マジカルドクター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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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밴드를 붙인 밴드맨이 있었다.

왼손으로 일렉기타의 목을 잡고 남은 오른손으로는 열심히 줄을 뜯는다. 그 손놀림이 여간 빠른 게 아니다. 줄 위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손가락을 유우정은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밴드 멤버를 보기 위해 시선을 돌린 순간 그것은 시야에 들어온다.

민트색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소녀가 그려진 반창고.

일렉기타의 목을 잡은 왼손 손목 안쪽에 그것은 붙어있었다. 원래는 기타의 목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밴드맨이 퍼포먼스를 하려고 몸을 굽힌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현란하게 줄을 뜯는 오른손보다는 상대적으로 하는 일이 덜한 왼손이니 손목에 반창고 하나 붙었다고 크게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하지만 손목 안쪽에 상처가 나는 일이 어디 흔한가.

손목과 소녀가 그려진 반창고와 상처에 대해 멍하니 생각하던 우정은 어쩐지 동공이 풀린 밴드맨과 눈이 마주쳤다. 시끄러운 스테이지 위에서 연신 몸을 흔들던 그는 우정을 보고 두 눈을 찡긋했다. 윙크를 하려다 실패한 모습이었다.

“이야, 약이라니, 그런 거 아니야. 약은 아니지. 약이 아니라, 그런 거야. 뭐냐면, 도핑. 도핑이지.”

“도핑이랑 약이랑 똑같은 말 아니야?”

짧은 공연이 끝난 뒤 스테이지 뒤에서 밴드맨과 조우했다. 이전부터 적당히 안면이 있던 그는 냉큼 스테이지 뒤로 쫓아온 우정을 반갑게 맞이했다. 혼이 쏙 나가버린 듯이 퍼진 눈동자는 여전히 멀쩡하지 않아 보였다.

“아니야, 아니야. 약은 진짜 약을 말하는 거고. 우리는 약은 안 해. 약이 아니라 수액 같은 걸 맞을 뿐이야.”

“수액? 뭐, 병원 같은 데서?”

“아니, 자가조립 수액. 아는 사람한테 링거랑, 안에 들어가는 수액이랑 사서 집에서 느긋하게 놓는 거야. 병원 가면 왠지 마음이 다급해지잖아.”

“그게 약이랑 뭐가 다른데?!”

경악하는 우정을 맛간 눈동자로 빤히 응시하던 밴드맨은 얼굴에 주름을 잔뜩 만들면서 웃었다. 정신이 멀쩡한 인간이 지을 법한 표정은 아니었다.

“다르지, 달라. 이건 몸에 넣어도 약물로 검출이 안 되거든. 링거를 맞고 머리카락을 뽑아도 내 머리카락에서는 비듬이나 잔뜩 나온다는 말이야. 그러니깐 약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도핑. 기분 도핑.”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단 약물인 거잖아. 맞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링거라니, 비타민 주사도 그 정도는 아니야.”

“너 말 잘했다. 맞아. 비타민 주사야, 비타민 주사. 몸에 크게 해롭지도 않고…….”

“몸에 안 해로운지는 어떻게 알고?”

“내가 한 달 동안 매일같이 해 봤으니 알지. 저녁에 일어나서 대충 밥먹고 링거 놓으면 손가락이 그렇게 잘 움직일 수가 없어.”

밴드맨은 입가를 크게 비틀면서 웃었다. 뺨에 차가운 게 묻어 우정은 무심코 손으로 닦아냈다. 그게 남의 침이라는 사실은 닦자마자 알았다.

“그보다 유우, 뭘 그렇게 캐묻고 그래. 유우삐도 해 볼 생각 있어? 파는 사람 소개시켜 줄까?”

정곡을 찔렸다고 우정은 생각했다. 관심이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테다. 하지만 약이라면 이미 경험이 있다. 눈앞이 번쩍번쩍하니 사이키델릭한 모양으로 뒤틀리고, 귓가에 떠 다니던 음표들이 실체를 가지고 뺨을 눌러대다가, 이내 스스로 허공에 모여 한 편의 악보를 자아냈다. 기분이 좋다 못해 당장이라도 천국까지 날아갈 것 같은 끔찍한 쾌락을 우정은 장장 두 시간 가량 맛봤다.

