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무지개

어느 무성애자의 주저리

잡동사니 by 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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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소수자다. 이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태어났다. 아무래도 성향은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태어나기 전 내게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로 살래?’라고 물었더라면 나는 ‘꼭 그래야 해?’라고 되물었으리라. 그만큼 이것은 즐거운 일이 못 된다. 사방에 차별과 혐오가 도사린다. 심지어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6월은 프라이드 먼스라고 한다. 솔직히 엄청나게 막 고취되지는 않는다. 나는 여자만 좋아하는 동시에 무성애자다. 차별주의자들은 성소수자라면 남성 동성애자만 있는 줄 알고, 무성애자에 대해서는 그 이름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뿐인가. 같은 성소수자 사이에서도 무성애자들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분명 나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나와 자지는 않는 성가신 연인, 그게 그들이 바라보는 무성애자다. 나는 높은 확률로 자신이 무성애자임을 좋아하거나 기뻐하는 무성애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그들의 연애 선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아니, 애초에 저도 성가신 유성애자는 사양이라고요.

내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굳센 사람이었더라면 참 좋았겠으나, 불행히 그렇지도 못하다. 도대체 내적인 행운이란 건 도무지 못 타고난 건가? 한탄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으니 이런 나를 인정하고 사…… 랑할 수 있겠냐고요, 진짜. 그게 가능했으면 이렇게 자기혐오에 시달리지도 않았지. 아, 건강한 사람들 정말 부럽다. 부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 앗, 이미 미쳤구나. 죄송. 아무튼 그런 인생이다, 나라는 사람의 삶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아무도 내가 이런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을 테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되었나, 하고. 하지만 앞서 적었듯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사랑은 못 해도 최대한 적응하고 사는 수밖에. 현실과 조금씩 타협하면서 날 선 마음을 마모시켜야지. 쉬운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에도 나는 해내야 한다. 정말이지, 그럼에도.

그래도 역시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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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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