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창작_6월

무지개

그런데 무지개가 없는

낮게 불어온 바람이 모래 먼지를 일으킨다. 실수로라도 숨을 들이켜 모래 알갱이를 씹어 삼키지 않도록, 어깨를 두르고 있던 낡은 천을 코 위까지 추켜올린 인영이 공구 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허공을 매개 삼아 기어가는 부연 물결이 흘러가는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다. 서쪽으로 향하는 바람은 저 사막의 방랑자가 갑자기 미쳐 날뛰며 발걸음을 돌리지 않는 이상 아침에 그가 등지고 나온 도시로 향하진 않을 듯했다. 그러면 오아시스 쪽으로 가려나. 그쪽은 그가 소속한 팀이 맡은 구역은 아니었으므로, 빠르게 흥미를 잃어버린 이는 백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만 슬쩍 위로 돌려 희게 바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본디 푸른색이었을 창공마저 제 빛으로 덮어버린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며 그 위에 숨 붙인 모든 생을 녹여버릴 것처럼 대지를 바짝 구웠다. 어디 구름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무지개가 선명하다. 다시 보니 빛무리였다.

목구멍에 달라붙으려는 모래는 어떻게든 막아냈으나, 자글거리는 알갱이가 파이프관에 도로 쓸려 들어가 버린 것은 그로서도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래로 꽉 막혀 있던 것을 막 뚫은 참이었다. 그래도 폭풍이 지나간 것은 아니라 들이친 것은 고작해야 한 줌이다. 아는 누군가가 옆에 있었더라면 어렵지 않게 파이프를 들어 털어 주었겠으나 그럴 힘이 없는 정비공은 대신 붓을 들어 먼지가 일지 않도록 모래를 살살 털어낸 뒤 도로 조립해 나사를 꽉 조였다. 제아무리 랜치로 단단히 조여봐야 사막에 놓아 연결한 파이프 속은 며칠이면 도로 모래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래도 한 번 제대로 뚫어 주었으니 이 주 정도는 버텨주지 않을까. 오랫동안 어정쩡한 자세로 숙이고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고 목이 뻐근했다. 스트레칭하듯 팔을 쭉 뻗으며 허리를 펴니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바르게 앉아 어깨며 팔을 한참 이리저리 돌리던 그는 재차 위를 올려다보았다.

고글 없이 노려보았다간 그대로 눈을 멀게 했을 것임이 분명한 정오의 햇빛은 정비공의 한 줌 남은 의지마저 녹여버릴 것처럼 번뜩였다. 아니, 이미 녹여버린 쪽인가. 이쪽의 정비가 끝났으니 다음 포인트로 이동해 마저 정비를 해야 했고, 그 뒤에는 도시에 돌아가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잘 알고 있음에도 어쩐지 일어서는 것조차 귀찮았다. 이유야 명확했다. 평소라면 따라 올 필요 없다며 냉정하게 내쳐도 태평한 소리나 끝내 따라붙었을 사람이 옆에 없어서. 그 원인이 전날 밤 멱살만 잡지 않고 대판 싸운 것이라서…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이 아마도 자신일 것이라서. 역시 생각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이대로 몸뚱이마저 녹아버린다면 좋을 텐데. 실없는 생각을 하던 그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이러나저러나 이제 슬슬 제 위치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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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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