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둔 편지
만날 수 없을 당신에게 남깁니다.
페이탈 팬텀이 코멧 크루세이더의 시공에 떨어졌다는 IF식 설정입니다.
공식과는 무관한 비공식 2차 CP입니다, 리버스에 민감하신 분들은 읽으시는 걸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추천곡 바운디 - 남겨둔 편지(置き手紙)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한참이나 창문을 바라보던 파수꾼은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릴 사람이라면.
“팬텀,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문손잡이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이윽고 그와 똑 닮았으나 분위기도 한참 다른 수호자가 들어왔다. 애초에 그의 허가가 없다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고 자신은 부외자에 불과했음에도 수호자는 몸에 밴 것처럼 늘 제가 묵는 방에 들어오기 전엔 노크하고는 했다. 자신이 그의 시공간에 떨어진 후, 이곳에서 지내게 된 지도 벌써 석 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기에 그 사실이 못내 불안하고 해결할 방법이 없단 사실이 답답한 상황에 사소한 행동에도 예민해졌던 터라 배려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불이 안 꺼져있어서 들렸어요, 잠은 자고 있나요?”
“…걱정할 정도로 안 자진 않습니다, 코멧도 알고 있을 텐데요?”
"그건 그렇지만……. 아, 당신이 떨어진 곳 근처에서 요즈음 일그러진 마력이 느껴진다는 말을 전하려고 왔어요.“
일그러진 마력, …어쩌면? 그 말에 눈빛이 바뀌어 수호자를 다시 바로 보니 꼭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도, 어릴 적 무른 성정은 그대로인 것처럼. 그렇기에 파수꾼은 그를 알 수 없었다. 타인은 보이는 대로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자기 자신의 다른 가능성은 대하기가 어려웠다. …어려웠다는 표현보다는, 껄끄럽다는 표현이 맞겠지.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그런 직관적인 감상은 어쩔 수 없었다.
전투 중 순식간에 자신을 삼킨 공간에서 한참을 헤매 떨어진 곳이 자신이 지내던 엘리오스가 아니라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잠깐, 느껴지는 기척에 곧장 등 뒤의 상대에게 팬텀슈터를 겨눈 순간 들린 익숙한 음성에 곧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나침반을 손에 쥔 채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필요도 있었지만, 경계를 늦출 수 없기에 팬텀슈터를 겨눈 채 천천히 뒤로 물러나니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침반을 품에 집어넣고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처럼 양손을 들어 올렸다.
“혹시 당신도 수호석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도, 라는 건 이런 일이 또 있었다는 겁니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종종 이곳에 흘러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아이샤 누나가 알려주시길 시공간의 뒤틀림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당신도 그 뒤틀림에 휘말린 것 같은데 아닌가요?”
“당신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이론이 아이샤 누나의 의견이라면 맞는 것 같네요. 전투 중 갑자기 균열이 생긴 곳에 빨려 들어왔으니까요. …그렇다면, 돌아가는 방법은 있습니까?”
“그 이론을 알려주신 아이샤 누나의 말로는, 자신처럼 시공간과 밀접한 연구를 해봤다면 좌표를 가지고 있어서 금방 돌아갈 수 있다고 했어요. …모르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으니,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순간 운에 맡겨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시공간 연구라면 듣거나 본 적도 없을뿐더러, 만약 균열을 발견했다고 해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운에 맡겨야 한다니. 자신이 속해있던 수색대는 괜찮은 듯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손이 아쉬운 상태였다. 수색대만 그러했던가? 하멜도, 세상 역시도 그러하였다. 빨리 돌아가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소식에 한숨이 나오던 터에, 지낼 곳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음, 서로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부를 만한 이름이 있을까요?”
“…페이탈 팬텀, 팬텀이라고 부르세요. 당신은?”
“코멧 크루세이더, 편하게 코멧이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팬텀, 혹시 당장 지낼 곳이 문제라면 제가 제공해도 괜찮을까요? 다들 이해해 줄 테니까요.”
“당장 갈 곳이 없으니…. 신세 지도록 하죠, 대신 업무가 겹치거나 곤란한 임무가 있다면 도와드리는 조건으로요. 괜찮나요?”
“그거참 듣던 중 다행이네요! 마침 한창 바쁠 때였거든요. 더 어두워지기 전에 따라오세요.”
