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글리프

주님의 뜻대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엘리는 매일 잠들기 전 행복에 대해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어제의 자신에게 답을 건내주었다. 주님께서 정하신 사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그것이 정말 행복한 삶이냐고 감히 물어보지 않았다. 의심은 죄악이었다.

주님께서 정하신 사명은 무엇인가. 단순한 진리였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신(실은 부모님이 정한 혼담이지만) 남편에게 좋은 아내가 되어주는 것. 아주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어온 이야기였다. 아버지, 어머니, 유모, 신부님, 선생님…. 귀족의 딸로 태어난 엘리는 그것만이 삶의 진리여 행복이라고 믿었다. 의심은 죄악이었다.

신부 수업을 위해 여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엘리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하는 여학생들을 봤을 때도, 룸메이트의 침대에서 낯선 선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학교를 졸업하기 전 날 후배가 편지와 함께 꽃을 선물했을 때도. 엘리는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졸업하자마자 엘리는 웰링턴 백작가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남편은 친절했고 백작가의 사람들도 엘리를 새 마님으로 받아들였다. 곧 뱃속에는 아이가 생겼다. 엘리는 자신의 삶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여겼다. 구름 낀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자신을 비추는 꿈을 꿀 때도 그랬다.

“많은 명화에서 구름은 신의 뜻이 드러남을 나타내곤 했소. 게다가 빛이 내려와 그대를 비추다니. 마치 예수 그리스도같지 않소. 분명 주님께서도 아이를 축복하는 것일테지.”

엘리의 꿈을 들은 남편이 잔뜩 흥분한 채로 이야기했다. 산달을 앞두고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엘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마저도 기분좋게 느껴졌다.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그리고, 마차가 뒤집혔다.

아랫배에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의 통증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초점 없는 남편의 눈동자가 깜빡이지도 않은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엘리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남편의 얼굴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군가 무거운 것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을 멈출수가 없었다. 그 때, 누군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쉿, 엘리. 괜찮아.”

“… 미셸?”

다정한 밤색 눈동자가 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어느 샌가 그쳤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구름들 사이로 빛줄기가 보였다. 아, 무지개다.

“내가 약속했잖아. 졸업하면 꼭 데리러 가겠다고. 기다리라고.”

미셸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원망도 질투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그리움과 애정, 그리고 걱정이 잔뜩 묻어있었다.

“미안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선배를, … 너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아….”

여전히 아랫배는 찢어질 듯 아팠다. 통증을 각성제삼아 지난 날의 모든 일들이 하나 둘 새로 자리잡았다. 엘리는 이제서야 온전히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시험이리라.

“너무… 보고 싶었어….”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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