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창작_6월

가지 않은 길

2주차의 밴드에서 이어집니다.

렉스와 닐의 냉전 아닌 일방적인 냉전은 2주를 채우기 전에 끝났다. 팀장과 ‘상담’한 바로 다음 날 아침, 드디어 감정의 변화 단계가 자책에서 분노로 넘어간 정비공이 머리끝까지 화난 것을 숨기지도 않은 채 식당을 나오던 워커의 멱살을 잡고 대련장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후 거기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오후에 나타난 렉스 코널은 한결 풀린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닐 호노스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아서 평소와 같이 해맑았다. 열흘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험악했던 분위기를 유지한 것 치고는 싱거운 결말이었다. 이 일이 과연 닐에게 어떤 ‘교훈’이 되긴 했을지와는 별개로, 늘 그래왔듯 렉스가 화를 풀면 해결되는 일이었으므로 존은 더 이상 저 말썽꾸러기들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재클린만이 쓸데없이 기웃거리다가 대가로 닐의 대련에 어울려주어야 했다.

사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낮에는 몸속의 수분을 전부 날려먹을 것처럼 햇빛이 내리비쳤고 태양이 진 밤의 모래사막은 얼어 죽기 딱 좋을 정도로 추웠다. 모래로 된 언덕 아래에서 마지막 호흡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괴물들은 외피와 호흡을 바꿔 황야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으나 인간은 턱 아래 아가미를 하나 더 다는 대신 기술과 지식을 사용해 치켜든 횃불을 바꾸어 나갔다.

텐트 앞에 불을 피웠다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기 딱 좋았으므로 대원들은 밤사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에 핫팩을 여러 개 붙여 추위를 피해야만 했다. 농담이 아니라, 내로라하는 실력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게 그들이 속한 부대였음에도 일 년에 한두 명씩 사막을 얕보거나 제 신체를 과신하다가 훅 가는 멍청이들이 있었다. 문제는 신입이 치기 어린 실수를 저지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몇 년 구른 베테랑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화를 입을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매해 필수로 참가해야 하는 오리엔테이션의 첫 시간에 ‘어리석게 죽지 않는 방법’ 강의가 포함되어 있겠는가. 그리고 그 지겨운 강의를 매해 들으면서도 도통 말을 들어먹지 않는 불량 학생이 알파-3에도 하나 있었다.

가지고 있던 열 개의 핫팩 중 다섯 개 묶음 하나를 뜯어 하나는 침낭 안에 던져넣고 두 개는 배와 등 쪽에 욱여넣은 정비공이 남은 두 개를 들고 긴 나무막대를 불쏘시개 삼아 불을 뒤적이던 워커에게 향했다.

“취침 준비는?”

“내가 첫 불침번 당번이야.”

너도 아까 들었잖아. 무안을 주는 것이 아닌 사실을 읊는 평이한 어조의 대답에 그 로테이션을 짠 장본인인 렉스는 가타부타 말을 얹는 대신 옆에 몸을 구겨 앉았다. 뜯어둔 핫팩을 건네자, 닐은 자긴 체온이 높은 편이라 필요 없다며 한 번 거절했으나, 대번에 날카로워지는 눈빛과 우격다짐으로 내미는 손짓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입만 벌려 웃으며 내민 것을 받아들었다. 한편, 거의 모든 밤 반복되는 일상 아닌 일상을 아닌 체 힐끔힐끔 구경하던 팀원들은 어떻게 알아챈 건지 고개를 홱 들어 노려보는 렉스의 야차 같은 얼굴에 황급히 시선을 돌려야 했다. 닐 호노스의 일에서라면 그리 인내심을 가지지 않고, 아니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엔 손속을 봐주지 않아 바로 폭력을 사용해 응징하는 렉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커가 받아 든 핫팩을 옷자락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을 지켜본 정비공이 만족한 듯 돌아서고 나면, 그제야 사막에 적막이 찾아왔다. 괴물은 해가 졌다고 해서 장사를 접는 번듯한 과일 장수 같은 녀석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파-3은 네 동의 텐트에 둘씩 들어가 눕고 두 시간에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보초를 서는 식으로 밤을 보냈다. 6시간 동안 세 명씩 격일로 돌아가며 보초를 서고, 운전사와 정비공은 열외다. 운전사가 맑은 정신이어야만 차가 무사하고, 정비공은 차량의 정비도 맡지만, 보조 운전사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팀에 운전할 줄 아는 놈은 많았으나 사막의 세세한 지형을 아는 것은 운전사가 유일했다. 따라서 예외로 차출한다면 정비공이 우선이다.

