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word

Love & Peace

엘소드 셀레스티아&이터니티 위너 Non-CP

2023.07.19 포스타입 연성 백업

엘리아노드에 도착한 셀레스티아가 마스터들을 만난 뒤 이터니티 위너를 만난다는 설정. 노아 에픽을 따르는 스토리지만, 약간의 설정 붕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람에 유의 바랍니다.

미완성이지만 대충 완성인 척...



 1.

 

 노아가 본 엘리아노드는 1000년 전 세븐 타워의 창문으로 본 풍경이 전부였다. 활기가 넘치는 엘리안 왕국의 수도. 클라모르는 종종 엘리아노드와 세븐 타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노아는 자신이 있는 곳이 과거의 엘리아노드라는 점도, 유적이 보여주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만약 유적 밖에 나간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엘리아노드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막연하게 상상만 해왔다.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노아는 유적에서 나온 뒤 렌다르 캠프와 동행하여 엘리아노드에 도착했다. 유적에서 본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어딘가 기이하고 조용한 고대 엘리안 왕국의 수도. 엘의 힘과 헤니르의 힘이 뒤섞여 온전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클라모르는 변한 엘리아노드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클라모르가 마지막으로 본 엘리아노드, 노아가 처음으로 현실에서 마주한 엘리아노드. 낯설었지만, 노아는 이제 새로운 환경이 두렵지는 않았다.

 마스터들과 조우하고 엘의 탑 근처를 지날 때, 노아는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분명 엘리아노드에는 마스터들과 신녀들만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충 보아도 신녀 복장은 아니었다. 마스터인가? 마스터라기엔 너무 어려 보였다. 생각해보면 물의 마스터 데니프나 불의 마스터 로쏘도 굉장히 어린 외형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어려 보여도 사실 엄청 대단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분홍색 머리를 한 여자애?”

 “엘의 탑 근처에서 봤어. 엄청 작고 어려 보이던데, 마스터인가?”

 “마스터라면 마스터의 복장을 하고 있을 거야.”

 “역시 그렇겠지…… 신녀도 아닐 테고.”

 

 마스터도 신녀도 아니라면, 그 애는 대체 누굴까. 노아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갔다. 그리고 곧 그 여자아이와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다시 본 아이는 대지의 마스터 가이아와 동행하고 있었다. 가이아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고개를 든 순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노아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노아에게 말을 건 쪽은 가이아였다.

 

 “노아 님. 지내기 불편하진 않으세요?”

 “불편하지 않아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더 작고, 어려 보였다. 하지만 단단한 어깨나 팔, 다리가 그가 실력자라는 점을 증명했다. 어깨에 걸친 코트가 바람에 날려 펄럭거렸다. 노아가 여자애를 빤히 바라보자,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아니. 그냥 네가 누군지 궁금해서. 난 노아라고 해. 렌다르 캠프와 동행해서 엘리아노드로 왔어.”

 “라비. 벨로…… 아니, 대지의 마스터의 제자야. 가끔 엘 수색대를 돕고 있어.”

 

 라비. 그게 그 아이의 이름이라고 했다. 노아는 이름 두 글자를 곱씹었다. 기묘하게 권태가 실린 어투가 눈에 띄었다. 대지의 마스터의 제자라. 마스터가 제자를 두기도 하는구나. 곁에 있던 가이아도 부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했다. 클라모르도 짧게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납득했다. 사실 부정할 이유도 없었다.

 노아가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벨른 가의 자제라는 사실을 밝혀야만 했다. 다행히도 마스터들이 알고 있던 이벨른 가의 과거와 노아의 증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시 잊고 지냈던 이벨른 가의 차남이라는 호칭. 노아는 자신이 쌓아온 2년을 떠올렸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으며 달려온 시간. 노아는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와, 함께해준 사람을 믿었다.

 클라모르는 엘리아노드에 온 이후 묘하게 변한 노아의 태도를 걱정했다. 대화중에 갑자기 말수가 적어진다거나, 가끔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등의 행동 말이다. 적어도 유적에서 나온 이후의 노아는 절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고 뻔뻔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조금 달랐다. 천성이 섬세하고 다정한 클라모르는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노아. 너 또 예전처럼 안 좋은 생각하는 거 아니지?”

 “에이, 형!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걱정되니까 그러지! 요즘 맨날 대화하다가 멍 때리고!”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그랬어. 걱정하지 마, 형.”

 “또, 또!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노아는 종종 시클을 두고 외출했다. 클라모르는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냐고 노아를 타박했지만, 노아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멀리 나가지 않으면 상관없다, 마법 공부를 많이 했기에 시클의 도움 없이도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다……. 노아는 갖은 화술로 클라모르를 설득했다. 사실 클라모르가 허락하지 않아도 멋대로 행동할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유리아를 따라 온 엘리아노드에서 마주한 건 다름 아닌 과거의 자신이었다. 이제는 흘려보냈다고 생각한 자신의 아픈 과거. 현재를 밝혀준 파트너와 함께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현실의 벽이 다가왔다. 이벨른 가의 차남이라는 꼬리표는 늘 노아의 뒤를 따라왔다. 노아는 유적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제가 한 선택을 생각했다. 흘러간 과거는 잊어버리기로 했지만, 쉽지 않았다.

