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아래에 묻힌 시체

- 어떤 에스퍼의 회고록

SYSTEM by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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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해당 글은 작가 원고의 일부분입니다.※

※자살 및 살해, 트라우마를 첨부해 놓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했으나, 제 시체는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는지는 알려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존.

 

이반은 그를 진짜 이름을 몰랐다.

그가 사라지기 전 날 밤, ‘…존이라고 불러볼래?’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게 진ᄍᆞ 이름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무려 세 가지나 되는 이유가 있었는데, 모두 다 늘어 놓기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니 그 중 하나만 말해보겠다.

‘존’이라는 이름이 나쁜 뜻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이름이 존이라면 미리 심심한 사과를 건네겠다.

 

남자가 말한 ‘존’은 신원 미상의 남자를 가리킬 때 부르는 단어다.

 

존 도. (John Doe.)

 

남자의 시체를 찾았을 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막연하게 ‘이렇지 않을까’ 하는 것을 확인받자 이반은 되려 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

 

존은 무지개 아래에 묻혀 있었다.

‘그의 말대로’

시체를 찾은 건 지극히 충동적인 결정에 의한 충동적인 위치 설정, 아주 그리고 사소한 우연이 빗어낸 결과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묻힌 장소도 어이가 없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곳이었다.

정원의 분수 아래.

집무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곳이었다.

 

예전엔 사계절 중 삼 계절은 내내 종일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정원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 이유로 내내 방치된 상태였다.

 

환호하는 페르세포네.

내내 하데스에게 갇혀 지옥에 갇혀 있다 자신의 힘으로 하데스를 무찌르고 지상으로 올라온 것을 그린 동상이다.

 

그런데 방치된 기간이 길어서인지 이끼가 잔뜩 낀 동상은 몹시 기괴해 보였다.

거즘 20년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페르세포네의 동상은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골반까지 금이 간 상태다.

 

치켜 올린 손에 쥔 하데스의 심장에서 물을 뿜어내는 구조였는데, 다시 보니 왜 저런 동상을 세워 놓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충동적으로 동상을 치우라 말했다.

갑자기 그 동상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랄까?

 

‘무지개가 끝나는 장소엔 시체가 묻혀 있다는데, 알고 있어?’

 

내 시체는 그 아래 있을거야.

때아닌 여우비에 생겨난 무지개를 보자 오래도록 잊고 있던 존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는 것도 이유였다.

그를 처음 만났던 10살 무렵엔 그게 진짜인 줄 알고 무지개 아래를 파보기 위해 비행기를 띄우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얼토당토하지 않은 짓은 의례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라 철이든 다음부터는 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이가 듣기엔 존의 말이 퍽 호기심을 가질만 했다.

 

“그런데 그게 네가 사라진지 20년이 지난 다음인 줄은 몰랐지.”

“…예?”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런데 남의 집 정원에서 발견된 존 덕에 저택이 뒤집어진 것은 당연했다.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 신원 미상의 시체였던 탓이다. 이반은 지극히 충동적인 요청으로 분수를 치워 버리라고 말했으나 분수 아래 깔린 시체가 나타나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인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 누군가는 이 일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생각했는지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인근에 실종 신고가 된 아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이 근처에 동양인이 누가 살겠어.

이반은 적색과 청색이 요란하게 깜빡이며 저택 안으로 들어온 경찰차와 노란색 폴리스 테이프를 두르며 사용인들의 접근을 막던 경찰을 떠올렸다. ‘분수를 치워라’ 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용의 선상에 올라버린 사내는 경찰들의 엄중한 감시와 경계로 현장을 둘러볼 수 없었다.

 

혹여나 발견된 증거를 그가 훼손시킬까봐서였다.

 

하지만 무려 20년간이나 방치된 정원이었다.

그 흔한 정원사의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은 원시림 그 자체.

