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보러 가자.
사실 그건 핑계야.
무지개 보러 가자.
료멘스쿠나의 입장에서 그 말은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세계와 속박을 걸어서 천 년이 지나고, 노조미 하나가 열 살이 되어서야 곁에 있게 된 이후로 이런 건 일상 중에 하나가 되었으니까.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 그 날부터 료멘스쿠나의 삶은 노조미 하나라는 작고 연약한 여인으로 인해 결정되었다. 특히나 특급 과주원령이 된 지금은 오히려 이런 경우가 더 좋았다. 즉흥적이지만, 둘이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료멘스쿠나는 만족스러웠다. 무지개는 상관없었다. 딱히 그걸 본다고 해서 느끼는 감정이나 내뱉어야 하는 감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료멘스쿠나에게 중요한 것은 노조미 하나의 일생(一生)에 함께하는 것이므로.
무지개를 보고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미소를 짓는 다면, 끝에서 그 미소가 자신으로 향하는 그 순간을 이 눈으로 새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무지개 보러 가자
사실 그건 핑계야.
W. 김넨나
노조미 하나가 즉흥적인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아무래도 그 전에 방학 때마다 부모와 함께 놀러간 영향 때문인 듯했다. ‘스쿠나가 함께니까 괜찮지 않나?’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과감하게 홋카이도로 가겠다는 딸의 말에 부모는 당황하고 걱정했지만, 거기에 살고 있는 친척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첫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그 다음부터 노조미 하나는 종종 홀로 가벼운 여행을 떠났다. 그녀의 부모가 료멘스쿠나에 대한 것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열 살 이후부터 무언가가 제 딸 아이를 지켜주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때때로는 그 존재가 자신들까지 지켜준다는 것도. 그럼에도 걱정되는 것이 부모 마음이기에 여행지에 도착하면 꼭 연락을 남겼다.
그랬던 여행은 주술고전에 입학한 뒤로는 할 수가 없었다. 따지면 노조미 하나에게 있어서 취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인력난을 겪는 주술계고, 거기다가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그 료멘스쿠나라는 이유로 감시 아닌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노조미 하나는 여행 대신에 화단을 가꾸는 걸로 취미를 바꿨다. 작고 귀여운 봉오리가 활짝 피어나는 어여쁜 모습을 보는 건, 다른 의미로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가 비록 정학을 당했지만, 동기 두 명과 좋은 후배들도 있으니 노조미 하나는 주술고전에서 4년을 보내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구한다, 라는 그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는 가장 의미가 컸다. 그렇기에 료멘스쿠나 또한 따를 뿐이었다.
중간에 순탄치 않은 일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잃지 않고 그녀는 무사히 졸업할 수가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대해서 노조미 하나는 일단 그동안 가지 못했던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4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특급 과주원령인 료멘스쿠나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줬고, 노조미 하나가 있는 한 그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도 증명했다. 무엇보다 졸업하고 이제는 어른이 된 그녀가 그러고 싶다는데, 말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몇몇은 료멘스쿠나와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그래서 노조미 하나는 료멘스쿠나에게 말했다. 스쿠나, 무지개 보러 가자. 그래. 돌아오는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거절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무지개를 볼 것인지 료멘스쿠나는 묻지 않았다. 무지개를 보러 가자는 그 말이 그 뜻대로의 순수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료멘스쿠나는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서 어디든지 가자는 의미로 들렸다.
기꺼이 따랐다.
무지개를 보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여행에 알맞은 원피스를 입고, 깔맞춤한 밀짚모자를 썼다고 해서 단숨에 비가 내리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노조미 하나는 혹시 몰라서 우산을 챙겼고,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시골로 내려갔다. 그녀의 곁에는 현현한 료멘스쿠나가 당당히 있었다. 봄 치고는 햇볕은 따가워서 마치 여름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왔다.
“생각보다 여름이 빨리 오겠네.”
“그러겠군.”
밀짚모자를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노조미 하나가 입을 열어 말한다. 옆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나름의 긍정을 담은 대답을 들려준다. 만약 듣는 사람이 있었다—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지만—면 무신경한 말투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곁에서 같이 지내 온 노조미 하나는 자신에게만 해주는 최선의 반응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뒤늦게 스마트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지금부터 밤 늦게까지 비가 내린다는 소식은 없었다. 이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기에 노조미 하나는 딱히 난감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금안이 앞에 펼쳐진 창공(蒼空)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옆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바라본다. 사실 무지개는 핑계였다. 그녀는 그저 이 하늘 아래에 이러고 싶을 뿐이었다. 주술고전을 다니기 전에 종종 그랬던, 두 사람만의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잔잔하고 여유로운 이 순간을 좋아한다.
“잠깐 앉아봐, 스쿠나.”
그녀의 말에 그는 의문을 품지 않고 그 자리에 앉는다. 노조미 하나가 자신이 쓰고 있는 밀짚모자를 벗어서 앉아있는 료멘스쿠나의 머리 위에 올린다. 어울리네. 작아서 그저 걸쳐진 거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 노조미 하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료멘스쿠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대수롭지 않은 거 같지만,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이기도 했다. 잘 하지도 않는 이런 소소한 장난까지 하는 걸 보면, 지금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감히 저주의 왕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은 그 넓은 다리 위에 앉는다.
“사실 무지개는 핑계야.”
“알고 있다.”
들려오는 당연한 대답에 노조미 하나는 료멘스쿠나에게 몸을 편안히 기대고 살며시 두 눈을 감는다. 조금만 이러다가 돌아가자. 한동안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는 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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