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선 (1)

[6월1주차] 주간창작 챌린지 - 무지개

끄적끄적 by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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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공기 중의 물방울에 산란된 햇빛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오색빛깔의 둥근 선. 보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는 알록달록함.

그리고 지구가 멸망하기 전이라면 아름답게 느껴졌을 단어.

“어서 대피해!”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고,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지시에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먹던 음식을 내팽겨치고 급하게 배낭을 집어들고 이동하는 사람, 갑작스러운 소란스러움에 울음을 터뜨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나 또한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는 일상이 된 이런 순간들. 정말 매일매일이 악몽과도 같다.

눈앞에 드리워진 사람들의 그림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오색으로 일렁인다. 우리를 쫓고 있는 이 괴현상이 흘리는 빛이다. 이 빛에 집중해서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 돼.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흔든다. 등 뒤에서 진한 시선이 느껴졌다. 자살하고 싶은 게 아닌 만큼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우리의 등 뒤에 뜬 무지개 가운데에 출현한 거대한 눈동자가 보내오는 시선일 거다.

모두가 비상구 계단 아래로 내려오자, 마지막으로 낙오된 인원이 없는지 확인하던 피난민 그룹의 리더가 출입구 개폐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잉- 쿵.

이어 들려오는 기계음과 함께 비상구의 문이 닫힌다. 동시에 자동으로 켜지는 비상등. 그제야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온다. 좁디 좁고 퀘퀘한 냄새가 가득한 곳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만큼 안심이 되는 공간도 없다. 인원에 비해 좁은 공간으로 인해 다들 겨우겨우 열을 맞춰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지구가 이렇게 종말을 맞게 된 것은 서기 2040년의 일.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지고, 전 지구적인 재난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인류가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재난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변한 엘니뇨와 라니냐로 인해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 그리고 슈퍼태풍과 이상기온이 이어졌지만 인류의 기술력은 그래도 인간 한정으로 그럭저럭 피해를 감수하며 버틸 수 있게 해줬다.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건 대부분 돈 없고 힘 없는 자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유한 권력자들이 언제까지고 승승장구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힘없어 당한 자들의 원한은 계속 쌓였고, 반쯤 맛이 간 세계는 쌓인 원한을 괄시하지 않았다. 세계는 희생당한 사람들의 원한을 빨아들여 무럭무럭 성장했고, 그 결과 지구를 망가뜨리는데에 일조한 인간에 대한 말살을 목표로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겨버렸다.

그때부터 발생한 괴현상은 괴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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