한계를 넘은 쾌락은 어느 순간 고통이 되어 몸의 이곳저곳을 짓누른다. 환락의 세계에서 돌아온 우정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피곤과 허탈감에 휩싸였다. 굶주림에 지쳐있다가 패스트푸드를 있는대로 위장에 밀어넣어 배를 부풀린 듯한 불쾌감이 온몸에 감돌고 있었다.

약은 그렇게 중독성이 강하다고 하는데. 한순간의 쾌락과 그 후에 밀려오는 불쾌감을 저울질하다 보니 우정은 약에 도통 손이 가질 않았다. 물론 그때 경험했던 쾌락이 이따금 머릿속을 한 번 휘젓고 지나가긴 하지만. 아찔아찔하니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던 몸을 머리는 기억하고 있지만…….

“…아니, 난.”

약에는 관심이 없어, 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말이 우정의 입에서 튀어나가는 것보다 밴드맨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퍼뜩 손을 드는 게 빨랐다. 류 씨! 하며 양팔을 위로 올려 마구 흔들던 밴드맨은 우정의 등 뒤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났다. 무거운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온다.

“손가락이 아주 자유자재로 움직이던데, 와짱. 내 덕분이지?”

낮고 중후한 목소리였다. 분명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지만 동시에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한 묘한 파장이다. 일단은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우정은 남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데에는 도가 터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혼란한 목소리라니.

머릿속의 라이브러리에서 비슷한 파장의 목소리를 찾았다. 단숨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이렇게까지 목소리가 낮지는 않은데. 더군다나 이렇게 유창한 일본어를 쓰지도 않는데.

그런 의혹을 품고 우정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뭐? 누가 있었다고?”

소파에 앉아 세 개 째의 컵라면을 먹던 아담이 젓가락질을 멈췄다.

“아담도 전에 봤잖아. 그 사람. 내 동생이랑 사귀는 사람!”

아담은 대체 뭔 소리를 하냐는 듯 두꺼운 눈썹을 팔자로 만들었다. 웬일로 선글라스를 벗은 면상에 어이없는 빛을 띄우다가, 멈췄던 젓가락을 다시 움직여 좀 풀어진 면발을 입안으로 밀어넣는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반응에 우정은 한숨을 푹 쉬곤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있었다니깐. 아니, 그 분보다는 얼굴이 좀 더 남자답고, 몸도 남자답고 목소리도 남자다우니까 다른 사람이긴 하겠지만.”

“남자답다는 말을 한 번에 얼마나 쓰는 거야? 나보다 남자다워?”

입에 한가득 넣은 면발을 우물거리면서 말을 하는 통에 발음이 또렷하지가 않다. 우정은 새삼스럽게 눈앞의 파트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보다 드러난 근육이 많아.”

“뭐야! 여름이라고 살을 막 드러내고 다니는가 보네?”

“반팔 티를 입고 있었는데 팔 근육이…….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유우 말은.”

아담이 젓가락을 우정의 쪽으로 치켜들었다. 표면이 기름기로 반질거린다.

“유우 동생이랑 사귀는 그 잘생긴 인간. 그 인간이랑 닮은 인간이 링거로 맞는 약을 팔고 있다는 말이지?”

“그래!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뭐 놀랄 게 있나? 우리 말 한다는 거 보니 진짜 그 사람도 아닐 텐데. 그냥 닮은 사람, 아님 가족이겠지.”

“아니, 어우, 가족 중에 그런 무서운 사람이 있으면 좀…….”

따지자면 무서운 사람과 비슷한 일을 하는 아담이 컵라면에 처박은 얼굴을 퍼뜩 들었다. 우정을 바라보는 그 얼굴에는 이젠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유우 동생이 이상한 가족을 둔 남자랑 엮인 거 같아서 싫은가?”