 노아는 엘의 탑 근처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별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정한 엘의 기운에 헤니르가 섞인 풍경. 그 위로 지나가는 근사한 별무리는 꽤나 절경이었다. 조금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득한 우주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머리를 잠식하던 잡생각이 조금씩 사라졌다. 허나 고민과 걱정은 흐려졌다가, 금세 다시 제자리를 되찾았다.

 그때, 생각에 잠긴 노아의 곁으로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백발에 가까운 분홍색 머리칼이 바람과 함께 휘날렸다.

 

 “거기 너, 노아라고 했나?”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예상 외였다.

 

 “너, 싸움 잘해?”

 “싸움?”

 “대련하자. 마침 지루해지던 참이었거든.”

 

 그게 라비와 노아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2.

 

 대충 보아도 육탄전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매 순간 수련에 전념한 라비의 몸은 굉장히 단단했고, 그에 반해 2년 동안 세븐 타워에서 연구만 계속한 노아는 마법 쪽에 특화되어있었다. 노아는 이후에 클라모르와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라모르가 호응해줄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이후에 전투 장비를 갖추고 엘리아노드 수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대지의 마스터의 제자라. 궁금증과 동시에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엘리아노드에 도착한 이후로 쭉 느낀 묘한 거북함. 출처는 너무도 명확했다. 마스터라는 직책. 자신이 흘려보낸 과거. 잊었다고 생각한 슬픔과 죄책감. 노아의 입술 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쌀쌀한 공기가 폐에 가득 들어찼다. 약속한 시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노아의 발걸음은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장은 소란스러웠다.

 곱슬곱슬한 분홍빛 머리칼이 기합에 맞춰 흔들렸다. 라비가 수련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그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노아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인기척 탓인지, 라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라비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움직임과 동시에 툭, 떨어졌다.

 

 “…… 언제 왔어?”

 “얼마 안 됐어. 너 잘하더라.”

 

 노아는 뻔뻔하게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라비는 노아의 칭찬을 듣더니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노아는 눈을 한 번 끔뻑였다. 예상한 대로 라비는 역시나 실력자였다. 대련에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라비와의 대련은 기대가 됐다. 흥미로웠다. 새로운 힘을 탐구하는 일은 역시 즐거웠다. 대련 이후에는 라비와 라비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라비의 옆에 떠다니는 거울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거울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라비. 괜찮다면 지금 할까? 대련.”

 “…… 무기 가지고 온다며?”

 “없어도 돼. 괜찮아.”

 

 라비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라비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라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노아를 올려다보았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할 거면 진심으로 해. 대련은 강한 자와 해야 의미가 있다는 거, 몰라?”

 “진심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는데.”

 “장난할 생각 없어.”

 

 일순간 라비의 눈에 불꽃이 스쳤다. 노아는 뻔뻔하게 웃으며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못 미더울 만도 했다. 이전부터 제 신체를 이용해 싸우는 훈련을 했던 라비와 다르게 노아는 라비와 같은 체술에는 뛰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허를 찌를 수 있었다. 라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라비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앞에 있는 녀석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한 번에 눌러버리자.

 노아는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단순히 속 편하게 사는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 알기 힘든 얼굴이었다. 라비는 노아를 힐끔 바라보고는 전투태세를 취했다. 라비는 강한 자와의 전투를 원했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진심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임하게 만들면 됐다. 라비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라비는 이전에 보았던 자신만만한 태도 대신 조금 권태로운 태도를 취했다.

 

 

 

 3.

 

 노아는 라비가 생각한 것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노아의 여유로운 모습은 허세가 아니었다. 노아는 2년 간 세븐타워에서 자신의 힘을 연구하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로 인해 힘을 다루는 데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또 이렇게 대책도 없이 뛰쳐나간 걸 알면 클라모르가 화를 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한, 노아도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승자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노아는 시간이 꽤 흘렀음을 느꼈다. 라비는 오랜 시간 대련을 치르고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호전적인 태도를 내비치며 달려들었다. 먼저 대련 중단을 선언한 쪽은 노아였다. 아무래도 더 늦게 돌아갔다간 제 파트너가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또 보자. 오늘은 너무 늦었어.”

 “…… 그래. 알겠어.”

 

 라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한 번 쯧, 찼다. 예상한 대로 라비는 실력자였다.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사람은 한 번에 나가떨어질 주먹이었다. 라비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지만, 노아는 어렴풋이 느꼈다. 오늘 보여준 힘은 절대 전력이 아니었다. 라비가 쌓아온 힘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다. 노아는 싸움을 계속하는 대신, 벽에 기대어 앉아 말을 건넸다.

 

 “대련은 왜 하자고 한 거야?”

 “난 원래 대련하는 거 좋아해. 그리고…….”

 “그리고?”

