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글리프

Star, light

“실화야?”

도진혜가 인상을 찌푸렸다. 학교 운동장을 차지한 특설 무대. 그리고 그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3시 14분. 축제 기간이라 휴강하는 수업이 많기도 하거니와 유명 연예인이 오기 때문에 자리를 일찍 맡아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강의실과 도서관만 오가는 도진혜라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찍 나올 필요는 없지 않을까? 도진혜는 고성희를 돌아봤다. 막 돗자리를 깔고 양산을 펼치던 고성희 눈이 마주치자, 고성희가 대뜸 성질을 냈다.

“야, 내가 돗자리 챙긴다고 했잖아!”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왜?”

“너무 일찍 온거 아냐?”

“실컷 설명할 때는 안 듣고 왜 이제와서 지랄이야?”

고성희가 어이없다는 듯 돗자리의 빈 부분을 툭툭 쳤다. 도진혜는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았다.

“아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사람이 많냐는거지.”

“그것도 내가 얘기했잖아. 마지노선이 4시라고.”

“나는 많아야 10팀일 줄 알았지.”

“제발 축제 처음 온 티 좀 내지 마, 쪽팔리니까.”

고성희가 가방에서 썬크림을 꺼내 바르기 시작했다. 도진혜도 가방에서 작은 양산을 꺼냈다. 봄과 여름 그 사이의 태양은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 이해가 안 되잖아. 몇 시에 오는지도 모르는 연예인 기다린다고 시간을 땅에 버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

“그런 말을 꼭 여기서 해야하니?”

“뭐 어때. 나도 시간 버리러 온 사람인데.”

“어?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다른 애들 꼬시려고 했는데 왜 너만 왔냐? 어, 열받네?”

고성희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물론 진짜로 도진혜만 와서 불쾌하다던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평범하게 ‘밈'에 절여진, 그리고 조금 텐션이 높은 친구일 뿐이다.

“과제때문에.”

“으, 지랄.”

고성희가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무대 조명 연출에 대한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했고, 기왕이면 연극이나 뮤지컬 말고 다른 무대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었다.

“참 신기해. 너같이 공부밖에 모르는 애가 왜 예체능으로 간건지. 그것도 비실기전형으로.”

“그러게.”

도진혜의 시선이 무대로 향했다. 가끔은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는 것들을 목숨 걸고 주장해야만 할 때가 있었다. 이름 있는 학교의 하위권 학과까지는 무난하게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두고 굳이 예체능을, 무대조명을, 그것도 고3이 되서야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가 그랬다. 업계의 전망이며 자아 실현의 욕구며 온갖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고 눈물로 일주일을 싸우고 나서야 간신히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때 왜 그랬을까. 그냥 얌전히 경영학과나 갔으면 취업 걱정은 안 했을텐데.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사실 과제는 핑계였다. 적어도 ‘도진혜'에게는 땡볕에 앉아서 6년 지기 친구와 ’시간 버리기'를 하는 행위를 설명하기에 적당한 핑계였다. 이제와서 생전 안 가던 축제에 가보고 싶어졌다던가, 관심도 없는 연예인을 보고 싶다던가 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 근데 진짜 시끄럽다.”

문득 고성희가 말했다. 어느 새 사람이 더 많아졌지만 소음의 원인은 따로 있었다. 축제 무대를 앞두고 리허설을 막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축제 와서 시끄럽다고 하면 어떡하냐?”

“시끄러운걸 시끄럽다고 하지 뭐라고 하냐?”

고성희가 가볍게 째려보면서 대꾸한 후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떤 밴드가 노래를 하고있는 듯했다. 둔탁한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베이스, 기타, 키보드, 그리고 보컬. 샌드위치처럼 하나씩 쌓인 악기 소리가 앰프를 통해 사방에 울렸다. 쿵, 쿵, 진동으로 떨린 몸에 심장이 반응했다.

“쟤네도 참 불쌍하다. 여기 다들 연예인 보러 오는데. 어떻게 보면 들러리잖아.”

도진혜도 무대를 바라봤다. 사실 연예인도 과제도 도진혜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도진혜가 축제에 온 이유는 바로 이 밴드였다. 2달 전 거리를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버스킹에 빠져서, SNS를 뒤지고 뒤지다가 이 학교 밴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리허설일뿐이지만 밴드는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있었다. 도진혜는 알 수 있었다.

“꼭 그렇지는 않을거야.”

“하긴, 요즘 밴드 경연 프로 유행하더라. 쟤네도 저런 데 나갈까?”

고성희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도진혜도 시선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밴드의 비트에 심장을 맡겼다.

아, 생각났다. 왜 조명을 하고 싶었는지. 그 때도 분명 밴드였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들을 더욱 반짝이게 하고 싶었지. 그들은 별이니까. 거대한 빛에 가려져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니까. 어두운 무대 위에서 가장 어울리는 빛을 주면 그들의 모든 순간이 반짝일거라는 착각을 했지. 납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청춘이라고 불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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