우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의 앞에서는 이상하게 숨기는 게 없어진다. 아담이 일단은 사립탐정이라는 직업을 내걸고 있어서일까. 실상 약 배달 아르바이트나 하는 세미 야쿠자에 지나지 않지만.

면발을 전부 먹고 국물을 들이키던 아담이 컵라면 용기를 내려놓았다.

“뒤 좀 파 볼까?”

“뭐, 뭐라고?”

“동생이 걱정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컵라면 국물이 묻어 입가가 반질반질해진 아담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딱, 하고 청명한 소리가 났다.

“그 인간, 어디서 봤다고?”

그런 고로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그 약팔이를 어디서 만났냐는 물음에 유우는 나랑 처음으로 만났던 라이브하우스의 이름을 꺼냈다. 자기가 알던 밴드맨이 오늘도 공연을 하니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사족도 덧붙여주면서. 공연 시간은 당연하게도 저녁이었다. 나는 쨍한 6월의 햇빛을 피해 도쿄의 지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때웠다.

“누님, 최근에 잘생기고 떡대 좋은 아저씨 못 봤어?”

“뭐야아. 내 앞에 서 있잖아.”

“아니, 나 말고. 나보다 맨살을 더 드러내고 다니는 아저씨라던데.”

“잘생기고 떡대도 좋은데 맨살을 드러내고 다닌다고? 그런 섹시 가이는 못 봤어.”

도쿄역 지하상가 한구석에서 브래지어 장사를 하는 누님은 야시시한 미소를 흘리며 웃었다. 이 누님도 실은 얼마 전까지 나한테 약을 얻어 먹었다. 그러니 도쿄의 약팔이라면 적당히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괜히 프릴이 달린 여자 속옷을 하나 사면서 말을 섞었지만 아무래도 아는 게 없는 모양이다.

나는 불투명하고 희멀건 봉투에 담긴 여자 속옷을 덜렁덜렁 들고 다니다가 이젠 비누 상점에 들렀다. 매대에 어지럽게 늘어선 비누를 정리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주말 낮이라 사장은 없다.

“에지마 씨? 나 오늘은 시킨 거 없는데.”

“가장 최근에 산 게 언제야?”

“최근에? 어어, 이 주 전이었나. 그때 산 게 아직 남아서 시킬 생각은 안 하고 있었지.”

이 주 전에 이 면상을 본 기억은 없다. 나 말고 다른 녀석이 배달을 했을 테다. 녀석의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내 얼굴을 훑다가 이내 손가로 떨어졌다. 여자 속옷이 든 불투명한 비닐 백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이 주 전에 배달한 놈 얼굴 기억 나?”

“얼굴?”

“잘생기고 떡대 좋은 노출증 아저씨 아니었어?”

“뭐어? 아니야. 적어도 노출증은 절대 아니야. 다 벗고 배달했으면 기억에 안 남았을리가 없지.”

“그럼 그냥 잘생기고 떡대 좋은 아저씨 아니었어?”

“그거까진 기억이 안 나는걸. 배달 온 거에 정신이 팔려서, 배달원 얼굴 같은 건 볼 생각도 안 했어.”

쓸모 없는 녀석이다.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걸 보니 이놈한테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을 듯했다. 나는 녀석에게 희멀건 비닐 백을 억지로 떠넘겼다. 얘기를 나눠 준 보수라는 적당한 구실을 붙이면서, 그거 제법 야한 속옷이니까 여자애랑 놀 때 입혀보라면서. 녀석이 비닐 백 안에 손을 넣는 것까지만 보고 나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손이 가벼워진 나는 어쩐지 배가 고파져서 지상으로 향했다. 몇 시간만에 지하에서 나오니 하늘에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지는…… 않고, 해가 여전히 쨍한 열기를 아스팔트에 흩뿌리고나 있다. 여름이란 태양이 불타오르는 제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난 계절인 것이다.

