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 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있다.

오늘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촉촉한 공기. 나도 모르게 비에 젖은건지 그냥 공기때문인지 눅눅해진 옷. 우산을 써도 십분이면 젖어버리는 신발. 비때문에 어지러운 차들의 사정으로 15분은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하는 점. 줄어든 내 잠. 그리고 또 올라간 내 불쾌지수. 다 싫다. 비가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 이럴거면 아가미라도 달리던가. 피부가 방수처리가 돼 있던가. 한참을 툴툴거리고나면, 그래도 비가 와서 좋은 게 하나쯤은 있다. 옆 집 그 분이랑 집에서 나가는 시간이 겹쳐져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인사라도 할 수 있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정말 짜증나서 죽었을지도.

오늘도 옆 집 그 분은 반짝이고 향긋했다. 볼때마다 반짝이는 외모로 따뜻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건낸 내 인사를 받아준다. 천사일지도 모른다. 아직 승천계획은 없는 것 같지만. 우리 아파트는 이웃끼리 마주치면 인사를 잘 하는 편이지만 우리의 인사는 특별하다. 일단 그 분이 집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나가면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 이때 그 분의 약간 부은 눈두덩이와 두 볼, 약간은 벙벙한 머리카락(아마 조금 곱슬인것같다)이 정말 귀엽다.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우리는 어색하게 엘리베이터가 몇 층인지만 노려본다. 제발 천천히 와라.

늘 B1 아니면 B2 버튼을 향하던 그 분의 손가락은 오늘 어느곳으로도 향하지 않았다.

“오늘은 왜 지하로 안가세요?”

“차를 놓고 와서요.”

앗싸. 오늘은 천사랑 같이 버스타러가나부다. 현관을 나서며 팡- 펼쳐지는 우산마냥 내 얼굴도 펼쳐졌다. 오늘은 어쩐지 운이 좋을 것 같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오분동안 빗발이 세졌다. 우리는 말 없이 걸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도 말이 없었다. 내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내 뇌세포는 나도 모르게 양철나무꾼의 심장을 훔쳐먹기라도 한건지.

“좋아해요.”

뜬금없는 나의 고백에 그 분의 눈이 툭 떨어질듯 커졌다가 이내 웃음 뒤로 사라졌다.

“옆집 학생. 더 크고 오세요.”

그 분은 내머리를 툭툭 두들기고는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래뵈도 난 당신이 첫사랑인데.
그분이 두들기고 간 머리가 파스를 바른 듯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코피가 났다.
버스가 도착해서 버스를 탔다.
한참을 울고 나니 내릴 곳을 지나친 후 였다. 창문밖은 언제 그친건지 맑게 게인 파란 하늘 사이로 얄굳은 햇님에 눈이 부셨다. 이미 다 젖은 신발의 질척함을 느끼며, 또 고인 눈물 사이로 반짝이는 무지개가 보였다.

반짝이는 무지개.
반짝이는 그 분.
그리고
반짝이는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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