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락 (01)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함. 「범(虎)은 무녀를 주웠다.」
붉은 하카마를 입은 여성이 비틀거리며 숲속을 거늘인다. 생기를 잃은 금안은 금방이라도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할 것 같았다. 무녀의 몸은 여기 저기 성한 곳이 없었다. 목에는 무언가에 물린 것처럼 깊은 이빨 자국이 있었고, 거기서 흐르는 피는 새하얀 옷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가—!
어릴 때부터 들은 지겹고 지겨운 말이었다. 그래도 꾹 참은 것은 스무 살이 되는 요번 해를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 년 전에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었던 그들과 함께 이 숲을, 산을, 지역을 지킬 수 있다고 한껏 기대했는데. 요 며칠 건드리지 않고 조용하기에 괜찮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이대로 자신이 죽으면, 이 곳은…….
거기까지 생각하던 무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죽어가는 무녀와 다르게 하늘은 높고 푸르며 맑았다.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무녀의 두 눈이 감기고 만다.
“이대로 죽으면 곤란하다.”
누구…?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녀가 두 눈을 파르르 떨면서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시야는 흐릿하고 역광으로 인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디서 들은 목소리 같은데, 지금은 도통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제 의사와 상관없이 몸이 반쯤 일으켜진다. 좀 더 가까워졌으니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무녀에게는 무리였다. 무녀는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벚꽃색 머리를 가지고, 핏빛 눈동자를 지니며, 범의 귀와 꼬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그런 무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인다. 목에 새겨진 이빨 자국으로 향하더니 입술을 벌려서 그 자국을 덮어버리듯이 입을 맞춘다.
무녀와 요괴가 공존하는 곳. 과거 이 땅은 탁하고 사악한 독기가 가득한 땅이었다. 그로 인해 사람은 살지 못했고, 요괴는 사악한 독기로 인해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태초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요괴는 버틸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이성을 잃고 자기들끼리 피를 튀기는 싸움을 했다. 그 사악한 독기를 한번에 정화하고, 더는 요괴들이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한 무녀가 나타났다.
요괴라고 해도 그들은 사람의 모습에 가까웠고, 서로 사랑도 하고 자식을 낳는다. 인간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무녀를 요괴들은 자연스럽게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지 않은 요괴들도 있었다. 차라리 그런 요괴들이 나았다. 적어도 교묘한 수법으로 무녀를 괴롭히고 고립시키지 않으니까.
무녀는 대를 잇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후자인 경우는 현 무녀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기에 하늘이 다른 이를 내세운 거라는 말이 있었다. 노조미 하나가 그 후자였다. 현 무녀의 딸과 같은 날에 태어난 여자아이. 하지만 무녀의 힘을 이은 건 무녀의 딸이 아니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노조미 하나였다. 여태 무녀들 사이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당시 요괴들은 낙담하기는커녕 오히려 잘 되었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수였다.
왜냐하면 지금의 무녀는 요괴에게, 뱀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수록 잊고 있었다. 무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아즈사 활을 뱀에게 넘기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하늘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건 하늘이 현 무녀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요괴들 중에서는 아직 자라지도 않은 노조미 하나의 편을 들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뱀에게 울면서 매달렸다. 뱀은 속으로 무녀를 바보 같은 여자라고 생각하며, 무녀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여자애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계승 의식을 올리기 전에 죽이는 것. 그리고 그 역할은 반드시 무녀가 해야 할 것. 그러면 영력이 돌아오고, 요괴들은 다시 네 말을 들어줄 거라고.
그것이 하늘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게 변한 무녀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새로운 무녀가 태어나면 거쳐야 하는 의식이 두 가지가 있었다. 후계 의식과 계승 의식. 전자는 열 살에, 후자는 스무 살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후계 의식을 치른 뒤부터 대를 잇게 된 무녀는 현 무녀의 밑에서 영력을 다루는 법부터 시작해서 이것 저것 배워야 했다. 노조미 하나는 열 살이 되는 그 날에 후계 의식을 치렀다. 많은 요괴들이 그 자리에 함께했다. 현 무녀는 아직 열 살인 노조미 하나를 있는 힘껏 노려봤다. 적의를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노조미 하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좋든 싫든 이 사람의 밑에서 자신은 배워야 한다. 자신의 힘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을, 여기에 참석한 요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후계 의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현 무녀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갔다. 그런 그녀를 뒤따르는 자는 뱀 요괴인 젠인 나오야였다.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 그 묘한 시선이 노조미 하나는 어린 나이에 불쾌함을 느꼈다.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고 떨쳐낸다. 원래라면 현 무녀가 요괴들에게 노조미 하나를 가까이서 보여줘야 하지만,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린 여자아이가 생각한 것은 하나였다.
“읏차—.”
의식에 입는 옷은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노조미 하나는 의식 단상 아래로 내려간다. 조금 힘이 들어서 한 말이었는데, 많은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이건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노조미 하나는 만나서 반갑다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그 인사를 처음으로 받아준 것은 설표 요괴인 고죠 사토루였다.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최초의 요괴들 중에서 하나… 라는 것 정도. 여태까지 대를 이은 무녀들과 가장 살갑게 지내면서도 현 무녀에 대해서 글렀다고 신랄하게 표현한 요괴. 모든 요괴들의 대표, 라는 느낌을 안겨줬다. 새하얀 눈과 같은 백발과 푸른 하늘을 그대로 박아넣은 듯한 벽안은 정말이지 예뻤다. 왜 그가 설표 요괴인지 알 거 같았다.
