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미끄럼틀
마비노기: 가내밀레가 살아가는 이야기
*스포일러: 적어도 C5 드라마2 이후 시점
*가내 밀레시안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NPC와의 교류가 있는 일상물입니다.
*6월 1일차 챌린지 ‘무지개’ 주제를 다룹니다.
“폭포다! 물이 엄청 쏟아져요~”
“너무 깊은 곳에 가지 않도록 조심해요.”
“스승님이랑 전에도 자주 놀러와서 잘 조심할 수 있어요! 캇셀프 누나는 같이 안 놀아요? 아주 시원한데에….”
“옷만 갈아입고 올게요. 그 동안 타르라크는 준비운동부터 해 두세요.”
아이는 붉은 눈을 반짝이더니 해맑은 기색으로 참방참방 자맥질을 하기 시작했다. 캇셀프는 같이 놀아주기라도 하라며 코기를 아이 옆으로 보내 두고는 가까운 그늘 속으로 들어섰다. 물에 젖어도 까딱없을 의상으로 환복하는 과정은 빠르고 간단했지만, 일련의 사고 흐름이 동작을 절로 굼뜨게 만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코기가 신나게 짖어대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온 김에 타르라크 좀 돌봐 주겠나? 이멘 마하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다녀오네. 하루 정도 걸리겠구먼.’
늙은 드루이드가 대뜸 건넨 부탁이었다. 무기 정령 부분에서 많은 신세를 지는 마당에 거절도 못할 아이 돌보기라서, 캇셀프는 여지없이 그러마고 승낙하여 드루이드의 제자를 데리고 물놀이 명목으로 코리브 계곡에 온 참이었다. 제게는 낯가림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기특하다면 기특하달지, 캇셀프는 자신의 일정이 매우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
캇셀프가 굳이 물놀이를 주도하지 않았어도, 아이는 이미 밀레시안의 코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예 밀레시안 대신 펫이 어린 인간을 돌봐 주는 격이다. 놀이에 끼어들었다가 흥을 깨는 대신 금세 배가 고파질 테니 요깃거리라도 준비해 두는 게 낫겠다 판단한 캇셀프가 무엇을 먹고 싶느냐 물었다.
“초콜렛 스테이크요!”
오랜만에 먹고 싶단다. 옛적에 자이언트 요리사에게서 대충 익혀 둔 레시피가 빛을 발할까 싶은 순간이다. 캇셀프는 어딘가를 누비고 있을 마스터셰프에게 무언의 감사를 보내며 요리를 준비했다.
“맛있었어요!”
에린 최고의 요리사가 차려주었던 것과 비교할 맛이겠느냐마는. 물 속에서 한창 뛰놀고 배까지 채우니, 타르라크는 금방 졸린 얼굴이 되어 하품을 했다. 코기의 푸근한 품에 파묻힌 아이에게서 드문드문 목소리가 들렸다.
“우웅, 더 놀고 싶은데 조금 졸리네요. 캇셀프 누나도 같이 놀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또 오면 그땐 같이 놀아요.”
“참, 폭포 옆에 무지개도 있었어요. 무지개를 만질 수 있는 마법도 있겠죠? 그런 마법이 있다면 얼른 배워서 무지개 미끄럼틀도 타고 싶어요.”
캇셀프는 보온을 위해 피운 모닥불에 바람을 가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비슷한 건 할 수 있겠네요.”
폭포를 얼린다든지, 기타 등등의 방법을 머릿속으로 흘려 넘기던 캇셀프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누나는 무지개를 만져본 적 있나요…?”
아이다운 질문에 어찌하여 쉬이 대답을 꺼낼 수 없었는지, 캇셀프는 조금 헷갈린 채로 음성을 보류하며 타오르는 불꽃을 조용히 응시했다.
무지개. 겉보기 아름답지만 실체는 없고, 아주 가까이 있더라도 손을 뻗어 만지려 하면 물방울만 덧없이 묻어날 뿐인 것. 적어도 낙원 티르 나 노이를 바란다든지, 신을 추락시킨다든지 따위의 행보보다는 무해할 테지만… 헛된 일에 대한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떠올리기 마련인 법을,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밀레시안은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따뜻한 모닥불가에 비스듬히 누워 새근새근 잠든 상태였다. 코기는 말할 것도 없이 숙면 중이었다.
“아뇨.”
캇셀프는 불 속으로 던져진 나뭇가지에 불꽃이 느른하게 옮겨붙는 과정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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