이쯤 되면 의심해야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수호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타인을 쉽사리 안으로 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하물며 동료들과 함께 지내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더더욱, 만약 잘 꾸며진 연극이라면 채 대처할 시간도 부족할 터인데. 자신이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그를 안으로 들이진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지내며 임무를 돕다가 알게 된 사실은 수호자가 허술한 듯싶으면서도 의외로 확실한 구석이 있는 점이었다. 자신을 밖에 두는 것보다 안에 두고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아닌 척 제 동향을 전부 파악하고 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점에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에서 그대로 성장한 올곧은 성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깊게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 올곧은 성정을 보고 있노라면, 제가 한 결심도 무색할 정도였다. 저렇게 정직해서야 어쩌냐며 신경이 쓰이는 것도 애써 눈 돌리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 상냥함에 기대기엔 돌아가야 할 곳도 명확했고, 돌아간다면 영영 만날 수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텀? 팬텀…!”
그런 감상에 오래도 빠져있었는지 제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 수호자를 보고서 당황한 얼굴로 몸을 뒤로 움직였다. 자신의 반응에 그제야 안심한 것처럼 웃고는 장소가 적힌 메모를 건네주는 것을 받아들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자고 일어나서 내일 같이 가요.”
“굳이 같이 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잘 돌아가는지 정도는 확인 해도 괜찮아요. 걱정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 말을 하며 그는 또 아쉽다는 표정을 한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알고 있어도 깊게 얽히고 싶지 않다. 이 감정이 정말로, 만약 정말로…. 책임지지 못할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야 자신도 그렇지만 그도 결국은 ‘프린스 세이커’ 가 아니던가.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보내며, 동료와 함께 하고, 세계를 지킬 의무가 있는 자, 돌아갈 곳이 있는 자, 지킬 것이 있는 자에게 그런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기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보죠.”
역시 자신과 닮은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건 불편하다. …보고 싶지 않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나간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애매하게 남은 온기, 저와 닮았으나 조금 더 다른 느낌의 체향. 부디 돌아갈 수 있기를, 이 이름 붙이지 않을 감정에 더는 휘둘리지 않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로 돌아가 털썩 누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오래 뒤척인 끝에, 자고 일어나 그가 알려준 위치에 도달하니 곧 장소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법을 할 수 없음에도 느낄 수 있는 위압감, 그 공간을 앞에 두고 들어가기 직전 파수꾼은 몸을 돌렸다.
“팬텀?”
“…여러 가지로 고마웠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조금 아쉽네요.”
일렁이는 물색의 눈,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이었다. 둔하다고 한들 그렇게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 미묘하게 섞인 연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밀어붙이지 않고 배려하는 것, 그 감정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면 단 하나 아니겠는가. …그러니 꺼내고 싶지 않았다. 각자 있어야 할 곳이 있고, 더는 만나지 못할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서로 괴롭지 않고 깔끔하겠지. 쓸쓸하게 웃는 그를 보며 파수꾼은 애써 동요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정신 차려요, 코멧. 그저 몇 달 정도 머무른 부외자에게 그런 표정을 지어서야.”
나는 나 자신을 긍정하지만, 그에 더해 싫어한다. 망설이지 않기 위해,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나와 같은 당신을 싫어한다, 바라건대 부디 당신도 그러기를. 그에 대해 수호자가 급히 말을 덧붙이려는 것을 뒤로 하고 파수꾼이 균열 사이로 몸을 던졌다.
파수꾼이 돌아간 이후 수호자는 그가 머무른 방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묵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방. 정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기분에 조금 쓸쓸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매몰될 수는 없었다. …나아가는 수밖에.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앞으로 이름 없는 편지가 전달되었다. 발신인이 없으니,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받아서 펼치니 자연스레 자신과 같은 필체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코멧 크루세이더에게.
안녕하세요. 운이 좋았던 건지 원래 있던 세계에 잘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저는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행복하지가 않더군요. 당신이 잘 지냈길 늘 바랍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생각보다 당신의 배려와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걸요.
볼 수 없지만 보고 싶네요.
― 페이탈 팬텀.
애석하게도 답을 할 수 없는 편지였다, 그치고는 꽤 영악한 방법을 쓰지 않았나? 지켜본 결과 선택은 달랐지만, 자신과 비슷하게 의외로 정직하기에 이런 방법은 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편지를 쓴다고 해도 자신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보통 못하지 않던가, 아니면 방법을 혼자서 아는 것이겠지. 정말로, 정말 치사한 방법이었다. 보낼 기회가 생긴다면, 그에게 답신을 보내고 싶었다. 제 숙소로 돌아온 후 자리에 앉은 수호자는 편지지와 펜을 집어 들었다.
페이탈 팬텀에게.
안녕하세요.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에요. 저는 평탄하고 소중한 나날을 보냈죠. 저 역시 당신이 잘 지냈길 늘 바라요.
있잖아요,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해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당신은 나에게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어요.
돌아갈 곳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당신에게 말할 수 없었음에도 알아차려 주어서 고마워요.
저도 그래요. 볼 수 없지만 보고 싶어요, 팬텀.
― 코멧 크루세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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