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 속 유저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공략조건이 고난도에 n회 리트인 게임은 좋아하세요?
소설 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유예성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동생이 쓴 소설에 빙의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게임에 빙의라니! 차라리 소설 쪽은 동생이라는 깊은 연결고리라도 있지, 게임은 정말이지 저와는 딱히 깊은 관련이 없었다. 그나마 여기가 게임 속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눈앞에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시스템 창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벗어나려면 일단 게임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게임의 엔딩 조건이 무엇일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봐도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유예성이 뚝 떨어진 이 게임의 세계관은 그로서도 처음 접하는 세계관이었으니까. 소환사의 협곡 같은 것도 없고, 물폭탄으로 누군가를 익사시키는 세계관도 아니며, 폭주족처럼 카트를 운전하는 세상도 아니었다.
두근 두근 아카데미!
두근두근 좋아하시네. 유예성은 시스템 상단에서 푸르게 빛나는 게임 제목을 응시했다. 아카데미라면 교육 관련 기관이겠고, 그런 곳에서 두근두근할 일이라면 대체 뭐지? 장학금을 타지 못해서 퇴학 위기에 처하는 거려나? 그럼 일단 무사히 졸업을 하면 게임 클리어를 하고 엔딩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무사 졸업을 목표로 해야겠군. 아르바이트라도 뛰어서 학비에 보태 써야겠다. 모름지기 게임에는 공략법이 있기 마련이니까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창백한 얼굴과 짙은 다크서클, 퀭한 안색을 한 유예성이 논문을 교수에게 제출했다. 빛나는 금발을 하나로 길게 묶은 교수가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하르트만 군. 그대에겐 퍽 애석한 소식이겠지만, 이번에도 내 대답은 같네."
"……다시 작성해서 오겠습니다."
하르트만, 그러니까 풀 네임으로는 아렌하이트 하르트만. 그것이 유예성이 빙의한 게임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젠장, 이 캐릭터가 졸업을 못한 대학원생이라는 건 몰랐다고! 유예성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이 게임의 장르는 공포게임이 분명했다.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고 논문을 쓰고 쓰고 또 쓰는 상황이라니 너무나도 공포스럽지 않은가.
차라리 죽으면 여길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아카데미 옥상에서 투신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로그아웃은 커녕 게임이 재시작되어 지난 회차에 쓰던 논문의 존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 땐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아니, 이미 미쳤나?
아무래도 이 게임은 논문이 통과되어야만 자신을 놔줄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교수가 유릭이었다! 왕세자로서도 재수가 없었지만 교수가 된 유릭은 끝내주게 재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논문을 통과시키는 법이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유릭이 웃으면서 내뱉는 말에 형체가 있었다면 제 논문은 이미 유릭의 말들로 난도질되어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밤샘 확정이네……. 유예성은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유릭은 창밖으로 아렌하이트 하르트만, 아니. 예성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심보가 꽤나 고약하구나. 신자의 신도야.]
"흐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방구석에서 작달막한 눈사람이 그런 유릭을 빤히 쳐다보았다.
"애초에 이 세계는 그쪽이 만들었잖아?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든지, '대학원생'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나로선 처음 접하는 개념이었고."
[그거야 그러하다만.]
아품 자의 대답에 유릭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예성이 담긴 채였다.
"나는 예성과 게임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왕이면 좀 더 오래도록 말이지. 그 모습을 본 아품 자는 혀를-눈사람에게 혀가 있는지는 차치하고- 찼다.
그렇게 '두근두근 아카데미!'의 n회차 플레이가 자동 저장되는 밤이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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