 

 라비는 노아를 슬쩍 바라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고민이 많아 보이길래.”

 “내가 고민이 많아 보인다고?”

 “딱 봐도 그래 보이잖아. 묘하게 축 쳐져있고.”

 

 라비가 노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강인해 보이지만 살짝 처진 눈꼬리가 귀여운 인상을 주기도 했다. 묘하게 발랄하고 밝아 보이기도, 강인하고 굳세 보이기도 했다. 라비는 어느 새 내가 뭐 하러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건지, 라고 중얼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아도 라비를 따라 일어나 온 길을 돌아갔다. 두 사람의 이동 경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이야기할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었다. 노아는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짚더니,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신경 써준 거야?”

 “그냥 신경 쓰인 거야. 특별히 신경을 쓴 건 아니고.”

 

 라비는 시원시원하면서도 벽이 있는 성격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사람을 경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말을 터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밝고 다정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선을 그었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해 보였지만 가끔 그늘이 있었다. 처음 본 마스터의 제자. 가진 힘의 일부만 보였음에도 드러나는 대단한 실력자. 그리고 밝고 당당하면서 묘하게 타인에게 선을 긋는, 딱딱하고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 노아는 라비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고마우면 다음에는 더 진심으로 임해.”

 

 뭐든 대충 넘어가려 하지 마.

 라비가 딱딱하면서도 살짝 화가 난 듯한 투로 말했다. 노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노아나 라비나 힘을 전부 이끌어내지는 않았다. 노아는 그 사실을 알았다. 라비도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나도 다음에는 안 봐줄 거야. 기대해도 좋아.”

 “음, 라비.”

 

 노아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라비도 동시에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덤. 노아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라비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 손을 내밀었다.

 

 “대련 말고 대화, 는 어때?”

 “대화?”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냥 우리 또래 같기도 하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어?”

 

 라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라비는 구태여 노아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노아는 즉석에서 다음 약속을 잡았다. 대련도 대련이지만, 노아는 라비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라비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생각해 보면 대지의 마스터 가이아의 제자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딱딱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아닌,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한 번 들어는 줄게.”

 

 라비는 일순간 망설이더니 노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법 터프한 몸짓이었다. 노아는 씩 웃으며 손을 위아래로 두어 번 흔들었다. 약속 성사였다.

 

 

 

 

 4.

 

 엘리아노드는 고요했다. 덕분에 조용히 사색을 즐길 장소는 충분했다. 평화로우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이 맴도는 이상한 풍경. 노아는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끔뻑였다. 유적에서 깨어나고부터 엘리아노드에 도착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흐른 시간을 받아들이고 인공 정령술을 완성하기까지. 그리고 유리아를 따라 엘리아노드로 향하는 길까지. 이제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외부와 단절된 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노아가 생각에 잠겨 헤매고 있을 때, 분홍색 머리칼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조금 편안해 보이는 복장의 라비였다. 라비는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고, 큰 후드와 반바지를 입은 채 노아의 앞에 나타났다. 라비는 자연스럽게 노아의 옆에 와서 앉았다. 노아는 조금 놀랐다. 벽이 있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지금의 모습은 생각보다 허물이 없어 보였다. 포슬포슬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오늘도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있네.”

 “얼빠진 표정이라니.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 중이었어.”

 “무슨 고민인데? 재밌는 이야기라면 들어줄게.”

 “아무래도 고민이니까 재미는 없을걸.”

 

 노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라비는 노아 쪽을 힐끔 바라보더니, 다시 턱을 괸 채 정면을 향했다.

 

 “재미없어.”

 

 짧은 한마디가 이어졌다. 노아는 라비를 천천히 훑었다. 라비는 작고 어려 보이지만 기묘하게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애였다. 밝고 당당해 보이면서도 벽이 있고, 다정하면서도 무뚝뚝한 애였다. 노아는 라비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라비, 너는 대련하는 걸 좋아해?”

 “아무래도. 그냥 생각을 비울 수 있어서 좋아.”

 

 라비는 조금 따분한 듯 허공을 응시했다. 노아는 그런 라비를 힐끔 곁눈질하고는 턱을 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밝은 별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었다. 노아는 드문드문 떠오른 별을 천천히 응시했다.

 

 “싸우는 게 좋아?”

 “싸우는 게 좋다기보다는,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는 게 좋은 거지. 나는 내가 강해진 모습이 좋아. 그럼 슬픈 일도 잊히고.”

 

 어쩌면 라비가 수련을 하며 보낸 시간은 1000년 전의 세븐타워에서 제가 제 힘에 대해 연구하며 보냈던 시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비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일종의 해방감과 즐거움. 자신이 이벨른 가의 차남이 아닌 노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너도 꽤 강해 보이던데?”

 “오, 나 인정받은 거야? 고마워.”

 “내가 인정하는 상대는 흔치 않으니까 영광으로 여겨.”

 

 라비의 표정은 대련을 즐길 때와는 조금 달랐다. 편해진 복장 때문일까, 분위기 때문일까. 라비의 벽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엘소드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