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스텔라의 모브들

무지개 너머 어딘가

아도스텔라 배경의 지구에 사는 익명의 어시언 소녀 이야기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무지개가 하늘의 끝으로, 그러니까 우주로 이어져 있는 줄 알았다. 무지개가 시작되는 자리에 가면 그곳에서 무지개를 타고 저 우주에 올라가 황금이 쌓여있고, 먹을게 넘치고, 그곳에 사는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한 궁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비가 올 때마다 천장에서 새는 물이 이가 나간 도기그릇에 톡톡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저 위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다 그 소리가 멎고 흐린 하늘이 개면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희미한 무지개를 찾아다녔다. 나는 어리고, 집을 떠나서 지내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무지개의 끝을 찾아가본 적은 없었다. 단지 비온 뒤 잠깐 동안만 열리는 그 우주로의 길에 올라탔을 누군가를 부러워했다.

그 환상이 깨진 것은 이웃에 사는 어느 언니에 의해서였다. 상대적으로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된 그는 이 주변에선 보기 힘든 안경을 끼고 있었고, 이 동네로 오면서 수레 하나에 가득 싣고 온 한 무더기의 두꺼운 책들을 읽고 또 읽는 게 일상이었다. 우리집과 마찬가지로 비가 새고 창문조차 거의 막히지 않은 집에 살면서 비가 온 다음날이면 눅눅해진 책에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면서 바깥에 널어놓고는 했다. 그의 책들은 그가 가지고 올적부터 표지는 거의 다 바랬기 때문에 두꺼운 마커로 제목이 덧쓰여있었다.

하루는 비가 그친 후 그가 책들을 널고 있을 때 무지개를 찾아다니던 나와 마주쳤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우주엔 무지개 자체가 없어."

그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다시 내게로 내려다보며 덤덤히 말했다.

"밤에는 무지개가 안 뜨잖냐. 우주가 낮인 거 봤어?"

솔직히 우주 자체를 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다. 그냥 똑같이 해가 뜨고 지는 곳이 아니었다니. 그는 우주는 그저 밤에 보이는 별이 박힌 검은 배경이 영원히 지속될 뿐이라고 가르쳐줬다.

"하지만 우주에도 사람들이 살고, 심지어 거기에선 사람들이 전부 배불리 먹고 따뜻한 침대에 자면서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사는 곳이라던데요."

내가 순진하게 대답하자 그는 다시한번 하늘을, 이번에는 보다 오래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무지개는 거기로 데려다주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역할을 실제로 하고 있는 건-..."

그날 이후로 무지개에 대한 나의 환상은 깨졌다. 비가 온 후로도 바깥을 돌아다니며 무지개를 찾아다니는 일도 관뒀다. 대신 그 언니와 함께 책을 널고, 마른 책을 거두고는 그의 작은 방안에서 함께 그 책들을 읽었다. 대부분은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언니는 며칠 자리를 비우더니 어디선가 표지가 덜 바래고 덜 두꺼운 책을 한 수레 더 구해왔다. 나는 비가 오나 그치나 그것들을 읽고, 따라쓰며 공부에 매진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주 똑똑하고 아는 것 많은 사람이 되어, 여기서 6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 그리고 우주 위 궁전으로 가기 위해서.

궤도 엘리베이터가 나의 새로운 무지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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