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하교를 하던 학생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걸어다니던 학생들 모두 비를 피해 바삐 움직였다.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뛰어가거나 우산을 꺼내 피는 학생들도 몇 명 보였다. 나는 복도 창문으로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려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점심 시간 외에는 늘 사람이 별로 없다. 책을 한권 꺼내어 책장 사이에 웅크려 앉았다. 창밖을 올려다보니 아직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무서울 정도다.

“왜 여기서 읽고 있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책장 사이로 사서 선생님이 서 계셨다.

“안 불편하니? 시험도 끝났는데 왜 집에 안가고?”

북카트에 있는 책을 정리하시며 물어보셔서 비가 와서요, 하고 대답했다.

“아 우산이 없니?”

“네”

“이거 정리하는 것 좀 도와줄래? 끝나면 우산 빌려줄게.”

일어나서 보던 책을 제자리에 꽂고 북카트에 있는 책 몇권을 집어들었다. 점심시간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만화책이나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 신간도서를 보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은가보다. 책에 표시된 기호를 보며 도서관 맨 끝 책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어디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책에 있는 기호를 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가나다라마바사, 가나다라마바사..

“그거 여기야”

사서 선생님이신줄 알고 다가오는 발소리를 신경쓰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익숙한.

고개를 들어보니 책 사이에 빈자리를 손으로 짚고 서있는 그 애가 보였다.

“책 정리 도와주고 있었구나.”

“응”

“너 우산 있어?”

“아니”

들고 있던 마지막 책을 꽂으며 답하자 그 애가 웃으며 그럴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나 우산 있어.”

“그래 둘이 같이 가. 이제 선생님이 정리할게, 시험도 봤는데 빨리 가서 쉬어야지. 도와줘서 고마워~”

“네 안녕히계세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후 같이 도서관을 나왔다. 비가 어느새 잦아들어 있었다.

“시험지에도 비가 오더니 진짜 비가 오냐~”

“그러게. 기분 더 안 좋아지게.”

“그니까. 기분 나쁜데 당충전하러 갈래? 어때?”

“그래, 그러자.”

그리 크지 않은 우산을 둘이 나눠 쓰고 가려니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졌다.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쯤 말을 꺼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생각난다.”

“그러게, 그 때는 내가 네 우산 빌려썼는데.”

“그게 빌려쓴거야? 갑자기 누가 들어오길래 난 아는 앤줄 알았어.”

“그렇게 알아가는거지~”

그날은 시험 성적표가 나왔던 날이었다. 실망스럽게 보는 눈빛을 피해 무작정 밖으로 나왔던 날. 우산 아래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훔치다 갑자기 우산 안으로 들어온 그 애에게 들켰던 날. 처음 만난 애와 처음으로 아무 계획없이 여기저기 놀러다녔던 날.

“어 비 그쳤나?”

우산을 내리고 손을 들어올려 비가 떨어지는 지 확인하는 그 애를 보았다.

“저기 봐.”

“응? 우와 무지개다!”

그 애는 비가 쏟아진 후 나타나는 무지개 같았다. 그 애를 보면 어떤 힘든 일이 있었어도 다 괜찮아질 것 같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