누군가 시체를 유기하고자 했다면 정원을 오간 흔적이나 발자국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발견된 시체 역시 백골이 아닌 사망한지 채 며칠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앞 뒤가 맞지 않은 조합에 경찰들은 당황했고, 그 소식을 들은 이반도 놀랐다. 그럼에도 시신을 보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억울한 사내가 비서의 말에 빈정거림을 내보이는 건 당연했다.

 

이반은 존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존’이었다.

20년 전 봤던, 늘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정원 한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존.

흐릿한 기억에 얼굴은 잘은 기억나지 않았다.

왼손에만 낀 장갑을 보면 확실했다.

 

검은 색 시체 가방에 들려나간 시신은 이반에게만은 그 존재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를 처음 발견한 인부들은 존의 몽타주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왼손에 낀 장갑, 같은 색의 폴라 티에 청바지, 상의와 같은 색의 워커를 신고 있었다’라는 건 모든 인부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존은 사라졌던 그대로 다시 나타난 셈이었다.

 

“…사진은?”

“찍어 왔습니다.”

“놓고 나가.”

 

예.

비서는 집무실 책상 위에 시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놓고 집무실을 나갔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 한참 동안 이반은 창밖을 보던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제 원하는 만큼 시신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진짜 ‘존’이면 어떻게 하지…?

이미 존이라는 걸 확신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기껏해야 잠깐 만났던 인연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확인한 그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져 있을까봐 신경쓰였다.

만약 그렇다면 존은 자살이 아닌 타살일 확률이 높았다.

설사 자살이라고 해도 그것을 보면 분명 신경이 쓰여 비서에게 또 이런저런 지시를 내릴 것이다.

 

존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

주변 관계는 어땠는지.

왜 내 집의 정원에 묻히게 되었는지 등등.

 

찰나의 순간 스치듯 지나간 인연에게는 과분한 관심이다.

얼굴만 아는 사이에게는 보일 법한 관심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반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빤히 알았다.

그러니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결과가 어찌됐건, 존이 사라지고 난 뒤에 가장 그의 소식을 궁금해 한 것은 이반 본인이었음으로….

 

“하여간 비밀스러운 인간 같으니.”

 

이반은 깊은 한숨과 함께 등을 돌려 책상 위에 올려진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엔 곱게 눈을 감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상상했던 것 그대로 어디하나 부폐한 곳 없이 멀쩡한 얼굴이었다.

그 때문인지 언 듯 봤을 때는 시체가 아니라 그냥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찍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편안해 보였다.

 

존.

존.

 

그제야 이반은 좀 더 ‘존’에 대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서늘한 겨울 숲의 냄새를 가진 사내였다. 한 번도 저택 내부에서 본 적 없는 사람임에도 이상하게 경계심이 들지 않았던 청년이다.

 

‘안녕?’

 

…청년이 맞았나?

언 듯 보면 비슷한 연령대처럼 보였으나 성인은 아닌 듯했다.

 

하데스의 심장에 홀장을 박고 자유를 만끽하며 환호하던 페르세포네를 보던 사내는 홀린 듯 그것을 보다가 뒤늦게 이반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허락 없이 남의 집에 침입한 주제에 웃음만은 천진난만해서 사람을 부를 마음이 들지 않았지.

 

…길을 잃었나?

 

멍청할 만큼 황당한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그 웃음을 마주하니 내쫓아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정말 순수하게 길을 잃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비슷한 또래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누구야?’

‘나?’

‘그래.’

‘무지개 구경하러 온 사람.’

 

그 당시의 이반은 결코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말처럼 페르세포네의 홀장 아래로 작은 무지개가 피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눈부시게 맑은 초여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분수에 처음 물을 받던 날로 기억한다.

그 장소는 조용하고 아늑해서, 이반이 종종 이용하던 비밀 장소이기도 했다.

8살의 여름.

이반은 답지 않게 꿈을 꾸듯 그때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무지개 아래에 묻혀 있긴 했군.”

 

이제 사내가 왜 그곳에 묻혀 있는지를 알아내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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