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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무지개

부제: 인류의 명예사

파널리 by 파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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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종교에서 그리는 천국의 문이라도 열린 듯한 풍경이었다. 눈에 보이는 하늘의 끝에서 땅끝까지 시작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지개로 물들어 있었다. 숨막힐 듯 압도적인 대자연의 경이로 보였으나, 21세기의 인류는 이미 이상 기후가 고작 1백 여년에 걸친 인류의 폭주적인 발전에서 비롯된 응보라는 것을 알고 불안에 시달렸다.

끝없는 무지개의 원인을 밝혀낸 것은 NASA의 수석 연구원인 엘리노어 세일러였다.

"이 모든 현상은 태양계에 진입하는 불량 행성 Eirene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Eirene의 중력은 외부 행성의 공전 궤도를 방해하여 일련의 천문학적 이상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구 대기로 끌어당겨지는 혜성 얼음의 양이 전례없이 증가하였고, 이 얼음 덩어리가 기화되면서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방출.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강수 상태와 끊임없는 무지개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엘리노어의 첫 발표는 인류에게 잠깐만의 안도를 전했다.

무지개는 인류에게 있어 희망과 경이의 상징이었고 전 세계는 거대한 기적을 일으킨 천체의 방문자를 기렸다.

여론이 반전된 것은 반나절만의 일이었다.

"대기의 수증기 밀도는 이미 임계 질량에 도달했습니다. 증가된 습도로 인해 열이 가두어지고 있으며, 온난화 현상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폭주하는 온실 효과를 겪고 있는 겁니다."

환경학자들은 Eirene가 일으킬 후폭풍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인류의 멸종 위기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기간 연구되어 왔으며, Eirene는 그 예측을 고작 반 세기 앞당겼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재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은 시도조차 때늦어 있었다. 사흘간의 무지개만으로 해안 도시들은 해저 도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수증기의 포화로 인해 인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에어컨이 없는 실외에서는 제대로 호흡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점점 영롱해지는 무지개는 인류의 곤경을 조롱하는 듯 했고, 이윽고 지표면에서 굴욕을 느낄 지성체는 절멸하고 말았다. 무지개는 여전히 하늘을 가로질러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더 이상 그 경이를 감상할 인류는 없었다. 천문학적 이상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재앙은 인류의 오랜 걱정거리였던 환경 문제를 무색하게 만들었고, 일부의 생명체를 잃은 지구는 무지개로 둘러싸인 보석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별이었다.


자연 속에 인간은 얼마나 쬐끄맣냐 이말입니다.

유료 분량은 없지만 100원은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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