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실종사건

최한솔

by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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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솔이 궁금해하곤 했던 것은 인류는 어떤 식으로 멸망할 것인가였다. 이것은 한솔만이 가진 의문은 아니라 인류는 오랜 시간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써내려왔다. 한솔은 그 모든 것을 섭렵한 수준은 아니었대도 꽤 많은 것을 상상해낼 수 있었다. 진부하게는 운석 충돌이나 화산 폭발, AI 반란부터 현실적으로는 지구온난화와 꿀벌의 멸종, 제재없는 전쟁까지.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멸망은 한솔이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바로 무지개 실종. 세계 그 어디를 가도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시작은 6월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6월. 아무 일도 못 일어난 게 맞는 말이지. 6월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꽉 들어차 있었다. 매일매일 행사와 시위가 광장과 도로를 점령했다. 모든 건물이 각종 사유로 선점되었다. 퀴어 퍼레이드 조직 위원회는 먹먹함이 묻어나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올해 우리는 설 곳을 잃었습니다. 그 뒤에 붙어오는 희망찬 메시지는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다소 희석되었다.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그 모든 지역에서 무지개는 단 한 조각의 땅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조용한 6월 31일이 지나고 7월이 됐는데도 무지개는 돌아오지 않았다. 프라이드가 사라지자 퀴어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스펙트럼이 사라지고 까만색과 하얀색만이 남았다. 경계에 해당하는 것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인류 대량 실종이 시작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퀴어들 중에서도 논바이너리가 먼저였고, 정신병자 중에서도 신경학적 스펙트럼 장애가 먼저였으며, 이민자 가운데에도 2세대가 먼저였다. 경계 위의 사람이란 정의를 못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어떤 사람들이 사라지는지에 대한 파악이 다소 늦어졌고, 그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실종자가 한무더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이런 흑백논리적 세계에는 우리의 자리가 없어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애인을 잃은 팬로맨틱 팬섹슈얼 A모씨가 외쳤다. 경계에 있는 자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그들이 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상황은 사라진 무지개의 스펙트럼적 특징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상징하는 다양성의 상실입니다. 우리는 멸종을 피해야 합니다. 인공 다리를 사용하고 있는 신체 장애인 B모씨는 반대했다. 지구를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무지개를 찾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A모씨와 B모씨는 우주선을 짓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모두 알다시피 한솔은 이중국적 혼혈이었다. 실종 위험군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정의되지 않음으로 본인들을 정의하는 사람들과 경계 위에서 자신들의 경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커뮤니티아님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한솔의 친구 중 상당 수가 실종 위험군이었다. 그들은 우주선에 탈지 지구에 남을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한솔은 항상 우주를 꿈꿔왔으니 이것은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혹여 종착지도 해결책도 찾지 못 해 평생을 헤매게 된다고 할지라도 지구 너머 무한한 세계는 그 탐사만으로 가치가 있으니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니까. 우주가 한솔을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살린다면 망설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한솔은 어쩐지 망설여졌다.

미국 이민자 2세대인 조슈아 지수 홍은 우주선에 타기로 했다. 조슈아는 덤덤하게 사실을 고했고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어떡할 거야?“

“아직 고민 중이야.”

“그래.”

한솔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다다른 것인지 물으려다가 말았다. 그런 질문은 의미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가 어디있어. 안 가는 것보다 가는 것이 더 주된 흐름이었다. 게다가 조슈아는 간혹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쉽게 내리고는 했다.

“그거 알아? 나 사실 고등학생 때 한국 노래 되게 많이 들었다.”

“무슨 노래 들었어?”

“동경소녀.”

“오.”

그렇구나. 한솔은 그러고 말았다. 한국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던 고등학생 조슈아는 한국어로 가득 찬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었다. 그 노래에서 조슈아가 따라부를 수 있었던 것은 고작 한 문장뿐이었다. 아이 스틸 러브 유.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조슈아는 이제는 완벽히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심취한 조슈아의 미간에 대고 한솔은 웃음을 터뜨렸다.

