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찬란한 빛

무지개

챌린지 by 뇽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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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까지 유난히도 추웠다.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길 위에 쌓인 눈은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며 빙판으로 변했다. 그 추운 날 유일하게 온기를 품은 햇살을 받노라면 눈부시게 반짝였다. 개중에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는 투명한 발자국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경의 다섯살배기 딸은 그 투명한 얼음 발자국을 따라서 걷는 걸 무척 좋아했다. 넘어질까 조심조심 도경의 손을 꼬옥 붙잡고선 어른들의 보폭을 따라서 다리를 쭉쭉 뻗으며 맑게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유치원이 집에서 가까워 등원길을 직접 데려다 줄 수 있어 이런 모습을 자주 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무지개 보러 가는 날이야~”

무지개? 어디로 보러 가? 도경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딸에게 되물었다. 딸은 도경의 얼굴이 바뀌는 게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비밀이래. 그래서 아직 몰라.”

외부 활동을 하러 간다는 안내는 못 받았는데. 유치원 안에서 이벤트를 하려나 보다.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지은 도경은 잔뜩 설레어 하는 딸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유치원까지 걸어갔다. 도경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선생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무지개 하나에 들뜨는 어린아이면서도 점점 의젓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다. 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이 한 것처럼 얼음 발자국을 따라서 걸었다.

도경이 배우자를 만난 건 화창했던 봄 날씨의 흔적이 옅게 남아있는 초여름. 새벽 내내 쏟아지던 비가 아침 해와 함께 그치고 무지개가 하늘을 장식한 날이었다.

드물게 볼만한 아침의 풍경을 감상하느라 길을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거나 잠시 멈추곤 했다. 그러다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무지개에 시선을 두지 않고 사람을 피해 다니던 도경도 결국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 사람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사소했다.

무지개에 홀린 듯이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걸음을 옮기던 그 사람은 소방관이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자신의 출근을 응원해 주는 기분이라 차마 멈춰서서 느긋하게 감상하질 못했다고. 나중에 들은 해명은 참 본인답다고 느껴졌다.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도경은 이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어렴풋이 사랑하게 되었다. 주변을 물들이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늘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나.

젊은 나이에 순직한 그는 마지막까지 화마에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불길에 휩싸인 건물에서 제발 살려달라며 포대기에 싸인 채 창문 밖으로 던져진 아기. 위태로운 어린 생명을 훌륭히 받아내고서도 아기를 던졌을 사람을 향해 다시 안으로 진입했다고 그 사람의 동료에게서 전해 들었다.

나의 빛은 사랑하던 것을 위해 끝까지 뜨겁게 타올랐다. 이 결말을 원치 않더라도 그 사람은 같은 선택을 하리란 게 너무 명확해서 도경은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감정을 아주 조금 추스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기의 보호자도 건물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구한 생명. 그 아기와 가족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행정절차는 도경과 딸이 가족이 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서 배운 사랑을 그 사람이 실천한 사랑에게 다시 알려주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도경의 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앞에 놓인 투명한 얼음 발자국이 아침 햇살을 받는 찰나에 무지개같은 오색으로 반짝였다.

우연히 스친 반짝임이란 걸 알면서도 도경은 그 사람이 떠올랐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시린 겨울 하늘을 올려다 보며 천천히 다시 걸어간다. 온전히 현재의 분위기를 감상한다. 마치 처음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가장 찬란한 빛. 당신 덕분에 우리는 반짝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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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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