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매패] ∞

엘소드 by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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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월 12일, 27시 03분.

악마를 주웠다. 연구실 문 앞에서.

0월 13일, 01시 04분.

악마가 깨어났다. 그것은 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발작처럼 11분 가량을 웃다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 허공에 흔들의자라도 있다는 것처럼, 아니면 요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이의 행동을 모방했다. 둥글게 만 몸을 흔들, 흔들.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서 웅크린 것은 잠든 것으로 추측되었다.

0월 19일, 02시 14분.

악마가 다시 깨어났다. 그것은 내 목을 조르려 손을 뻗었다. 보란듯이 구는 게 이상하게 여겨져서 기록한다. 나는 느리게 뻗어진 손을 내쳤다. 악마는 상처라도 받은 것처럼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아이처럼 순한 얼굴로 그것은 뻔뻔하게 내 침대를 뺏었다. 뭐야?

0월 19일, 04시 17분.

아무리 관찰해도 그것은 미동도 없어서, 그냥 이불로 말아서 밀어버렸다. 얌전히 벽과 이불 사이에 끼어서 잠을 청하는 꼴은 고양이의 습성을 닮았다. 진짜 뭐지.

0월 21일, 00시 00분.

[녹음 파일_001]

(잡음이 순간 지나간다. 공기가 울리는 소리가 잠시 끼어든다.) 계약 같은 건 안 하나? / 뭐하러? / 견고한 결속. 활자의 구속과 명시된 것의 제약은 그것만으로 하나의 개념이 되니까. / 넌 그런 것 없이도 날 지우지 못하잖아. / ... / 왜냐하면, 난, (노이즈와 함께 재생이 종료된다.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는 지배자의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의 삽입은 누가 한 걸까?)

울새를 죽인 게 누구였는지 기억해?

우리였지.


"도미네이터. 타입 도미네이터야, 시스템 도미네이터야?"

"타입 도미네이터."

"그런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악마는 손을 뻗어서, 어느덧 청년이 된 소년을 쓰다듬었다. 도미네이터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악마의 손길을 세 번까지는 참다가, 그 이후에 쳐내려 했다. 악마가 먼저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면 살끼리 마찰하는 소음이 발생할 만큼 힘을 주어 내쳤을 테다.

"나는 널 몰라."

"응, 난 널 알고."

"네가 아는 건 내가 아니겠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이렇게 크지 않았거든, 그 애는."

"그 애는 이렇게 작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는데."

"저런, 거울 보여줄까?"

악마는 짓궃게 시공간의 파편을 들이밀었다. 투명한 파편에 비춰지는 도미네이터의 얼굴은 지독히 깨끗했다. 지배자는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은 완전하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조차 자신이 다스리지 못할 존재가 생겨나면 균열이 생긴다. 매드 패러독스는 그러한 균열의 개념에 부합하는 존재였고, 그 자신은 스스로의 존재를 활용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계약하자."

"연애 계약은 진부한데."

"계약 사랑은 덜 진부하겠지."

"싫어. 네가 바라는 건 '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단 말이야."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것 역시 내가 아니잖나."

"당연한 말씀을."

도미네이터는, 그 언젠가의 악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느리게 손을 내보인다.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느릿하게. 보란듯이, 팔을 뻗어간다. 악마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낯으로 지배자의 행위를 관람한다. 도미네이터의 손가락이 악마의 동공과 접촉하는 순간, 악마는 눈물을 흘린다. 주저앉는다. 몸을 웅크리고, 어른이 되어버린다. 강제로 커진 아이는 제 몸을 구겨 더 좁은 공간에 욱여넣고자 한다. 지배자는 자애로운 얼굴로, 그 웅크린 등을 감싼다. 사브작대는 천에 온기는 없다.

"어, 머니."

"에드워드. 현재는,"

"안 돼, 더 말하지 마.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나는, 덧씌워줄 수 있어. 아주, 길게. 그저, 네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허락이 아니라, 계약이겠지. 네 지배를 받게 될 거야, 나는."

"네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널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농담도."

지독한 놈. / 칭찬 고마워. (화면이 꺼진다.)

"그래서, 이딴 걸 보여준 이유가 뭐야?"

"그냥, 재미있잖아. 어딘가에 존재했을 지도 모르고?"

"재미 없어."

"그래, 그럼 다시 한 번 재생해줄게."

"필요 없어."

"이번엔 색이 바뀔 거야. 눈 크게 뜨고 잘 봐, 도미네이터."

"거절의 의사 정도는 듣지 그래?"

"활자에 소리가 어디 있다고. 자, 다시 봐봐. 이번엔 조금 다를걸?"

입자 생성기의 전원이 내려간다.

세계는 고요하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텅 빈 세계에는. 홀로 남은, 지배자만이. 고독하게, 웅크린다. 몸을 웅크리고, 주저앉는다. 애드는 발작처럼 웃음을 터트린다. 소년은, 자신을 더듬다가, 잠을 청한다. 목을 졸라, 전원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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