“형 그 노래 진짜 안 어울린다.”

조슈아는 굴하지 않고 노래를 이어나갔다. 넌 왜. 지금도 나를. 자꾸만 나를.

“가는 게 좋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

외국인 노동자 서명호, 쉬밍하오는 그렇게 말했다. 한솔은 그것이 꽤 의외라고 생각해 되물었다. 명호는 그 의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근데 내가 너였으면 어쩌면 안 갔을 거야. 그러니 그 말을 덧붙였을 거다.

“떠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해도?”

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해?”

“아니. 나도 고민 중이니까.”

“나 요즘 읽는 책에서 그런 말이 나오거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회피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한다. 나는 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네가 정말 가고 싶어서 가는 건 괜찮아. 그런데 도망치기 위해서라면 잠깐의 시간을 벌어줄 뿐인 거야. 그 시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괜찮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가지 않는 게 맞지. 한솔은 이것이 정말 명호가 할만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거 아니더라도 집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명호는 중국에 돌아가지 못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한솔은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을 이해할 순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명호는 묻는 것이다. 너는 다시 못 올 집을 그리워 하며 살아갈 자신이 있냐고. 고향을 떠나온 조슈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터전을 떠날 준비를 하고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낯선 곳으로 온 서명호는 자신이 남아 있을 곳은 이곳이라고 말하고 그것 역시 이상하지 않다. 나는 아직도 바다를 기억해. 내 고향은 바다를 품은 도시거든. 바다가 사라져 생긴 도시에서 온 서명호는 답게도 낭만을 품었다.

“근데 왜 나한테는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어?”

“네가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차라리 사라지는 걸 택하는 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단 뜻은 아니야. 한솔은 그 지적에 동의했다. 당장 위험하지 않을 뿐 계속 한국에 남아있는다면 언젠가 사라질 명호가 제 마음을 계속 건드리듯이.

“형이야 말로 가는 게 좋지 않아?”

“그렇지.”

“형은 돌아가는 거야. 형이 그리워하던 곳으로.”

“그래.”

어떤 소멸이 낭만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낭만을 느끼려면 살아있어야 한다. 명호는 한솔에게 만약 가지 않을 거라면 나중에 짐 싸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한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선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의 의견이 들어가고 긴 시간이 걸리는 것. 해당 프로젝트의 담당자들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고 그덕에 아무나 가서 우주선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것 치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한솔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찾아가 유리 너머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NOAH. 우주선에 박힌 이름은 성경에서 따온 것이었다. 구약에서 말하길, 신은 세상을 홍수로 휩쓸고 단 한 쌍의 동물만을 남겨두었는데 그 중 남자 인간의 이름이 노아였다. 그리고 재앙이 끝나자 신은 인간들에게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그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신은 무지개를 다시 앗아가며 약속을 철회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만의 무지개를 찾아 나설 것이다.

도발적인 의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한솔은 한 마디를 뱉어낸다. 일단 저는 무교인데요.

어떤 신을 믿는 자들은 왜 계속해서 천국을 찾아 다닐까? 왜 살아서는 자신들의 땅을, 죽어서는 영혼의 공간을 탐할까? 그만큼 발 붙이고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솔은 계속 여기에 있었다. 한 번도 없었던 적이 없다.

우주선에 불이 붙었다. 한솔은 그것 역시 유리 너머로 지켜보았다. 안녕. 안녕 여러분. 당신들이 유의미한 발견을 한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무의미하다고 해도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여기에 남은 것이니까.

한솔은 우주선에 타지 않았다. 그것은 어떠한 변화도 아니지만 한솔은 전과는 다른 무게를 느낀다. 우리의 삶은 평생 그러하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명호의 짐 정리부터 도와야 한다. 전화 연결음에 맞춰 발걸음을 옮긴다. 무거워진 책임에도 발걸음은 가볍다. 한솔은 다시 무지개를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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