유우가 말한 라이브하우스는 여기서 다섯 블록은 떨어진 곳에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라멘 맛집은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나는 콧등으로 흘러내리는 선글라스를 쭉 밀어올리곤 뜨거운 행군을 계속했다.

서글서글한 얼굴의 식당 주인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에지마 씨, 밖이 벌써 많이 덥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네. 근데 이거 어쩌나. 아직 냉라멘은 개시를 안 했어. 그의 말에서 지난 여름의 일을 떠올렸다. 길게 기른 머리를 묶어올리고 냉라멘을 우물대던 유우의 목선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됐어. 에어컨만 나오면 돼.”

손님은 대여섯 명 정도가 있었다. 같이 온 손님도 있고 혼자 온 손님도 있지만 그들 모두 나와 주인이 나누는 대화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카운터석에 앉아 차슈를 추가한 돈코츠 라멘을 주문하고 좀 기다렸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했다. 별 연락은 없고 잡스러운 푸시 알람만이 상단바를 더럽히고 있었다.

푸시 알람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지우며 유우가 말한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유우의 남동생의 남자친구를 닮은 약팔이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냥 닮은 사람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확률로 가족일 거라고도 예상한다. 유우는 사람의 목소리라면 깜짝 놀랄 정도로 구분을 잘 하니까. 외견뿐만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닮았다면 그건 우연이 아닌 유전이 개입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어쩌면, 유전적으로 아예 동일한 생물인지도 모르고.

유전적으로 동일하지만 성장 환경이 극명하게 달라 외견적 차이를 일궈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떨어져서 자란 쌍둥이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에지마 씨. 그렇게 진지한 얼굴은 또 처음 보네.”

카운터 너머에서 튀어나온 두 손이 김을 펄펄 쏟아내는 라멘 그릇을 두고 사라졌다. 한순간 숨을 삼킨 나는 답잖은 상념에서 벗어나 젓가락을 들었다.

라이브하우스에 들어섰을 때에는 정말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건물 숲 사이로 태양이 떨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던 나는 음료 한 잔 값이 포함된 라이브하우스의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억 그대로의 인테리어에 나는 내심 안심했다. 인테리어가 그대로라는 건 가게의 구조가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거니까.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손님들의 뒷모습을 쭉 훑어보고 있으니 육 년 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유우는 저 무대에서 드럼을 치고 있었고 나는 뒤쪽 테이블에 앉아 맛도 없는 논알콜 음료수를 홀짝이면서 공연이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에 통 관심이 없는 나는 금세 지루해져서 화장실은 이쪽이고 비상구는 저쪽이라는 사실을 탐색하고 있기도 했다.

육 년이 지난 지금도 화장실과 비상구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기억과 다른 게 하나. 무대에는 유우가 없고 유우의 친구인 밴드맨이 일렉기타를 들고 서 있다. 색색깔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아 발밑이 희게 빛나는 채로.

나는 육 년 전처럼 뒤쪽 테이블 가장자리에 털썩 앉았다. 사람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대다수가 남자였지만 발육 정도가 좋아보이는 녀석은 적었다. 이 안에 떡대 아저씨가 있으면 상당히 눈에 띌 텐데, 적어도 지금은 보이질 않았다.

무대 위에서 스태프들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밝게 빛나는 밴드맨은 아직 기타를 치지 않는다. 그저, 드럼과 키보드와 보컬과 베이스와 함께 무대를 장악하고만 있다.

조만간 공연은 시작될 것 같다. 하지만 떡대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유우의 말만 듣자면 떡대 아저씨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로 찾아왔다는 것 같으니, 어쩌면 공연이 끝난 후에야 라이브하우스로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꼼짝없이 여기서 공연을 다 보는 수밖에 없나, 하며 고민하고 있으니.

쟈쟝, 하고 기타가 소리를 냈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쟈가쟝, 하고 기타가 또 소리를 냈다.

관객들이 또 환호성을 질렀다.

쟈가쟝 쟈가쟝, 하고 연주를 시작한 기타를 따라, 두구두구두구, 하며 드럼이 곡조를 따르고, 띵동띵동하는 키보드는 명확한 멜로디를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와중, 보컬의 허밍음에 섞이는 묵직한 베이스.

