𝕊ℍ𝕆ℝ𝕋 𝕊𝕋𝕆ℝ𝕐

선물

비가 오는 어느 날

그런 날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제대로 안 풀리는 날. 그리고 그런 자신을 모르고 욕만 먹는 날.

그날이 오늘이다. 아키모토 카나하는 생각했다.

항상 재때 울리던 알람시계는 배터리가 전부 닳아있고, 막히지 않았던 도로는 오늘따라 꽉 막혀있었다. 그 때문에 평생 하지 않던 지각을 하고 주임 선생님한테 야단까지 맞았다.

‘진짜··· 짜증나네.’

카나하는 속으로 화를 삭이며 책상을 두드렸다. 그나마 푸른 하늘이라도 보면 스트레스가 좀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하늘도 안 도와주는지 우중충한 날씨였다. 마치 툭하면 장대비가 우수수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 타마시 비번인데. 데리러 안 오겠지.’

카나하는 유일한 자신의 편인 타마시를 생각했다. 타마시는 카나하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그녀를 좋게 타이르고 가르쳤다. 그는 가족보다 훨씬 카나하를 아끼고 사랑해줬다.

타마시 보고 싶네. 그녀는 입 밖으로 작게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공기를 따라 학생들의 말소리에 스며들었다.

“카나 쨩. 우리 이동수업 가야 해.”

간결한 목소리로 단짝 친구인 카스가가 카나하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마음을 정리한 카나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교과서와 필통을 챙기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래, 더 불행한 일이 생기겠어? 카나하는 시덥찮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철회하게 되었다.


학교가 끝날 무렵이 되자 하늘에선 바늘 같은 비가 쏟아져내렸다. 소나기라 할지라도 꽤 오래갈 것 같은 장대비였다. 카나하는 학교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서 우산을 쓰고 가는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카스가는 이미 갔고, 고용 우산도 전부 가져갔어.’

오늘따라 되는 게 하나도 없지? 카나하는 계단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슬프진 않았다. 하지만 무력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렸다.

금수저 아가씨면 뭐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카나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선 눈물이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아가씨, 이런 데 있으면 감기 걸립니다.”

억수같이 내리는 장대비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나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후줄근한 모습.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없앨 수 없었다.

“타마시···.”

그녀는 계단에서 일어나 보라색 우산을 쓴 타마시에게 다가갔다. 타마시는 강아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카나하를 우산 속으로 데려왔다.

“너 오늘 비번인데 왜 왔어?”

“비만 오면 아가씨가 생각나거든요. 이 우산도 같이.”

카나하는 타마시가 쓰고 온 우산을 확인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좋아하던 우산. 그 우산을 타마시가 자신을 위해 쓰고 왔다. 카나하는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느꼈다.

“그래도 비번은 비번이야. 쉬는 날에는 쉬는 거라고.”

카나하는 아무렇지 않는 척 타마시를 타일렀다. 하지만 타마시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카나하의 반응을 즐겼다.

“너 비번이라고 평소 성격 나오는 거지?”

“티 많이 났나요, 아가씨? 그래도 아가씨 반응이 웃긴 걸 어떡해요.”

타마시는 웃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나하는 부끄러운 듯 볼이 발개진 상태로 타마시의 명치를 쎄게 쳤다. 폭 소리를 내며 타마시는 뒤로 밀려났고 카나하는 재빠르게 입구 쪽으로 들어갔다.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세게 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타마시는 명치를 부여잡곤 억울하다는 듯 카나하에게 칭얼대었다. 하지만 카나하는 들은 체 만 체 하며 고개를 돌렸다. 카나하의 반응을 지켜본 타마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말했다.

“곧 있으면 비가 그칠 거예요.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래요.”

타마시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마치 거짓말처럼. 카나하는 화가 풀린 척 비가 그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사이에는 일곱 빛깔로 빛나는 무지개가 보였다.

“이 무지개는 저의 선물입니다.”

타마시는 찡긋거리며 우산을 접었다. 카나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타마시의 옆을 지나갔다. 타마시는 자신을 지나쳐간 카나하를 보곤 당황하며 허둥지둥 달려갔다. 아마도 여기까진 예상 못 한 것 같다.

“등 뒤는 다 젖은 주제에. 그래도···”

고마워, 타마시. 나의 무지개가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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