사막에선 별일이 다 일어나기 때문에 이전 임무 중엔 정비공이 무려 네 시간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날도 있었다. 이번 임무에선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벼운 상처를 입은 녀석이 둘 있지만 쓰러뜨린 괴물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쾌거라 봐도 좋았다. 그러나 자만은 늘 실수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므로 그들은 의식적으로 상황을 경계하고 의심했다. 오늘 불침번 당번을 닐부터 세워둔 것도 같은 이유다. 피 냄새나, 포유류 특유의 체온이나, 낮은 기침 소리에 예민해지는 것은 괴물만이 아니다. 아니어도 그는 금방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괜히 잠들 수 없는 밤. 닐은 안하무인이고 제멋대로였으나 그만큼 날카로운 짐승 같은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닐이 정비공이나 팀장의 어깨를 붙잡고 뭔가를 말하는 날이면 불침번의 첫 번째 파수꾼은 그가 되곤 했다. 다른 팀에서는 둘씩 깨워 보초를 세운다던데 알파-3은 인력 자체가 적기도 했고 팀원 하나하나가 다른 팀 하나의 살상력에 맞먹는 무력을 가지고 있어 보초에서만큼은 조금 느슨하게 굴었다. 아니어도 그들 팀엔 닐 호노스가 있으니 문제가 생길성싶으면 그가 튀어 나갈 것을 알았다. 그도 아니면 정비공이 캠프 주변에 뿌려둔 드론 중 하나가 경고음을 울릴 테고 말이다.

누구나가 괜히 알파-3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팀의 전력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는 입을 맞춰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존 맥스웰이 안간힘을 써가며 화해를 종용한 이유기도 했다. 다만 렉스는 여러 수식어가 붙기 전에 팀의 정비공었이므로 이런 일에는 매뉴얼에 따라 열외로 쳐줘야 했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우대사항에 만족하기보다는 두꺼운 고무바퀴가 달린 드론을 캠프 주변에 뿌리는 것으로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 물론 그 정도로 불신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팀원들은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편 닐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이 그러길 바란다니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는 쪽이었다. 실제로 몇 번 도움이 된 적도 있으니 나쁘진 않다는 것이다. 그 솔직한 평가를 들었을 때 렉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상대롤 노려보았으나, 입을 열어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래, 너 잘났다. 불침번 많이 서라.”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아침, 닐은 시간에 맞춰 일어나 침낭을 정리하고 텐트를 거뒀다. 짐을 차량에 옮기고 나니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중앙에 정비공과 팀장이 지도를 든 채 대화를 나누고 그 주변에 다른 팀원 몇 명이 동그랗게 모여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면 이쪽 길은 틀렸어. 언덕을 돌아 서쪽으로 가야겠는데.”

“저희 구역을 넘어가겠는데요. 오아시스 맡은 게 누구였지?”

“델타-8입니다.”

“리처드 대위가 제때 연락을 받을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연락은 해야지. 그런 거 깐깐하게 따지는 양반이잖아.”

“제가 하겠습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정비공이 체념한 듯 조금 잠긴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비게이션에는 예상 좌표를 다시 입력해 두죠.”

“드론 띄워서, 가지 않은 길 쪽도 알아보도록 해. 저것들은 덩치는 산만 하면서 예민하기로는 덫 만난 멧토끼보다 더하단 말이야. 분명 그쪽에도 뭔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그러면 60분 대기 후 다음 좌표로 이동하겠습니다.” 머릿속에 새로운 명령을 입력한 사람들은 말 잘 듣는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찾아 이동한다. 닐 또한 느적이는 일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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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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