도 비어있는 것이 거슬린다. 커피라도 타러 간 걸까. 아니면 자기 전에 목욕이라도 하러 간 걸지도
나는 언제나와 같다.백만가지 상실 위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하여 멈추지 않는다. 파도에 쓸려간 모래는 행성 반대편의 해안에 다시 쌓인다. 내 상실이 방황하다 쌓일 곳은 오래 전에 정해져 있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와 같다. 오늘 내가 갈 곳은 어제도 간 곳이요, 내일도 갈 곳이다. 쉼터 하나 잃었을 뿐이니 목적지가 달라지진 않는다. 깜깜한 하늘 위
자살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 有 1.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돌덩어리처럼 무겁고 지루하다. 숨 한번 쉬기가 그렇게 힘들어서 내가 여기에 있어서는 안되는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평범한 하루.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단지 언제나와 달랐던 점은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놓인 아름답고 깊은 겨울 바다였다.
1. 모든 것이 흘러들어오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고요하고 소란스러운 틈새. 나는 부유한다. 떠오르는가 가라앉는가. 흉내를 멈추고 의지가 옅어지면 비로소 나는 비좁고 드넓은 이 틈새에 빠짐없이 존재한다. 이곳은 요람처럼 안락하고 요람처럼 나 외에는 전부 외부의 것이다. 천장에 달린 모빌, 벽면을 채운 책과 장난감, 아기를 돌보는 부모. 이처럼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