나는 모르는 노래였다. 실상 나는 아는 노래가 손에 꼽는다. 그러니 아는 노래가 나오면 오히려 깜짝 놀랄 것이었다.

양손에 펜라이트를 든 관객들이 리듬에 맞춰 빛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나는 가장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라이브하우스에서 소중한 광원이 되어주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계속해서 인간 관찰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떡대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공연은 언제까지 하는 거지? 그걸 모르고 그냥 들어왔잖아. 주변에 직원도 안 보이고 달리 물어볼 사람도 없어 유우에게 메시지를 보내볼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공연이 재미가 없는가 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릴만큼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한 몸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라고 판단하기도 전에 하관에 심한 이물감이 들었다.

말이 안 나온다. 꽉 닫힌 입이 더 이상 움직이질 않는다. 턱에 좀 심할 정도로 강한 압력이.

어금니가 위아래로 딱 붙었다. 턱 아래에 갈고리가 박힌 것처럼 아프다. 도저히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나는 그제서야 눈앞의 그가 내 아랫턱을 잡아 뽑아낼 기세로 붙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야에는 두툼한 상체뿐이 보이질 않는다. 있는대로 눈을 치켜떠 그의 얼굴이라도 확인하려고 애썼지만 각도 상 불가능했다. 어두컴컴한 라이브하우스의 조명도 한몫했다.

“이건 월척인걸? 영업 확장을 좀 할 수 있으려나 싶어서 들른 건데 이런 대어가 걸려들다니.”

턱에 달라붙은 손을 콱 부여잡았다. 힘싸움으로는 나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다. 이대로 당겨서 떼어내면 되겠다고, 나는 안이하게 생각했다.

뚝 하고 턱뼈가 나가는 소리가 났다.

무대에서 들려오던 감미로운 소음이 한순간 삐 하며 멎었다.

“힘 좀 쓰나? 근데 너무 자만하지는 말아. 난 이래봬도 힘보다 전략 파라서 말이야. 네 손으로 턱을 잡아뽑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다.”

시큰하고 욱신거리는 통각이 곧장 얼굴 전체로 퍼져나갔다. 침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가 입안에 가득했다. 반사적으로 울대를 움찔거리는 나를 보고 그는 웃은 것 같았다. 아마도 웃었을 것이다. 턱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려 통각을 잘게 증폭시켰으니.

가능한 일을 세 가지 정도 생각했다. 멀쩡한 다리로 눈앞의 거한을 걷어차고 상황을 타개한다. 일단 가만히 그가 원하는 걸 들어본다. 이대로 정신을 잃고 꿈의 세계로 도망친다. 첫 번째 안을 실행했다간 턱이 정말로 와드득하며 뜯겨나갈 것 같았고 두 번째 안은 제법 현실적이었으며 세 번째 안을 택했다간 영원히 꿈의 세계에 갇히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숨을 가늘게 몰아쉬면서 알콜과 니코틴과 성호르몬에 쩔어 잘 돌아가지 않는 뇌를 굴렸다.

유우의 남동생의 남자친구를 닮은 약팔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보고 이런 태도를 보일 이유를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그곳에는 미싱 링크가 없다. 유우의 남동생의 남자친구를 닮은 사람이 나를 처죽일 이유도 없고 동업자인 약팔이가 내 턱을 뽑아 쇼크사로 죽여버릴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아예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아니, 어쩌면 이 어두운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 사이에서 사람을 잘못 보고 오인 협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 얘기를 좀 할까.”

거한이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나는 신경을 따라 사무치는 통각에 어쩔 줄 모르고 몸을 뒤틀었다. 다리로 테이블을 쳐 봐도 밴드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정겨운 타악기 소리로 변모할 뿐이었다.

“너를 찾고 있었다, 에지마 아다무.”

안타깝게도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었다.

“아니, 에노키지마 리쿠토.”

나는 차라리 턱을 뽑혀 쇼크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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