“예쁘시네요.”
“칭찬 고마워, 어린 무녀님.”
어린 노조미 하나는 자신이 느끼는 생각을 그대로 입밖으로 내뱉는다. 순수한 감정에 고죠 사토루는 조금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스윽, 고죠 사토루는 노조미 하나에게 손을 내민다.
“좀 도와줄까?”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준다는 것인지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조미 하나는 웃으면서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민 큰 손 위에 올린다. 응, 괜찮겠네. 고죠 사토루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노조미 하나가 고개를 갸웃한 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고죠 사토루가 기분 좋게 웃더니 실례한다면서 두 팔로 그 작은 몸을 들어올린다. 능숙하게 품에 데려오자 놀란 것인지 동그랗게 뜬 두 눈이 아이답게 귀여웠다.
“내가 다른 녀석들 소개해줄게.”
그 말은 이 어린 무녀를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때부터 숨 죽이고 지켜보던 요괴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오고 가는 말이 무엇인지 노조미 하나는 몰랐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른 말을 내뱉는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깐 시선을 옆으로 굴렸는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후계 의식이 시작한 뒤로 유독 어떤 시선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하지만 노조미 하나는 저 요괴를 많이 바라볼 수가 없었다. 고죠 사토루가 제 밑을 따르는 요괴들부터 소개하기 시작했으니까. 노조미 하나는 안녕하세요. 라고 모든 첫 시작은 인사로 시작했다.
핏빛 눈동자는 여전히 노조미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앉아있는 자세를 보면 이 자리가 지루하고 나른한 듯 보이지만, 그 요괴를 오랜만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몇 시간이 지나서야 그 요괴는 어린 무녀를 마주할 수가 있었다. 두 볼이 발갛게 변하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이 이 어린 무녀가 한껏 고생했다는 걸 알려준다. 요괴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노조미 하나에게 다가간다.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한쪽 무릎을 꿇더니, 손을 뻗어서 이마에 맺혀있는 땀을 닦아준다.
“그래.”
뒤늦게 인사를 받아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 요괴들의 웅성거림이 뚝 끊긴다. 생각보다 거칠면서 낮은 목소리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노조미 하나는 눈앞에 있는 그가 어떤 요괴인지 떠올리려고 애썼다. 호랑이 귀와 꼬리. 호랑이 요괴, 다른 말로는 범 요괴. 으음, 그러니까……. 하두 여러 요괴의 이름을 들었더니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들어올 정보의 양이 채운 것을 넘어서 넘쳐 흘러서 어지럽기도 했다.
“스쿠나.”
그가 어린 무녀에게 먼저 제 이름을 밝힌다. 뒤에서 얌전히 지켜보던 심복인 우라우메가 아까부터 일어나는 놀라움의 연속에 좀처럼 동그랗게 뜬 눈을 감추지 못했다. 고죠 사토루 또한 놀랐는지 우와,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을 내뱉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기 무녀인 네가 우리들한테 존대할 필요는 없다.”
이 곳에서 무녀와 요괴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 후계 의식이 끝난 어린 무녀는 이미 충분히 이 자리에 있는 요괴들에게 제 존재를 알렸다. 스쿠나의 말에 노조미 하나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한다.
“다들 저보다 어른이시잖아요.”
“…….”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게 편해요.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이유는 없다.”
움츠러드는 그 모습에 스쿠나가 손으로 노조미 하나의 턱을 살며시 잡고 올리면서 말한다. 마치 붉은 눈동자가 한시라도 이 어린 무녀와 마주하는 시선을 놓치지 싫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린 무녀는 그게 싫지만 않았다. 그래서 대답 대신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준다. 그 미소에 살짝 입을 벌린 스쿠나가 그 입술을 닫고 곧바로 다시 열어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건넨다.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
“꽃을 좋아해요.”
하나. 그 이름은 꽃을 의미한다. 그 대답을 들은 스쿠나가 입가에 느릿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 자리에 있는 요괴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저 호랑이 요괴, 스쿠나가 어떤 인물이냐고 하냐면 요괴이면서 무녀에게 관심이 없는 요괴였다. 고죠 사토루와 완전 반대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여태까지 있었던 후계 의식과 계승 의식에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드디어 노망이 났나? 고죠 사토루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스쿠나가 저 어린 무녀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그러면 꽃을 선물해주마.”
마치 구애하는 것 같았다. 스구루가 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쉽네. 현 무녀로 인해서 깊은 상처를 받은 제 친우는 그 얼굴이 보기 싫다면서 오늘 후계 의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뭐,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찾아가서 이야기해주면 되지만. 이런 건 본인이 직접 보고 들어야 가장 재밌는 거 아니겠는가.
“네, 좋아요.”
노조미 하나가 활짝 웃는다. 오늘 중에서 가장 어여쁜 웃음이었다. 이걸로 대화는 끝내고 충분하건만, 스쿠나는 그저 말없이 어린 무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 자리를 발칵 뒤집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네가 계승 의식을 치르면 내가 수호령이 되어주마.”
정말로 구애였을 줄이야. 고죠 사토루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으며 못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저 말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 거라는 걸 알고도 하는 소리였다. 즉, 저 어린 무녀가 스무 살이 된다면 그 옆을 함께하겠다는 의미였다. 오로지 한 무녀를 지키는, 그런 삶을 살겠다는 고백. 아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어린 무녀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무슨 말을 내뱉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범 요괴 스쿠나는 기꺼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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